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가 김현정 ARTIST Hyunjung KIM

oh크리에이티브 | oh크리에이티브

매체 oh크리에이티브 구분 잡지·정기간행물 게재일 2017.07.09 기자/프로그램 취재·글 문한아(디자인프레스 에디터), 사진 김잔듸(516 studio) 관리코드 MI166

네이버 디자인(디자인프레스)이 연재한 인터뷰 시리즈 '[Oh! 크리에이터] #24 한국화가 김현정'으로, 2017년 7월 9일부터 13일까지 닷새에 걸쳐 인물 소개, '내숭 시리즈'의 창작 배경과 11단계 작업 과정, 예술가로서의 다양한 활동, 소소한 일상과 취향까지 다섯 편으로 나뉘어 게재되었다. 서울대 동양화과 출신인 김현정 작가가 '내숭녀'를 통해 담아낸 자화상적 메시지와 한지 콜라주 기법, SNS를 통한 대중 소통 방식을 상세히 다뤘다. 취재·글 문한아 에디터, 사진 김잔듸(516 studio).

전체 본문 보기

[Oh! 크리에이터] #24 한국화가 김현정 - 키워드로 보는 인물탐구

한국화가 '김현정' 첫 번째 이야기

서울대, 내숭녀, SNS, 그리고 소문!

한국화가 김현정

1988년생. 선화예중·고등학교, 서울대 동양화과를 거쳐 동대학원 동양화과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현재 동대학원 동양화과 박사 학위 과정 중이다. 가나아트센터 오픈 이래 최대 관객을 모은 2014년 개인전 '내숭 올림픽', 출품작 13점이 이틀 만에 완판 되어 화제가 된 2013년 '내숭 이야기'를 비롯하여 다양한 국내외 전시를 통해 작품을 알려왔다. 2016년 1월에는 뉴욕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초대개인전을 열었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화의 역사를 조명하는 전시에서 최연소 작가로 초청전시를 하였다. 2017년에는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선정하는 '2017 30세 이하 영향력 있는 30인' 에 한국 미술인으로는 첫 번째로 선정되었고, 활발한 작품 활동 중에 SNS, 블로그를 통한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한국화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공감을 일으키는 독특한 화풍, 젊은 나이에, 조금은 튀는 행보로 주목받는 한국화가 김현정. 'Oh! 크리에이터' 인터뷰이로 김현정 작가를 점찍고 인터뷰 요청을 보낸지 며칠 후, 웬 남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김현정아트크리에이티브센터'의 연구원이라 소개한 그는 인터뷰 스케줄을 꼼꼼하게 체크하더니 때마다 문자에, 전화까지. 수십 페이지 분량의 예상 답변까지 받아보고 나니 에디터가 인터뷰이에게 거꾸로 관리받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는 비결이 이런 촘촘한 매니지먼트에 있었던 모양.

김현정 작가는 여느 인터뷰 기사 사진에서 본 것처럼 고운 얼굴에 예쁜 한복을 입고 있었다. 새로운 작품을 위한 사진 촬영을 막 마치고 왔다는 작가는 잠시 피곤한 기색이더니 손님들을 척척 챙기며 능숙하게 인터뷰 세팅을 하기 시작했다. 작업 이야기를 할 때는 오히려 신이 난 모습. 만나기 전에는 거만하거나 새침하지 않을까 했지만 웬걸, "아 그렇습니까, 허허"하는 말투로 분위기를 띄우고, 사진 포즈도 아주 척척이다.

'한국화의 아이돌', '21세기 풍속화가' 등등 김현정 작가에게는 따라붙는 수식어가 유독 많다. 김현정 작가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키워드들로 그녀에 대해 먼저 알아보기로 했다.

[내숭 : 나를 움직이는 당신ㅣ130 × 196 cmㅣ2013년]

[내숭 : 할부인생ㅣ159 x 115 cmㅣ2016년]

서울대

김현정 작가는 선화예중, 선화예고, 그리고 서울대 동양화과를 나왔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리되었다고. 그런데 잠깐, 서울대가 그렇게 '자연스럽게' 갈 수 있는 곳이었던가? 일도 많이 하기로 소문났던데…. 이 사람 혹시 '범생이'인가?

Q 그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8살 때부터 전문 화실을 다니면서 정밀묘사, 석고소묘 같은 입시미술을 배웠다. 고등학생 언니 오빠들이 나를 '코딱지'라 불렀던 기억이 난다. 음악, 무용도 해봤는데 역시 미술이 가장 재미있었다. 어려서부터 늘 화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예술학교를 선택했다. 계기라고 하면 좀 시시하지만 중학교 2학년 때 색연필로 참외 단면을 그리는 숙제가 있었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다! 그 뒤로 미술이 싫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화가가 운명이었다고 생각한다.

Q 그림만큼 공부도 열심히 했나 보다.

누가 시키는 것을 잘 따라 하는 스타일이다. 당시 입시미술은 장수에 비례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오래, 그리고 많이 그려본 덕분에 그림 성적은 늘 좋은 편이었고, 특목고의 빡빡한 커리큘럼을 잘 따르는 학생이었다. 원했던 대학은 여러번 도전한 끝에 겨우 들어갔다. 지금껏 가장 열심히 공부하던 시절이 아닐까 싶다.

Q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스타일?

완성도에 대한 강박이나 오기가 있다. 쉴 때도 그냥 쉬지 못하고 어딘가에 스스로를 옭아맨다. 일하기 싫고 졸리고 피곤한 날도 당연히 있지만 할 일을 계속 만든다. 오지랖도 넓고 호기심도 많아서 한 시도 쉴 틈이 없다. 요즘엔 건강을 생각해서 조금 자제하는 중이다.

Q 최근에 박사과정까지 시작했다고 들었다.

