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문화신문 | 고상한 한복을 입고 있는 ‘자유로운 여인’
강동문화신문 2015년 4월 6일자(제8호) 문화면에 실린 한국화가 김현정 인터뷰다. 인사동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작가를 우연히 마주친 일화로 시작해, 한복을 현대인의 사회규범·통념의 은유로 사용하는 '내숭' 연작의 의미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생각을 다뤘다. 박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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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한 한복을 입고 있는
'자유로운 여인'
"김현정의 그림에는 위트가 있어 웃음을 자아내지만 마치 찰리 채플린의 블랙 코미디처럼 보고 난 뒤 씁쓸함을 남긴다. 그것이 나와 우리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늦더위가 한창 이었던 8월, 인사동의 카페에서 아이스 커피를 마시고 있을 무렵, 쇼윈도 넘어로 내 시선을 빼앗은 사람이 있었다.
찌는 듯 한 무더위 임에도 불구하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김현정 작가였다. 당시에는 그녀가 누군지 몰랐기에 '전통 혼례 중인가?, 아니면 퍼포먼스?' 정도로 생각해버리곤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 커피를 다 마신 뒤 화랑에 그림을 보러 갔을 때, 좀 전에 보았던 한복을 입은 여자도 그 자리에 있었다.
갤러리 직원은 그녀가 한국화를 그리는 작가이며, 작품에 관해서도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내가 김현정 작가에게 던진 첫 마디는 작품에 대해서가 아니라 '안 더워요?' 였다.
"덥죠. 더워 죽겠어요. 습도도 완전 높은 것 같아."
의외의 대답이었다. 한복을 입은 자화상을 그리기에 '평소에 한복을 즐겨 입는다' 라던지, '한복의 전통에 대한 변론' 들을 말할 것 같았던 내 생각은 빗나갔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작가의 전시를 보게 됐다. 누드로 전체적 여인의 모습을 그려낸 뒤 그 위에 한지를 사용해 덧붙이는 콜라주 기법을 사용해 그려진 작품 속 모습들은 예의와 전통성을 상징하는 한복과는 대조를 이루는 해 보인듯해 우체국 택배 박스 위에서 자장면을 먹는 모습이나,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하는 모습들은 한복이라는 소재와 어울리지 않았다.
'고상해 보이는 한복을 입은 여인이 도대체 왜?'
자칫 어여쁜 현대판 미인도로만 여길 수 있는 김현정의 작품을 보게 되면 드는 의문이다.
그녀가 말하는 작품의 키워드는 '내숭' 이다. 내숭은 크게는 겉과 속이 다름을 의미하지만 주로 속은 엉큼할 때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는 고운 빛깔의 치마폭에 싸여 단아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잖아요."
작가가 사용한 한복은 현대인의 삶의 전체 모습을 하나의 부분으로 보여주고 있는 제유법이다. 우리는 평소, 사회규범이나 예절, 도덕기준이라는 한복을 입고 살아간다. 한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고상하게 여기는 것 역시 이에 해당 될 것이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스스로가 정해 놓은 관념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이건 저 역시도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현 사회의 '자기만족' 이라는 거대담론은 아이러니하게도 진정 자신의 가치와 본 모습을 망각시키고 있다. 건강을 위해 한다는 운동은 그 의미가 변질 되어 필요도 없는 근육의 생성을 위해 몸을 혹사 시키고 있고, 개성이란 말은 잃어버린 채 누가 정해 놓은지도 모르는 트렌드를 쫓아 불필요한 소비를 반복하는, 오히려 '만족'을 얻기 위해 '만족'이라는 이름의 멍에를 짊어지고 힘겹게 살아간다.
김현정 작가의 작품들은 만족을 얻기 위한 모습을 한복이라는 그녀만의 멍에를 차용해 그려낸다. 한복을 입는 건 당연히 불편하고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작품 속 인물들은 한복을 입고 있는 상태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발칙한 행동들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행동들은 사실 일기나 수필을 쓰듯 그녀가 평소 생각하고 실제로 살아가는 일상의 한 단면이라고 한다. 그 때문인지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 형태를 보는 것과 더불어 마치 영화 '트루먼 쇼'처럼 누군가의 일상을 훔쳐보는 듯 한 재미까지도 더해지는 듯하다.
"존재의 모호함과 수많은 허상에 대한 반발심이 작품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작품을 그려나가면서 그동안 내가 진솔하다고 느꼈던 것들 중 대부분이 허상들임을 알게 됐고 작품이 완성 될 즈음에는 저와 타인의 시선에서 비롯된 괴리감을 조금은 해소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보는 것은 내 자신이 아닌 타인이다. 때문에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도, 타인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도 자유로울 수 없다. 내 모습을 더 잘 알고 있는 것은 어쩌면 타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러한 시선과 의식 속에 영원히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정상 한복을 입고 있으면 어떠랴. 진정 중요한 것은 어떤 옷을 입고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하고 싶고, 원하느냐일 것이다.
오래 뒤 김현정 작가를 다시 만났다.
"오늘은 한복 안 입었네요?"
"이것도 한복이에요. 개량한복"
박일규 기자
제니티스 128 x 188
나를 움직이는 당신 130 x 196
완벽한 밥상 130 x 162
순정녀 112 x 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