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 풍속화에서의 내숭 심리 표현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 동양화전공 미술박사 학위논문입니다. 〈내숭시리즈〉에 나타난 내숭 심리의 표현 방식을 분석하고, 아속(雅俗)의 관점에서 그 미학적 함의를 정리했습니다.
국문초록
본 연구는 현대사회 풍속화로서 〈내숭시리즈〉에 나타난 내숭 심리의 표현 방식을 분석하고, 이를 아속(雅俗)의 관점에서 해석하여 내숭의 미학적 함의를 정리하는 데 목적을 둔다. 내숭은 일상어에서 흔히 성격적 태도나 부정적 평가어로 사용되지만, 본 연구에서는 이를 사회적 시선 앞에서 감정과 욕망을 조절하는 심리 구조로 본다. 내숭은 겉으로는 절제, 단정함, 체면의 태도를 유지하는 듯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욕망, 기대, 불안, 수치, 쾌감 등이 함께 작동한다. 따라서 내숭은 단순히 속마음을 숨기는 태도가 아니라, ‘어떻게 보이고자 하는가’와 ‘실제로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을 조절하는 심리로 이해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 아속은 내숭을 설명하기 위한 해석의 관점으로 사용된다. 아(雅)는 품위, 절제, 교양, 규범의 태도와 연결되고, 속(俗)은 일상, 욕망, 감각적 즐거움, 생활의 구체성과 관련된다. 그러나 아와 속은 고정된 대립항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 후기 문예와 회화에서는 아와 속이 서로 긴장하면서도 한 장면 안에서 교차하고 결합하는 양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아속의 관계는 내숭 심리를 설명하는 데 유효한 관점을 제공한다. 내숭은 아적인 태도와 속적인 감정이 한 인물 안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상태이며, 겉으로는 품위와 체면을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서 사적 감정과 욕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구조를 보여준다.
아울러 본 연구는 조선 후기 풍속화에 나타나는 인물의 심리 표현을 살펴봄으로써, 〈내숭시리즈〉를 현대사회 풍속화로 해석하기 위한 전통적 근거를 마련한다. 특히 신윤복의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을 비롯한 조선 후기 풍속화는 인물의 시선, 표정, 자세, 거리감, 옷매무새, 주변 사물의 배치, 공간의 여백과 구도를 통해 사회적 체면과 개인적 욕망이 교차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러한 장면들은 풍속화가 단순히 당대의 생활상을 기록하는 그림에 머무르지 않고, 특정 시대의 관계와 관습 속에서 형성되는 심리를 배열하는 회화임을 확인하게 한다. 이 점에서 조선 후기 풍속화는 내숭 심리가 장면 속에서 어떻게 감추어지고 드러나는지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사례가 된다.
2010년부터 현재까지 제작한 작품들을 〈내숭시리즈〉라고 명명하였으며, 2014년까지의 작업은 석사학위논문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본 논문에서는 현대사회 풍속화의 관점에서 주로 2014년부터 2026년까지의 〈내숭시리즈〉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내숭시리즈〉는 한복을 입은 인물을 중심에 두지만, 이를 단순한 자화상이나 인물화로 한정하지 않는다. 작품 속 인물은 현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주체로서, 결혼, 출산, 육아, 소비, 외모 관리, 자기표현, 브랜드와 디지털 이미지 유통 환경 속에서 감정과 욕망을 조절한다. 이때 한복은 전통적 격식과 단정함을 부여하는 표면으로 작용하고, 인물의 일상적 행동과 사적 심리는 그 표면과 어긋나거나 충돌하면서 내숭 심리를 드러낸다.
본 연구는 〈내숭시리즈〉의 표현 방식을 세 가지 방향에서 고찰한다. 첫째, 전통 풍속 이미지의 패러디와 현대적 변주를 통해 과거의 도상과 현대의 생활 감각이 어떻게 결합되는지를 살핀다. 둘째, 현대 여성의 일상 풍속을 중심으로 결혼, 출산, 육아, 소비, 자기 연출의 장면에서 내숭 심리가 어떻게 서사화되는지를 분석한다. 셋째, 브랜드 로고와 브랜드 연계 프로젝트를 통해 내숭 이미지가 회화 화면을 넘어 상품, 공간, 디지털 이미지 유통 환경 속에서 재맥락화되고 확산되는 과정을 검토한다. 이를 통해 〈내숭시리즈〉가 개인의 감정 표현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사회 속 감정과 관습, 소비와 자기 연출이 교차하는 풍속 장면을 구성하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또한 본 연구는 〈내숭시리즈〉의 조형적 특징을 화면 구성, 시선, 재료, 매체의 측면에서 분석한다. 중앙 구도와 인물 중심의 장면 구성은 관람자의 시선을 인물에게 집중시키며, 인물의 시선 배치는 내숭 심리가 발생하는 긴장을 형성한다. 먹색과 채색의 대비는 감추어진 심리와 표면화된 감정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한지 콜라주는 얇은 종이의 투명성, 단차, 찢김, 겹침을 통해 가림과 드러냄의 구조를 물질적으로 보여준다. 사진과 3D 프린팅, 디지털 이미지 작업, 생성형 AI를 활용한 영상화는 내숭 이미지를 정지된 회화의 표면에서 공간, 신체, 움직이는 이미지의 차원으로 확장한다. 이러한 조형적 분석은 내숭 심리가 단순히 인물의 표정에만 머무르지 않고, 화면의 구조와 재료의 물성, 매체의 변환 속에서 구체화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본 연구의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내숭을 일상적 평가어가 아니라 현대사회 풍속화의 심리 표현을 설명하는 중심 개념으로 정리하였다. 둘째, 아속을 내숭의 목적이나 결론이 아니라 해석의 관점으로 사용함으로써, 아적인 태도와 속적인 감정이 한 장면 안에서 교차하는 방식을 분석하였다. 셋째, 조선 후기 풍속화의 심리 표현을 현대 〈내숭시리즈〉와 연결하여, 풍속화를 생활상 재현의 장르가 아니라 감정과 태도, 사회적 관계를 장면화하는 회화로 살펴보았다. 넷째, 〈내숭시리즈〉의 패러디, 현대 여성 일상 풍속, 브랜드 연계 프로젝트, 먹색과 채색의 대비, 한지 콜라주, 디지털 매체 활용을 분석함으로써 현대사회 풍속화로서의 표현 방식을 체계화하였다. 종합하면 본 연구는 내숭을 매개로 전통과 현대, 사회적 규범과 개인적 욕망, 한국화의 재료와 디지털 이미지가 만나는 지점을 살피고, 〈내숭시리즈〉가 현대인의 심리와 생활 장면을 포착하는 현대사회 풍속화로 기능함을 밝히고자 한다.
전문
장 제목을 누르면 본문과 도판이 펼쳐집니다.
Ⅰ. 서론24문단
1.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
현대사회에서 감정은 개인의 내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감정은 타인의 시선, 사회적 규범, 자기 연출, 개인적 욕망이 맞물리는 장면 속에서 형성되고 드러난다. 특히 이미지와 자기표현의 기회가 많아진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상황에 맞게 조절하고 연출한다. 이것을 흔히 내숭이라 하는데, 내숭은 단순한 일상어거나 특정 성격을 평가하는 말에 그치지 않는다. 내숭은 겉으로는 단정함과 절제를 유지하면서도, 그 이면에 욕망, 기대, 불안, 자기방어, 쾌감 등이 함께 작동하는 복합적인 심리 구조이다. 따라서 내숭은 ‘무엇을 감추는가’와 ‘무엇이 드러나는가’ 사이의 긴장을 읽어내는 감정 개념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의 필요성은 내숭을 현대사회 풍속화의 심리 표현 문제로 살펴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제기된다. 풍속화는 특정 시대의 생활 장면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장면 안에 놓인 인물의 태도, 관계, 관습, 감정의 흐름을 함께 보여주는 장르이다. 풍속화 속 인물은 단독 초상으로 존재하기보다, 사회적 상황과 관계 속에서 감정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내숭은 인물의 표정만으로 설명되는 심리가 아니라, 시선, 자세, 거리, 의복, 사물, 공간 배치가 함께 만들어내는 장면의 심리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내숭은 현대사회 풍속화의 심리 구조를 설명하는 핵심 개념이 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아속(雅俗)을 이러한 내숭의 구조를 해석하기 위한 관점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아는 품위, 절제, 교양, 규범의 세계를 가리키고, 속은 일상, 욕망, 감각적 즐거움, 생활의 구체성을 가리킨다. 조선 후기의 문인과 화가들은 아와 속을 완전히 분리된 가치로만 다루지 않고, 실제 삶과 예술 속에서 두 영역이 서로 긴장하고 뒤섞이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겉으로는 단정하고 고상한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내면에서는 보다 솔직한 욕망과 즐거움을 지우지 못하는 상태는 내숭의 심리 구조와 맞닿아 있다. 그리하여 본 연구는 아속을 내숭의 목적이나 결론으로 삼지 않고, 내숭이 어떻게 감추면서 드러내는 심리로 작동하는지를 살피기 위한 해석의 관점으로 삼는다.
조선 후기 풍속화는 이러한 내숭의 심리 구조를 읽어낼 수 있는 중요한 전통적 사례이다. 특히 신윤복(申潤福, 1758?-1813?)의 풍속화는 인물의 시선, 표정, 몸짓, 옷매무새, 공간의 거리감, 주변 사물의 배치를 통해 겉으로는 예법과 체면을 유지하는 장면 속에 욕망, 긴장, 유희, 은밀한 친밀감을 배치한다. 이 장면들은 풍속화가 단순히 당대의 생활상을 기록하는 그림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심리를 포착하고 배열하는 회화임을 보여준다. 본 연구는 조선 후기 풍속화 속 인물의 심리 표현을 살펴봄으로써, 내숭이 전통 회화의 장면 구성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드러났는지를 확인하고자 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내숭의 조건은 조선 후기와 다르게 변화하였다. 현대인은 사회적 평판, 외모와 태도에 대한 기대, 소비문화, 미디어 환경, 자기 이미지 관리의 요구 속에서 감정을 조절한다. 특히 현대 여성의 일상은 결혼, 출산, 육아, 노동, 소비, 자기표현의 문제와 맞물리며 다양한 감정의 층위를 형성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숭은 과거의 도덕적 체면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내숭은 사회가 요구하는 이미지와 개인이 실제로 느끼는 감정 사이에서 발생하는 심리이며, 현대사회 풍속화는 이 간극을 장면으로 구성할 수 있는 형식이다.
〈내숭시리즈〉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작업이다. 이 작품들은 전통 풍속 이미지를 패러디하고, 현대 여성의 일상 장면을 구성하며, 먹색과 채색의 대비, 한지 콜라주의 물질적 층위, 사진· 3D 프린팅·디지털 이미지·생성형 AI 영상화 등의 매체를 활용하여 내숭의 심리를 시각화한다. 또한 브랜드 로고와 브랜드 연계 프로젝트를 통해 내숭 이미지는 회화 화면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상품, 공간, 디지털 이미지 유통 환경 속으로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내숭 이미지는 현대사회의 풍속 장면 안에서 다시 배치되고 확산된다. 따라서 〈내숭시리즈〉는 내숭을 개인의 성격이나 감정에 한정하지 않고, 현대사회의 생활 장면과 시각 환경 속에서 작동하는 심리 이미지로 보여준다.
본 연구의 목적은 현대사회 풍속화로서 〈내숭시리즈〉에 나타난 내숭 심리의 표현 방식을 분석하고, 이를 아속의 관점에서 해석하여 내숭의 미학적 함의를 정리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첫째, 내숭을 일상적 평가어가 아니라 현대사회 풍속화의 심리 표현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정리한다. 둘째, 아속의 관점을 활용하여 내숭이 아적 표면과 속적 욕망 사이에서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밝힌다. 셋째, 조선 후기 풍속화에 나타난 인물의 시선, 자세, 관계, 장면 구성을 분석하여 전통 풍속화 속 내숭의 심리 표현 양상을 살핀다. 넷째, 현대사회 풍속화로서 〈내숭시리즈〉가 전통 풍속 이미지를 패러디하고 현대 여성의 일상 풍속을 장면화하는 방식을 고찰한다. 다섯째, 먹색과 채색의 대비, 한지 콜라주, 사진· 3D 프린팅·디지털 이미지·생성형 AI 영상화가 내숭의 심리 구조를 어떻게 시각화하는지 분석한다. 여섯째, 브랜드 로고와 브랜드 연계 프로젝트를 통해 내숭 이미지가 현대 풍속 이미지로 어떻게 재배치되고 확산되는지를 밝힌다. 요컨대 본 연구는 내숭을 전통과 현대, 아와 속, 사회적 규범과 개인의 감정이 교차하는 심리 구조로 보고, 이를 현대사회 풍속화 〈내숭시리즈〉의 표현 방식과 조형적 특징을 통해 체계화하고자 한다.
2. 연구 방법 및 내용
본 절에서는 본 연구가 내숭을 현대사회 풍속화의 심리 표현 개념으로 정리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지, 그리고 논문 전체가 어떤 순서로 전개되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연구 방법은 크게 문헌 연구와 개념 분석, 전통 풍속화의 장면 분석, 〈내숭시리즈〉의 작품 분석, 조형 및 매체 분석으로 구성된다.
첫째, 문헌 연구와 개념 분석을 통해 내숭의 의미와 해석 범위를 설정한다. 내숭이라는 말의 어원과 사회적 의미를 검토하고, 이를 아속(雅俗)의 관점과 연결하여 내숭을 현대사회 풍속화의 심리 표현 개념으로 정리한다. 이를 위해 국어학 자료, 사전적 정의, 사회적 용례, 아속 관련 미학 논의와 조선 후기 문예·회화 담론을 함께 살핀다. 이 과정에서 아속은 내숭을 대신하는 중심 개념이 아니라, 내숭의 구조를 설명하기 위한 해석의 관점으로 사용된다.
둘째, 전통 풍속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내숭의 전통적 표현 근거를 검토한다. 조선 후기 풍속화에서는 인물의 시선, 표정, 자세, 거리감, 의복, 소도구, 배경과 여백의 구성을 중심으로 장면 속 심리 표현을 살핀다. 특히 양반 계층의 체면과 욕망 사이의 긴장, 여성 인물에게 부과된 사회적 규범과 개인적 감정 사이의 갈등, 장면 속에 배치된 해학과 은밀한 긴장감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조선 후기 풍속화가 단순히 생활상을 기록한 그림이 아니라, 인물의 심리와 사회적 관계를 장면 안에 배열한 회화임을 확인하고자 한다.
셋째, 〈내숭시리즈〉의 작품 분석을 통해 내숭 심리가 현대사회 풍속화 안에서 어떻게 장면화되는지를 살핀다. 분석 대상은 2010년부터 현재까지 제작된 〈내숭시리즈〉 전체를 전제로 하되, 석사학위논문에서 다룬 2014년까지의 작업을 제외하고, 본 논문에서는 주로 2014년부터 2026년까지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다. 작품 분석에서는 전통 풍속 이미지의 패러디와 현대적 변주, 현대 여성의 일상 풍속, 브랜드 로고와 브랜드 연계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내숭 심리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검토한다. 이때 작품 속 한복, 현대 사물, 소비 기호, 브랜드 이미지, 디지털 매체는 모두 내숭 심리를 드러내는 조형적 장치로 다룬다.
넷째, 조형 및 매체 분석을 통해 〈내숭시리즈〉의 표현 방식을 세부적으로 검토한다. 중앙 구도와 인물 중심의 장면 구성이 내숭 심리를 어떻게 집중시키는지 살피고, 인물의 시선 방향과 관람자의 시선 흐름이 내숭 서사를 형성하는 방식을 분석한다. 또한 먹색과 채색의 대비가 절제와 욕망, 단정함과 감각성의 긴장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살피고, 한지 콜라주가 감정의 층위와 감춤의 구조를 어떻게 물질적으로 보여주는지 검토한다. 마지막으로 사진· 3D 프린팅, 디지털 이미지 작업, 생성형 AI를 활용한 영상화가 내숭 이미지를 정지된 회화에서 확장된 시각 경험으로 옮기는 방식을 고찰한다.
연구 내용은 장별 구성에 따라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제Ⅰ장에서는 연구의 필요성과 목적, 연구 방법과 내용, 연구의 의의를 제시한다. 여기서는 내숭을 현대사회 풍속화의 심리 표현 개념으로 다루어야 하는 이유를 밝히고, 본 논문이 어떤 방법과 구성으로 전개되는지를 정리한다.