남들보다 일을 빨리 시작한 편이다.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초대 개인전도 학부를 졸업하기 전에 했고, 석사과정 때는 작업을 하면서 고등학교 시간강사 일을 했다. 나중에는 일이 너무 바빠져서 더 이상 학교는 못 다니겠구나 하면서 졸업했다. 강의안을 준비하면서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말하는 것이 정말 다른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양한 콘텐츠를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싶은 욕심에 책을 보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전문가를 찾아다녔다.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해보고 싶어서 욕심을 내서 시작했다. (Q 앞으로 어떤 것을 더 연구하고 싶은가?) 동양화와 재료학을 좀 더 알고 싶다. 예를 들어 물감도 색마다 빛이 바래고 번지는 정도가 다 다르기 때문에 계산을 하고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알수록 더 궁금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더 쉽고 재미있고 깊게 알려 주려면 내가 먼저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내숭 : 완벽한 밥상ㅣ130 × 162 cmㅣ2013년]

[폼생폼사 : 순정녀ㅣ112 × 134 cmㅣ2014년]

내숭녀

'내숭'은 사전적 의미로 '겉으로는 순해 보이나 속으로는 엉큼함'이라는 뜻이다. 김현정 작가의 '내숭 시리즈'에 등장하는 인물은 혼자이고 여성이며 속이 비치는 한복에 하이힐을 신는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었을 법한 평범한 상황이지만 제삼자가 되어 보니 마냥 웃기지만은 않은 아이러니. 작품 속 내숭녀 역시 매일의 일상을 사는 우리처럼, 표정이 없다.

Q '내숭녀'는 어떤 인물인가?

많은 사람들이 주변 사람과의 관계나 타인의 시선에 대해 고민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다른 사람의 시선과 기대를 충족시키려고 노력하다 보니 스스로의 실체를 가늠하기 힘든 순간이 찾아왔다. 고민 끝에 '나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통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를 추구해야 한다는 답을 얻었다. 작품 속 여성은 자신의 내숭을 드러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자신의 실체를 깨닫고 고백하면서 주체적인 삶을 실현하고자 하는 여성이다.

Q 내숭녀를 그리게 된 계기가 있었나?

편견을 가지고 나를 함부로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얼마나 떳떳하길래!" 하며 그들을 희화화하고 싶었다. 당연히 자화상이 아니었고 단지 인물 모델이 필요해 무심코 나를 모델로 삼았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다 보니 편견과 통념이라는 모두의 본능적이고 보편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편견을 가지고 살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던 거다. 그때부터 내 생각과 일상, 경험들을 작업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Q 상황뿐만 아니라 내숭녀의 외모도 작가를 많이 닮은 것 같다.

사실적인 묘사를 위해 인물의 구도와 자세를 인물 사진에서 참고한다. 스스로 사진에 모델이 되었지만 화면에 그리는 인물은 다른 사람의 인격을 덧씌웠기 때문에 당연히 그 인물이 나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새벽에 작업을 하다 거울을 봤는데 화폭에 인물이 나랑 똑같이 생겼더라. '당당하게 제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타인을 의식하며 어정쩡한' 그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었다. 우연하고 사소한 경험이었지만 중요한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Q 이후의 작업은 어떻게 달라졌나?

그림 속에 타자화된 나를 발견하고 나니 어디로 향할 줄 모르던 시선을 내면으로 집중할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스스로 나를 분명히 정의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속박되어 있는 지금의 나를 솔직하고 당당하게 털어놓는다면 조금씩 그 시선 앞에 당당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기 고백적 작업을 통해 나의 본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SNS

화가의 일 중에 웬 SNS인가 했더니 뭐하나 허투루 하지 못하는 그녀의 성격이 여기에서도 발동한 것 같다. 네이버 공식 블로그 운영자이며 10만 명의 팔로워가 있는 화가. 공식 사이트,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 네이버 포스트, 그라폴리오를 사진, 영상, 텍스트, 편집까지 웬만한 전문가 수준으로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빠른 업데이트야 파워블로거의 덕목이라 쳐도, 그림 그리는 과정까지 영상으로 찍어 올리는 건 너무 영업 비밀(?)을 공개하는 거 아닌가? SNS가 뭐길래.

Q SNS에서 무려 10만 명의 팔로워들과 작품으로 소통하고 있다.

홍보의 목적도 당연히 있지만 SNS가 화가라는 직업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화가를 직업으로 하면서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었지만 한편으로 삶이 피폐하고 외로워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무서웠다. 예전부터 SNS에서는 말 걸어 주시는 분들이 많았고, 댓글도 하나하나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작품에 대한 글을 쓰다 보면 생각을 정리하고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심지어 다음 작품에 영감을 얻기도 한다. SNS를 통해 긴장감을 유지하고 자신감을 얻는 것 같다.

Q 생활 속에 미술이 살아 있어야 한다고 자주 이야기 하던데. SNS 활동을 같은 맥락으로 봐도 될까?

그럴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SNS가 생활에 가까이 있으니까. 가끔 웹이나 모바일에 작품을 공개하는 것을 걱정해 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작업을 노하우라고 생각하면 거부감이 클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저작권 문제가 항상 걸리는 것도 사실이다. 나에게는 그림이 우울증을 해소하기 위한 작업이었고 SNS로 많은 분들과 소통하며 힘을 얻은 덕분에 지금까지 왔다. 어떻게든 보답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고 내가 가진 가장 큰 능력이 그림이니, 내 작업을 보고 한 명이라도 즐거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충분한 것 같다.

Q SNS 활동이 작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편이다.

화가들은 작업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기 위해 모여서 작업하거나 평론가를 찾기도 한다. SNS는 얼굴을 보고 얘기하는 것도 아니라서 더 직설적인 의견을 빠르게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Like나 하트 개수, 댓글만 봐도 바로 안다. 그래서 더 감사한 마음이 든다.

