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설록 | 화폭에 비친 우리들의 자화상
티(Tea) 매거진 〈오설록〉이 한국화가 김현정을 인터뷰한 기사로, 대표작 '내숭 이야기' 연작이 탄생한 배경과 인물사진을 활용한 제작 과정, 오랜 시간 매료되어 온 수묵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글 이안나, 사진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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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 lovers
화폭에 비친
우리들의 자화상
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움에
반해버린
나르키소스처럼,
동양화가 김현정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내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이야기한다.
글. 이안나 — 사진. 김경수
동양화가 김현정은 '오늘'의 작가다. 모 신문사에서 선정한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에 미술계에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고, 글로벌 매체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작가의 동양화가 영상으로 제작돼 전 세계로 방영되고 있다. 5번의 개인전을 열 때마다 그림이 전부 완판됐다는 사실만으로 작가적인 역량을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서울의 지하철역의 스크린 도어와 열차 객실 안 광고판에서도, 제품의 패키지에도 젊은 작가의 동양화가 그려져 있다는 사실만큼은 작가의 영향력을 짐작하게 한다.
대표 시리즈 '내숭 이야기'는 스물여덟 살의 젊은 작가가 우리들의 보편적인 순간들을 화폭에서 얼마나 능숙하게 다뤄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 여자가 바닥에 엎드린 채 눈썹을 공들여 그리는 시간, 또 다른 여자가 비디오 게임기에 빠져 있는 사사로운 순간들. 김현정 작가는 이 지점에서 한 꺼풀을 덧씌워 화폭에 담긴 여자들에게 한복을 입히면서 전통의상과 현대의 일상을 공존시켜 겉과 속이 다른 내숭이라는 일종의 아이러니를 형상화했다.
Q 연작 시리즈의 주제가 참 독특하고 유쾌하다. '내숭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A '내숭 이야기'는 한복이 주는 고상함과 비밀스러움에 착안한 작업이다. 이를테면 반투명한 한복은 '그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내숭'이란 주제로 그리게 된 계기가 있다. 얼굴을 보고 인사를 나눌 때는 듣기 좋은 소리를 해주다가도, 헤어지고 나면 전혀 다른 얼굴로 부당한 평가를 내리는 분들, 때로는 막중한 책임의식을 느낄 만큼 넘치는 기대를 걸다가도 돌연 실망의 눈빛을 보낸 분들을 만나면서 '내숭'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겉과 속이 다른 그들의 모습을 회화해보고 싶어서 '내숭 이야기' 시리즈를 만들게 되었다. 편견을 가지고 누군가를 함부로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얼마나 떳떳하니?'라는 질문을 그림으로 건네고 싶었다.
Q 서울대학교 동양화과 시절부터 '내숭' 시리즈를 그렸다. 시작은 누군가를 향한 날카로운 질문과 질타였겠지만, 지금은 내숭의 개념에 대해 깊고 넓게 생각하고 단단히 다져가면서 작가로서 또 다른 생각으로 번졌을 것 같다.
A 인물화에서는 인물의 구도와 자세가 중요해 참고자료로 인물사진을 활용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인물화의 초기 작업인 인물 사진의 모델을 자처하게 됐다. 작품에서 '나'를 모델 삼아 그림을 그리다 보니, 편견과 통념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삶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보편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시선'과 '통념'으로부터 일탈하는 자유의 상태를 지향하면서 자기 고백적인 자화상을 그리게 되었다.
Q 작품 이야기로 넘어가보면 당신의 작품은 정통 동양화 이론과 기법에 충실하면서도 표현 기법이 새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수묵의 맛이 진하게 배어 있다.
A 책 〈한국의 미 특강〉에서 오주석 선생은 김홍도의 그림을 예시로 들면서 우리 한국화에서 보이는 수묵화의 높은 경지를 해설한 바 있다. 나 또한 이 책을 읽었을 때의 감동이 여전히 생생할 만큼 그때나 지금이나 수묵의 맛에 빠져 있다. 수묵은 여러 번 덧칠해도 화면이 탁해지거나 두꺼워지지 않고 오히려 덧칠하면 할수록 농담의 묘미가 살아나고, 화폭에 중첩된 선이 많아져도 그림은 더 맑고 투명해진다. 책을 읽었던 때가 고등학교 무렵이었지만 그때 깨달은 수묵의 매력은 지금까지도 동양화의 세계로 나를 끌어당기는 힘이다.
Q 모든 작품이 직접 보아야만 그림에 담긴 멋이 느껴지겠지만, '내숭 이야기'는 인물의 실루엣에 얇은 한지를 덧입히는 콜라주 작업이 더해져서 전시장에서 보았을 때, 비로소 작품의 진가가 발휘된다.
A 작업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사실적인 표현력이다. 일단 전체적인 구상을 마치면 스케치 작업에 들어간다. 먼저 인물의 사실적인 동세를 위한 사진 촬영을 한 후 인체 실루엣, 그러니까 누드를 그린다. 이어서 한복을 입고 실루엣 촬영사진과 똑같은 자세를 취해서 다시 촬영한다. 그런 다음 초배지에 밑그림을 그리고, 스케치가 끝나면 채색 작업으로 이어진다. 채색을 할 때는 인물은 담채淡彩로, 인물이 활용하는 사물은 진채眞彩로 표현한다. 마지막으로 수묵담채 또는 콜라주를 통해 인물에게 옷을 입히면서 작품이 완성된다.
말한 것처럼 작품은 전시장에서 보아야 진짜 제맛이 산다. 조만간 '내숭 이야기' 시리즈로 놀이공원을 다뤄볼 생각이다. 작품을 보러 온 관객이 예술과 놀아볼 수 있는 판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오설록〉 독자분들도 전시장으로 놀러 오셨으면 좋겠다. 전시가 열릴 때까지 관람객들을 환대하는 차로는 어떤 것이 좋을지를 고민해보겠다. (웃음)
위부터.
〈내숭 : 낯선 혹은 익숙함〉(2013), 85×155cm, 한지 위에 수묵담채, 콜라주
〈내숭 : 나르시스〉(2011), 90×72cm, 한지 위에 수묵담채, 콜라주
〈내숭 : 공(空)〉(2013), 110×180cm, 한지 위에 수묵담채, 콜라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