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크리에이터 | 한국화가 김현정 이야기-키워드로 보는 인물탐구
네이버 디자인의 인터뷰 연재 'Oh! 크리에이터' 24번째 편으로 한국화가 김현정을 소개했다. 서울대 동양화과 졸업 이력과 성장 과정, '내숭녀' 캐릭터가 탄생한 배경, SNS를 통한 대중과의 소통 방식 등을 키워드 중심으로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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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김현정' 첫 번째 이야기
서울대, 내숭녀, SNS, 그리고 소문!
한국화가 김현정
1988년생. 선화예중·고등학교, 서울대 동양화과를 거쳐 동대학원 동양화과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현재 동대학원 동양화과 박사 학위 과정 중이다. 가나아트센터 오픈 이래 최대 관객을 모은 2014년 개인전 ‘내숭 올림픽’, 출품작 13점이 이틀 만에 완판 되어 화제가 된 2013년 ‘내숭 이야기’를 비롯하여 다양한 국내외 전시를 통해 작품을 알려왔다. 2016년 1월에는 뉴욕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초대개인전을 열었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화의 역사를 조명하는 전시에서 최연소 작가로 초청전시를 하였다. 2017년에는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선정하는 '2017 30세 이하 영향력 있는 30인' 에 한국 미술인으로는 첫 번째로 선정되었고, 활발한 작품 활동 중에 SNS, 블로그를 통한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한국화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공감을 일으키는 독특한 화풍, 젊은 나이에, 조금은 튀는 행보로 주목받는 한국화가 김현정. ‘Oh! 크리에이터’ 인터뷰이로 김현정 작가를 점찍고 인터뷰 요청을 보낸지 며칠 후, 웬 남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김현정아트크리에이티브센터’의 연구원이라 소개한 그는 인터뷰 스케줄을 꼼꼼하게 체크하더니 때마다 문자에, 전화까지. 수십 페이지 분량의 예상 답변까지 받아보고 나니 에디터가 인터뷰이에게 거꾸로 관리받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는 비결이 이런 촘촘한 매니지먼트에 있었던 모양.
김현정 작가는 여느 인터뷰 기사 사진에서 본 것처럼 고운 얼굴에 예쁜 한복을 입고 있었다. 새로운 작품을 위한 사진 촬영을 막 마치고 왔다는 작가는 잠시 피곤한 기색이더니 손님들을 척척 챙기며 능숙하게 인터뷰 세팅을 하기 시작했다. 작업 이야기를 할 때는 오히려 신이 난 모습. 만나기 전에는 거만하거나 새침하지 않을까 했지만 웬걸, "아 그렇습니까, 허허"하는 말투로 분위기를 띄우고, 사진 포즈도 아주 척척이다.
‘한국화의 아이돌’, ‘21세기 풍속화가’ 등등 김현정 작가에게는 따라붙는 수식어가 유독 많다. 김현정 작가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키워드들로 그녀에 대해 먼저 알아보기로 했다.
김현정 작가는 선화예중, 선화예고, 그리고 서울대 동양화과를 나왔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리되었다고. 그런데 잠깐, 서울대가 그렇게 ‘자연스럽게’ 갈 수 있는 곳이었던가? 일도 많이 하기로 소문났던데…. 이 사람 혹시 ‘범생이’인가?
Q 그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8살 때부터 전문 화실을 다니면서 정밀묘사, 석고소묘 같은 입시미술을 배웠다. 고등학생 언니 오빠들이 나를 ‘코딱지’라 불렀던 기억이 난다. 음악, 무용도 해봤는데 역시 미술이 가장 재미있었다. 어려서부터 늘 화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예술학교를 선택했다. 계기라고 하면 좀 시시하지만 중학교 2학년 때 색연필로 참외 단면을 그리는 숙제가 있었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다! 그 뒤로 미술이 싫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화가가 운명이었다고 생각한다.
Q 그림만큼 공부도 열심히 했나 보다.
누가 시키는 것을 잘 따라 하는 스타일이다. 당시 입시미술은 장수에 비례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오래, 그리고 많이 그려본 덕분에 그림 성적은 늘 좋은 편이었고, 특목고의 빡빡한 커리큘럼을 잘 따르는 학생이었다. 원했던 대학은 여러번 도전한 끝에 겨우 들어갔다. 지금껏 가장 열심히 공부하던 시절이 아닐까 싶다.
Q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스타일?
완성도에 대한 강박이나 오기가 있다. 쉴 때도 그냥 쉬지 못하고 어딘가에 스스로를 옭아맨다. 일하기 싫고 졸리고 피곤한 날도 당연히 있지만 할 일을 계속 만든다. 오지랖도 넓고 호기심도 많아서 한 시도 쉴 틈이 없다. 요즘엔 건강을 생각해서 조금 자제하는 중이다.