Q 인기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

작업 과정에서 한국화의 전통 기법을 고수하는 동시에 현대 미술 요소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것이 '내숭 시리즈'와 어울리는 표현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B급 유머를 좋아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렵게 생각했던 한국화를 조금 쉽고 유쾌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긍정적 상황이 좋은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작품이 곧 나의 실체를 고백하고 홀로서기 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라는 점도 특히 많은 분들의 공감을 얻었다. 실존 인물의 서사적 스토리를 통해 작품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 아닐까?

Q 팔로워는 주로 어린 친구들이 많을 것 같은데?

많이들 그렇게 생각하는데 연령대가 굉장히 넓다. 특히 또래 친구들과는 서로 공감되는 이슈가 많다. 네일숍 다니고 때 되면 머리하고 하는 이야기들. 그림 하나로 시작된 수다가 밤 새는 줄 모른다. 미술 하는 자녀를 둔 학부모님들도 있고 더 위로는 한복에 추억이 있으신 분들. 한복을 옛 것이라 하지 않고 재미있게 표현하는 것을 기특하다 해 주신다.

소문

화제가 되는 만큼 보는 눈도 많았고, 독특한 행보에 대한 높은 관심이 듣기 좋은 소리만 했을 리가 없다. 어리다면 어린 나이에 시작한 활동 초기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응원의 한편으로 근거 없는 악플과 소문, 쓴소리를 적지 않게 들어온 김현정 작가. 새침할 거란 예상과 다른 쿨한 모습에 조금 민감할 것 같았던 이야기까지 슬쩍 건내 보았다.

Q 외부 활동이나 SNS가 많이 알려져서 인지 아티스트로서 김현정을 안 좋게 보는 시선이 있다. 언론 노출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안 좋게 보는 시선도 많지만 변함없이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모습 때문인지 점점 많은 분들께서 응원해 주셔서 감사하다. 이러한 행보가 맞는 것인가 많이 고민스럽고 힘들었지만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큰 위로가 된다. 안 좋은 시선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예술가로서 작품으로 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작업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가장 큰 고민과 관심은 늘 '다음 작업'에 집중되어 있다.

Q 그렇게 생각하기까지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지금이야 안좋게 보는 시선에도 어느 정도 의연하게 되었지만 이런 마음을 먹기까지 마음의 상처도 컸다. 막상 좋지 않은 비평이나 평가를 들은 날에는 기운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나에게 쏟아지는 말들이 나의 눈을 트이게 하는 흔치 않은 경험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단련해 가고 있다. 쓴 소리도 관심과 애정이 있기 때문이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받고 수용하려고 한다. 이제는 오히려 그런 마케팅 활동은 어떻게 하는 거냐고 좀 알려 달라 하시는 분들도 많다.

──────────

[Oh! 크리에이터] #24 한국화가 김현정 - 내숭 시리즈 ①

한국화가 '김현정' 두 번째 이야기

리얼한 우리 일상! 21세기 풍속화 '내숭 시리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기준으로 스스로를 재며 살아왔다는 김현정 작가. 앞에서 웃어주던 사람들이 뒤에서 다른 이야기를 하고, 편견으로 자신을 쉽게 평가하는 사람들을 겪으며 우울증도 앓았다. 시선의 무게가 버거워 그림으로 말하기 시작한 내면의 이야기. "그러는 너희는 얼마나 떳떳한데!"라고 묻고 싶었으나 그림 속 주인공은 다른 사람들이 아닌 그녀 자신을 닮아 있었고, 나라고 얼마나 다른 사람이었는지를 자문하게 되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겉과 속이 다른 일상의 장면을 포착해 적나라하게 표현한 작품은 '내숭 이야기', '내숭 올림픽', '내숭 놀이동산' 시리즈로 이어졌다. 전통 한국화 기법을 접목한 톡톡 튀는 이미지는 김현정 작가를 대표하는 화풍으로 자리 잡았고, 작업을 중심으로 강의, 강연, 콜라보 등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넓히며 '소통하는 미술'을 위해 당당하게 나서고 있다.

시선과 통념으로부터 자유를 찾기 위한 고백적 자화상이자 공감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미술. 김현정 작가의 두 번째 이야기는 곧 그녀 자신이기도 한 '내숭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다.

Q 내숭 시리즈의 주인공인 '내숭녀'의 시작부터 이야기해 보자.

내숭녀는 대학교 3학년 때부터 그렸다. 대한민국여성미술대전, 세계평화미술대전 등 무심코 낸 공모전에서 '내숭 이야기'로 한국화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면서 내숭 이야기를 더 심도 있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처음 의도는 겉과 속이 다르게 내숭을 떠는 사람들에 대한 희화화의 욕구였지만, 지금은 그 본질이 나 자신으로 옮겨와 일탈과 자유를 꿈꾸는 고백적 자화상이 되었다. 그런 과정들을 거쳐 지금은 '내숭' 자체를 심리학적, 철학적 분석 대상으로 삼고 있다.

Q 작업에서 '내숭'은 어떤 의미인가?

내 작업에서 '내숭'은 흔히 사용하는 내숭의 용례보다 좀 더 넓은 개념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통념적 평가를 만족시키기 위해 속마음과 다른 겉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모든 태도'를 이른다. 어쩌면 불편할 수 있는 '시선'이라는 주제를 밝고 위트 있게 표현하자는 목표가 있었다.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표현기법에 아이러니함을 주고자 한 것이다.

[내숭 : 마주한 현실ㅣ120 x 150 cmㅣ2016년]

Q 내숭을 떠는 인물을 주로 여성으로 그리는 이유는?