제Ⅱ장에서는 내숭의 개념과 함의를 정리한다. 먼저 내숭의 어원과 사회적 의미를 살펴보고, 내숭이 단순한 성격 평가나 가벼운 일상어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 앞에서 감정과 욕망을 조절하는 심리 구조임을 밝힌다. 이어 아속의 어원과 의미를 검토하고, 내숭과 아속의 연관성, 아속에 근거한 내숭의 미학적 특성을 논의한다. 이를 통해 내숭을 아적인 표면과 속적인 감정이 한 인물과 장면 안에서 교차하는 심리로 정리한다.
제Ⅲ장에서는 풍속화의 심리 표현 양상을 살핀다. 먼저 조선 후기 풍속화 속 인물의 심리 표현을 분석하여, 양반 계층의 체면과 욕망의 긴장, 여성 인물의 사회적 규범과 개인적 감정 사이의 갈등이 어떻게 장면화되는지를 검토한다. 이어 전통 풍속 장면의 현대적 계승과 내숭 표현의 변용을 살펴, 조선 후기 풍속화에서 확인되는 내숭의 구조가 현대사회 풍속화와 연결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
제Ⅳ장에서는 현대사회 풍속화로서 〈내숭시리즈〉의 표현 방식을 분석한다. 먼저 전통 풍속 이미지의 패러디와 현대적 변주를 살피고, 전통 회화의 구도와 정서가 오늘의 생활 장면으로 어떻게 옮겨지는지를 검토한다. 다음으로 현대 여성의 일상 풍속을 중심으로 결혼, 출산, 육아, 소비, 자기 연출의 장면에서 내숭 심리가 어떻게 서사화되는지를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브랜드 로고와 브랜드 연계 프로젝트를 통해 내숭 이미지가 회화의 화면을 넘어 상품, 공간, 디지털 이미지 유통 환경 속에서 어떻게 재맥락화되고 확산되는지를 살핀다.
제Ⅴ장에서는 현대사회 풍속화 〈내숭시리즈〉의 조형적 특징을 분석한다. 먼저 중앙 구도와 인물 중심의 장면 구성, 시선 처리에 따른 내숭 서사의 형성을 검토한다. 이어 먹색과 채색의 대비, 한지 콜라주의 활용을 통해 내숭 심리가 재료의 물성과 화면의 층위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살핀다. 마지막으로 사진· 3D 프린팅, 디지털 이미지 작업, 생성형 AI를 활용한 영상화를 분석하여, 내숭 이미지가 정지된 회화의 표면에서 공간, 신체, 움직이는 이미지의 차원으로 확장되는 방식을 고찰한다.
제Ⅵ장에서는 앞선 논의를 종합하여 연구의 결론을 제시한다. 내숭이 현대사회 풍속화의 심리 표현을 설명하는 중심 개념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정리하고, 아속의 관점이 내숭의 구조를 해석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밝힌다. 또한 조선 후기 풍속화의 심리 표현과 현대 〈내숭시리즈〉의 표현 방식, 조형적 특징을 연결함으로써, 〈내숭시리즈〉가 현대인의 감정과 생활 장면을 포착하는 현대사회 풍속화로 기능함을 정리한다.
3. 연구의 의의
본 연구는 내숭을 현대사회 풍속화의 심리 표현 문제로 다루고, 이를 전통 미학의 아속 개념과 연결하여 해석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내숭은 일상어에서 흔히 사용되는 말이지만, 본 연구에서는 이를 단순한 성격 평가나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단정함과 안으로 감추어진 욕망이 함께 작동하는 심리 구조로 본다. 아속은 이러한 내숭을 설명하기 위한 해석의 관점으로 사용된다. 아적인 표면과 속적인 감정이 한 장면 안에서 충돌하고 결합하는 방식을 살핌으로써, 내숭을 현대사회 풍속화의 감정 구조를 설명하는 중심 개념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첫째, 본 연구는 내숭을 아속의 관점에서 검토함으로써, 전통 미학과 현대 감정 표현 사이의 연결 가능성을 제시한다. 아속은 고상함과 속됨, 규범과 욕망, 절제와 감각 사이의 긴장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내숭 역시 겉으로는 품위와 체면을 유지하려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개인의 욕망과 감정이 은근히 드러나는 구조를 지닌다. 따라서 아속의 관점은 내숭을 도덕적 평가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감정이 사회적 규범 안에서 어떻게 조절되고 표현되는지를 살피게 한다. 이 점에서 본 연구는 내숭을 한국적 감정 구조로 정리하고, 이를 현대 회화의 심리 표현과 연결한다는 의의를 가진다.
둘째, 본 연구는 조선 후기 풍속화의 심리 표현을 내숭의 관점에서 분석함으로써, 풍속화 연구의 범위를 생활상 재현에서 감정의 장면 구성으로 확장한다. 신윤복의 혜원전신첩을 비롯한 조선 후기 풍속화는 인물의 시선, 표정, 자세, 의복, 소도구, 공간의 거리감을 통해 체면과 욕망, 규범과 감정이 얽힌 장면을 보여준다. 이러한 장면들은 풍속화가 단순히 당대 사회의 모습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물들이 관계 속에서 감정을 숨기고 드러내는 방식을 시각적으로 조직했음을 보여준다. 본 연구는 이 점을 바탕으로 전통 풍속화 속 심리 표현을 현대 〈내숭시리즈〉와 연결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
셋째, 본 연구는 현대사회 풍속화로서 〈내숭시리즈〉의 표현 방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내숭시리즈〉는 전통 풍속 이미지를 패러디하고 현대 여성의 일상 장면을 구성하면서, 내숭의 심리를 현대적 풍속 장면 안에 배치한다. 결혼, 출산, 육아, 소비, 외모 관리, 자기표현과 같은 생활 경험은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사회적 요구와 개인적 감정이 충돌하는 장면으로 기능한다. 또한 〈내숭시리즈〉의 자화상 형식은 개인적 고백에 머무르지 않고, 개인화된 현대사회의 풍속을 압축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한복을 입은 단독 인물은 전통 복식의 격식과 현대인의 욕망, 피로, 자기 연출을 함께 담는 주체로 기능하며, 이를 통해 현대사회 풍속화가 반드시 다수 인물의 집단 장면에 한정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본 연구는 〈내숭시리즈〉가 특정 인물의 감정만을 그린 작업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일상적 관습과 감정의 배열을 보여주는 현대사회 풍속화임을 밝히고자 한다.
넷째, 본 연구는 먹색과 채색의 대비, 한지 콜라주, 사진· 3D 프린팅, 디지털 이미지 작업, 생성형 AI를 활용한 영상화 등을 내숭의 심리 표현 방식과 연결하여 분석한다. 먹색과 채색의 대비는 절제와 욕망, 단정함과 감각성의 긴장을 드러내며, 한지 콜라주는 감정의 층위와 감춤의 구조를 물질적으로 보여준다. 사진과 3D 프린팅은 회화적 장면을 현실 공간과 신체 이미지로 확장하고, 디지털 이미지와 생성형 AI 영상화는 내숭 이미지를 정지된 화면에서 움직이는 시각 경험으로 옮긴다. 이를 통해 본 연구는 전통 재료와 디지털 매체가 내숭의 심리 표현 안에서 어떻게 결합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는 브랜드 로고와 브랜드 연계 프로젝트를 통해 내숭 이미지가 현대 풍속 이미지로 재맥락화되고 확산되는 과정을 살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내숭시리즈〉의 이미지는 화면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상품, 전시 공간, 공공 공간, 디지털 이미지 유통 환경 속으로 이동하며 관람자와 만나는 방식을 바꾼다. 이 과정에서 내숭 이미지는 개인의 감정을 표현한 그림이면서 동시에 현대사회에서 소비되고 공유되는 풍속 이미지가 된다. 따라서 본 연구는 내숭을 매개로 전통과 현대, 아와 속, 회화와 일상, 작품과 사회적 유통의 관계를 검토하고, 풍속화라는 장르가 오늘날에도 현대인의 감정과 생활 장면을 포착하는 유효한 형식임을 밝히고자 한다.
Ⅱ. 내숭의 개념과 함의135문단
내숭은 일상 언어에서 흔히 사용되는 가벼운 성격 규정이나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시선 앞에서 개인이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조절하는 심리 구조이다. 내숭은 겉으로는 단정함, 절제, 순응의 태도를 취하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욕망, 기대, 불안, 수치, 쾌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내숭은 단순히 ‘속마음을 감춘다’는 의미로만 이해되기 어렵다. 내숭은 겉과 속의 차이를 의식하고, 그 차이를 상황에 맞게 조절하며, 때로는 감추고 때로는 은근히 드러내는 태도이다. 이러한 점에서 내숭은 현대사회 풍속화의 장면 속에서 인물의 심리와 사회적 관계를 읽어내는 중요한 개념으로 다룰 수 있다.
국립국어원, “내숭”, 표준국어대사전, 검색일 2025.11.07,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82%B4%EC%88%AD汫h
내숭이 지닌 이러한 심리 구조는 아속(雅俗)의 관점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아속은 고상함과 속됨, 규범과 욕망, 절제와 감각의 관계를 설명하는 전통 미학의 개념이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 아속은 내숭을 대신하는 중심 개념이 아니라, 내숭의 심리 구조를 설명하기 위한 해석의 관점으로 사용된다. 내숭은 아적인 표면과 속적인 감정이 한 인물 안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상태를 보여준다. 겉으로는 품위와 체면을 유지하려 하지만, 그 안에서는 욕망과 감각적 즐거움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이처럼 내숭은 아와 속의 경계에서 형성되는 심리이며, 아속의 관점은 내숭이 왜 단순한 위선이나 가식이 아니라 복합적인 감정 구조로 이해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하게 한다.
민주식, 「미(美)와 추(醜), 아(雅)와 속(俗)」, 미학·예술학 연구 27(2008), 71-80.
이러한 관점에서 본 장은 먼저 내숭의 개념을 어원과 사회적 의미를 중심으로 정리한다. 내숭의 어원에서는 ‘내흉(內凶)’에서 비롯된 말의 의미 변화와, 오늘날 내숭이 지닌 일상적·사회적 용례를 살핀다. 이어 내숭의 사회적 의미에서는 내숭이 타인의 시선을 전제로 한 자기 연출, 감정 조절, 관계 형성의 방식으로 작동하는 양상을 검토한다. 다음으로 아속의 어원과 의미를 정리하고, 내숭과 아속의 연관성을 살핀 뒤, 아속에 근거한 내숭의 미학적 특성을 논의한다. 이를 통해 본 장은 내숭을 단순한 성격적 평가가 아니라, 사회적 규범과 개인의 감정, 아적인 표면과 속적인 욕망이 교차하는 구조적 감정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1. 내숭의 개념
본 절에서는 내숭의 개념을 언어적·사회적 층위에서 정리하여 이후 논의의 기초를 마련하고자 한다. 내숭은 일상어에서 흔히 쓰이는 말이지만, 단순히 ‘새침함’이나 ‘가식’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구조를 지닌다. 우선 내숭의 어원과 용례를 검토하여, 이 말이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어 왔고 시대에 따라 의미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핀다. 이어 내숭이 표면적 태도와 내면 감정 사이의 간극, 그리고 그 간극을 조절하고 연출하려는 심리와 관련된다는 점을 정리한다. 특히 내숭은 타인의 시선을 전제로 하며, 사회적 기대에 맞추어 자신을 조절하면서도 내면의 욕망과 감정을 완전히 지우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 점에서 내숭은 단순한 성격 묘사나 도덕적 평가와 구별된다. 이러한 정리는 풍속화의 장면 속에서 어느 지점까지를 내숭의 심리로 읽을 것인가를 설정하는 기준이 된다. 나아가 내숭을 한국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심리 구조로 파악하고, 이후 아속의 관점에서 내숭의 미학적 특성을 논의하기 위한 개념적 토대를 제공하는 것이 본 절의 목적이다.
1) 내숭의 어원
본 항에서는 내숭이라는 말이 어떤 어원적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의미를 얻게 되었는지를 정리함으로써, 내숭을 현대사회 풍속화의 심리 표현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사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 내숭은 일상어로 널리 쓰이지만, 그 한자 표기와 음운 변화의 과정은 비교적 분명하게 의식되지 않은 채 사용되어 왔다. 따라서 내숭의 어원을 살피는 일은 이 말이 단순한 성격 평가가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와 안쪽에 자리한 감정 사이의 간극을 포함하는 말임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국어학 연구에 따르면 ‘내숭’은 한자어 ‘내흉(內凶)’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內(안 내)’와 ‘凶(흉할 흉)’이 결합한 ‘내흉’은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안이 흉하다’는 뜻이며, 속으로 꿍꿍이를 품고 있거나 음흉한 마음을 지닌 상태를 가리킨다.¹⁾ 여기서 중요한 점은 부정적 마음이나 욕망이 밖으로 직접 드러나지 않고 ‘안’에 머문다는 데 있다. 곧 내숭의 어원에는 이미 겉으로 보이는 태도와 안쪽에 감추어진 마음 사이의 차이가 전제되어 있다. 겉으로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듯 단정한 얼굴과 태도를 유지하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생각과 욕망을 간직하고 있는 상태가 ‘내흉’이라는 말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어원적 구조는 이후 풍속 장면 속에서 포착되는 내숭의 심리, 즉 감추면서도 완전히 숨기지 못하는 감정의 상태와 연결된다.
김무림, 국어어원사전(서울: 지식과 교양, 2020), 244.
‘내흉’이 ‘내숭’으로 바뀌는 과정은 음운 변화의 측면에서도 설명된다. 국어 음운사에서는 한자어 ‘흉’이 구어에서 ‘숭’으로 변한 현상을, ‘ㅎ’이 약화되거나 구개음화되면서 비슷한 조음 위치의 자음으로 바뀐 사례로 본다. 일상어에서 ‘힘줄’이 ‘심줄’로, ‘형’이 ‘성’으로 소리 나는 경우와 유사하게, ‘내흉’ 역시 구어적 사용 속에서 ‘내숭’으로 굳어진 것이다. 이러한 음운 변화는 말의 기본 의미를 크게 바꾸지는 않았지만, 발음의 거친 느낌을 완화하고 구어적 친근성을 더하였다. 그 결과 내숭은 한자어적 의미를 지닌 말이면서도 일상 회화 속에서 쉽게 사용되는 표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는 내숭이 개인의 속마음을 직접 지시하는 말에 머무르지 않고, 대인 관계와 사회적 장면 속에서 반복적으로 호출되는 말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최상호, 「바로 알고 바로 쓰는 우리말 글살이[15] 내숭스럽다」, 영주 시민신문 제323호, 2011.05.09, 검색일 2025.06.09, http://www.yj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750汫h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내숭’을 “겉으로는 순해 보이나 속으로는 엉큼한 데가 있음” 또는 실제 마음이나 감정을 숨기고 겉으로는 얌전하거나 천진한 체하는 태도로 풀이한다. 이 정의에는 내숭의 어원적 의미가 반영되어 있으며, 동시에 오늘날 화자들이 내숭이라는 말에 부여하는 평가적 감정도 함께 담겨 있다. 사전적 정의에서 내숭은 대체로 솔직하지 못한 태도, 계산적인 행동, 혹은 겉과 속이 다른 상태로 제시된다. 그러나 본 연구가 주목하는 지점은 이러한 도덕적 평가 자체가 아니라, 그 평가 속에 포함된 구조이다. 즉 내숭은 겉과 속의 불일치, 감정의 숨김, 자기 연출, 시선 의식이라는 요소를 포함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내숭을 단순히 부정적 성격을 지시하는 말로 보지 않고, 풍속 장면 속 인물의 심리를 해석할 수 있는 개념으로 전환하여 사용하고자 한다.
국립국어원, 앞의 자료.
일상적 용례에서도 내숭은 주로 ‘내숭을 떨다’, ‘내숭을 부리다’, ‘내숭을 피우다’와 같은 표현으로 쓰인다. 이 점은 내숭이 속마음 자체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말과 행동, 표정과 태도의 형식으로 드러나는 행위임을 보여준다. ‘내숭스럽다’는 표현 역시 상대가 실제 감정보다 더 점잖고 순진한 태도를 취한다고 느낄 때 사용된다. 언론 기사와 대중 담론에서도 내숭은 주로 여성의 태도나 행동을 비판하거나 풍자하는 말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사용례를 자세히 살피면, 내숭은 한 개인의 인격적 결함만을 지적하는 말이라기보다, 특정한 장면 속에서 사회적 시선과 규범을 의식한 자기 연출을 문제 삼는 표현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내숭이라는 말이 작동하는 자리에는 항상 누가, 어떤 시선 앞에서,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드러내는가라는 상황이 전제되어 있다.
