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고 싶은 우리 옷, 한복 | 한국 현대미술에 그려진 ‘사회적 외피’ 한복
한국 현대미술에서 한복을 소재로 다루는 작가들을 조명한 특집 기사로, 정명조·이진·신선미와 함께 김현정 작가를 소개한다. 김현정 작가는 '내숭' 연작에서 한복을 입은 여인으로 분한 자신을 등장시켜 형형색색의 저고리, 하이힐로 변신한 꽃신 등 파격적 의상과 행동으로 한복에 대한 통념을 깨뜨리며 20대를 살아가는 복잡한 내면을 도발적으로 드러낸 작가로 소개된다. 글_Seo Jung Ihm(아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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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으로 널리 소통하다 [風] _ 현대미술 작가의 눈으로 보다
민화, 풍속화, 전통 초상화처럼 과거의 예술 형식부터 한복, 오방색, 한지 등까지 한국 고유의 것이라 일컫는 전통적 모티프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작품은 2000년대 이후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나타난 큰 흐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writer Seo Jung Ihm(아트 칼럼니스트)
물론 과거에도 이러한 경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주로 전통적 예술의 서사에 개인사를 접목하거나 현대의 대중적 아이콘을 삽입하는 등 전통 회화로 고착된 양식을 자신의 회화 세계로 끌어들여 새로운 시각과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동시대성을 담아내려 노력한다. 또 한편으로는 그동안 서구의 인식 체계로만 바라보던 예술을 우리의 주체적 시각으로 바라보기 위해 오랫동안 규정되어온 것의 숨은 의미를 연구자 같은 자세로 밝혀내는 등 남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성을 대표하는 아이콘인 한복은 몇몇 작가에게 굉장히 매력적인 소재로 인식되었다. 일반적으로 그 나라의 전통 복식은 당대 사회적 의미와 문화를 내재한 '사회적 외피'이자, 한 개인의 삶의 체취와 존재를 환기시키는 '사회적 삶의 흔적'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이라는 지역에서 발아된 사상, 관습, 행위, 형태, 기술 등이 깃든 한복은 절제와 겸손, 인내를 미덕으로 삼는 단아한 인성과 정신, 배려와 존중을 기초로 한 한국적 미의식이 강하게 드러나는 매개체다. 한복을 작품의 주요 모티프로 등장시키는 작가들 역시 이러한 점을 간과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순히 전통의 선과 형태 등 한복이 지닌 조형적 아름다움에만 천착하지 않고, 과거로부터 현재에 전해진 사상, 관행, 행동 등을 다양한 각도로 조명하며 한국성이라 불리는 기표들의 해석 가능성을 확장하려 한다.
한국 고유의 의복을 작품의 주요 소재로 삼는 첫 번째 작가는 조선 시대의 화려하고 다채로운 전통 의복을 엄격하게 갖춰 입은 여성의 '뒷모습'을 정교하게 묘사해온 '정명조'다. 그는 2000년부터 아름다움의 표상으로서 한복을 입은 여인을 제시하며 일관된 작업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가 그림으로 그려내는 의상은 봉황 무늬 옷을 입은 왕비, 분홍 신을 신은 기생 등 우아한 비단옷을 입고 칠보 장신구가 꽂힌 가체를 쓴 조선 시대 여인들의 것이다. 작가는 현대적으로 변용한 옷이 아니라 고증에 충실한 의복을 모델에게 입혀 사진을 찍은 후 그것을 확대해 등신대 크기의 캔버스에 최대한 있는 그대로, 즉 조선 시대 왕실의 복식 문양, 혼례용 의상 형태와 색채, 질감까지 사실적으로 옮겨낸다. 전통 의복에 자신의 해석이나 변형을 삽입하기보다 원형 자체가 지닌 아름다움을 단 한 치도 손상하고 싶지 않은 의도에서다.