내숭의 본래 정의는 성별에 중립적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보편적 욕구에 따라, 보통의 사람들이 자신의 모자란 부분을 감추고 좋은 모습을 보이고자 하는 데서 나타나는 불일치에 가깝다. 그렇지만 내숭이라고 하면 흔히 여성을 떠올리는 것처럼, 자신의 욕구와 본래 모습을 감추는 경우가 남자에 비해 여자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여자로서 직접 그런 부분들을 실감했기 때문에 '내숭'의 인물을 여자로 한 측면도 있다.

Q 리얼하게 포착한 내숭녀의 상황이 특히 많은 공감을 일으켰다. 상황이나 소품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나?

자화상이니 만큼 실제로 일상의 순간순간에 영감을 얻는다. 예를 들어 '투혼(2013년)'은 끼니를 거르며 작업을 하다가 쓰러지겠다 싶었던 순간에 전투적으로 햄버거를 먹던 것에서 소재를 얻었다. 그림을 그리던 중이었기 때문에 손에 기름을 묻히지 않으려고 빨대로 감자튀김을 집어먹는 모습이다. '운치 있다(2013년)'는 오롯이 내가 독점하는 공간인 화장실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그 순간이 비밀스러우면서도 운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경험을 작품으로 그렸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것이 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인지, 공감대가 있는지를 먼저 따져본다. 그 뒤에 상황에 대한 스토리를 짜고 구도를 맞추는 방식이다.

[내숭 : 투혼ㅣ111 x 129.5 cmㅣ2013년]

[내숭 : 운치 있다ㅣ114 x 59 cmㅣ2013년]

Q 덕분에 '21세기 풍속화가'라는 별명을 얻었다.

외국 사람들에게, 혹은 미래의 한국에 살아갈 아이들에게 지금 시대 한국의 모습을 전하고 싶었다. 우리가 옛날 풍속화를 보고 그 시대 풍경을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나는 대중목욕탕을 정말 독특하고 특별한 우리 문화라고 생각하는데, 목욕탕을 사진으로는 잘 찾아볼 수가 없지 않나. 그래서 여자 목욕탕의 아주 흔한 풍경들을 아름답게 그림으로 담았다. 아이디어는 생활과 경험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경우가 많고, 그것이 보편적인 것일수록 더 많은 사랑을 받는 것 같다.

[(왼쪽)비너스의 탄생, (오른쪽)이태리스타일]

Q 작품명을 보고 나면 내숭녀의 상황이 더 재미있고 친근하게 읽힌다. 작품명은 어떻게 정하나?

위트가 있으면서도 그림의 주제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제목을 찾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한다. 대표적으로 '아차(我差, Oops)' 같이 이중적 의미를 담은 제목을 재미있게 봐주시는 것 같다. '아차'는 그림 속 인물의 실수를 부각시켜 나 아(我), 모자랄 차(差)를 써 빈틈이 있는 인물의 상태를 은유함과 동시에 그러한 상황에서 인물이 내지를 수 있는 "아차!"라는 의성어를 제목으로 붙인 것이다. 라면을 먹다가 명품 가방 속에서 흘러넘치고 있는 (스타벅스)커피를 발견했을 때, 정말 '아차' 싶은 순간이지 않을까? 이런 상황의 유희들을 작업에서 지향하려고 한다.

[내숭 : 아차 我差ㅣ160 x 110 cmㅣ2013년]

[신데렐라가 유리구두로 왕자를 낚고 있다. 작품명 - 내숭 : 월척ㅣ76 x 113 cmㅣ2016년]

[내숭녀의 마트 쇼핑. 카드 한가득 수입 식료품이 가득하다. 작품명 - 내숭 : 애국자ㅣ157 x 120 cmㅣ2016년]

Q SNS에 작품 이미지를 공개하고 작품명을 공모(?) 하기도 하던데?

작업의 고민을 혼자 너무 진지하게만 다루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기를 바랐다. 보통의 경우에도 작품이 완성되면 친구나 가족들과 함께 여러 후보들을 놓고 제일 적합한 제목이 무엇일지 같이 고민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작품이 대중과 소통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SNS를 통해 사람들과 직접 대화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좋아하기도 하고. 이런 과정들이 관객들에게도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Q 일상에서 영감을 얻는 만큼 상황과 아이템은 굉장히 현대적이지만, 표현기법과 재료는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전통적 미의 요소를 살리면서도 동시대에서 편하게 향유하고 공감되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한복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에 특히 욕심을 부리는 편이다. 한지 콜라주로 한복 저고리 특유의 서걱거리는 질감을 입체적으로 살렸고, 수묵담채로 그린 한복 치마는 속으로 비치는 누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며 내숭에 대한 관객의 통찰을 기대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융합'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업을 할 때 김홍도 선생과 신윤복 선생을 비롯한 선조들의 작품을 자주 떠올린다. 과거 풍속화에 담긴 진솔함과 위트, 화면 구성의 센스와 용필 능력은 나에게 하나의 표상과도 같다.

Q 내숭녀는 한복을 입는다. 한복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한복은 격식 있는 자리에서 입는 고상한 옷이라는 요즘의 인식이 일상의 자연스러운 행동과 대비되면서 내숭의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격식'과 '일상'의 대비가 '겉'과 '속'의 대비인 내숭을 환유하는 것이다. 한복은 여러 벌의 옷을 겹쳐 입기도 하고 치마가 길고 넓기 때문에 은폐의 속성이 있는 옷이다. 한복 속이 훤히 드러나게 표현함으로써 내숭을 떠는 인물의 속마음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다. 개인적으로 한복의 선과 색감, 문양, 장신구를 좋아하는 취향도 한복을 그리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한국화가 김현정이 쓰는 재료부터 11단계에 이르는 작업 과정까지! 내숭 시리즈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가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

[Oh! 크리에이터] #24 한국화가 김현정 - 내숭 시리즈 ②

한국화가 '김현정' 세 번째 이야기

"직접 경험하고 느낀 것만 표현한다"

Q (내숭녀의 패션-재료와 표현-에 대한 질문을 이어 가보자) 한복 저고리를 채색하지 않고 '한지 콜라주'로 표현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한지를 선택한 것은 속이 비치면서도 수묵 담채에 어울리는 소재로 투명한 느낌을 원했기 때문이다. 비단이나 천과 비교해 상상해보면 한지의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런면에서 한지는 속이 비치는 표현기법을 살리기에 매우 적합한 소재이다. 콜라주 기법으로 한지를 그림에 덧붙여 한복 저고리 특유의 느낌을 살리는 동시에 단조로울 수 있는 화면에 긴장감을 불어 넣을 수 있다. 한지 콜라주 자체가 작업의 화룡점정 같이 흥미롭고 재미있는 과정이기도 하다.

