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나라경제 |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KDI 경제정보센터가 발행하는 '나라경제' 연재 코너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에 김현정 작가가 직접 쓴 에세이. 2012년 하반기 전업 작가와 직장인 사이에서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 '내숭' 시리즈에 몰두해 2013년 3월 아인갤러리·우림갤러리에서 데뷔전 '내숭이야기'를 연 과정을 회고했다.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하루하루 매 순간'이라는 말로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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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대생'에서 '내숭작가'로 발돋움하다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김현정 한국화가
대표작: <내숭: 나르시스>, <폼생폼사: 내가 제일 잘나가> 등
대학 마지막 학기를 마칠 무렵인 2012년 6월, 나는 거의 매일 밤잠을 설치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려왔던 내가 앞으로 전업 작가의 길을 걸어야 할지, 직장인이 돼야 할지, 그것도 아니면 다른 어떠한 길을 찾아내야 할지를 선택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내숭'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내 작업이 화단(畵壇)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내숭'이라는 단어를 작품 제목으로 사용해도 될지를 수없이 반복해서 고민했다. 작업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부족한 자신감만큼 막막함과 불안감은 지속됐다.
그러다가 그해 가을, 부산 아인갤러리에서 개인전 초대를 받았다. '신진유망작가 초대전'에 선정돼 서울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 전시할 기회도 얻었다. 두 전시 모두 6개월 뒤인 이듬해 3월로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내숭이야기'를 계속 그려야 할지, 새로운 내용을 그려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의구심은 계속 커지는데, 참 아이러니하게 내숭이야기 외에는 다른 어떠한 것도 그리고 싶지 않았다. 뭔지 모를 마력에 자꾸만 끌렸다. 내숭이야기를 그릴 때마다 마주하는 내 자신이 편안했고, 그런 자신을 화폭에 옮기는 일은 스스로를 다독이는 치유의 과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릴 때면 몰입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이 막막한 불안과 우울을 밀어냈다. 그해 가을부터 이듬해 3월까지, 6개월 동안 오로지 내숭이야기 작업에만 몰두했다. 2013년 3월 약 스무 점의 초창기 작업들이 '내숭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다. 데뷔전이기도 한 아인갤러리와 서울 우림갤러리에서의 관객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된 <내숭: 아차>, <내숭: 제니티스>, <내숭: 나를 움직이는 당신>, <내숭: 과유불급>, <내숭: 떨림> 등이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2012년 하반기는 지금의 김현정으로 성장시켜준 치열했던 시간이다. 그때의 시간이 그저 흔한 '미대생'에서 '내숭작가'라는 이름으로 발돋움하게 해주는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당시로 되돌아간다면 온전히 작업에만 몰두해 그때의 치열한 시간들과 마주할 수 있을까. 지금은 2012년보다는 형편이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당시 생긴 관성으로 나는 여전히 간절한 마음으로 작업 중이다. 뜨거운 열정과 간절함으로 자신의 일에 몰입하고 최선을 다하는 시간. 돌이켜 생각해보니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하루하루 매 순간이 아닐까 한다.
<내숭: 아차(我差) / OOps>
한지 위에 수묵담채, 콜라주
2013, 김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