세종학당재단, 「한국화의 아이돌! 한국화가 김현정」, 세종학당재단 제104호, 2022.02, 검색일 2025.06.18, https://www.ksif.or.kr/cop/bbs/selectBoardArticle.do?nttId=9220000003757&bbsId=BBSMSTR_000000000071&pageIndex=1.汫h
요컨대 내숭의 어원과 어휘사적 변천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내숭은 ‘내흉(內凶)’이라는 한자어적 기원을 통해 겉으로 드러난 표정과 안쪽에 숨은 감정 사이의 간극을 전제하는 말로 출발하였다. 둘째, 음운 변화와 구어화를 거치면서 일상 회화 속에서 쉽게 사용되는 표현으로 정착하였고, 그 과정에서 대인 관계와 사회적 시선이 작동하는 장면에서 자주 호출되었다. 셋째, 사전 정의와 대중적 용례는 내숭을 주로 부정적으로 규정하지만, 그 안에는 감정의 숨김, 자기 연출, 태도의 조절이라는 구조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내흉’이라는 표기 안에는 아적인 표면과 속적인 감정이 충돌하는 상태가 이미 응축되어 있다. 겉으로 드러난 단정함은 아적인 태도와 연결되고, 안쪽에 자리한 욕망과 계산은 속적인 감정과 연결된다. 따라서 내숭은 애초부터 아적인 표면과 속적인 심리가 한 몸 안에 겹쳐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어원적 단서를 바탕으로, 이후 장에서 풍속화 속 인물의 시선, 몸짓, 거리감, 소도구의 배치가 내숭의 심리를 어떻게 드러내거나 감추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2) 내숭의 사회적 의미
앞선 어원 고찰이 내숭이라는 말이 처음부터 ‘안과 밖의 어긋남’을 전제하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다면, 본 항에서는 현대 한국어와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내숭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지, 그리고 본 연구가 내숭을 어떤 범위에서 사용할 것인지를 정리하고자 한다. 이는 내숭을 풍속화의 장면과 감정 배치를 해석하는 중심 개념으로 삼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내숭은 단순히 속마음을 감추는 태도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타인의 시선 앞에서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조절하고, 상황에 맞는 표면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행위이다.
본 연구는 내숭을 사회적 시선 앞에서 수행되는 자기 연출로 규정한다. 다시 말해 내숭은 타인의 기대와 평가를 의식한 상태에서 감정과 욕망의 표면을 조절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그 배후에서 작동하는 심리 구조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숭이 언제나 타자의 시선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혼자 있는 상황에서의 솔직함이나 자기 반성은 내숭이라 부르기 어렵다. 그러나 누군가가 보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어느 정도 드러내고 어느 정도 감출지를 조절할 때 내숭이 발생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내숭은 ‘어떻게 보이고자 하는가’와 ‘실제로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사이의 간격을 관리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내숭은 대체로 부정적인 성향, 곧 위선이나 기만에 가까운 태도로 규정한다. 그러나 동시에 사전 정의는 내숭이 실제 마음이나 감정을 숨기는 행위에 있으며, 겉모습과 속마음의 어긋난 구조임을 보여준다. 본 연구는 이 구조적 특징에 주목하여, 내숭을 단순히 도덕적 비난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겉과 속의 어긋남을 조절하고 연출하는 심리로 이해하고자 한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대인 관계를 하나의 무대에 비유하며, 사람들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자신을 연출한다고 설명한다. 그의 인상관리 이론에 따르면, 개인은 타인에게 보이고자 하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언어, 몸짓, 복장, 주변 환경을 조정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내숭은 인상관리의 특수한 양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내숭은 자기 노출을 즉각적으로 하지 않고, 감정을 걸러서 표현함으로써 상대의 판단을 조심스럽게 유도하는 태도이다. 즉 내숭은 욕망과 감정을 완전히 숨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늦추고 정돈하여 보여주는 방식이며, 이 점에서 단순한 기만이 아니라 사회적 신중함의 기능도 함께 지닌다.
어빙 고프먼, 自我表現과 印象管理: 演劇的 社會分析論, 김병서 역(서울: 경문사, 1987), 17-25.
고프먼은 대면 상호작용에서도 사람들은 서로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고, 당혹감이 직접 드러나지 않도록 표현을 조절한다고 보았다. 이때 내숭은 과도한 자기 노출이 가져올 수 있는 오해와 불이익을 피하기 위한 예방 장치로 기능한다. 예를 들어 처음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불만이나 욕망을 즉각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상대의 반응을 살피며 에둘러 말하고 표정을 다듬는 행위는 내숭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상호 존중과 관계 형성을 위한 예비 단계로도 이해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내숭은 항상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며, 감정의 직접적 충돌을 완화하고 관계의 탐색 시간을 마련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어빙 고프먼, 상호작용 의례: 대면 행동에 관한 에세이, 진수미 옮김(서울: 아카넷, 2013), 5-46.
심리학의 인상관리 연구에서도 개인이 타인의 평가를 의식해 자신을 연출하는 행위를 부정적 기만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슐렝커와 바이골드는 인상관리가 타인의 기대에 맞추어 자신을 표현함으로써 상호작용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관계 형성을 돕는 측면이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내숭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규범을 고려하여 즉흥적인 감정 표현을 조절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선택하는 전략이 될 수 있다. 물론 지나친 내숭은 자기기만이나 타인기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적정한 수준에서의 내숭은 관계의 안전지대를 만드는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내숭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거나 반대로 미화하기보다는, 그것이 구체적인 장면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살피는 태도가 필요하다.
Schlenker, Barry R. and Michael F. Weigold, “Interpersonal Processes Involving Impression Regulation and Management”, Annual Review of Psychology 43(1992), 133-168.
전통적으로 내숭은 특히 여성의 태도와 밀접하게 연결된 말로 사용되어 왔다. 유교적 규범은 여성에게 순결, 온순, 자기절제를 요구하였고,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의 내숭은 ‘본심을 숨기고 점잖은 척한다’는 비판적 뉘앙스로 자주 소환되었다. 그러나 이를 단순한 위선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강한 규범의 압력 아래에서 욕망과 체면을 동시에 관리해야 했던 상황 속에서, 내숭은 사회적 요구에 대응하는 태도이자 감정의 조절 방식으로 작동하였다. 현대에 와서도 내숭은 여전히 여성적 행동을 평가하는 말로 사용되지만, 동시에 남성의 태도에도 적용되며, 성별과 관계없이 사회적 시선을 의식한 자기 연출을 가리키는 말로 확장되고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성별화된 사용 맥락을 인식하되, 내숭을 특정 성별에 한정하지 않고 현대 풍속 장면 전반에 나타나는 심리 구조로 다루고자 한다.
내숭의 사회적 의미를 미학적 관점에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내숭은 겉모습의 단정함과 속마음의 욕망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중 구조를 전제로 한다. 둘째, 이 구조는 숨김과 드러냄이 교차하는 순간에 가장 뚜렷이 드러나며, 이때 발생하는 긴장과 반전은 시각 예술에서 중요한 감정 효과를 만든다. 셋째, 내숭은 타자의 시선을 의식한 연출이라는 점에서 장면의 구도, 인물의 자세, 시선, 소품과 공간 배치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따라서 내숭은 회화 속에서 단순히 표정으로만 표현되는 감정이 아니라, 풍속 장면 전체를 관통하는 감정의 배열 방식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내숭의 사회적 의미를 토대로, 이후 장에서 조선 후기 풍속화와 현대 〈내숭시리즈〉의 장면 구성이 내숭의 심리를 어떻게 드러내는지 분석할 것이다.
2. 아속의 관점으로 본 내숭의 함의
본 절에서는 내숭의 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피기 위해 아속의 관점을 검토한다. 먼저 아와 속의 어원과 의미를 정리하고, 조선 후기 문인과 화가들이 품위와 절제의 가치, 일상과 욕망의 영역을 어떻게 구분하고 또 함께 인식했는지 살펴본다. 이어서 아와 속의 관계가 내숭의 심리 구조와 어떤 지점에서 연결될 수 있는지를 검토한다. 이때 아속은 내숭을 판단하기 위한 도덕적 기준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와 안쪽에 놓인 감정 사이의 긴장을 살피기 위한 해석의 관점으로 다룬다. 마지막으로 아속의 구조에 근거하여 내숭이 풍속 장면 안에서 어떤 표현 특성을 갖는지 정리한다. 품위를 유지하는 태도와 은근한 욕망이 한 화면 안에서 공존하는 방식, 수치와 쾌감이 함께 놓이는 정서, 농담과 진지함이 동시에 배치되는 표현 등이 그 검토 대상이 된다. 이를 통해 다음 장에서 조선 후기 풍속화와 현대 〈내숭시리즈〉의 심리 표현을 분석하기 위한 이론적 기준을 마련하고자 한다.
1) 아속의 어원과 의미
본 항에서는 아속의 개념을 정리하되, 그것이 내숭의 심리를 해석하는 관점으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아속은 동아시아 전통에서 고상함과 속됨을 가르는 가치 범주이면서도, 실제 역사 속에서는 이 둘의 대립과 교차, 결합을 함께 표현하는 복합 개념으로 작용하였다. 아속은 상하의 위계를 나누는 규범 언어이자, 서로 다른 가치가 한 장면 안에서 어떻게 공존하는지를 설명하는 해석의 관점이기도 하다. 본 연구는 특히 이 두 번째 성격, 곧 공존과 긴장을 읽어내는 관점으로서의 아속에 주목하여 내숭을 파악하고자 한다.
하동아, 「동아시아의 아속문화(雅俗文化)와 심미의식(審美意識)에 관한 연구」, 단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23, 16-18.
먼저 아(雅)의 어원을 살펴보면, 설문해자에서는 초나라의 까마귀에서 연원한 글자로 풀이되지만, 실제 사용에서는 주 왕실이 쓰는 표준 언어와 정통 음악을 가리키는 말로 자리 잡았다. 시경(詩經)의 육의(六義) 가운데 ‘아’는 중앙 관방에서 연주되던 바른 노래와 음악을 의미하며, 이후 유가 전통 속에서 도덕적이고 품위 있는 태도, 문인과 지배층의 정통 문화를 상징하는 말로 굳어졌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아는 단지 세련된 취향이 아니라, 스스로를 단정하고 교양 있게 드러내는 태도와 관련된다. 내숭이 겉으로는 절제와 단정을 유지하려는 태도에서 출발한다면, 그 표면에는 바로 이 ‘아’의 태도가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심규호, 「先秦 士人의 雅俗觀에 관한 일 考察」, 中國文學理論 5(2005), 15-16.
김대환, 「中國古代文學에서의 ‘雅’와 ‘俗’의 境界」, 中國語文學誌 41(2012), 189-191.
반면 속(俗)은 설문해자에서 ‘익숙하다’는 뜻의 습(習)과 연결되며, 본래는 특정 계층을 가리지 않고 한 사회 안에 널리 퍼진 풍속과 관습을 가리키는 중립적 개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속은 점차 평민, 민간, 일상, 욕망, 쾌락과 관계된 영역을 통칭하는 말로 사용되었고, 유가적 문맥에서는 교화의 대상이자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동시에 도가와 불교의 영향 아래에서는 속의 활력과 생명력, 구체적인 삶의 기쁨이 재평가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속은 한편으로는 비판의 대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적 감정과 욕망이 살아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내숭의 ‘속’이 형성된다. 즉 내숭의 이면에는 규범에 의해 조절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욕망과 호기심, 감각적 즐거움이 자리한다.
김대환, 위의 논문, 189-190.
[표 1] 아속(雅俗)의 어원 및 의미 요약
구분
아(雅)
속(俗)
어원
초나라 ‘까마귀’에서 옴, 왕실 표준어 표준음악 의미 내포
심규호, 앞의 논문, 15-16.
‘익숙하다’라는 뜻의 ‘습(習)’에서 비롯하여 대중과 풍속 의미 포함
기본 의미
김대환, 앞의 논문, 189-191.
고상함, 바름, 정통, 귀족, 문인층 문화
속됨, 평민, 대중적, 풍속, 본능, 때로는 천박함
사상적 위치
유교적 이상, 정통성 표상
대중문화, 민속문화, 교화 대상, 종종 비판의 대상
문화적 역할
사회적 규범과 미적 이상 제시
일상성, 현실성, 때로 창작 소재
조선 후기 변화
아의 권위 유지, 영역 확장 시도
속의 가치 재조명, 아화(雅化)를 통한 수용
윤재환, 「조선 후기 한문학에 나타난 아속(雅俗) 논의의 의미」, 동방한문학 100(2024), 200-201.
엄소연, 「욕망의 시선과 삶의 역동적 에너지—혜원전신첩을 중심으로」, 인문과학 51(2013), 189-190.
아와 속의 관계는 동아시아 전통 사회에서 단순한 이분법으로만 유지되지는 않았다. 조선 후기에는 신분제의 완화, 상공업의 발달, 민중 문화의 부상 등 사회 구조의 변화에 힘입어, 속의 영역이 예술과 문학의 중요한 소재로 적극 수용된다. 이 과정에서 아는 여전히 정통성과 도덕성을 상징하면서도, 속의 생동감과 현실성을 일정 부분 끌어안고자 했다. 대표적으로 조선 후기 한문학과 회화에서 아속겸비(雅俗兼備), 아속공상(雅俗共賞)과 같은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는 고상함과 속됨이 한 작품, 한 장면 안에서 공존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음을 보여준다. 풍속화에서 양반과 서민, 예법과 야유, 절제와 해학이 한 화면에 엮이는 장면은 이러한 아속 의식의 시각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임명호, 「朝鮮後期 漢文學의 崇雅·貶俗 意識」, 東洋漢文学研究 26(2008), 321-322.
정서윤, 「김홍도(金弘道) 회화에 나타난 아속겸비적(雅俗兼備的) 심미의식」,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23, 23-29.
요컨대 아는 규범과 품위를, 속은 풍속과 욕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아속 논의는 이 둘을 절연시키기보다는, 아가 속을 품고 정제하거나 속이 아를 흔들며 긴장을 만드는 과정에 주목해 왔다. 본 연구가 내숭을 아속의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한다는 말은, 내숭을 아와 속의 경계를 나누는 잣대로 재단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한 인물 혹은 한 풍속 장면 안에서 아와 속이 어떤 방식으로 얽혀 있는지를 읽어내겠다는 의미이다. 내숭은 아가 표면에서 연출하는 단정함과, 속이 내면에서 드러내는 욕망 사이의 긴장이 응축된 감정이다. 그러므로 아속의 어원과 의미를 정리하는 작업은 곧 내숭의 심리를 분석할 수 있는 언어를 준비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민주식은 미·추와 아·속의 관계를 논하면서, 아가 언제나 절대선으로, 속이 언제나 절대악으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국면에 따라 서로의 자리를 침범하고 뒤섞이는 양상을 강조한다. 아와 속을 단순한 취향의 차이가 아니라 사회적 위계, 도덕 규범, 시대별 가치 기준의 변동을 드러내는 지표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논의는 아속을 경계 짓기의 언어라기보다, 경계가 어떻게 그려지고 다시 흔들리는지를 보여 주는 동태적 개념으로 이해해야 함을 시사한다. 내숭의 심리 구조도 이와 유사하게, 한 개인 안에서 아적 태도와 속적 욕망이 고정된 비율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장면과 관계, 시선의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비율을 조정하고 배치를 바꾸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민주식, 앞의 논문, 71-80.
하동아, 앞의 논문, 16-18.
따라서 아속의 어원과 의미를 정리하는 일은 곧 내숭의 아적 표정과 속적 심리가 어떤 긴장 관계 속에서 공존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개념적 장을 여는 작업이다. 이후 장에서 살펴보게 될 조선 후기 풍속화와 현대의 〈내숭시리즈〉는 모두 단정함과 장난스러움, 예법과 일탈, 절제와 욕망이 한 화면 안에 포개진 장면들이다. 이때 내숭은 아의 얼굴로 자신을 연출하면서도 속의 감정을 완전히 지우지 못하는 인물들의 태도로 드러난다. 본 항에서 정리한 아속의 의미는 이러한 장면을 해석하는 기준점이 되며, 내숭을 한국적 감정 구조이자 풍속화의 핵심 감정 축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2) 내숭과 아속의 연관성
아속은 고상함과 속됨의 긴장 구조를 가리키는 개념이고, 내숭은 이 긴장이 개인의 표정·몸짓·말투 같은 표면에서 구체화되는 표현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아속을 감정과 장면이 놓인 맥락으로, 내숭을 그 맥락 속에서 작동하는 표현 방식으로 구분하여 사용한다. 다시 말해 아속은 특정 시대와 계층이 고상함과 속됨을 어떻게 나누고 배치했는지를 보여주는 관점이고, 내숭은 그 관점 안에서 인물이 자신의 겉모습과 속마음을 어떻게 조절·연출하는지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이때 두 개념을 연결해 주는 핵심은 ‘가림과 드러냄이 동시에 작동한다’는 이중 구조이다.