Q 최근에 박사과정까지 시작했다고 들었다.
남들보다 일을 빨리 시작한 편이다.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초대 개인전도 학부를 졸업하기 전에 했고, 석사과정 때는 작업을 하면서 고등학교 시간강사 일을 했다. 나중에는 일이 너무 바빠져서 더 이상 학교는 못 다니겠구나 하면서 졸업했다. 강의안을 준비하면서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말하는 것이 정말 다른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양한 콘텐츠를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싶은 욕심에 책을 보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전문가를 찾아다녔다.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해보고 싶어서 욕심을 내서 시작했다. (Q 앞으로 어떤 것을 더 연구하고 싶은가?) 동양화와 재료학을 좀 더 알고 싶다. 예를 들어 물감도 색마다 빛이 바래고 번지는 정도가 다 다르기 때문에 계산을 하고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알수록 더 궁금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더 쉽고 재미있고 깊게 알려 주려면 내가 먼저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내숭'은 사전적 의미로 ‘겉으로는 순해 보이나 속으로는 엉큼함’이라는 뜻이다. 김현정 작가의 ‘내숭 시리즈’에 등장하는 인물은 혼자이고 여성이며 속이 비치는 한복에 하이힐을 신는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었을 법한 평범한 상황이지만 제삼자가 되어 보니 마냥 웃기지만은 않은 아이러니. 작품 속 내숭녀 역시 매일의 일상을 사는 우리처럼, 표정이 없다.
Q ‘내숭녀’는 어떤 인물인가?
많은 사람들이 주변 사람과의 관계나 타인의 시선에 대해 고민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다른 사람의 시선과 기대를 충족시키려고 노력하다 보니 스스로의 실체를 가늠하기 힘든 순간이 찾아왔다. 고민 끝에 ‘나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통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를 추구해야 한다는 답을 얻었다. 작품 속 여성은 자신의 내숭을 드러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자신의 실체를 깨닫고 고백하면서 주체적인 삶을 실현하고자 하는 여성이다.
Q 내숭녀를 그리게 된 계기가 있었나?
편견을 가지고 나를 함부로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얼마나 떳떳하길래!" 하며 그들을 희화화하고 싶었다. 당연히 자화상이 아니었고 단지 인물 모델이 필요해 무심코 나를 모델로 삼았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다 보니 편견과 통념이라는 모두의 본능적이고 보편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편견을 가지고 살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던 거다. 그때부터 내 생각과 일상, 경험들을 작업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Q 상황뿐만 아니라 내숭녀의 외모도 작가를 많이 닮은 것 같다.
사실적인 묘사를 위해 인물의 구도와 자세를 인물 사진에서 참고한다. 스스로 사진에 모델이 되었지만 화면에 그리는 인물은 다른 사람의 인격을 덧씌웠기 때문에 당연히 그 인물이 나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새벽에 작업을 하다 거울을 봤는데 화폭에 인물이 나랑 똑같이 생겼더라. ‘당당하게 제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타인을 의식하며 어정쩡한’ 그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었다. 우연하고 사소한 경험이었지만 중요한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Q 이후의 작업은 어떻게 달라졌나?
그림 속에 타자화된 나를 발견하고 나니 어디로 향할 줄 모르던 시선을 내면으로 집중할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스스로 나를 분명히 정의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속박되어 있는 지금의 나를 솔직하고 당당하게 털어놓는다면 조금씩 그 시선 앞에 당당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기 고백적 작업을 통해 나의 본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화가의 일 중에 웬 SNS인가 했더니 뭐하나 허투루 하지 못하는 그녀의 성격이 여기에서도 발동한 것 같다. 네이버 공식 블로그 운영자이며 10만 명의 팔로워가 있는 화가. 공식 사이트,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 네이버 포스트, 그라폴리오를 사진, 영상, 텍스트, 편집까지 웬만한 전문가 수준으로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빠른 업데이트야 파워블로거의 덕목이라 쳐도, 그림 그리는 과정까지 영상으로 찍어 올리는 건 너무 영업 비밀(?)을 공개하는 거 아닌가? SNS가 뭐길래.
Q SNS에서 무려 10만 명의 팔로워들과 작품으로 소통하고 있다.
