제목 [에세이] 그림 라디오 _ 1.한복 입고 롤러스케이트 타는 '내숭녀'
작성자 김현정 (ip:)
  • 작성일 17.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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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라디오]1.한복 입고 롤러스케이트 타는 '내숭녀'


내숭: 탄탄대로 Feign: Speed of Highway(2013)


오후 내내 빗방울이 자동차 유리창을 쉼 없이 두드린다. 비 때문에 조금 막히기는 했지만 긴 연휴의 끝을 장식하는 날씨치고 제법 운치가 있다.

여유 있게 내리는 빗방울과 달리 행선지를 찾아 분주히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의 안내가 어딘가 모르게 조급해 보인다.

출발 전, 내비게이션은 나에게 ‘최적 길안내’, ‘무료도로’, ‘최소시간’ 이렇게 세 가지 길을 제안했다.

대체로 이 세 가지 길이 다를 때가 많지만 종종 세 가지의 길이 일치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선택했던 길이 막히는지 잠시 주춤거리던 내비게이션은 곧장 다른 길을 안내한다.

그런 융통성에 묘한 ‘인간미’를 느끼며, 설정한 목표를 과감하게 수정하는 모습이 내심 대단하다 생각했다.

우리도 내비게이션처럼 항상 자신의 방향을 결정하며, 선택의 순간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선택을 하면 또 다른 결정이 기다리고 있고, 그것들 역시도 선택을 재촉한다. 예를 들어 운전할 때도 선택의 연속이다.

앞서 내비게이션이 제안한 세 가지 중 나는 ‘최적의 길’을 선택했고, 다음에는 집중을 위해 라디오의 클래식 채널을 들을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입담이 재미있기로 유명한 디제이들의 수다를 들을지 선택할 순간이 왔다.

 결국 이 선택에선 지루함이 이겼다. 재미있는 디제이 말에 슬금슬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사실 이십대에 있어 ‘현명한 선택’이란 어쩌면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선택이란 항상 생각하는 곳으로 흘러가는 것도 아니며, 선택의 결과 또한 늘 예상과 다르게 벗어나기 일쑤니까.

그렇기에 선택만큼 중요한 건 선택을 흔들림 없이 탄탄히 다져가는 끈기다. 단기 속성 암기법, 몇 시간만 투자하면 뭐든지 이룰 수 있다는 자기 계발서가 우리를 유혹하지만 왜 항상 이런 것들은 잠시뿐인 신기루 현상이 되는 것일까?

이런 책을 읽다보면 오히려 한 가지 작은 깨달음을 얻는다.

‘뭐든 한 번에 되는 일은 드물다.’

간혹 무엇인가 쉽게 얻어지는 결과가 있다면, 한번쯤 진짜 내 것인지 의심해보자. 짧게 얻은 시간만큼이나 빨리 소멸되어 버린다는 것을.

그림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다. 겹쳐 그리는 밑그림에는 수십개의 연필선이 필요하며, 구도에 대한 고민과 인물에 대한 정확한 감정이입의 시간들이 그대로 녹아있다.

그런 수많은 생각을 모아 결정하듯 정확한 선을 긋고 정성스럽게 채색하며 한지 입히기를 반복하다 보면 서서히 말하고자 하는 나의 모습이 거울처럼 보인다.

이 작품을 제작하던 때 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평가에 위축돼 있었다. 그렇지만 소극적인 마음을 이겨내고,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의 지향점을 향해 나아가자는 마음을 롤러스케이트를 탈 때의 상쾌한 느낌을 담아 표현했다.

목적과 방향의 선택이 비록 서툴다 하더라도 묵묵히 내 선택의 기준을 고민하고, 물리적인 시간들을 견뎌내다 보면 삶의 밑그림이 조금씩 보이게 될 것이고

그 위에 나만의 물감을 차곡차곡 그려본다면 생각보다 괜찮은 ‘나’ 라는 작품이 탄생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나아가는 길이 바로 나의 탄탄대로일 테니까.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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