먼저 이중 구조의 작용이 드러나는 겸손, 아양, 자기 은폐 등의 개념과 내숭의 차이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겸손은 타자에게 공을 돌리고 자신을 낮추는 가치 표현이지만, 그 내부에 반드시 상충 구조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겉과 속이 일치하는 겸손은 내숭의 중요한 조건인 내면과 표면의 긴장을 전제하지 않는다. 아양은 호감 획득을 위해 표정을 과장하고 몸짓을 꾸미는 행위로, 표면의 연출에는 적극적이지만 내면과 표면의 불일치가 핵심 의미는 아니다. 자기 은폐는 말이나 표정을 최소화하여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회피 전략으로, 가림을 강화하는 대신 드러냄을 가능한 한 줄이는 방향에 가깝다. 이에 비해 내숭은 하나의 표현 행위 안에서 가림과 드러냄이 동시에 공존하고 서로 긴장을 이룬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아속과 내숭의 관계는 조선 성리학의 전개, 특히 성즉리(性卽理)에서 심즉리(心卽理)로의 사유 이동과도 연관지어 볼 수 있다. 조선 전·중기에는 주자학의 성즉리 사상에 따라 도덕의 기준이 외부의 객관적 이치(理)에 있다고 보았다. 이때 아는 외부에 설정된 도덕 규범, 선비·사대부의 이상을 가리키고, 속은 극복해야 할 개인적 욕망과 감정으로 이해되었다. 이러한 구도에서 내숭은 외부 도덕 규범을 따르는 척하면서 실제 욕망을 감추는 태도, 곧 ‘아다운 체면 연출’과 ‘속된 욕망’의 괴리를 숨기는 행위로 간주되기 쉬웠다.
최영진, 「18–19세기 조선성리학의 심학화 경향에 대한 고찰」, 한국민족문화 33(2009), 339-340.
그러나 조선 후기에는 심학화 경향과 더불어 양명학의 심즉리 사상이 영향을 미치면서, 도덕의 기준을 내 마음(心)과 정(情)의 차원에서 이해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내 마음의 깨달음과 감정의 진정성이 중시되면서, 외부 규범만을 절대 기준으로 삼는 태도는 점차 상대화된다. 이 변화는 아속 개념과 내숭의 성격을 함께 조정한다. 요약하면 [표 2]와 같다.
최영진, 앞의 논문, 340-368. 임성주의 담일(湛一) 개념과 이진상의 심즉리(心卽理)설 분석 참조.
이 표가 가리키는 바는, 기준의 위치 변화가 내숭의 평가 방식을 바꾸어 놓는다는 점이다. 전기에는 내숭이 외부 규범에 어긋나는 위선으로 비판되기 쉬웠다면, 후기로 갈수록 내숭은 내 마음이 인식한 도덕과 사회적 기대 사이에서 스스로를 조율하는 감정의 방식으로 읽힐 여지가 생긴다. 내숭은 여전히 가림과 연출을 수반하지만, 그 연출은 단지 남을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체면과 욕망을 함께 관리하려는 시도로 이해될 수 있다.
박길수, 「명초 정주학파(程朱學派)의 심학화 경향과 사상적 의의」, 동양철학 39(2013), 47-52.
[표 2] 조선 전·중기와 조선 후기 이후 아속이론 변화
구분
조선 전·중기(성즉리 기반)
조선 후기 이후(심즉리 경향, 심학화)
기준의 위치
외부(객관적 규범)
내부(주관적 마음)
아(雅) 개념
외부의 도덕 규범, 객관적 진리, 선비, 사대부의 이상
내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정성, 주체적 판단의 진실성, 자의식의 발현
속(俗) 개념
개인적 욕망, 부정적 요소, 극복 대상
대중이 공감하는 보편적 감수성, 일상의 진실, 인간의 기본 감정
아속 관계
이분법적 위계상아폄속(尙雅貶俗)
통합적 조화아속겸비(雅俗兼備)
도덕의 중심
성(性), 리(理)
심(心), 정(情)
성(性)·리(理) 중심에서 심(心)·정(情) 중심으로의 전환은 감정의 문화적 지위에도 영향을 준다. 이전에는 감정을 억제하고 숨기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다면, 이후에는 감정의 자연스러움과 진정성이 인간다움의 일부로 인정되기 시작한다. 이는 회화 창작에서 인물의 미묘한 감정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배경이 되었고, 조선 후기 풍속화가 표정과 몸짓, 거리감 속에 긴장·은밀한 친밀감·망설임을 세밀하게 담아낼 수 있었던 기반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풍속화 속 인물의 내숭은 단순한 위선이라기보다, 아적 규범과 속적 감정 사이에서 마음이 스스로 균형을 잡아 가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최영진, 앞의 논문, 360.
엄소연, 앞의 논문, 189-190.
아속 개념의 변천은 문인화와 풍속화의 관계에서도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문인화가 사대부의 취향, 고상한 도덕성, 은일적 이상을 구현하는 아적 이미지를 대표한다면, 풍속화는 서민의 일상, 웃음과 해학, 직접적인 감정 표현을 담은 속적 이미지의 전형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 김홍도의 풍속화가 보여주듯, 실제 작품 속에서는 문인적 구도 감각과 서민의 생활감이 결합하여 아속겸비의 의식이 형성된다. 신윤복의 경우에도 기방·나들이·은밀한 만남 장면에서 인물의 옷차림과 자세는 아의 품위를 지키면서, 시선과 거리감, 소품의 배치를 통해 속의 욕망과 호기심을 드러낸다. 이때 인물들이 취하는 어색할 정도의 단정함, 과한 점잖음, 눈길을 살짝 비끼는 시선은 모두 내숭의 징후로 읽을 수 있다. 곧, 아의 표정을 빌려 속의 감정을 숨기지만, 그 숨김이 오히려 감정의 존재를 강조하는 역설적 효과를 낳는 것이다.
윤재환, 앞의 논문, 226-227.
정서윤, 앞의 논문, 23-29, 51.
이와 같이 내숭은 아적 가치에 기대어 표면적 조화를 유지하려 하면서도, 속의 자연성과 현실성을 완전히 지우지 못한 채 두 요소가 서로 침투하는 문화적 역동성을 드러낸다. 한·중·일의 아속 담론 역시 규범과 전통을 표상하는 아와 생활·감정을 대표하는 속이 상호 긴장과 결합을 거듭한다는 점에서 공통 구조를 보여준다. 본 연구가 내숭을 아속의 구조가 현대 일상 속에서 재구성된 형태로 본다는 말은, 곧 내숭이 아와 속의 고전적 긴장을 오늘의 풍속 장면, 특히 체면과 욕망이 교차하는 생활 장면 속에서 다시 드러내는 심리라는 뜻이다.
김대환, 앞의 논문, 198-199.
등작인, 「명대 화조화 雅俗兼備 移情 표현 연구」, 경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23, 105-107, 110-112.
정리하자면, 아속은 고상함과 속됨을 나누는 가치 범주이자, 두 영역의 긴장과 결합을 설명하는 역사적 개념이고, 내숭은 이 긴장이 구체적인 장면·표정·몸짓 속에서 드러나는 방식이다. 아속을 맥락, 내숭을 표현으로 구분해 사유할 때, 풍속화 속 인물이 왜 그처럼 과도하게 단정한 포즈를 취하는지, 왜 말 대신 미묘한 손짓과 시선으로 감정을 우회하는지를 보다 정교하게 설명할 수 있다. 내숭과 아속의 연관성에 대한 이와 같은 정리는, 이후 장에서 조선 후기 풍속화와 현대 〈내숭시리즈〉의 장면 구성이 어떤 방식으로 내숭의 심리를 조직하는지 분석하는 이론적 기반이 된다.
3) 아속에 근거한 내숭의 미학적 특성
아속겸비(雅俗兼備)의 관점에서 볼 때, 내숭의 아속적 특성은 문화적 가치 구조와 개인의 심리 표현이 만나는 지점에서 드러난다. 아속겸비가 한 시대의 미감과 가치 구조를 설명하는 문화 차원의 개념이라면, 내숭은 그 구조 안에서 개별 주체가 취하는 심리적 표현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아속은 풍속 장면 전반에 깔린 고상함과 속됨의 긴장 구조를 보여주는 해석 관점이고, 내숭은 그 관점 안에서 인물이 사회적 시선과 자신의 욕망을 동시에 의식할 때 표정·몸짓·말투의 수준에서 형성되는 심리 상태이다. 이때 내숭의 미학적 특성은 아와 속이 한 장면과 한 인물 안에서 어떻게 포개지는지, 그 포개짐이 어떤 심리적 효과를 낳는지로 설명할 수 있다.
내숭의 미학은 무엇보다 아속겸비의 구조가 개인의 표정과 몸짓으로 구체화된 풍속 장면에서 선명해진다. 아속겸비가 귀족 문화와 민중 문화, 규범과 일상을 한 시대 차원에서 조율하려는 미학 의식이라면, 내숭은 그 구조 안에서 한 인물이 취하는 세밀한 감정 조절 방식이다. 겉으로는 아에 부합하는 절제·품위·예법을 유지하지만, 내면에서는 속의 감정과 욕망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상태, 곧 가림과 드러냄이 한 몸 안에 공존하는 상태가 내숭이다. 아와 속의 경계는 실제 예술 속에서 대립만이 아니라 중첩과 변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내숭은 바로 이 중첩 구조가 인물 단위로 응축된 양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내숭은 아속겸비의 추상적 구도를 구체적 풍속 장면과 인물의 동작으로 옮겨 보여주는 장치라고 볼 수 있다.
김대환, 앞의 논문, 187-203.
이러한 내숭의 아속적 특성은 조선 후기 풍속화에서 표면과 이면이 겹쳐진 이중 구도로 시각화된다. 김홍도의 [참고도판 1] 〈빨래터〉와 [참고도판 2] 〈파안흥취〉는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사례이다. 두 작품은 모두 일상적 풍속 장면을 다루면서, 그 안에 양반 인물의 체면과 욕망이 어긋나는 순간을 배치한다. [참고도판 1] 〈빨래터〉에서 여성들은 냇가에서 빨래하는 생활 장면 속에 놓여 있고, 화면 오른쪽 상단의 양반은 바위 뒤에 몸을 숨긴 채 부채로 얼굴을 가리듯 하며 그 장면을 바라본다. [참고도판 2] 〈파안흥취〉에서도 말을 타고 길을 지나가는 양반과 그를 따르는 하인이 등장하지만, 이들의 시선은 이동의 방향보다 길가의 여인들에게 향한다. 두 장면 모두 양반이 겉으로는 아적인 신분과 품위를 유지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속적인 호기심과 욕망을 표출하는 구조를 보여준다.
(좌)
[참고도판 1] 김홍도, 〈빨래터〉, 조선 후기, 종이에 담채, 28×23.9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
![[참고도판 1-1] 김홍도, 〈빨래터〉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47_00.jpg)
![[참고도판 1-1] 김홍도, 〈빨래터〉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47_01.jpg)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림 속 양반이 자신의 행동이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행위라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그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빨래터〉의 양반은 바위 뒤에서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빨래하는 여인들을 바라보고, 〈파안흥취〉의 양반은 말을 타고 지나가면서 길가의 여인들을 훔쳐본다. 이들은 양반으로서 아적인 품위를 유지하려 하지만, 동시에 속적인 호기심과 욕망을 완전히 감추지 못한다. 곧 두 작품의 양반 인물은 체면을 지키려는 마음과 보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이중 심리는 본 연구가 말하는 내숭의 구조와 맞닿아 있으며, 아속의 관점에서 내숭을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좌)
[참고도판 2] 김홍도, 〈파안흥취〉, 조선 후기, 종이에 담채, 21.4×16.4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중앙)
![[참고도판 2-1] 김홍도, 〈파안흥취〉의 부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48_02.jpg)
![[참고도판 2-1] 김홍도, 〈파안흥취〉의 부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48_03.jpg)
![[참고도판 2-1] 김홍도, 〈파안흥취〉의 부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48_04.jpg)
(우)
[참고도판 2-2] 김홍도, 〈파안흥취〉의 부분
따라서 [참고도판 1]과 [참고도판 2]는 내숭이 단순한 개인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풍속 장면 전체의 구조 속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양반의 품위 있는 외양은 아의 표면을 이루고, 여인들을 향한 시선은 속의 감정을 드러낸다. 이처럼 아적인 표면과 속적인 욕망이 한 인물 안에서 어긋날 때, 풍속화는 겉으로 보이는 체면과 그 이면의 감정을 함께 읽게 하는 장면이 된다. 내숭의 아속적 미학은 바로 이 지점, 곧 고상함을 유지하려는 태도와 현실적 감정이 충돌하면서도 한 화면 안에 함께 놓이는 방식에서 형성된다.
정서윤, 「김홍도(金弘道) 회화에 나타난 아속겸비적(雅俗兼備的) 심미의식」,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23, 23-29, 51.
내숭의 아속적 특성은 동시에 해학과 함축, 여백의 감각으로도 표현된다. 민주식은 미·추와 아·속의 관계를 논하면서, 아와 속이 고정된 선악 구분으로 정리되지 않고 서로를 침범하며 새로운 감수성을 만든다고 보았다. 풍속화에서 내숭은 이러한 중층적인 심리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인물은 예법과 체면에 맞는 외양을 유지하지만, 그 내부에는 호기심과 욕망, 장난기와 민망함 같은 상반된 정서가 함께 놓인다. 그러나 그림은 이를 직접 폭로하지 않고, 부채로 가린 얼굴, 바위 뒤의 위치, 말을 타고 지나가는 자세, 여인들을 향한 시선과 같은 장치를 통해 관람자가 표면과 이면의 간극을 읽도록 만든다. 즉 내숭은 풍속 장면을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겉으로 유지되는 체면과 그 안에서 새어 나오는 감정을 함께 해석해야 하는 장면으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민주식, 「미(美)와 추(醜), 아(雅)와 속(俗)」, 미학·예술학 연구 27(2008), 62.
장자의 심재(心齋)와 좌망(坐忘), 적(適) 개념은 이러한 내숭의 아속성을 주체 심성의 조율이라는 측면에서 살피게 한다. 송항룡의 해석에 따르면, 심재는 마음을 재계하여 사물과 가치에 과도하게 집착하지 않게 만드는 수련이며, 좌망은 경험적 표상과 판단의 집착을 벗겨 듣고 보고 생각하는 작용을 자유롭게 하는 상태이다. 장자는 적을 적인지적(適人之適), 자적기적(自適其適), 망적지적(忘適之適)의 세 단계로 구분하는데, 남이 좋아하는 바를 따라가는 적인지적은 타인의 기호와 규범에 휘둘리는 국면, 자기가 좋아하는 바를 따르는 자적기적은 자신의 본성에 맞는 선택을 행하는 국면을 뜻한다. 이런 구분을 아속의 관점에 대입하면, 남이 정한 상아(尙雅)의 기준에 맞추어 몸짓만 급히 꾸미는 태도는 외형만 아다운, 실제로는 속화된 모방성으로 기울기 쉽다. 반면 내 마음에서 진정 편안한 것을 식별하고 그에 따라 행하려는 자적기적의 실천은 아를 주체적 진정성의 품격으로 다시 보게 한다.
송항룡, 시간과 공간 그리고 지금 바로 여기(서울: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7), 230-232.
莊子 「大宗師」 “故樂通物, 非聖人也. 有親, 非仁也. 天時, 非賢也. 利害不通, 非君子也. 行名失己,非士也. 亡身不眞, 非役人也. 若狐不偕, 務光, 伯夷, 叔齊, 箕子, 胥餘, 紀他, 申徒狄, 是役人之役, 適人之適, 而不自適其適者也.” 莊子 「駢拇」 “吾所謂臧者, 非仁義之謂也, 臧于其德而已矣. 吾所謂臧者, 非仁義之所謂也, 任其性命之情而已矣. 吾所謂聰者, 非謂聞其彼也, 聞而已矣. 吾所謂明者, 非謂其見彼也, 自見而已矣. 夫不自見而見彼, 不自得而得彼者, 是得人之得而不自得其得者也, 適人之適而不自適其適者也. 夫適人之適而不自適其適, 雖盜蹠與伯夷, 是同爲淫辟也. 余愧乎道德, 是以上不敢爲仁義之操, 而下不敢爲癮癖之行也.” 莊子 「達生」 “忘足, 履之適也. 忘要, 帶之適也. 知忘是非, 心之適也. 不內變, 不外從, 事會之適也. 始乎適而未嘗不適者, 忘適之適也.”
송항룡, 앞의 책, 230-232.