작가에 따르면 이렇게까지 과거의 것을 강박적으로 재현하는 이유는 "기계 문명이 이끄는 현대사회에서 잊혀져가는 과거의 아름다움을 재현하고, 동시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내면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적 요소도 그렇지만 정명조 작업이 독특하게 읽히는 지점은 무엇보다 여인들의 뒷모습만 그린다는 점, 그리고 화려한 의상과 대비되어 내면적 불안과 강하게 자신을 드러내려는 욕망이 담긴 정신적 공간으로 설정한 검은색 배경이다. 작가는 항상 화폭에 뒤돌아서 있는 얼굴 없는 초상화를 그려내기에, 옷차림과 장신구 등 의복만으로 그들의 사회적 신분이 무엇이었는지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이는 여성이라는 사실만 주지시키려는 작가의 의중이자, 색채와 문양에 나타난 형태미에 주의를 집중시키고 사물의 익명성과 내면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다.
정명조와 유사한 방식으로 사진 이미지를 이용해 한복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되, 의복 자체를 사람이 태어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세상을 뜰 때까지 하나의 삶 그 자체로 이해하며 접근하는 작가도 있다. 수십 년간 묵은 천을 사용해 끊임없는 고증과 탐구로 한복을 지어온 담연 이혜순의 의복을 주요 대상으로 취해 화폭에 자신만의 시선을 투영하는 작가 '이진'이 바로 그다. 작가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전통적 한복을 현대에 이르러 어떤 식으로 사용하고 있는지 탐구하며,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우리 역사 속 여인들의 기나긴 인내와 기다림 그리고 단아함을 강요받던 사회적 배경을 들여다보려 한다. 즉 옛 여인들의 지난한 삶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사회적 기재로서 한복을 해석하는 것이다.
풍속화의 형식을 취하되 그 안에 현대 문물과 한복을 입은 자신의 일상을 대입해 일기 형식으로 풀어내는 작가도 있다. 먼저 전통 채색 기법을 충실하게 따르면서도 액자소설식 구성으로 해학미가 넘치는 화면을 전개하는 '신선미'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자신의 모습을 등장시켜 소소한 일상과 내면을 친숙하게 전달한다. 어린 시절부터 한복에 매료되었고 그 복식에 깃든 색채와 문양에 관심이 많던 작가는 고증에 충실한 조선 시대 여성의 복식을 차용할 뿐 아니라 이를 통해 동양 삼국의 여성 복식, 규방 문화까지 화폭에 담아내려 한다. 이러한 그의 작품에서 주목할 점은 그림이 액자소설식 구성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림의 전체적 모습은 고양이를 잡으려 넙죽 엎드린 여인과 그 위로 고양이가 응수하듯 떨어뜨린 베개 등의 순간적 장면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그것은 여인이 읽다가 바닥에 팽개쳐버린 만화책 표지가 어지럽던 앞의 상황들을 정리해주는 식이다. 작가는 이렇듯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생활하는 과거의 여자(자신)를 현재의 문맥 안으로 불러들여 단아하고 고결하게 보이지만 의외의 복병, 즉 내면의 욕구를 드러낸 작은 분신들에 의해 체통이 무너지는 역발상을 주요 모티프로 삼아 익살스러움을 유도한다.
'김현정' 역시 한복을 입은 여인으로 분한 자신을 등장시켜 일상에서 느낀 감수성을 도발적인 제스처로 전달하는 작가다. '내숭'이라는 범주로 묶어놓은 일련의 작품에서 작가가 선택한 한복은 형형색색의 화사한 저고리, 하이힐로 변신한 꽃신, 속살이 훤히 비치는 치마다. 이러한 의상을 입은 여인은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근린 생활 공원의 체육 시설에서 운동을 하며 "수고했어, 오늘도"라는 말로 자신을 위로하고, 포켓볼을 치며 "폼생폼사"를 외치고, 인라인스케이트나 보드를 타며 "내가 제일 잘 나가"라고 허세를 떠는 등 20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복잡다단한 내면, 예컨대, 삶에 대한 막막함과 두려움, 그 사이의 환희와 즐거움의 순간을 여과 없이 그려낸다. 이와 함께 그는 단아해야 하고 행동과 마음가짐을 조심히 해야 하는, 현대로 오면서 고착화되고 무의식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한복의 통념을 파격적 의상과 행동으로 무참히 깨뜨리면서 암묵적으로 여성을 규제해온 사회적 환경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려 한다.
이러한 작품들은 서양에서 선과 색으로만 단정 지은 한복의 문법을 전통의 정신성에 기반을 둔 고유의 미학으로 해석하게 만들고, 한국이라는 토양이 겪어온 사회와 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로서 바라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