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크리에이터 | 한국화가 김현정 이야기- 내숭 시리즈1
'Oh! 크리에이터' 두 번째 편으로 김현정 작가의 대표작인 '내숭 시리즈'의 탄생 배경과 의미를 다뤘다. 작가는 내숭녀 캐릭터가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자화상이라고 설명하며, '투혼', '운치 있다', '아차' 등 개별 작품의 소재와 제목을 붙이는 방식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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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김현정' 두 번째 이야기
리얼한 우리 일상! 21세기 풍속화 '내숭 시리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기준으로 스스로를 재며 살아왔다는 김현정 작가. 앞에서 웃어주던 사람들이 뒤에서 다른 이야기를 하고, 편견으로 자신을 쉽게 평가하는 사람들을 겪으며 우울증도 앓았다. 시선의 무게가 버거워 그림으로 말하기 시작한 내면의 이야기. “그러는 너희는 얼마나 떳떳한데!”라고 묻고 싶었으나 그림 속 주인공은 다른 사람들이 아닌 그녀 자신을 닮아 있었고, 나라고 얼마나 다른 사람이었는지를 자문하게 되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겉과 속이 다른 일상의 장면을 포착해 적나라하게 표현한 작품은 ‘내숭 이야기’, ‘내숭 올림픽’, ‘내숭 놀이동산’ 시리즈로 이어졌다. 전통 한국화 기법을 접목한 톡톡 튀는 이미지는 김현정 작가를 대표하는 화풍으로 자리 잡았고, 작업을 중심으로 강의, 강연, 콜라보 등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넓히며 ‘소통하는 미술’을 위해 당당하게 나서고 있다.
시선과 통념으로부터 자유를 찾기 위한 고백적 자화상이자 공감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미술. 김현정 작가의 두 번째 이야기는 곧 그녀 자신이기도 한 ‘내숭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다.
Q 내숭 시리즈의 주인공인 ‘내숭녀’의 시작부터 이야기해 보자.
내숭녀는 대학교 3학년 때부터 그렸다. 대한민국여성미술대전, 세계평화미술대전 등 무심코 낸 공모전에서 ‘내숭 이야기’로 한국화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면서 내숭 이야기를 더 심도 있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처음 의도는 겉과 속이 다르게 내숭을 떠는 사람들에 대한 희화화의 욕구였지만, 지금은 그 본질이 나 자신으로 옮겨와 일탈과 자유를 꿈꾸는 고백적 자화상이 되었다. 그런 과정들을 거쳐 지금은 ‘내숭’ 자체를 심리학적, 철학적 분석 대상으로 삼고 있다.
Q 작업에서 ‘내숭’은 어떤 의미인가?
내 작업에서 ‘내숭’은 흔히 사용하는 내숭의 용례보다 좀 더 넓은 개념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통념적 평가를 만족시키기 위해 속마음과 다른 겉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모든 태도’를 이른다. 어쩌면 불편할 수 있는 ‘시선’이라는 주제를 밝고 위트 있게 표현하자는 목표가 있었다.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표현기법에 아이러니함을 주고자 한 것이다.
Q 내숭을 떠는 인물을 주로 여성으로 그리는 이유는?
내숭의 본래 정의는 성별에 중립적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보편적 욕구에 따라, 보통의 사람들이 자신의 모자란 부분을 감추고 좋은 모습을 보이고자 하는 데서 나타나는 불일치에 가깝다. 그렇지만 내숭이라고 하면 흔히 여성을 떠올리는 것처럼, 자신의 욕구와 본래 모습을 감추는 경우가 남자에 비해 여자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여자로서 직접 그런 부분들을 실감했기 때문에 ‘내숭’의 인물을 여자로 한 측면도 있다.
Q 리얼하게 포착한 내숭녀의 상황이 특히 많은 공감을 일으켰다. 상황이나 소품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나?
자화상이니 만큼 실제로 일상의 순간순간에 영감을 얻는다. 예를 들어 ‘투혼(2013년)’은 끼니를 거르며 작업을 하다가 쓰러지겠다 싶었던 순간에 전투적으로 햄버거를 먹던 것에서 소재를 얻었다. 그림을 그리던 중이었기 때문에 손에 기름을 묻히지 않으려고 빨대로 감자튀김을 집어먹는 모습이다. ‘운치 있다(2013년)’는 오롯이 내가 독점하는 공간인 화장실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그 순간이 비밀스러우면서도 운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경험을 작품으로 그렸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것이 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인지, 공감대가 있는지를 먼저 따져본다. 그 뒤에 상황에 대한 스토리를 짜고 구도를 맞추는 방식이다.