내숭은 이 두 층위가 교차하는 자리에서 발생한다. 겉으로는 타자의 기호와 사회적 규범에 합치하는 몸짓을 보이되, 그 안에서 자신의 마음이 가는 바를 조금씩 드러내거나 유예하는 장면이 바로 내숭이다. [참고도판 1] 〈빨래터〉와 [참고도판 2] 〈파안흥취〉의 양반은 겉으로는 신분과 체면을 유지하려 하지만, 실제로는 여인들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이들은 자신의 시선이 부적절하게 보일 수 있음을 의식하기 때문에, 대놓고 바라보기보다 몰래 바라보는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그 시선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고, 장면 안에 속적인 관심의 흔적으로 남는다. 이처럼 아적인 품위를 유지하려는 태도와 속적인 관심을 감추지 못하는 심리가 한 인물 안에서 동시에 작동할 때, 내숭은 아속의 긴장을 드러내는 심리 구조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이러한 아속적 특징과 내숭의 구조를 연결하여, 풍속화 속 인물의 심리를 해석하고자 한다.
이탁오의 논의는 내숭 속에 자리한 욕망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주희는 맹자집주(孟子集註) 「양혜왕장구 하(梁惠王章句下)」에서 맹자의 왕도정치 논의를 해석하며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존한다는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는 주자학적 수양론에서 욕망을 절제하고 천리의 보존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탁오는 이러한 관점을 비판적으로 전환하여, 인욕을 단순히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인간 삶을 움직이는 자연스러운 힘으로 재평가하였다. 그는 옷을 입고 밥을 먹고,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 자체가 인간 본성의 일부임을 강조하였다. 그의 시각에 따르면, 농부가 수확을 기대하고 상인이 이윤을 기대하는 마음이 없으면 어떤 행위도 지속되기 어렵다. 이는 내숭 안에 작동하는 사적 욕망이 단지 아의 기준에 어긋나는 부정 요소가 아니라,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기본 동력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탁오가 비판한 것은 욕망 그 자체라기보다 남의 자취만 쫓는 모방적 아, 곧 겉으로만 고상한 체하면서 속으로는 비겁한 이익을 추구하는 태도였다.
朱熹, 孟子集註, 「梁惠王章句下」 제5장 주석, “故孟子因時君之問, 而剖析於幾微之際, 皆所以遏人欲而存天理.”
미조구치 유조, 이탁오 평전: 정통을 걸어간 이단, 임태홍 역(파주: 글항아리, 2022), 265-268.
이 논의를 바탕으로 하면, 아속은 고정된 두 항의 대립이라기보다 주체가 마음과 욕망을 어떻게 이해하고 조율하는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구조이다. 장자와 이탁오의 논의를 함께 살피면, 아와 속은 각각 일정한 위치에 머무는 개념이 아니라, 무엇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서로의 의미를 바꾸며 작동한다. ‘천리를 보존한다’는 가치는 여전히 아적인 요소로 이해될 수 있지만, 남들이 가치 있다고 여긴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맹목적으로 따르거나 천리를 보존하는 ‘척’하는 행위는 오히려 속의 영역으로 기울 수 있다. 반대로 인욕은 천리의 보존을 방해하는 부정적인 속적 요소로 이해되어 왔지만, 그것을 인간 삶의 자연스러운 힘으로 인정한다면, 남이 원하는 바를 좇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바를 파악하며 따르려는 아적인 행위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와 속을 단순히 나누는 일이 아니라, 두 범주가 한 장면 안에서 서로의 의미를 바꾸며 교차하는 방식이다. [참고도판 1] 〈빨래터〉와 [참고도판 2] 〈파안흥취〉에서 양반의 갓, 부채, 말, 하인의 동행은 아적인 신분과 체면의 표지를 이룬다. 그러나 그 표지들은 동시에 욕망의 시선을 감추거나 우회시키는 장치가 된다. 아(雅) 안에 속(俗)이 스며들고, 속 안에 아가 작동하는 복합적 구조를 전제할 때, 내숭 역시 단순한 위장이나 억제가 아니라 욕망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드러내고 감추는 정도와 방식을 조정하는 심리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내숭은 아속의 대립을 해소하는 결론이 아니라, 아와 속이 교차하는 장면을 읽기 위한 심리적 구조로 자리 잡는다.
결국 아속에 근거한 내숭의 미학적 특성은 몇 가지 상호 연관된 특징으로 요약된다. 내숭의 장면에서는 아적인 요소와 속적인 요소가 동시에 암시되고, 이때 내숭은 욕망과 체면이 즉각 충돌하지 않도록 감정을 늦추고 완충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또한 해학과 함축이 공존하여, 웃음을 통해 긴장을 완화하면서도 그 이면의 불편함과 욕망을 더욱 또렷하게 부각시키며, 감상자에게 표면과 이면의 간극을 적극적으로 해독하도록 요구한다. 즉 내숭은 규범과 욕망, 예법과 생활감정, 체면과 솔직함이 얽힌 풍속 장면을 해석 가능한 구조로 조직하는 심리 장치이다.
이러한 내숭의 미학은 조선 후기 심학화 과정에서 성·리 중심의 외부 규범에서 심·정 중심의 주체 윤리로 이동한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내숭은 외부 시선만을 절대 기준으로 삼지도 않고, 내면 욕망을 조건 없이 승인하지도 않으면서, 두 영역 사이에서 자기 마음이 감당할 수 있는 균형점을 모색하는 실천이다. 아속의 관점에서 볼 때, 내숭은 고상함과 현실 감정, 규범과 욕망을 함께 떠안고 살아가려는 주체의 조율 방식을 보여주는 심리이며, 풍속화는 바로 동시대 인물들의 내숭 장면을 포착하고 배열하는 데 적합한 회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해는 조선 후기 풍속화와 현대사회 풍속화인 〈내숭시리즈〉 모두를 분석하는 데 적용 가능한 기준을 제공한다.
최영진, 앞의 논문, 339-368.
Ⅲ. 풍속화의 심리 표현 양상166문단
Ⅲ장은 앞서 정리한 내숭의 개념을 조선 후기 풍속화의 구체적 장면 속에서 살펴보는 부분이다. 내숭은 겉으로는 절제와 품위를 유지하는 태도를 보이면서도, 그 이면에 욕망과 긴장, 호기심과 유희의 감정을 함께 지니는 심리 구조이다. 따라서 일상적 장면과 사회적 관계를 함께 다루는 풍속화는 내숭의 심리를 읽어내기에 적합한 장르라 할 수 있다. 특히 조선 후기 풍속화는 잔치, 기방, 나들이, 놀이와 같은 생활 장면을 묘사하면서도, 인물의 시선과 몸짓, 거리감과 구도, 의복과 소도구의 배치를 통해 체면을 유지하려는 태도와 은근히 드러나는 욕망을 함께 보여준다. 본 장에서는 풍속화를 단순히 사회상을 기록한 회화로만 보지 않고, 인물의 심리와 관계의 긴장이 장면 안에서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살피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풍속화 속 양반 계층의 심리 표현을 검토한다. 양반 인물은 겉으로는 도덕과 교양, 예법을 유지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 장면 안에서는 유흥과 놀이, 시선의 끌림과 같은 속의 영역에 가까이 놓인다. 이때 아속의 관점은 양반이 스스로를 아적인 주체로 드러내려 하면서도, 속적인 감정과 욕망을 완전히 지우지 못하는 긴장을 설명하는 보조적 기준으로 활용된다. 이어서 여성 인물이 혼례, 밀회, 가무, 나들이 장면에서 시선 처리와 옷매무새, 자세, 주변 사물의 배치를 통해 내숭의 심리를 드러내는 방식을 살핀다. 이러한 분석은 조선 후기 풍속화 속 심리 표현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후 현대사회 풍속화로서 〈내숭시리즈〉가 전통 풍속 장면의 심리 구조를 어떻게 계승하고 변용하는지를 살피기 위한 기준을 마련한다.
1. 조선 후기 풍속화 속 인물의 심리 표현
본 절에서는 조선 후기 풍속화에 나타난 내숭 심리의 표현 양상을 검토한다. 앞서 내숭을 겉과 속의 간극을 조절하는 심리 구조로 정리하였다면, 여기서는 그것이 구체적인 풍속 장면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에 주목한다. 조선 후기 풍속화는 잔치, 기방, 야외 유흥, 놀이와 수군거림 같은 일상 장면을 다루면서, 인물의 자세·시선·거리감, 주변 사물과 공간 구도를 통해 체면과 욕망이 함께 놓이는 상황을 보여준다. 먼저 양반 계층이 도덕과 교양을 앞세우면서도 유흥과 향락의 공간에 가까이 놓이는 모습을 살펴, 체면을 지키려는 태도와 쾌락을 향한 관심이 어떻게 내숭의 심리로 연결되는지 분석한다. 이어서 여성 인물이 혼례, 밀회, 일상 놀이 장면에서 시선 처리, 옷매무새, 소품의 배치를 통해 욕망과 수치, 기대를 동시에 드러내는 방식을 검토한다. 이 과정에서 아속의 관점은 각 인물이 아적 규범과 품위를 의식하면서도 속적 감정과 욕망을 완전히 지우지 못하는 긴장을 읽어내는 보조 기준으로 활용된다. 결국 본 절은 조선 후기 풍속화가 단순한 생활 장면의 기록에 그치지 않고, 내숭의 태도와 심리를 장면 단위로 배열한 회화 양식으로 읽힐 수 있음을 살피는 데 초점을 둔다.
1) 체면과 욕망의 긴장 구조 속 양반 계층의 이중적 태도
Ⅲ장 1절 1항에서는 조선 후기 풍속화에 등장하는 양반 인물을 중심으로, 체면과 욕망의 긴장이 어떤 내숭의 태도로 나타나는지 살펴본다. 여기서 양반 계층의 내숭은 유교적 규범과 체면을 중시하는 아(雅)의 가치 의식이 실제 생활 감정과 유흥의 욕망, 곧 속(俗)의 층위와 만나는 자리에서 형성되는 심리 구조로 이해할 수 있다. 조선 후기 양반 사회는 성리학적 도덕 질서를 내세우며 언행과 풍속을 규제했지만, 실제 생활 장면에서는 유흥과 놀이, 비공식적 교류 또한 이루어졌다. 이때 양반 인물은 스스로의 품위와 체면을 유지하려 하면서도 속의 세계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그 사이의 간극을 조절하기 위해 내숭의 태도를 보인다. 조선 후기 풍속화, 특히 신윤복의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에 수록된 작품들은 이러한 양반 인물의 심리적 긴장을 장면 단위로 포착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본 항에서는 이를 단순한 인물 묘사가 아니라, 양반 풍속 장면 안에서 체면과 욕망이 어떻게 함께 배치되는지를 보여주는 심리 표현으로 살피고자 한다.
![[참고도판 3] 신윤복, 〈쌍육삼매(雙六三昧)〉, 18세기 후반, 종이에 담채, 16.4×11.9cm, 간송미술관 소장](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55_01.jpg)
박순철, 「신윤복 풍속화에 나타난 ‘욕망 표현’ 연구」,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4, 93-94.
[참고도판 3] 신윤복의 〈쌍육삼매(雙六三昧)〉는 양반의 내숭을 읽기에 적합한 풍속 장면을 제공한다. 화면 중앙에는 돗자리를 펴고 앉아 주사위 놀이에 몰두한 인물들이 있고, 주변에는 그 광경을 호기심 어린 눈길로 지켜보는 인물들이 둘러서 있다. 말판 위로 모인 시선, 몸을 앞으로 기울인 자세, 손의 움직임 등은 놀이에 대한 몰입과 기대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장면을 바라보는 양반 인물의 태도는 놀이에 직접 참여한 인물들과 다른 결을 지닌다. 화면 왼편에 서 있는 흰 도포 차림의 양반은 전통 갓을 쓰고 몸을 약간 뒤로 뺀 채 놀이판을 내려다본다. 그는 직접 놀이에 참여하지 않고 한발 물러선 관망자의 위치를 택함으로써, 놀이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내면서도 양반으로서의 체면을 유지하려 한다. 옷매무새의 단정함과 엄격한 표정은 아적 규범과 품위를 의식하는 태도와 연결되지만, 놀이판을 향한 시선과 그 곁에 머무는 위치는 속의 흥미와 끌림을 완전히 감추지 못한다. 이처럼 서 있는 양반과 앉아 있는 인물들 사이의 높이 차, 의복의 대비, 참여와 관망의 구분은 양반 인물이 아와 속 사이의 경계에서 자신의 태도를 조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혜윤, 「신윤복 풍속화에 내재된 풍류적 여가문화의 특징 연구」,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4, 28-29.
박순철, 앞의 논문, 98-100.
놀이에 직접 참여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상대적으로 속의 일상성과 활력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옅은 색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무릎을 꿇은 채 말판을 응시하는 여성, 모자를 벗어 두고 담배를 문 남성 등은 몸을 앞으로 숙이고 손을 뻗는 방식으로 승부와 놀이의 긴장을 직접적으로 표출한다. 이들의 몰입은 풍속 장면 안에서 속의 생동감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여준다. 반면 양반은 이들 곁에 있으면서도 몸의 선을 곧게 세우고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직접적인 욕망 표현을 삼가면서도 장면 바깥으로 완전히 물러서지 않는 중간 지대를 점한다. 이때 풍속 장면은 놀이와 구경, 참여와 관망이 얽힌 구조가 되고, 양반의 내숭은 바로 이 구조 안에서 ‘관람’이라는 비교적 안전한 형식으로 드러나는 욕망의 연루 방식으로 형상화된다. 사물을 즐기다 뜻을 잃는다는 완물상지(玩物喪志)의 관념에서 보면 쌍육과 같은 놀이는 경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더 중요한 것은 놀이 자체보다, 그 놀이를 바라보는 양반 인물의 태도이다. 그는 쌍육판이라는 속의 장면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시선과 자세, 위치 선정으로 아적 체면을 유지하려 한다. 이처럼 내숭의 심리는 아속의 긴장을 개인의 신체와 시선 배치에 응축한 것으로, 풍속화가 단순한 계급 풍경이 아니라 감정과 심리의 미묘한 조율을 보여줄 수 있는 장르임을 말해 준다.
![[참고도판 4] 신윤복, 〈청금상련(廳琴賞蓮)〉, 18세기 후반, 종이에 담채, 28.2×35.2cm, 간송미술관 소장](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57_02.jpg)
강옥희, 「풍류 정신으로 본 조선 후기 풍속화의 미의식 – 김홍도와 신윤복」, 동양예술 60(2023), 15-25.
[참고도판 4] 〈청금상련(廳琴賞蓮)〉은 내숭이 문인적 아의 상징과 세속적 유흥의 장면이 포개진 구조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보여준다. 제목만 보면 ‘거문고를 들으며 연꽃을 감상한다’는 문인적 풍류가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화면에 펼쳐진 실제 장면은 그와 다소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연못을 끼고 자리한 양반 가옥 마당에는 세 명의 양반과 세 명의 기생이 모여 있으며, 그 가운데 한 양반은 사방건을 옆에 벗어 둔 채 기생을 자연스럽게 품에 안고 있다. 거문고와 연꽃, 단단한 담장과 소나무는 군자의 고결함과 청렴, 절개를 상징하는 아의 기호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인물의 몸짓과 시선, 거리감은 이러한 상징들이 세속적 유흥의 장면과 함께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아를 구성하는 기호들이 화면 전면에 놓여 있지만, 그 위를 가로지르는 인물 관계와 감정의 흐름은 속의 세계를 향해 있다. 내숭은 바로 이 어긋남, 곧 문인적 상징과 몸의 현실적 접촉 사이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긴장으로 나타난다.
(좌)
![[참고도판 4-1] 신윤복, 〈청금상련(廳琴賞蓮)〉의 부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58_00.jpg)
(우)
![[참고도판 5] 작가 미상, 〈가리마 복원 이미지〉, 연도 미상, 이미지 자료, 크기 미상, 배화여자대학교 제공](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58_01.jpg)
박순철, 앞의 논문, 113-115.