[내숭:취향저격ㅣ129 x 166cmㅣ2016년]

Q 내숭녀의 훤한 치마 속에 자꾸 눈길이 간다. 인물의 누드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

치장하기 위해 입은 옷 속에 감춰진 인물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장막 같은 한복을 반투명하게 표현함으로써 이를 관통해 인물의 속을 들여다보는 셈인데, 보일 듯 말 듯한 실루엣으로 인물 본질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상징한다. 보기에 따라 성적인 부분이 부각되기도 하지만, '겉과 다른 속', '본질에 대한 접근'을 말하고 싶었다.

Q 설치, 사진, 영상 등 표현기법이 다양할수록 필요한 재료도 많고 작업 기간이 길어지는 것 아닌가? 매번 쉽지 않을 것 같다.

내숭시리즈는 기본적으로 한국화 전통기법을 사용하지만, 미디어 아트, 3D 프린팅, FRP 등 다양한 재료로 접근한다. 작업을 통해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방향과 느낌에 잘 맞는 방법이기 때문에 이런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Q 한지도 정말 많은 종류가 있다. 특별히 선호하는 종류가 있나?

보통 동양화에서는 '순지'와 '장지', 그리고 중국에서 유래한 '화선지'를 많이 사용한다. 전통 한지인 순지는 섬유가 길고 종이가 질긴 특성이 있으며, 장지는 이런 순지를 여러 겹으로 배접한 것을 말한다. 나는 순지 중에서도 가장 얇은 '안피'를 사용하고 있다. 종이가 얇고 가벼워 먹이 빠르고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세필을 썼을 때 좀 더 맑고 섬세한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Q 한지 제작 기술까지 배웠다고 들었다.

처음부터 만들어 쓰려던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 원하는 색과 두께의 한지를 구하기가 어려워서, 경우에 따라 기성품을 사서 쓸 때도 있고 만들어 쓰기도 한다. 좋아하던 한지가 있었는데 갑자기 구할 수 없게 된 적이 있었다. 그 종이를 만들 수 있는 장인이 국내에 딱 한 분 계셨는데 사정이 생겨 더 이상 만들 수가 없게 된 거다. 이렇게 갑자기 없어질 수도 있는 문화라고 생각하니 황당하기도 하고 안타까워서 나라도 전수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Q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기간은 보통 어느 정도 걸리나?

작품 구성부터 완성까지 많은 단계를 두고 오랜 시간 작업한다. 작품마다 차이가 있지만 평균적으로 그림 한 장에 2~6개월 정도 걸린다.

Q 작업은 모두 손으로 하나?

사실 의외로 컴퓨터 작업이 많다. '한국화에 웬 컴퓨터?'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원화 외에도 결과적으로 디지털 작업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 구도를 잡을 때는 디지털 사진 작업을 주로 하고, 컬러 매치를 미리 시뮬레이션 해보기도 한다. 작품 구상 후 작업은 모두 전통 방식으로 그리고, 데이터화 단계에 컴퓨터 작업이 많다.

[내숭시리즈 작업과정]

1단계 - 작품구상 및 크로키

2단계 - 인물 촬영(인체 실루엣 +한복 주름)

3단계 - 한지 스케치

4단계 - 인물누드 표현(수묵담채), 5단계 - 한복표현(먹), 6단계 - 1차 배접

7단계 - 한복 저고리색 선정, 8단계 - 한지 염색

9단계 - 한복 저고리 한지 콜라주, 10단계 - 2차 배접

11단계 - 완성작품 촬영

Q 혼자 할 수 있는 작업은 아닐 것 같다. 어시스턴트를 따고 두고 있나?

사진 촬영 같은 경우 전문 분야도 아니고 혼자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함께 일하는 연구원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배접은 모든 작품을 전문가 한 분에게 맡겨 작업하고, 재료는 필요에 따라 구입하거나 만들어 사용한다. 나머지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혼자 하고 있다. 오랜 시간 유지하고 발전시켜온 노하우가 많아 가르치고 나눠서 작업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Q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가 있다면 무엇인가?

첫 번째는 '소통'이다. 작가는 정확히 표현하기 어려운 현상이나 관념들을 포착하고, 예민한 감각과 훈련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이나 감정을 유형적으로 대신 표현해 줄 수 있는 전문가다. 결국 중요한 것은 소통을 통해 사람들의 표현 욕구를 간접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이런 노력은 작가 개인에게도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외롭지 않게 하는 측면이 있다.

다음으로는 '완성도'. 시각적인 작품의 완성도는 물론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완성도를 포함한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메모를 해 두고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한다. 아이디어에 과욕을 부리면 그림이 산만해지기 때문이다. 작업에는 끝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욕심을 내고 성실하게 임하는 만큼 달라진다. 작업에 대한 만족감과 자신감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Q 특히 어려웠던 장면이나 신경 써서 그리는 부분이 있나?

