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 발칙 혹은 발랄, '내숭녀'의 반전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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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 발칙 혹은 발랄, '내숭녀'의 반전 미학
Korean Economic News
韩国经济日报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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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호| MONEY_Artist 한국화가 김현정
111号_MONEY _Artist 韩国画家金炫廷
No. 111| MONEY_Artist Korean Painting Artist Kim Hyun-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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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한국경제 MONEY_2014년 08월호_발칙 혹은 발랄, '내숭녀'의 반전 미학


안녕하세요. 한국화가 김현정입니다.


제 SNS를 보시면, 가끔 과거 사진을 업로드하기도 하는데요.

그만큼 저는 과거 사진을 보면서 추억을 되새기기도 하고,

그 당시에 생각했던 것을 다시 떠올리며 느슨해진 제 자신을 채찍질하기도 합니다.

2년 전, 한국경제와 같이 인터뷰를 했었던 추억이 문득 떠올라 포스팅합니다.

인터뷰 당시, <내숭 올림픽> 전시가 펼쳐지고 있었는데요.


그럼, 2년 전 한국화가 김현정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한 번 엿볼까요?


한국화가 김현정


발칙 혹은 발랄, '내숭녀'의 반전 미학

그녀는 예뻤다. 얼굴도 예뻤고, 그림도 예뻤고,하는 '짓'도, 생각하는 것도 예뻤다.

이제 갓 스물일곱, 자신의 첫 번째 이야기를 성공적으로 선보인

 김현정 작가는 나이만큼 발랄했고, 나이보다 더 깊은 열정으로 가득했다.

'내숭'을 이야기하는 작가에게서 내숭이라고 도저히 찾아볼 수 없었던 그날의 만남은 그래서 반전이었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


수많은 인파로 북적거리는 전시장 안, 길게 늘어선 줄이 대체 뭔가 싶었다.

북적대는 인파를 뚫고 찾아낸 광경은 신선함 그 자체.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어여쁜 '처자'가 비슷하게 생긴

인물이 그려진 작품 앞에서 관객들과 함께 사진 촬영을 해 주고 있었다.

유명 스타의 팬미팅에서나 볼 법한 장면 앞에 '한국화의 아이돌'이라는 수식어가 저절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타칭 한국 화단의 유망주이자 자칭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욕심쟁이인 김현정 작가와의 만남은 그렇게 첫 장면부터 인상적이었다.

사실 이제 갓 데뷔 전을 치른 신예 작가의 전시회에 몰려든 인파 자체가 놀라웠다.

외국인 관광객을 포함해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 인사동 거리 한복판에

전시장이 위치해 있다는 것도 한 역할 했겠지만, 그것만으론 설명되지 않는 특별한 뭔가가 분명 있는 듯했다.

하루 최대 관람객 수 3733명으로, 전시가 열린 가나 인사아트센터 오픈 후

최다 방문객 기록을 경신했을 정도라니 더욱 호기심 충만. 더구나 이전까지 최고 방문객 기록을 가진

전시가 2600명이 몰린 '박수근 특별전'이었다는 사실까지 더해져 그 '뭔가'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냈다.


앞과 뒤가 다른 '내숭녀'의 고백적 자화상 함축해 표현하자면, 김 작가는 '발랄'했고, 작품은 '발칙'했다.

'내숭올림픽'이라는 타이틀에서 어느 정도 짐작된 유쾌함은 작품을 대면한 순간 더 큰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고상함의 대표 격인 한복을 입고 있지만 퍼포먼스는 전혀 고상하지 않은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들은

각각 다른 스토리를 지닌 채 일상과 그 일상 속 고민들을 무겁지 않은 터치로 그려 내고 있었다.

택배 박스 위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다리를 드러내 놓고 라면을 먹는가 하면, 근육질의 남자 사진을 배경으로

당구를 치고, 어설픈 자세로 역기를 들거나 골프를 치는 등 '내숭녀'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웃음을 유발했다.

속살이 훤히 비쳐 보이는 한복에 하이힐, 그리고 운동이라는 테마 자체의 부조화도 반전이었지만,

로고가 선명한 명품 백, 브랜드가 노출된 커피 음료, 하다못해 알고 보면 역기 무게가 김 작가의 몸무게라는

사실 등 곳곳에 깨알 같은 웃음 포인트까지 배치해 재미 배가. 그러나 결코 '재미'가 다가 아니다.