작품 속 양반 손님들 사이에서도 내숭의 강도와 양상은 다르게 나타난다. 한 인물은 집주인과 기생의 밀착된 모습을 곁눈질하며 얼굴에 불편한 기색을 띤다. 그는 도포와 갓으로 단정한 외양을 유지하면서, 시선 처리와 입술선의 긴장을 통해 유교적 품위와 눈앞의 유흥 장면 사이의 괴리를 의식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여기서 내숭은 단순히 욕망을 숨기는 태도라기보다, 자신이 속한 규범과 실제로 마주한 풍속 장면 사이에서 마음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망설이는 심리로 나타난다. 반대로 다른 양반은 상대적으로 완화된 표정과 자세로 연회 분위기를 관망하며, 상황에 대한 불편함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이와 같은 인물 간 차이는 내숭이 획일적인 성격이 아니라, 아적 규범 의식과 속적 감정에 대한 수용 정도에 따라 여러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주목할 요소는 거문고와 연꽃, 가리마([참고도판 4-1], [참고도판 5])를 쓴 의녀의 존재이다. 거문고는 바른 것을 지켜 스스로 금한다는 의미를 품은 악기로, 예로부터 성현과 군자가 마음을 다스리는 도구로 여겨졌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어나면서도 더럽혀지지 않는 청정성과 청렴, 군자의 덕목을 상징하며, 담장과 소나무는 충절과 절개를 연상시킨다. 의녀는 의기라고도 불리며 관기의 역할도 수행하였다. 이러한 의녀를 사적 공간으로 불러들여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활용하였다. 아의 상징들이 배경화된 가운데, 양반과 기생의 밀착, 의녀의 동석, 관능적 시선 교환이 함께 놓이는 장면은 아의 기호와 속의 감정이 한 화면 안에서 어긋나며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양반은 아의 기호로 둘러싸인 공간 안에서 속의 욕망을 드러내면서도, 그 아의 상징을 통해 자신의 행위를 곧장 속된 것으로 노출하지 않으려 한다. 풍속화는 이러한 구조를 제목과 실제 장면 사이의 간극, 화면 구성과 시선 배치, 상징적 소품의 조합을 통해 드러낸다.
최육상, 「미혼은 댕기 머리, 기혼은 상투와 쪽 머리?」, 오마이뉴스, 2006.03.09, 검색일 2025.07.24, http://bit.ly/6oW20汫h.
조현판, 옛 그림의 상징 사전(서울: 대학서림, 2025), 21.
강옥희, 앞의 논문, 15-25.
조현판, 위의 책, 237.
〈쌍육삼매〉와 〈청금상련〉을 비교하면, 양반 내숭의 공통된 구조를 살필 수 있다. 두 작품 모두에서 양반은 화면의 중심 장면에 완전히 편입되지도, 완전히 배제되지도 않는 중간 위치에 놓인다. 쌍육판의 양반은 놀이판 바로 곁에 서 있으면서도 손을 얹지 않고 관망하고, 연못가의 양반 손님은 연주와 유흥의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시선을 비껴가거나 표정을 굳힌다. 이 중간 위치는 양반이 아의 규범과 속의 생활감정 사이에서 취하는 내숭의 태도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즉, 풍속 장면이 아와 속의 경계에 걸쳐 있을 때, 양반의 몸은 그 경계를 가로지르면서도 충돌을 완화하는 매개로 기능한다. 내숭은 바로 그 몸의 애매한 방향, 시선의 분산, 거리를 계산한 위치 선정 속에서 읽힌다.
[표 3] 〈쌍육삼매〉와 〈청금상련〉의 작품별 아(雅)적 요소, 속(俗)적 요소, 내숭 표현 분석
작품명
주요 인물
아(雅)적 요소
속(俗)적 요소
아적 요소, 속적 요소 및 이중적 태도
쌍육삼매
양반 남성, 평민, 기생
양반의 의복, 관망하는 태도
주사위 놀이, 담배
체면 유지하며 속된 놀이 관찰
청금상련
양반 3명, 기생 3명
거문고, 연꽃, 문인적 공간
양반과 기생의 밀착
고상한 제목 vs 관능적 현실
요컨대 조선 후기 양반 풍속 장면에서 내숭은 유교적 품위를 의식하는 아의 태도와 생활 속 욕망이 응축된 속의 장면이 충돌하면서도 공존하려는 심리로 나타난다. 신윤복의 풍속화는 이러한 내숭을 인물 한 사람의 성격 묘사에 한정하지 않고, 장면 전체의 시선과 거리, 소품과 상징의 관계 속에서 읽히게 한다. 양반은 체면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태도를 조절하지만, 바로 그 조절의 과정이 풍속화 속에서 아와 속의 경계가 흔들리는 지점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양반 내숭의 장면들은 이후 현대 〈내숭시리즈〉에서 반복되는 체면과 욕망, 단정함과 유희, 가림과 드러냄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전통적 배경으로 작용한다. 다시 말해, 조선 후기 양반 풍속 장면에서 보이는 내숭의 심리 표현은 현대사회 풍속화에서 내숭이 사회적 시선과 개인의 욕망을 동시에 다루는 장치로 활용될 수 있음을 살피게 하는 기준을 제공한다.
2) 사회와 개인의 갈등 구조 속 여성 인물의 양가적 심리
조선 후기 여성 인물화의 일부는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한 규범적 이상과 개인의 내면에서 움직이는 감정 사이의 긴장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신윤복의 풍속화에 등장하는 여성상은 도덕성과 예의, 정절 담론을 따르는 듯한 외양을 보이면서도, 그 이면에 감추어진 욕망과 정서의 흔들림을 함께 드러낸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혜원전신첩에 수록된 여러 풍속화에는 남녀 간의 애정과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담은 장면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어, 여성 인물이 사회적 규범과 개인적 감정 사이에서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지 살펴보기에 적절하다. 여기서는 〈이부탐춘〉과 〈춘색만원〉을 중심으로, 작품 속 여성 인물들이 사회적 규범과 개인적 욕망 사이에서 어떤 양가적 심리를 드러내는지, 그리고 그 심리가 어떻게 내숭의 형식으로 시각화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정주임, 「신윤복 풍속화에 나타난 조선 후기 여성의 두발 양식과 복식문화」, 한국패션뷰티학회지 5-3(2007), 143-151.
![[참고도판 6] 〈이부탐춘(嫠婦耽春)〉은 제목 그대로 ‘과부가 봄을 탐하다’는 뜻을 지닌다. 여기서 이부(嫠婦)는 남편을 잃은 여성을, 춘(春)은 계절로서의 봄이](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61_01.jpg)
[참고도판 6] 신윤복, 〈이부탐춘(嫠婦耽春)〉, 18세기 후반, 종이에 담채, 28.2×35.6cm, 간송미술관 소장
![[참고도판 6-1] 신윤복, 〈이부탐춘(嫠婦耽春)〉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62_00.jpg)
그림 속에는 두 여성이 앙상한 늙은 소나무 가지 위에 나란히 앉아 있다. 왼쪽 인물은 흰 상복을 입은 양반가의 과부로 보인다. 소복 차림은 정절과 애도의 질서를 상징하며, 과부에게 요구되었던 절제와 금욕의 삶을 환기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풍성한 가체와 붉게 물든 입술은, 사회적 규범 속에서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여성적 감각과 자기 연출의 흔적을 드러낸다. 앙상한 가지 위에 위태롭게 걸터앉은 과부의 모습은 늙은 소나무의 형상과 겹쳐지며, 정절 이데올로기 아래 놓인 삶의 척박함과 불안정성을 시각적으로 암시한다.
백인산, 간송미술 36: 회화(파주: 컬처그라퍼, 2014).
오른쪽의 젊은 여성은 댕기머리를 늘어뜨리고 하늘색 치마에 삼회장저고리를 단정히 갖춰 입고 있다. 시누이로 추정되는 이 인물이 상복을 입지 않은 점으로 보아, 이 장면은 상을 치른 직후라기보다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의 상황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녀가 과부의 치맛자락을 살며시 붙드는 손짓과 약간 상기된 듯한 표정은, 과부의 처지를 위로하거나 공감하는 태도와 함께, 봄의 기운 속에서 미묘하게 흔들리는 감정의 동요를 함께 암시한다. 이처럼 두 여성은 모두 절제된 외양을 유지하고 있으나, 몸짓과 표정의 세부에서는 사회적 역할만으로는 환원되지 않는 내면의 심리적 흔들림을 드러낸다.
두 여성 앞에 배치된 짝짓기하는 개와 새는 이러한 심리를 더욱 직접적으로 환기한다. 봄의 한가운데서 생명력을 드러내는 동물들은 사회적 규범의 바깥에서 작동하는 자연적 욕망과 생명의 충동을 상징하는 요소로 읽힌다. 또한 담장을 넘어 마당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 꽃가지와 흐드러지게 핀 복사꽃·배꽃, 나뭇가지 위와 담장 아래를 오가는 새들의 모습은 화면 전체를 봄의 기운으로 가득 채운다. 특히 담 아래 난 작은 구멍은 차단과 소통, 금기와 통로라는 상반된 의미를 함께 지닌 장치로 볼 수 있는데, 이는 외부 세계와 완전히 단절될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요소로 이해될 수 있다.
이처럼 〈이부탐춘〉은 겉으로는 정숙한 봄날의 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상복과 절제된 자세, 소나무와 담장이 상징하는 규범의 층위와, 붉은 입술과 가체, 꽃과 동물들이 암시하는 욕망의 층위가 화면 안에서 교차한다. 과부의 흰 상복과 정적인 자세는 유교 사회가 요구한 절제와 정숙의 질서를 보여주지만, 입술색과 머리 장식, 주변의 봄기운은 그 질서 아래에서도 쉽게 소거되지 않는 감정과 욕망의 존재를 드러낸다. 여기에서 읽히는 내숭은 단순한 위선이라기보다, 정절 이데올로기와 개인의 감정 사이에서 자신의 마음을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상황 속에 형성된 심리적 조율의 태도에 가깝다. 다시 말해 이 장면의 여성은 규범에 일방적으로 종속된 존재로만 머무르기보다, 사회적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자신의 내면을 완전히 지우지 못하는 양가적 심리의 주체로 읽힐 수 있다.
![[참고도판 7] 〈춘색만원(春色滿園)〉은 ‘봄빛이 뜰 안에 가득하다’는 뜻을 지닌다. 화면에는 봄나물을 담은 바구니를 든 여성과, 그 곁을 지나가다 말을 건네는](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64_00.jpg)
두 인물의 옷차림은 신분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남성은 도포와 갓을 갖추어 쓴 사대부 양반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복식과 행장은 그가 공적 예절과 체면을 의식하는 인물임을 시사한다. 반면 여성은 노란 저고리에 흰 치마를 입고, 장신구 없이 단정한 차림을 한 서민 여성으로 묘사된다. 바구니에 담긴 푸른 봄나물은 그녀가 일상의 노동과 계절의 생명력 속에 놓인 존재임을 보여주며, 남성의 단정한 외양과 대비를 이룬다.
[참고도판 7] 신윤복, 〈춘색만원(春色滿園)〉, 18세기, 종이에 담채, 24.2×31.5cm, 간송미술관 소장
엄소연, 앞의 논문, 183-200.
이 작품에서 여성 인물의 몸짓과 시선은 사회적 규범과 개인의 감정이 부딪히는 지점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그녀는 바구니를 고쳐 쥔 채 남성의 존재를 의식하지만, 고개를 약간 돌려 시선을 곧장 마주하지 않는다. 이러한 자세는 노골적인 거절도 아니고 적극적인 수용도 아닌, 그 중간 지점에 놓인 태도로 볼 수 있다. 즉 예의를 지키고 조심스러움을 유지하려는 태도와 함께, 상대에 대한 호기심과 설렘이 동시에 작동하는 양가적 심리가 이 몸짓 안에 담겨 있다. 혜원전신첩의 인물들이 시선의 방향, 신체의 각도, 손과 발의 위치를 통해 감정의 흐름을 드러낸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작품의 여성 역시 시선을 비껴가면서도 관계를 완전히 차단하지 않는 자세를 통해 사회적 금기와 개인적 감정 사이에 유예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배경 또한 이러한 심리를 보완한다. 돌담과 초가지붕은 서민 일상의 삶터이자 외부와 내부를 구분하는 경계로 기능하며, 소나무와 꽃핀 가지는 계절의 생동감과 사랑의 기운을 암시한다. 한편 화면 한쪽에 놓인 무덤은 삶과 죽음, 규범과 욕망, 사회적 질서와 개인적 감정 사이의 간극을 환기시키는 장치로 작용한다. 이처럼 〈춘색만원〉은 봄날의 한가로운 일상 장면을 그린 듯 보이지만, 그 내부에는 신분 질서와 성별 규범, 그리고 그 틈에서 피어나는 인간적 감정이 함께 놓여 있다. 여성 인물의 내숭은 여기서도 단순한 수동성이나 위선으로 환원되기보다, 사회적 제약을 의식하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않는 조절의 태도로 이해될 수 있다.이를 정리하면 [표 4]와 같다. 이상의 두 작품에서 여성 인물들은 모두 사회적 시선과 예의 규범을 의식하는 태도를 보이지만, 표정과 행동, 장식과 배경 속에는 억압과 욕망, 절제와 설렘이 교차하는 심리가 함께 담겨 있다. 〈이부탐춘〉과 〈춘색만원〉의 여성들은 규범에 순응하는 듯한 외양을 유지하면서도, 세부 요소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소거하지 않은 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점에서 이들의 내숭은 사회적 질서 앞에서 형성된 단순한 가식이라기보다, 사회와 개인의 갈등 구조 속에서 감정의 표현과 억제를 동시에 수행하는 양가적 심리의 형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표 4] 〈이부탐춘(嫠婦耽春)〉과 〈춘색만원(春色滿園)〉의 작품별 아(雅)적 요소, 속(俗)적 요소, 내숭 표현 분석
작품명
주요
인물
아(雅)적 요소
속(俗)적 요소
아적 요소, 속적 요소 및 양가적 심리
이부탐춘
과부, 젊은 여성
상복, 정숙한 자세, 정절 담론을 상징하는 소나무와 담장
짝짓기하는 동물들, 무성한 봄꽃과 나뭇가지, 붉은 입술과 화려한 가채
정절 의무와 봄·사랑에 대한 갈망 사이의 긴장을 표정·복식·배경 상징을 통해 은밀히 드러내는 능동적 내숭
춘색만원
양반 남성, 서민 여성
예의 바른 대화, 단정한 복식, 돌담·무덤이 상징하는 유교적 규범
남녀 간 호기심과 설렘, 바구니 속 봄나물과 봄 풍경의 생명력
신분 차이를 전제로 시선을 피하면서도 관계를 완전히 차단하지 않는 태도 속에 내숭 심리를 암시
이러한 여성 인물화의 사례는 조선 후기 풍속화가 상아폄속(尙雅貶俗)의 질서와 일상적 욕망의 세계를 한 화면 안에 병치하면서, 여성 인물의 내면을 단순한 도덕적 평가의 대상으로만 그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여기서 드러나는 내숭은 사회적 규범에 대한 일방적 복종이나 노골적 저항의 어느 한쪽으로만 환원되기보다, 체제와 일상, 예의와 감정 사이를 오가며 형성되는 복합적인 심리 태도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아속적 구조와 내숭의 표현 방식은 이후 현대사회 풍속화와 본 연구자의 〈내숭시리즈〉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며, 전통과 현대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정서적 연속성을 살피는 단서가 된다.
2. 전통 풍속 장면의 현대적 계승과 내숭 표현의 변용
본 절에서는 조선 후기 풍속화에서 살펴본 내숭 심리의 표현 방식이 현대 풍속 장면 속에서 어떻게 이어지고 달라지는지를 검토한다. 내숭은 시대에 따라 구체적 장면과 사회적 관습을 달리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와 쉽게 드러내기 어려운 감정 사이의 간극을 조절한다는 점에서 일정한 연속성을 지닌다. 조선 후기 풍속화가 인물의 시선, 몸짓, 거리감, 사물 배치를 통해 내숭 심리를 암시하였다면, 현대사회 풍속화에서는 도시 공간, 소비 사물, 광고 문구, 상품 이미지와 같은 새로운 시각 기호들이 내숭 심리를 드러내는 장치로 작용한다.
먼저 전통 풍속화에서 사용되던 상징, 형상 대비, 인물 간 거리감이 현대 작품에서 어떤 방식으로 변형되어 나타나는지 살핀다. 이어서 사회가 요구하는 단정한 삶의 모습과 개인이 실제로 느끼는 욕망·피로·유혹 사이의 차이가 어떤 장면에서 내숭 심리로 드러나는지 구체적 사례를 통해 검토한다. 이러한 고찰은 이후 Ⅳ장에서 다룰 현대사회 풍속화로서의 〈내숭시리즈〉를 전통 풍속 표현과 연결해 이해하기 위한 중간 단계가 되며, 내숭이 전통과 현대의 풍속 장면 안에서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는지를 살피는 기준이 된다.