말은 동물 중에서도 그리기가 까다로운 편이라고 한다. 콜라보 프로젝트로 말이 등장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연습을 엄청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또 머리카락처럼 세밀한 부분들은 붓을 댈 때마다 숨을 참고 그려야 하기 때문에 많은 훈련이 필요했다.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잘 눈에 띄지도 않는 글씨나 소품을 그리는 데 시간이 정말 많이 걸린다. (Q 처음에 말그림을 보고 사진을 합성한 줄 알았다.) 나도 가끔 그려 놓고 사진처럼 보일 때 혼자 뿌듯해하고 그런다.(웃음)

[여자는 말(馬)이죠ㅣ130 x 188 cmㅣ2015년]

[썸마(馬)타임ㅣ112 x 168 cmㅣ2015년]

Q 내숭 시리즈를 시작한 지도 꽤 시간이 지났다. 본인의 모습을 담았다고 했는데, 처음 비교해 달라진 점이 있나?

많이 달라졌다. 초반 작업에서 비교적 은은한 분위기로 채색을 했다면 후반부로 갈수록 동세가 커지고 색감도 다양해졌다. 최근 작업인 '내숭 놀이공원' 같은 경우가 훨씬 화려한 느낌이다. 자화상이기 때문에 내 몸무게가 늘었다 줄었다 하면 내숭녀의 얼굴과 몸도 같이 늘었다 줄었다 한다. 물론 어느 정도 각색과 편집이 있지만 내숭 시리즈는 곧 나의 히스토리이기 때문에 점점 더 애정이 생기는 것 같다.

[내숭 : 내숭동산ㅣ234 x 412.8 cmㅣ2016년]

Q 작가에게 남자친구가 생기면 내숭 시리즈에 다른 등장인물이 생길까? 좀 더 지나면 아줌마 내숭녀와 내숭녀 아기를 만날지도?

이런 질문을 받으면 농담 삼아 '아직 그리고 싶은 남자 몸을 못 찾았다'고 했었는데, 남자들의 내숭을 다뤄 달라는 요청이 많다. 내가 느끼는 것만 표현한다는 주의라, 좀 더 연륜이 쌓이고 보는 눈이 넓어져 남자의 내숭까지 포착할 수 있는 시점이 되면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은 주제이긴 하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긴다면 아마 작품 속에서 내숭녀가 유모차를 밀고 있지 않을까? 이왕이면 예쁜 아기가 타고 있었으면 좋겠다!

──────────

[Oh! 크리에이터] #24 한국화가 김현정 - 예술가로 살아남기

한국화가 '김현정' 네 번째 이야기

"미술은 쉬우면 안 되나요?"

김현정 작가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크게 다섯 가지로 설명했다. 첫 번째는 김현정아트크리에이티브센터(이하 김현정아트센터)를 운영하며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하는 화가의 일, 두 번째는 대학이나 기업의 요청을 받고 하는 수업과 강연, 그리고 박사과정 공부, 콜라보 프로젝트, 마지막으로 SNS까지. 그림을 그리면서 TV에, 신문에 얼굴을 비추고 떠들썩한 전시를 하고, SNS에 그림을 공개하는 한국화가. 그 튀는 행보를 참 꾸준히도 하고 있다.

기쁠 때나 슬플 때 음악을 트는 것처럼 미술을 찾을 수는 없을까요?

그녀에 대한 못마땅한 시선이 걱정스러웠지만 김현정 작가는 이렇게라도 미술이 쉬웠으면 좋겠다며 음악을 예로 들었다. 음원을 구해서 음악을 듣다가 제대로 즐기고 싶은 마음에 콘서트를 찾게 되듯, 어떻게든 미술의 즐거움을 먼저 알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 한결같다. 성실하고 부지런히 미술계를 건드리며 튀는 예술가로 살아가는 김현정 작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Q 동양화와 경영학을 같이 공부했다고 들었다. 아티스트의 다양한 외부 활동이 체계적으로 돌아가는 것에 그 영향도 있을 것 같다.

경영학은 미술 시장이 궁금해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림은 비싸다고 하는데 왜 대다수의 그림 그리는 작가들은 배가 고픈지, 궁금한 것을 마땅히 물어볼 곳이 없었다. 마침 학교에서 복수전공을 장려하는 분위기라 다른 학과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좋았다. 처음에는 너무 낯설고 어려워서 제일 앞자리에서 매일 질문하고 필기하면서 엄청 열심히 공부했다. 복수전공을 했다고 해서 화가의 배고픔을 해소할 경영학적 해답을 정확히 찾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분야 사례들이 재미있었고, 사회에 나와 화가로 일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Q '화가는 1인 기업'이라고 한 적이 있다. 현재 아트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니 1인 기업은 뛰어넘은 셈이다.

대부분 화가들은 작업은 기본이고 작업실 살림에 매니지먼트를 모두 혼자 하기 때문에 1인 기업으로 볼 수 있다. 나 같은 경우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1인 기업을 뛰어넘겠다고 생각해 왔고, 다행히 정말 유능하고 좋은 스텝들을 만나 함께 일하고 있다. 각자 역할을 맡아 팀으로 움직이게 되니 대부분의 시간을 작업에만 투자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좋고, 여러 가지 확장되는 외부 활동까지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

[자료제공: 김현정아트센터]

예술로 소통하기

Q 작업을 축약하는 키워드로 '소통'을 꼽았다.

대중들에게 내 작업이 어렵지 않고 재미있는 미술로 오래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면에서 SNS는 나와 작품을 알리고 대중과 소통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생각지 못했던 의외의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이제는 SNS를 통한 소통이 작업의 일부로 느껴질 만큼 소중한 부분이 되었다.

Q '한국화의 아이돌', '21세기 풍속화가', '팝-한국화가' 등 별명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수식어는?