홍보의 목적도 당연히 있지만 SNS가 화가라는 직업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화가를 직업으로 하면서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었지만 한편으로 삶이 피폐하고 외로워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무서웠다. 예전부터 SNS에서는 말 걸어 주시는 분들이 많았고, 댓글도 하나하나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작품에 대한 글을 쓰다 보면 생각을 정리하고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심지어 다음 작품에 영감을 얻기도 한다. SNS를 통해 긴장감을 유지하고 자신감을 얻는 것 같다.
Q 생활 속에 미술이 살아 있어야 한다고 자주 이야기 하던데. SNS 활동을 같은 맥락으로 봐도 될까?
그럴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SNS가 생활에 가까이 있으니까. 가끔 웹이나 모바일에 작품을 공개하는 것을 걱정해 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작업을 노하우라고 생각하면 거부감이 클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저작권 문제가 항상 걸리는 것도 사실이다. 나에게는 그림이 우울증을 해소하기 위한 작업이었고 SNS로 많은 분들과 소통하며 힘을 얻은 덕분에 지금까지 왔다. 어떻게든 보답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고 내가 가진 가장 큰 능력이 그림이니, 내 작업을 보고 한 명이라도 즐거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충분한 것 같다.
Q SNS 활동이 작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편이다.
화가들은 작업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기 위해 모여서 작업하거나 평론가를 찾기도 한다. SNS는 얼굴을 보고 얘기하는 것도 아니라서 더 직설적인 의견을 빠르게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Like나 하트 개수, 댓글만 봐도 바로 안다. 그래서 더 감사한 마음이 든다.
Q 인기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
작업 과정에서 한국화의 전통 기법을 고수하는 동시에 현대 미술 요소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것이 ‘내숭 시리즈’와 어울리는 표현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B급 유머를 좋아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렵게 생각했던 한국화를 조금 쉽고 유쾌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긍정적 상황이 좋은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작품이 곧 나의 실체를 고백하고 홀로서기 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라는 점도 특히 많은 분들의 공감을 얻었다. 실존 인물의 서사적 스토리를 통해 작품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 아닐까?
Q 팔로워는 주로 어린 친구들이 많을 것 같은데?
많이들 그렇게 생각하는데 연령대가 굉장히 넓다. 특히 또래 친구들과는 서로 공감되는 이슈가 많다. 네일숍 다니고 때 되면 머리하고 하는 이야기들. 그림 하나로 시작된 수다가 밤 새는 줄 모른다. 미술 하는 자녀를 둔 학부모님들도 있고 더 위로는 한복에 추억이 있으신 분들. 한복을 옛 것이라 하지 않고 재미있게 표현하는 것을 기특하다 해 주신다.
화제가 되는 만큼 보는 눈도 많았고, 독특한 행보에 대한 높은 관심이 듣기 좋은 소리만 했을 리가 없다. 어리다면 어린 나이에 시작한 활동 초기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응원의 한편으로 근거 없는 악플과 소문, 쓴소리를 적지 않게 들어온 김현정 작가. 새침할 거란 예상과 다른 쿨한 모습에 조금 민감할 것 같았던 이야기까지 슬쩍 건내 보았다.
Q 외부 활동이나 SNS가 많이 알려져서 인지 아티스트로서 김현정을 안 좋게 보는 시선이 있다. 언론 노출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안 좋게 보는 시선도 많지만 변함없이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모습 때문인지 점점 많은 분들께서 응원해 주셔서 감사하다. 이러한 행보가 맞는 것인가 많이 고민스럽고 힘들었지만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큰 위로가 된다. 안 좋은 시선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예술가로서 작품으로 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작업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가장 큰 고민과 관심은 늘 '다음 작업'에 집중되어 있다.
Q 그렇게 생각하기까지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지금이야 안좋게 보는 시선에도 어느 정도 의연하게 되었지만 이런 마음을 먹기까지 마음의 상처도 컸다. 막상 좋지 않은 비평이나 평가를 들은 날에는 기운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나에게 쏟아지는 말들이 나의 눈을 트이게 하는 흔치 않은 경험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단련해 가고 있다. 쓴 소리도 관심과 애정이 있기 때문이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받고 수용하려고 한다. 이제는 오히려 그런 마케팅 활동은 어떻게 하는 거냐고 좀 알려 달라 하시는 분들도 많다.
기획ㅣ디자인프레스 편집부
취재·글 : 디자인프레스 에디터 문한아
사진 : 김잔듸(516 studio)
자료제공 : 김현정아트크리에이티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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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크리에이터 - 한국화가 김현정
☞ 1. 키워드로 보는 인물탐구
2. 김현정의 내숭 시리즈(1)
3. 김현정의 내숭 시리즈(2)
4. 예술가로 살아남기
5. 김현정의 '좋아요'(일상과 취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