1) 시각적 상징과 형상 대비에 의한 내숭 표현
본 항에서는 조선 후기 풍속화에서 나타난 시각적 상징과 형상 대비가 현대 풍속 장면에서 어떻게 변형되어 내숭의 심리를 드러내는지 살펴본다. 내숭은 현실 인식과 자아상, 사회적 압력과 자율성, 아(雅)적 규범과 속(俗)적 욕망이 한 장면 안에서 어긋나거나 겹칠 때 형성된다. 이러한 내숭의 심리는 인물의 표정과 몸짓뿐 아니라, 화면 속에 배치된 상징물, 도상의 병치, 색채와 구도의 대비를 통해 구체화된다. 조선 후기 신윤복의 풍속화와 현대사회 풍속화로서의 〈내숭시리즈〉는 모두 시각적 상징과 형상 대비를 활용하여, 겉으로는 품위와 질서를 유지하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서 감정과 욕망이 우회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을 구성한다.
우선 전통 풍속화 속 내숭 표현의 구조를 살펴보기 위해 신윤복의 [참고도판 8] 〈소년전홍(少年剪紅)〉을 검토한다. 〈소년전홍〉은 정원이라는 아적 공간 속에 어린 선비와 젊은 여성을 마주 세워, 두 인물 사이에 흐르는 장난스러운 긴장과 미묘한 감정의 움직임을 포착한 작품이다. 화면 오른쪽 상단에는 “빽빽한 잎엔 농염하게 푸른빛 쌓였는데(密葉濃堆綠), 수북한 가지엔 잘게 붉은 꽃을 오려 붙였네(繁枝碎剪紅)”라는 화제가 적혀 있다. 이 화제는 늦여름 정원에 무성한 백일홍의 색채와 생명력을 묘사하는 동시에, 화면 전체의 정서를 환기하는 시적 장치로 작용한다. 조선 후기 혼례 연령이 낮아지면서 어린 나이의 남성이 혼인하던 풍속을 배경으로, 긴 담뱃대를 문 앳된 선비와 하녀로 보이는 여성 사이에 오가는 장난기와 긴장감이 화면 안에 배치되어 있다.
![[참고도판 8] 신윤복, 〈소년전홍(少年剪紅)〉, 18세기, 종이에 담채, 24.2×31.5cm, 간송미술관 소장](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68_00.jpg)
소년은 두루마기와 갓, 연한 빛 저고리를 단정하게 차려입어 양반가 자제임을 드러내지만, 그의 눈빛과 몸짓에서는 신분적 위엄보다 장난 섞인 호기심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반면 여성은 검소한 앞치마와 폭넓은 치마, 단정히 묶은 머리 모양으로 하층 종사자에 가까운 인물로 표현된다. 그녀는 소년의 장난에 몸을 살짝 뒤로 빼면서도 머리를 다듬는 몸짓을 취한다. 이는 공개적으로 거절하지도, 완전히 수용하지도 않는 중간의 태도로 볼 수 있으며, 관계의 가능성을 차단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예법을 의식하는 내숭의 몸짓으로 읽힌다. 겉으로는 예법과 위계를 유지하는 듯하지만, 실제 장면 안에서는 호기심과 설렘, 감각적 긴장이 완전히 감추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특히 주목할 요소는 인물들 뒤에 우뚝 솟은 태호석, 곧 괴석의 배치이다. 괴석은 본래 문인의 이상과 자기 성찰, 자연의 축소된 세계를 상징하는 오브제로 이해되어 왔다. 산수화와 화조화, 문인화와 민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괴석은 자연의 기이한 형상을 통해 고결한 기품과 탈속적 세계를 암시한다. 그러나 〈소년전홍〉에서 괴석은 여성의 뒤로 뻗은 몸 선과 시각적으로 유사한 곡선을 이루며, 동시에 화면 속에서 불쑥 솟아오른 형상으로 배치된다. 이러한 형상은 문인적 이상을 상징하는 아적 도상이면서도, 인물의 신체 곡선과 겹쳐지면서 감각적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남녀의 배치, 괴석의 굴곡, 오른편 낮은 담장의 수평선은 화면 안에서 절제와 장난, 위계와 호기심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소영, 볼수록 아름다운 우리 그림(고양: 미술문화, 2025).
박춘호, 「직업화가 ‘삼원’ 민화 서막을 열다」, 의학신문, 2019.08.26, 검색일 2026.04.26, https://www.bos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11181汫h.
배경의 백일홍 역시 이 장면에 복합적인 의미를 더한다. 붉게 만발한 백일홍은 부귀한 집안의 정원을 암시하는 동시에, 젊음과 생명력, 계절적 감각을 환기한다. 양반가의 정원이라는 아적 공간은 괴석과 백일홍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안에서 어린 양반가 자제와 하녀의 장난스러운 관계가 전개되면서 품위의 공간은 은밀한 놀이와 감정의 장면으로 바뀐다. 이처럼 정원, 괴석, 백일홍은 화면의 아적 질서를 이루는 요소이지만, 인물의 몸짓과 시선이 개입되면서 속의 감정과 욕망을 함께 암시하는 장치가 된다. 결국 〈소년전홍〉은 아적 공간과 속적 긴장이 한 화면 안에서 어떻게 포개지는지를 시각적 상징과 형상 대비를 통해 보여주는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다. 태호석은 문인의 이상을 상징하는 도상이면서도, 신체 곡선과의 중첩을 통해 감각적 욕망을 암시하는 이중적 상징물로 작용하며, 이 이중성이 바로 내숭의 심리 구조, 곧 겉과 속의 간극을 형상화하는 장치가 된다.
강옥희, 앞의 논문, 5-28.
한편, 현대사회 풍속화로서의 〈내숭시리즈〉는 이와 같은 전통적 상징 전략을 도시적 기호, 소비문화의 사물, 자본주의적 이미지와 결합시키며 변형한다.
![[작품도판 1] 〈내숭: 인생 한 방〉, 2016,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76×114.55cm](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70_00.jpg)
[작품도판 1] 〈내숭: 인생 한 방〉은 주말 저녁마다 로또 판매점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목격한 경험에서 출발한 작품으로, 일확천금의 가능성에 기대는 현대인의 욕망과 불안을 장면화한다. 화면 속 내숭녀는 월스트리트의 상징 조각인 황소를 연상시키는 황금빛 소 위에 올라탄 채, 로데오 경기의 참가자처럼 한 팔을 들어 올리고 있다. 미국 뉴욕 맨해튼 볼링그린 공원에 설치된 아르투로 디 모디카(Arturo Di Modica, 1941-2021)의 〈Charging Bull〉은 상승장과 공격적 투자 심리를 상징하는 대중적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이 황소의 이미지는 작품 안에서 부와 행운, 물질적 성공에 대한 욕망을 압축하는 현대적 상징으로 기능한다.
아르투로 디 모디카(Arturo Di Modica), 〈Charging Bull〉, 1989, New York Bowling Green Park.
내숭녀의 손에는 로또 복권과 선글라스가 함께 들려 있다. 작품 속 로또 번호는 작가의 실제 당첨 경험이 아니라, 작품을 제작할 당시 로또에서 기록된 최고 당첨금 번호를 차용해 구성한 것이다. 이 번호는 현실적으로는 거의 도달하기 어려운 행운을 상징하는 기호로 작용하며, 인물은 그것을 손에 쥔 채 이미 성공을 획득한 듯한 포즈를 취한다. 그러나 동시에 황소 위에 올라탄 자세는 안정적이지 않다. 부와 성공을 향한 기대가 커질수록, 인물의 몸은 오히려 불안정한 움직임 속에 놓인다. 이처럼 로또와 황소는 현대의 속적 욕망, 곧 우연한 성공과 투기적 기대를 상징하고, 한복 차림과 단정한 댕기머리는 여전히 절제된 자아 이미지를 유지하려는 아적 태도와 연결된다.
형상 대비 역시 이 작품에서 내숭 심리를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이다. 내숭녀의 상반신은 비교적 곧게 세워져 있고, 붉은 저고리는 자신감과 생동감을 강조한다. 그러나 치맛자락 사이로 드러난 다리의 각도와 황소의 전진하는 동세는 인물이 언제든 균형을 잃을 수 있는 위태로운 상태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인생 한 방”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불안정한 투기 구조 위에 올라탄 현대인의 심리를 환기한다. 또한 선글라스는 눈을 가리는 도구이자 시선을 숨기는 장치이다. 화면 속 내숭녀는 아직 선글라스를 쓰지 않았지만, 언제든 그것을 통해 자신의 눈빛과 감정을 감출 수 있는 가능성을 손에 쥐고 있다. 이 설정은 욕망을 전면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완전히 포기하지 못한 채 유보하는 내숭의 심리와 맞닿아 있다.
즉 〈내숭: 인생 한 방〉은 황소·로또·선글라스라는 현대적 상징과 한복 차림의 내숭녀라는 형상 대비를 통해, 아적 자아상과 속적 욕망이 한 화면 안에서 충돌하고 조정되는 장면을 구성한다. 로또는 적은 비용으로 거대한 행운을 꿈꾸게 하는 현대의 길상적 사물이고, 황소는 고위험 고수익의 투자 욕망을 상징한다. 여기에 단정한 한복 차림의 인물이 올라타는 장면은, 겉으로는 일상적 삶과 절제된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내면에서는 일확천금의 순간을 상상하는 현대적 내숭을 보여준다. 이때 내숭은 욕망을 숨기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안전한 상상과 유희의 형식으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작품도판 2] 〈내숭낙원〉은 추사 김정희 선생기념사업회와의 연계 프로젝트를 통해 제작된 작품으로,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대표작 〈세한도(歲寒圖)](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72_03.jpg)
〈세한도〉는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 시기에 문인 이상적에게 보낸 작품으로, 논어 「자한」의 “날이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안다.”는 구절을 바탕으로 한다. 이 구절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변치 않는 의리와 절개를 비유하는 말이다. 김정희는 이를 바탕으로, 유배지의 엄혹한 세한(歲寒) 속에서도 변함없는 제자의 의리를 기리기 위해 〈세한도〉를 그렸다. 화면은 마른 갈필과 거친 필치로 묘사된 고목, 비스듬히 기울어진 집, 넓게 비워진 황량한 여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유배지의 추위와 고독, 학자의 절제된 심경을 수묵의 언어로 드러낸다.
[작품도판 2] 〈내숭낙원〉, 2014, 디지털 작업, 크기 가변
論語, 「子罕」,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彫.”
〈내숭낙원〉은 이러한 원작의 공간적·정서적 구조를 바탕으로 삼되, 화면 하단부에 여러 명의 내숭녀를 배치하여 장면을 다시 구성한다. 왼편에는 운동을 하는 인물과, 치마를 곱게 모으고 앉아 있으나 얼굴에는 피로가 묻어나는 인물이 함께 선다. 중앙에는 헬멧과 배낭을 멘 내숭녀들이 서로 마주 보고 있고, 그 사이 바닥에는 노트북을 붙든 채 엎드린 인물이 자리한다. 오른편에는 안대와 담요를 둘러쓴 채 휴식을 취하는 인물, 윗몸일으키기 운동기구에 누워 있는 인물,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튀어 오르는 인물이 차례로 등장한다.
이처럼 〈세한도〉의 황량한 겨울 산수와, 다이어트 기계·윗몸일으키기 기계·헬멧·노트북·침대와 같은 현대의 일상 사물은 강한 형상 대비를 이룬다. 배경의 소나무와 바위는 마른 붓과 절제된 농담으로 표현되어 거칠고 삭막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반면, 내숭녀들은 옅은 파스텔 톤과 수묵담채, 콜라주적 감각을 통해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화사한 인상을 준다. 고목의 뒤틀린 줄기와 가지가 유배지의 고통과 고독을 응축한 필획으로 읽힌다면, 그 앞에 놓인 내숭녀들의 일상 과제, 곧 몸매 관리, 생계 노동, 스펙 관리, 휴식과 오락은 현대인이 수행해야 하는 자기관리의 장면으로 읽힌다. 이때 작품은 고통의 풍경 위에 세워진 낙원이라는 역설적 구도를 형성한다.
![[참고도판 9] 김정희, 〈세한도(歲寒圖)〉, 1844, 종이에 담채, 23×69.2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73_00.jpg)
여기서 ‘낙원’이라는 제목은 단순히 즐거운 휴양지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늘날 제주도는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지이자 휴양지로 소비되지만, 김정희가 머물던 시기 제주도는 중앙 정계에서 밀려난 이들이 머물던 유배지였다. 이러한 역사적 간극을 바탕으로, 작품은 제주를 ‘고립과 추방의 장소’가 아니라 여러 인물이 함께 머무는 현대의 일상 공간으로 재구성한다. 그러나 화면 속 내숭녀들은 서로의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각자의 운동기구와 도구, 스마트 기기 속에 파묻혀 있다. 겉으로는 놀이와 휴식으로 가득한 낙원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자기관리와 경쟁, 피로와 고립감이 쌓여 있는 것이다. 바로 이 간극에서 〈내숭낙원〉의 내숭이 형성된다.
〈내숭낙원〉에서 내숭은 두 층위에서 작동한다. 첫째, 역사적으로는 유배지의 고통과 오늘날 휴양지의 낙원 이미지 사이의 간극이다. 둘째, 화면 내부에서는 휴식과 놀이를 즐기는 자유로운 여성이라는 외형과, 각자의 노동·불안·자기관리 강박에 놓인 내면 상태 사이의 간극이다. 윗몸일으키기 운동기구, 헬멧, 노트북, 안대 등은 표면적으로는 건강과 안전, 효율을 위한 사물이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자신을 관리하고 통제하도록 만드는 현대사회의 규범 장치로도 읽힌다. 내숭녀들은 이 장치들 속에서 자유로운 휴식의 모습을 취하지만, 그 몸짓은 자기관리와 피로의 흔적을 함께 드러낸다. 이처럼 〈내숭낙원〉은 전통 산수의 절제된 배경과 현대 여성의 일상적 사물을 병치하여, 외형적 낙원과 내면의 피로 사이에 놓인 현대적 내숭을 시각화한다.
세 작품의 상징물과 형상 대비를 정리하면 다음 [표 5]와 같다.
요약하자면, 시각적 상징과 형상 대비에 의한 내숭 표현은 조선 후기 풍속화와 현대사회 풍속화 모두에서 중요한 분석 기준이 된다. 〈소년전홍〉이 괴석과 백일홍, 정원이라는 아적 공간 안에서 인물 간의 은밀한 감정과 긴장을 암시한다면, 〈내숭: 인생 한 방〉과 〈내숭낙원〉은 황소·로또·선글라스·운동기구·노트북 등 현대 자본주의와 소비문화의 기호를 통해 내숭의 심리를 현대적 장면으로 옮긴다. 세 작품에서 인물의 몸짓과 시선, 배경과 소품, 색채와 구도는 겉으로 보이는 단정함과 내면의 욕망·피로·불안을 함께 배치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이를 통해 내숭은 단순한 성격적 기질이 아니라, 아와 속의 긴장이 화면 안에서 구체적 기호와 형상으로 조직되는 심리 표현의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표 5] 전통·현대사회 풍속화에서의 주요 상징물과 아/속의 대비, 내숭 표현 분석 비교
작품명
주요 상징물/배경
아(雅)적 요소
속(俗)적 요소
내숭 표현 분석
〈소년전홍〉
태호석, 백일홍, 정원
문인의 정원, 태호석의 고결함, 시적 화제
어린 선비와 하녀의 장난, 육체적 긴장감
아적 정원 속에서 은밀한 욕망을 암시하는 태호석과 신체 곡선의 중첩, 머뭇거리는 몸짓을 통한 내숭 표현
〈내숭: 인생 한 방〉
월스트리트 황소를 연상시키는 황금 소, 로또 복권, 선글라스
단정한 한복 차림, 절제된 자아 이미지
일확천금·투기적 투자 욕망, 로데오 놀이의 자극성
황소 위에 올라탄 불안정한 자세와 로또·선글라스의 상징을 통해, 겉으로는 절제된 삶을 유지하면서도 ‘인생 한 방’을 꿈꾸는 내숭 심리 시각화
〈내숭낙원〉
김정희의 〈세한도〉 배경, 운동기구·헬멧·노트북 등
절제된 수묵 산수, 고독한 선비의 절의, 역사적 유배 공간
관광지·휴양지로 소비되는 제주 이미지, 자기관리·놀이·노동의 혼재
황량한 겨울 풍경과 화사한 내숭녀를 병치해, 외형적 낙원과 내면의 피로·고독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는 내숭 표현
2)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서 표출되는 내숭 심리
현대사회 풍속화에서 내숭 심리는 추상적인 성격 기질로 나타나기보다,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 역할과 개인이 처한 실제 삶의 조건 사이에서 형성된다. 특히 여성 인물을 중심으로 한 풍속 장면에서는 현모양처와 같은 이상화된 여성상, 종교적·도덕적 규범, 모성과 자기실현, 경제적 생존과 계층 이동의 욕망이 복합적으로 얽히며 긴장을 만든다. 신윤복의 〈문종심사〉와 현대사회 풍속화로서의 〈내숭: 치명적 유혹〉, 〈내숭: 삼포세대 미쓰킴〉는 각각 조선 후기와 현대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당위와 개인적 욕망의 간극 속에 형성되는 내숭 심리를 상징적·풍자적으로 시각화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신윤복의 [참고도판 10] 〈문종심사(聞鐘尋寺)〉는 말 그대로 ‘종소리를 듣고 절을 찾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조선 시대의 유교 질서 아래에서 이 작품은 양반가 여성이 불교 사찰을 찾는 장면을 통해, 공적 규범과 사적 바람이 교차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화면 중앙에는 화려한 치마와 비단 두건을 갖춘 양반가 여성이 말 위에 단정히 앉아 있고, 그 곁에는 짐을 이고 따르는 여성 하인과 말고삐를 잡은 남성 하인이 배치되어 있다. 세 인물의 복식과 자세는 신분 질서를 분명히 드러낸다. 말 위의 여성은 사대부가의 품위와 체면을 지닌 인물로 표현되는 반면, 뒤따르는 하인들은 소박한 저고리와 치마, 무명천이 드러난 옷차림으로 종속적 위치를 보여준다.