사람들은 누구나 여러 가지 면을 가지고 있다. 나에게도 예쁜 한복을 입고 머리를 매만지고 화장을 한 말끔한 모습도 있고, 작품 속 내숭녀처럼 엉성하게 커피를 흘리고, 볼품없이 앉아 햄버거를 먹는 모습도 있다. 부족한 점이 많은 나를 여러가지 면에서 좋은 말로 불러주시는 것 자체에 감사한 마음이다. 굳이 꼽자면 '한국화의 아이돌'? 아직 나이가 많지 않아서 가질 수 있는 별명인 것 같다.

Q 소통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어떤가?

이제는 많이들 편하게 생각해 주신다. 강연 후에도 질문을 받고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하는 편인데 '이런 소재를 그려보는 건 어떠냐' 하시면서 아이디어를 내시는 분들도 있고, '이런 상황은 보편적이지 않은 것 같다'며 비판적인 의견을 주시는 분들도 있다. 가끔 소통이 지나친 것 아니냐는 걱정을 듣기도 하지만, 소통은 내 작업의 지향점이자 일부이기도 하다.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일을 더욱 열심히 하고 있다.

[내숭이야기 이모티콘ㅣ자료제공: 김현정아트센터]

화가의 '딴짓'

Q 이모티콘으로 김현정 작가를 알게 된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음악 어플로 듣는 음원처럼 미술을 즐겨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갤러리 전시에 가면 예술작품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미술관을 찾는 일도 모두에게 일상인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모티콘은 일상에서 누구나 예술을 쉽게 쓸 수 있게 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다. '내숭 이야기' 이모티콘 다음으로 사람의 26가지 감정을 표현하는 새로운 이모티콘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준비 중인 신작 이모티콘 中 - (왼쪽부터)덜덜, 미안, 좌절ㅣ자료제공: 김현정아트센터]

Q 상업적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미술이 일상에서 향유되기 위해서는 작품의 상업적 활용과 소비에도 작가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는 미술과 자본주의 상업의 공생과 예술의 생활화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거꾸로 보면 예술이 이미 잘 알려져 있고 일상에 가까이 있는 브랜드를 플랫폼으로 활용한 것이다.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기업 콜라보 프로젝트도 비슷한 맥락이다. 브랜드 입장에서 정말 다양한 프로모션 방법이 있었을 텐데,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선택한 것이 좋은 성과로 이어져 더 활발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Q 강연을 한지도 꽤 오래되었더라.

강의와 강연은 오히려 내가 느끼고 배우는 것이 더 많아서 꾸준히 하려고 한다. 잠시 감정이 무뎌질 때 열정적인 사람들을 만나면 재충전이 되기도 하고, 내가 추구하는 '미술로 소통하기'로서도 아주 좋은 방법이다. (Q 주로 강연하는 주제는?) 강연 대상이 누구인지에 따라 굉장히 다양하다. 내숭 시리즈 작업뿐만 아니라 예술 이해하기, 예술작품 소유하기와 관리하기와 같이 폭넓게 예술을 향유하는 방법에 대한 것, 전통문화와 현대화 방향성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림으로 하는 심리테스트, 페이퍼 토이, 컬러링 엽서 체험 같은 프로그램도 있다.

[내숭이야기 컬러링 엽서 체험 강연ㅣ자료제공: 김현정아트센터]

화가를 꿈꾼다면

Q 입시미술을 오래 한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

나도 아직 부족한 것이 많은 입장이라 조언 보다 같은 길을 걷을 사람으로서 이야기하자면, 가장 중요한 것은 호기심과 끈기, 그리고 그림을 정말 좋아하는 마음인 것 같다. 가끔 정말 즐기면서 그렸다는 것이 느껴지는 그림이 있다. 그리는 사람이 하는 모든 생각과 경험은 작업에 그대로 녹아들기 때문에 무엇이든 많이 보고 느끼는 것이 좋다. 그리고 포기하지 말고 그림을 많이 그려 보라고 권하고 싶다. 천재라고 알려진 피카소도 알고 보면 엄청나게 많은 작품을 그렸다. 견딜수록 자신감이 커지고, 결국엔 원하던 순간이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

[Oh! 크리에이터] #24 한국화가 김현정 - 일상과 취향

한국화가 '김현정' 다섯 번째 이야기

김현정의 '좋아요'

10만 명의 팔로워에게 거의 매일 소식을 전하고 개인전에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찾아와 줄을 선다. 공부를 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수백 명 관중과 카메라 앞에서 강연을 한다. 좋아 보이는 한복을 입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말끔한 꾸밈새, 밝은 얼굴로 대중 앞에 서는 한국화가 김현정.

일상이 화려하고 빈틈 없을 것 같은 모범(?) 작가인 그녀는 알고 보면 아침에 눈을 떠 가장 먼저 SNS를 확인하고, 네일숍에 가는 것을 좋아하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평범한 서른 살 여자 사람이기도 했다. 아무리 '김현정'이라도 매일 웃고 일하는 것이 힘들 때도 있겠지? 누구나처럼 고민도 있고 하고 싶은 것도 있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Oh! 크리에이터 - 김현정 작가'의 마지막 편은 소소한 일상과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Q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

제대로 된 휴일 없이 일한 지 5년 정도 된 것 같다. 요즘에는 5시간 정도 겨우 잔다. 보통 아침 9시에 작업실이 있는 김현정아트센터로 출근한다. 점심은 잘 안 먹는 편이라 점심시간을 이용해 운동을 하기도 하고 야근을 자주 한다. 매일 어떤 작업을 할지 계획을 세우고 7시 퇴근을 목표로 하지만 작업을 하다 보면 시간이 늦어지는 게 다반사다.

Q 스트레스에 예민한 편인가?

생각이 많은 편이다. 한참 생각을 하다가 '내가 왜 이런 고민을 하고 있지?'하고 자각할 때도 있다. 그런 답답한 스트레스에 예민하긴 하지만 한편으로 스트레스를 이겨내며 활력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것이 좀 더 자연스럽고 편안해진 것 같다.