Q 덕분에 ‘21세기 풍속화가’라는 별명을 얻었다.
외국 사람들에게, 혹은 미래의 한국에 살아갈 아이들에게 지금 시대 한국의 모습을 전하고 싶었다. 우리가 옛날 풍속화를 보고 그 시대 풍경을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나는 대중목욕탕을 정말 독특하고 특별한 우리 문화라고 생각하는데, 목욕탕을 사진으로는 잘 찾아볼 수가 없지 않나. 그래서 여자 목욕탕의 아주 흔한 풍경들을 아름답게 그림으로 담았다. 아이디어는 생활과 경험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경우가 많고, 그것이 보편적인 것일수록 더 많은 사랑을 받는 것 같다.
Q 작품명을 보고 나면 내숭녀의 상황이 더 재미있고 친근하게 읽힌다. 작품명은 어떻게 정하나?
위트가 있으면서도 그림의 주제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제목을 찾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한다. 대표적으로 ‘아차(我差, Oops)’ 같이 이중적 의미를 담은 제목을 재미있게 봐주시는 것 같다. ‘아차’는 그림 속 인물의 실수를 부각시켜 나 아(我), 모자랄 차(差)를 써 빈틈이 있는 인물의 상태를 은유함과 동시에 그러한 상황에서 인물이 내지를 수 있는 “아차!”라는 의성어를 제목으로 붙인 것이다. 라면을 먹다가 명품 가방 속에서 흘러넘치고 있는 (스타벅스)커피를 발견했을 때, 정말 ‘아차’ 싶은 순간이지 않을까? 이런 상황의 유희들을 작업에서 지향하려고 한다.
Q SNS에 작품 이미지를 공개하고 작품명을 공모(?) 하기도 하던데?
작업의 고민을 혼자 너무 진지하게만 다루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기를 바랐다. 보통의 경우에도 작품이 완성되면 친구나 가족들과 함께 여러 후보들을 놓고 제일 적합한 제목이 무엇일지 같이 고민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작품이 대중과 소통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SNS를 통해 사람들과 직접 대화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좋아하기도 하고. 이런 과정들이 관객들에게도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Q 일상에서 영감을 얻는 만큼 상황과 아이템은 굉장히 현대적이지만, 표현기법과 재료는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전통적 미의 요소를 살리면서도 동시대에서 편하게 향유하고 공감되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한복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에 특히 욕심을 부리는 편이다. 한지 콜라주로 한복 저고리 특유의 서걱거리는 질감을 입체적으로 살렸고, 수묵담채로 그린 한복 치마는 속으로 비치는 누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며 내숭에 대한 관객의 통찰을 기대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융합’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업을 할 때 김홍도 선생과 신윤복 선생을 비롯한 선조들의 작품을 자주 떠올린다. 과거 풍속화에 담긴 진솔함과 위트, 화면 구성의 센스와 용필 능력은 나에게 하나의 표상과도 같다.
Q 내숭녀는 한복을 입는다. 한복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한복은 격식 있는 자리에서 입는 고상한 옷이라는 요즘의 인식이 일상의 자연스러운 행동과 대비되면서 내숭의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격식’과 ‘일상’의 대비가 ‘겉’과 ‘속’의 대비인 내숭을 환유하는 것이다. 한복은 여러 벌의 옷을 겹쳐 입기도 하고 치마가 길고 넓기 때문에 은폐의 속성이 있는 옷이다. 한복 속이 훤히 드러나게 표현함으로써 내숭을 떠는 인물의 속마음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다. 개인적으로 한복의 선과 색감, 문양, 장신구를 좋아하는 취향도 한복을 그리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한국화가 김현정이 쓰는 재료부터 11단계에 이르는 작업 과정까지! 내숭 시리즈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가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기획ㅣ디자인프레스 편집부
취재·글 : 디자인프레스 에디터 문한아
사진 : 김잔듸(516 studio)
자료제공 : 김현정아트크리에이티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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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크리에이터 - 한국화가 김현정
1. 키워드로 보는 인물탐구
☞ 2. 김현정의 내숭 시리즈(1)
3. 김현정의 내숭 시리즈(2)
4. 예술가로 살아남기
5. 김현정의 '좋아요'(일상과 취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