그 스스로 '고백적 자화상'이라고 표현하는 작품들은 한편으론 자기반성이자, 또 한편으론 앞과 뒤가 다른 삶을

사는 수많은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현대인을 옭아매는 '시선'과 그 시선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욕구의 표현이라고 할까.


"다분히 제 이야기예요. 저는 저를 소개할 때 그림을 읽어 주는데, 그러다 보면 제가 설명이 되더라고요.

재밌는 게 처음엔 제가 싫어하는 사람을 모델로 '내숭 떠는 사람'을 표현했어요.

내숭이란 건 '시선'의 다른 말이라고도 생각하는데, 남의 시선 의식하느라 앞과 뒤가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

미운 거예요. 그러다가 고상한 옷을 입고 고상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이야말로 내숭이라고 생각하게 됐고,

지금과 같은 퍼포먼스가 나오게 됐죠. 그러던 어느 날 새벽까지 그림을 그리다가 거울을 봤는데

그 안에 그림 속 인물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깨달았죠.

'아, 그 사람들이 미웠던 게 나랑 닮아서 그랬던 거구나'하고. 남 얘기가 아닌 내 얘기가 시작된 건 그때부터예요."


작업실에서 자주 먹는 인스턴트식품이나 온라인 쇼핑의 결과물인 택배 상자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렇고,

헬스장에 갈 시간이 없어 작업실 근처 근린공원에서 운동하다가 구상한 '올림픽' 콘셉트도 개인적 일상의 산물인 셈이다.

작품들을 모으면 작가의 라이프스타일이 보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러나 김 작가의 사적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공감대가 크다. 지난해 '내숭이야기'로 열었던 세 번의 전시에 선보인

작품들이 모두 '솔드아웃' 된 것만 봐도 작품이 가진 힘과 그로 인해 그에게 갖는 기대감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

또 하나 '내숭올림픽'에 쏟아진 대중의 관심은 그간 김 작가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해 온 결과이기도 했다.

참신한 발상과 주제, 정통 동양화의 이론과 기법에 기초해

변화를 시도한다는 것과 함께 김 작가를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 또한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화의 팜(pop)을 SNS를 통해 대중적으로 전파하는 공헌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저는 제 그림이 소재상 독창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한복을 입은 여자와 현대적인

소재의 믹스는 미술 쪽에선 흔한 주제예요. 심지어 동양화에서도 그래요.

화단에서는 제 그림의 소재 측면보다 SNS를 통한 대중성에 더 집중하는 것 같아요.

젊은 작가가 젊은 감각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있으니까요. 실제로 제 그림은 일종의 소셜 드로잉 개념이에요.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많은 분들이 아이디어를 주기도 하고 작품에 대해 의견을 말하기도 해요.

예전엔 작가들이 혼자 작업실에서 외롭게 일하는 환경이었다면, 제 경우는 혼자 있긴 하지만 혼자가 아닌 거죠.


직접 한지를 만들고 염색해 가며 '산고' 끝에 낳은 자식들 물론 20대인 김 작가가 일찌감치 두각을 드러내는 데는

소재적 재미나 대중성이 분명 커다란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겠지만, 작품에 대한 열정, 의지,

그리고 동양화 계승에 대한 열망은 연륜 많은 작가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작업 과정만 봐도 결코 녹록지 않다. 일단 작가 본인의 사진을 두 번 찍는다.

한 번은 최대한 몸의 형태가 드러나는 민소매티에 몸에 밀착되는 반바지를 입고, 또 한 번은 한복을 입고 찍는다.

그 후 사진에서 보이는 대로 화폭에 구사하게 되는데, 누드의 몸을 옅은 담채로 그린 후 마치 인형에게 올을 입히듯

덧입히는 식이다. 특히 잠자리 날개처럼 속이 들여다보이도록 얇은 한지에 염색해 콜라주(collage) 하는

작업은 물리적 시간도 시간이지만 재료를 구현해 내는 과정이 까다롭다.

심지어는 한지를 직접 만들고 한복과 어울리는 힐을 만들어 신기는 일까지 하고 있다니,

한 작품을 만드는 데 몇 달씩 걸린다는 말이 이해될 법도 하다.