Q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바쁜 중에도 운동과 꽃꽂이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챙겨서 한다. '내숭 올림픽' 작품 중에는 가까운 공원에서 기구들로 운동을 하다가 아이디어를 얻은 것들도 있다. 그래도 스트레스가 안 풀릴 때는 작업실 근처 양재동 꽃 시장에 가서 꽃을 보면서 생기도 얻고, 저렴하게 한 아름 사다가 꽃다발을 만든다. (Q 원래 운동을 좋아했나?) 아니다. 몇 년을 배달음식이나 패스트푸드를 주로 먹고 운동을 잘 안했더니 어느 순간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그 이후로 꾸준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숭 : 도돌이표ㅣ161 × 102 cmㅣ2014년]

[내숭 : 마라토너ㅣ200 × 121 cmㅣ2014년]

Q 요즘에는 어떤 고민거리가 있나?

정말 많다. 친구들이 나를 '고민 공장장'이라고 부른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많은 여자 선배들이 가정과 일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에서 힘들어 하는 것을 자주 보면서, 요즘에는 결혼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작업에 거의 모든 시간을 쓰다 보니 지금 나이 때 할 수 있는 소중한 다른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Q 전시장에 있다 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겠다. 기억에 남는 관람객은 없었나?

작품을 보고 힐링이 되었다고 우셨던 분, 매 전시마다 한복을 입고 찾아오는 남학생, 시집올 때 사서 장롱에 묵혀뒀던 한복을 입고 오셨던 어머님들, 등등 정말 많다. 전시에 한복 입고 오시라고 홍보를 많이 하는데, 친구끼리, 연인끼리 와서 한복을 입고 작품을 보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뿌듯하다.

Q 한복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김현정 작가를 떠올리면 한복을 안 입은 모습이 어색할 정도다. 한복을 즐겨 입는 이유가 있나?

한국화를 해서 그런지 어릴 때부터 한복의 색감과 질감, 한복 장신구를 좋아했다. 강연이나 문화행사, 이벤트, 인터뷰, 전시 때는 한복을 주로 입고, 평소에는 생활한복을 즐겨 입는다. 요즘 들어 한복에 대한 시선이 많이 바뀐 것 같다. 인사동이나 삼청동에 가면 한복 입고 다니시는 분들도 많고, 실제로 작년에 인사동에서 했던 <내숭 놀이공원> 전시에 한복을 입고 오신 분들이 정말 많았다. 내숭 이야기가 한복을 가까이 느끼는 데 아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2016년 <내숭 놀이공원> 전시ㅣ자료제공: 김현정아트센터]

Q 좋아하는 한복 스타일은?

색상은 가리지 않고 입는다. 양장이었다면 쉽지 않았을 원색적인 색도 한복에서는 밝고 단아한 느낌이 난다. 소품 중에는 머리에 착용하는 배씨댕기, 떨잠, 빗핀, 비녀 같은 장신구를 좋아한다. 키가 작은 것이 콤플렉스라 펌프스 타입의 하이힐을 주로 신는데, 한복에 어울리게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 주신 구두가 애장품 중 하나다.

[김현정 작가 어머니께서 장식을 만들어 주신 구두]

Q 한복을 일상복으로 입는 것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은?

장점은 편하다는 것! 처음에는 한복이 불편하다고 생각했는데, 넓고 풍성한 치마폭으로 가려지는 부분이 많아 행동하는 것이 오히려 더 편하다. 허리선이 높아서 다리가 길어 보이기도 하고, 살이 쪄도 티가 잘 안 난다. 입을수록 매력적인 옷이다. 단점은 더운 날에 입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전통한복은 겹겹이 입어야 더 예쁘기 때문에 그렇다. 요즘에는 가벼운 소재에 현대적 디자인으로 나오는 한복이 많아서 좋아졌다.

Q 지금까지 정말 많은 작품을 그렸다. 그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내숭'이라는 주제로 그린 첫 작품인 '나르시스'일 것 같다. 대한민국여성미술대전에서 금상을 수상하면서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큰 작품이다. 작품 활동에 전환점을 맞은 순간을 표현한 '낯선 혹은 익숙함'이라는 작품도 애착이 간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을 희화화하기 위한 그림 속 모습이 결국 나 자신이었다는 실체를 깨달았던 순간을, 호환되지 않는 게임기를 든 두 여인이 마주 앉은 모습으로 이미지화 한 것이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내숭을 자화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내숭 : 나르시스ㅣ90 × 72 cmㅣ2011년]

[내숭 : 낯선 혹은 익숙함(set)ㅣ85 x 155, 118 x 150 cmㅣ2013년]

Q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서도호 작가와 일본의 무라카미 다카시는 나에게 작가로서 하나의 방향성을 생각하게 한다. 서도호 작가의 작품은 한국적 아름다움의 요소를 재해석해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이 정말 멋지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브랜드 콜라보를 통해 미술이 생활 속에 스며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작가다. 미술이 상업의 영역에 파고드는 것이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나도 우리 문화를 세계에 당당히 내놓고 인정받으며 더 많은 사람들이 미술을 가까이 즐기는 데 힘을 보탤 수 있는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Q 드디어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가?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작가가 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어렴풋이 느끼고 있지만 속 시원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문제의식을 공감이 가는 메시지로 분명히 표현해 주는 것이 전문가로서 작가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내 세계에 매몰되거나 치우치지 않고 세상 일에 예민하게 관심을 가지면서 소통하는 작가가 되려고 한다.

기획ㅣ디자인프레스 편집부

취재·글 : 디자인프레스 에디터 문한아

사진 : 김잔듸(516 studio)

자료제공 : 김현정아트크리에이티브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