“어떨 때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싶기도 해요. 그래도 한국화를 계속하고 싶다고 느끼는 게 일종의 의무감이 있어요.

한 번은 작품에 쓸 얇은 한지를 사러 갔는데 안 들어온다고 하더라고요.

장지방에 한지 만드는 분이 딱 한 분이었는데 그분이 이젠 돈이 안된다고 안 만든다는 거예요.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한지는 일본이나 중국에서 수입해 오는 것들이거든요.

그때 든 생각이 나마저 안 쓰면 안 되겠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한지 만드는 법, 염색 기법을 전수받아 지금은 웬만하면 만들어 쓰고 있죠.

그렇게 품과 노력을 들이다 보니 저는 제 그림을 너무 좋아요. (웃음)

말 그대로 산고 끝에 낳은 자식 같다고나 할까요."


'산고'라고 했지만 김 작가는 사실 그 복잡하고 까다로운 과정 자체를 즐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마음대로 펼치고 싶어서 '내숭올림픽' 전시를 직접 기획하고 대관부터

도슨트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도맡아 한 것도 같은 맥락.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 몇 배는 힘들게 살지만,

작품을 보고 함께 즐겨 주는 관객들을 보며 느끼는 보람과 기쁨은 훨씬 더 크다.

"그림만으로도 밥 먹고 살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던 것처럼, 신예 작가로서는 드물게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지만, 사실 한국화를 전공하던 서울대 학부 시절엔 오히려 전업 작가의 길을 망설였던 그였다.

작가의 길을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배고픔에 대한

감내가 두려웠다고나 할까. 그러나 지금은 교수가 된 선배의 한마디가 생각을 바꿔놓았다.


"'작가를 하고 싶지만 배고프지 않으냐 제 말에 '그렇게 바보 같은 말이 어디 있느냐'고,

'삼성맨들처럼 일하면 그믈만큼은 벌 수 있다'며 '해보지도 않고 단정적으로 포기하느냐'고 나무라셨죠.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어요. 그땐 지금처럼 24시간 그림만 생각하지도 않았고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기만 했었죠.

'그래, 배고프더라도 한 번 해보자'하고 용기를 냈더니 막상 무섭지 않더라고요."


그때부턴 작업에 엄청 욕심을 부리며 살았다. 크로키까지 포함해 3만여 점을 그렸다는 피카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한다는 각오를 잊지 않았다. 지난 1년간 동시에 여러 작품을

작업하는 방식을 통해 적잖은 신작들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도 끊임없는 자기 단련의 결과였다.

그러나 스물일곱 김 작가에겐 어디까지나 출발이고 시작일 뿐이다.

이룬 것보다 이뤄야 할 게 더 많고, 해 온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이 더 많기 때문이다.


"지금은 고민 투성이예요. 방법도 모르고 경로도 모르겠지만 해외 전시도 하고 싶고, 현재도 실천하고 있는 기부도

계속 확대해가고 싶어요. 이미지 저작권으로 나오는 수입은 100% 기부하고 있는데, 사실 기부는 작가로서 일 욕심이

아닌 돈 욕심을 내지 않기 위한 방편이자 저와의 약속이기도 해요.

1을 벌면 2를 벌고 싶고, 2를 벌면 10을 벌고 싶을까 봐서요.(웃음)"


스물일곱, 꽃 같은 나이에 이제 막 자신의 이야기 하나를 성공리에 세상에 꺼내놓은

그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알 수 없다"고 솔직한 발언을 했다.

오늘의 자신을 예전에 짐작할 수 없었던 것처럼, 내일의 모습 또한 모르는 게 당연하겠지만 그 말이

듣는 이에게는 어쩐지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같은 얘기도 자기만의 것으로 풀어내는 능력, 그러면서도 한국화를 그리는 작가로서의 자존감을 지켜 가겠다는 심지,

이 두 가지 조합으로 탄생하게 될 무궁무진한 '발칙 발랄 스토리'에 대한 기대감 말이다.


과거가 있었기에 현재가 존재하는 거겠죠? 또한, 현재를 열심히 살다 보면 행복한 미래가 펼쳐질 거라 굳게 믿습니다.


좋은 글과 멋진 사진을 찍어주신

박진영 기자님과, 이승재 기자님!

감사합니다. ^^


김현정 Kim, Hyun - Jung /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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