화면 오른쪽, 사찰 입구의 일주문 앞에는 승복 차림의 스님이 두 손을 모은 채 여성을 맞이하고 있다. 스님의 경건한 자세는 불교의 청정성과 무욕을 떠올리게 하지만, 동시에 양반가 시주의 방문이 지닌 경제적 후원, 명예, 종교와 세속 이익의 접점을 암시한다. 산기슭을 따라 굽이진 길, 희미한 안개, 돌무더기와 일주문은 세속의 영역과 종교적 공간 사이의 경계를 나타낸다. 그 경계를 넘어 사찰로 향하는 양반 여성의 행보는 유교적 이상과 실제 삶의 바람이 교차하는 지점을 형성한다. 겉으로는 유교 규범에 충실한 사대부가의 부인으로서 품위와 절제를 유지하지만, 실제 행위는 가문의 번영과 자손의 안위를 비는 개인적 기복(祈福)과 관련된다.
![[참고도판 10] 신윤복, 〈문종심사(聞鐘尋寺)〉, 18세기, 종이에 담채, 28.2×35.6cm, 간송미술관 소장](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76_00.jpg)
박순철, 앞의 논문, 110-118.
이처럼 〈문종심사〉 속 여성 인물은 공적 질서와 사적 바람을 동시에 지닌 존재로 그려진다. 외형상으로는 유교적 품위를 갖춘 양반 여성으로 보이지만, 행위의 방향은 유교 사회에서 일정한 거리감을 두었던 불교 공간을 향한다. 이때 내숭 심리는 단순히 체면을 위한 위선으로 나타나기보다, 유교적 질서의 외양을 유지하면서도 개인과 가족의 안위를 바라는 마음을 조심스럽게 실현하려는 태도 속에서 드러난다. 다시 말해, 그녀의 내숭 심리는 규범을 전면적으로 거부하지도 않고,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도 않으면서, 공적 역할과 사적 바람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대응하는 현대사회 풍속화의 사례로 [작품도판 3] 〈내숭: 치명적 유혹〉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오만원권 지폐 속 신사임당 이미지를 차용하여, 전통사회에서의 ‘현모양처’ 상징을 오늘날 대한민국의 ‘대치동 엄마’라는 현대적 풍속 이미지와 연결한 작업이다. 화면에서 신사임당은 더 이상 지폐나 병풍 속에 고정된 초상으로 머무르지 않고, 병풍 일부가 비워진 틈 사이로 현실 세계에 걸어 나온 듯한 인물로 묘사된다. 병풍은 과거의 상징적 공간이자 이상화된 모성·교양의 무대로 볼 수 있으며, 그 일부가 비어 있는 화면 구도는 전통적 이상과 현재적 삶의 경계가 더 이상 견고하지 않음을 시각적으로 환기한다.
![[작품도판 3] 〈내숭: 치명적 유혹〉, 2014,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91×120cm](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77_00.jpg)
신사임당은 앉은 자세로 책을 펼쳐 들고 있다. 이는 ‘학문을 사랑하는 현명한 어머니’라는 공적 이미지, 곧 아의 상징과 연결된다. 그러나 그녀의 넓은 치마 아래에서는 금괴가 흩어져 나오고, 주변에는 휴대전화, 학습지, 투자 정보와 관련된 사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 장면은 과거의 이상적 모성상과 오늘날 교육·경제 경쟁의 한가운데 놓인 어머니상의 이중성을 풍자적으로 드러낸다. 전통적으로 신사임당은 절제와 검소, 예술성과 교양을 겸비한 현모양처의 대명사로 받아들여졌지만, 이 작품에서 신사임당은 자녀 교육과 자산 형성, 계층 상승의 현실적 문제를 계산해야 하는 현대적 어머니상으로 변형된다.
이때 내숭 심리는 책을 든 단정한 자세와 치마 밑에 숨겨진 금괴 사이의 대비에서 구체화된다. 표면적으로는 자녀 교육과 인성 함양을 우선하는 이상적 모성을 수행하는 듯하지만, 화면 아래에서는 물질적 안정과 경쟁에서의 우위를 향한 욕망이 함께 드러난다. 병풍이라는 전통적 공간, 그 바깥으로 걸어 나온 인물, 바닥에 흩어진 금괴와 현대적 사물의 조합은 이상화된 모성 이미지와 현실적 생존 전략을 한 화면 안에 병치한다. 관람자는 이 장면에서 ‘치명적인 유혹’이 단순한 물질 욕망이 아니라, ‘좋은 엄마’라는 사회적 이상과 경제적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실제 조건 사이에서 발생하는 내숭 심리임을 읽을 수 있다.
![[작품도판 4] 〈내숭: 삼포세대 미쓰킴〉은 사회가 요구하는 성실한 청년상과 실제 청년 세대가 마주한 삶의 조건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현대사회 풍속화이다. 화면](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79_02.jpg)
![[작품도판 4] 〈내숭: 삼포세대 미쓰킴〉은 사회가 요구하는 성실한 청년상과 실제 청년 세대가 마주한 삶의 조건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현대사회 풍속화이다. 화면](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71_00.jpg)
[작품도판 4] 〈내숭: 삼포세대 미쓰킴〉, 2016,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90×131cm
그러나 시선이 화면 상단으로 이동하면, 인물과는 다른 방향으로 쏟아져 내리는 다양한 사물이 눈에 들어온다. 팝콘과 영화표는 연애와 여가를, 목각기러기와 반지는 결혼을, 젖병과 쪽쪽이는 출산과 육아를 상징한다. 이 사물들은 이른바 ‘삼포세대’가 경제적 이유로 포기하거나 미루게 된 삶의 영역들을 가리킨다. 화면 속에서 인물이 바라보는 방향과 사물들이 떨어지는 방향은 서로 어긋나 있으며, 이 어긋난 궤도는 성실한 노동의 외양과 유예된 삶의 욕망 사이의 간극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2012년에 20–30대 성인 남녀 2,19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2.3%가 경제적 이유로 연애·결혼·출산 중 포기한 것이 있다고 답했으며, 포기한 항목은 결혼 51.5%, 연애 49.1%, 출산 39.6%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삼포세대’라는 용어가 등장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보여준다.
온라인뉴스팀, 「“연애·결혼·출산 관심 없어요”…‘삼포세대’ 떴다」, 이투데이, 2012.02.01, 검색일 2026.04.26, https://www.etoday.co.kr/news/view/538590.汫h
〈내숭: 삼포세대 미쓰킴〉에서 관람자는 인물의 시선을 따라 직선적으로 전진하는 에너지와, 그와 교차하는 사물들의 낙하 궤도를 동시에 인지한다. 황소와 인물은 화면의 하단과 중단을 가로지르며 오른쪽을 향해 전진하고, 사물들은 왼쪽 상단에서 오른쪽 하단으로 비스듬히 떨어지듯 배치된다. 이 교차하는 선들은 청년이 생존을 위해 직장인이라는 역할에 몰두하는 동안, 연애·결혼·출산과 같은 사적 욕망과 삶의 사건들이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즉 겉으로는 성실한 직장인으로 살아가지만, 내면에서는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거나 유예해야 하는 상실감과 욕망이 사물의 이미지로 남아 화면을 맴도는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은 [작품도판 1] 〈내숭: 인생 한 방〉과 마찬가지로 황소를 자본주의 욕망과 노동 윤리를 상징하는 매개로 활용하지만, 그 뉘앙스는 다르게 설정된다. 〈내숭: 인생 한 방〉에서 황소가 일확천금과 투기적 욕망을 상징했다면, 〈내숭: 삼포세대 미쓰킴〉의 황소는 한 번 올라타면 쉽게 내려올 수 없는 노동 구조, 곧 정규직·대기업 취업이라는 사회적 이상에 매달린 청년의 현실을 반영한다. 인물의 사원증은 안정된 직장인의 신분을 나타내는 동시에, 자유로운 이탈을 어렵게 만드는 장치처럼 목에 걸려 있다. 이때 내숭 심리는 ‘성실한 회사원’이라는 이상적 이미지에 맞추어 자신을 유지하려는 태도와, 연애·결혼·출산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는 현실 인식 사이에서 형성된다. 여기에는 자의식과 죄책감, 상실감과 욕망이 함께 놓인다.
삼포세대는 2010년대 한국 사회에서 등장한 신조어로,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를 지칭한다. 이는 개인의 성향이나 도덕성만으로 설명되기보다, 구조적 경제 환경과 청년 세대의 생활 여건 악화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사회적 맥락이 작품 속 내숭 심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시각적 분석을 통해 살피고자 한다. 〈내숭: 삼포세대 미쓰킴〉의 인물은 ‘언젠가는 여유가 생기면’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은 채 현재의 노동에 몰입하지만, 화면 위를 스쳐 지나가는 사물들의 궤도는 그 기대가 현실에서 얼마나 불확실한지를 말없이 드러낸다. 이때 내숭 심리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태도를 유지하고자 하는 자기 조절과, 사실상 포기 상태에 가까운 욕망을 쉽게 인정하기 어려운 마음 사이에서 발생한다. 세 작품에서 내숭 심리는 모두 아적 이상과 속적 현실 사이의 간극 속에서 나타난다. 이를 정리하면 [표 6]과 같다.
[표 6] 〈문종심사(聞鐘尋寺)〉, 〈내숭: 치명적 유혹〉, 〈내숭: 삼포세대 미쓰킴〉의 작품별 아(雅)적 요소, 속(俗)적 요소, 내숭 표현 분석
작품명
주요 인물
아(雅)적 요소
속(俗)적 요소
내숭 표현 분석
문종심사
양반가 여성, 하인, 스님
유교적 예복과 품위, 불교의 청렴·무욕 이데올로기, 종교적 공간으로서의 절
가문의 번영과 자손 안위를 비는 개인적 기복, 시주와 명예를 둘러싼 현실적 이해관계
유교 규범을 준수하는 듯한 외양 아래 금기된 불교 공간을 찾아 나서는 이중 행위를 통해, 공적 이상과 사적 욕망의 간극에서 생기는 내숭 심리를 서사적으로 형상화
내숭: 치명적 유혹
신사임당
현모양처, 책과 병풍, 교양과 도덕성을 상징하는 전통 이미지
치마 밑 금괴, 휴대전화·학습지·투자 정보 등 물질적 욕망과 경쟁 심리
이상적 모성 이미지와 물질·경쟁 욕망을 한 인물 안에 병치함으로써, ‘좋은 엄마’라는 이상과 경제적 생존 전략 사이의 심리적 분열을 내숭적 제스처로 시각화
내숭: 삼포세대 미쓰킴
황소를 탄 청년 여성
사원증을 목에 건 성실한 직장인, 전진하는 자세와 단정한 한복 차림,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 청년상
팝콘·영화표(연애), 목각기러기·반지(결혼), 젖병·쪽쪽이(출산·육아) 등 포기·유예된 욕망의 상징
앞을 향해 질주하는 인물과 반대 방향으로 낙하하는 사물들의 궤도를 대비시켜, 겉으로는 ‘열심히 일하는 청년’으로 살아가면서 내면에서는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상실감과 욕망을 숨기는 내숭 심리를 형상화
이처럼 사회적 당위와 실제 삶의 조건이 교차하는 풍속 장면 속에서 내숭 심리는 상아폄속(尙雅貶俗)을 내면화한 수동적 위선으로만 보기 어렵다. 오히려 아속겸비(雅俗兼備)의 조건 속에서, 인물은 현실을 견디고 자신을 조절하기 위한 태도를 취한다. 〈문종심사〉의 양반가 여성은 유교 규범의 외양을 유지한 채 불교적 기복 행위를 통해 가족의 안위를 도모하고, 〈내숭: 치명적 유혹〉의 신사임당 이미지는 전통적 현모양처상을 빌려 교육과 자산 형성의 욕망을 드러낸다. 〈내숭: 삼포세대 미쓰킴〉의 청년 직장인은 성실한 노동 윤리의 외양 아래, 연애·결혼·출산을 유예한 상실감과 욕망을 품은 채 전진한다. 세 인물 모두 규범에 완전히 복속되지도,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도 않으며, 그 사이에서 자신을 조절하고 방어하는 내숭 심리를 보여준다.
따라서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서 표출되는 내숭 심리는 전통과 현대, 종교와 세속, 모성과 자기실현, 청년 노동과 개인적 행복 사이의 당위와 실제 조건의 차이를 드러내는 장치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내숭 심리의 장면은 개인의 내면 묘사에 그치지 않고, 시대의 가치 체계와 사회 구조, 특히 여성 주체와 청년 세대가 경험하는 압박을 풍속화의 형식 안에서 드러낸다. 이는 전통 풍속 표현이 현대사회 풍속화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내숭이 현실 적응과 자기 조절 사이의 긴장을 시각화하는 방식으로 변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Ⅳ. 현대사회 풍속화 〈내숭시리즈〉의 표현 방식425문단
본 장에서는 〈내숭시리즈〉를 현대사회 풍속화의 관점에서 살펴보면서, 전통 이미지의 차용과 패러디, 현대 여성의 일상 서사, 그리고 현대 풍속 이미지의 재맥락화와 확산이라는 세 측면에서 그 표현 방식을 고찰하고자 한다. 〈내숭시리즈〉는 전통 회화와 고전 이미지, 현대의 일상 사물과 사회적 장면을 결합함으로써, 오늘날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감정과 생활 풍속을 시각화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작품이 단순히 전통 도상을 반복하거나 인용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 형식과 정서를 오늘의 현실 속으로 옮겨와 새로운 풍속 장면으로 변주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주는 내숭 심리가 전통 미학의 연장선 위에서만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소비문화, 결혼 제도, 미디어 환경, 여성의 일상 경험 속에서 어떻게 다시 조직되는지를 살피게 한다. 이때 〈내숭시리즈〉에서 한복을 입은 여성은 전통 복식을 재현하기 위한 인물이 아니라, 내숭 심리를 드러내기 위한 장면의 중심 인물이다. 오늘날 한복은 일상복이라기보다 결혼식, 명절, 기념일, 공식 행사와 같은 특별한 순간에 입는 격식 있는 옷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한복은 화면 속 인물에게 단정함과 고상함의 표면을 부여한다. 그러나 그 인물이 소비, 욕망, 피로, 유혹, 자기관리와 같은 현대적 장면 속에 놓일 때, 한복의 격식과 일상적 행동 사이의 간극이 발생한다. 〈내숭시리즈〉는 바로 이 간극을 통해 내숭 심리를 시각화한다.
이를 위해 먼저 제1절에서는 전통 풍속 이미지와 고전 도상이 〈내숭시리즈〉 안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패러디되고 변주되는지를 살펴본다. 이 절에서는 전통 회화의 계승 방식과 현대적 패러디 개념을 구분한 뒤, 전통 이미지의 해학적 재구성과 패러디를 통한 동시대 풍속의 재해석이라는 두 방향에서 작품을 분석하고자 한다. 이어 제2절에서는 현대 여성의 일상 장면을 중심으로, 내숭 심리가 결혼, 소비, 자기관리, 육아, 사회적 관계 속에서 어떠한 서사 구조를 이루는지를 검토한다. 마지막으로 3절에서는 브랜드 로고와 브랜드 연계 프로젝트, 공공 공간과 상업 공간 속으로 확장된 사례를 통해, 〈내숭시리즈〉가 현대 풍속 이미지로 재맥락화되고 확산되는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와 같은 구성은 〈내숭시리즈〉를 개별 작품의 나열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심리와 풍속적 장면을 조직하는 회화적 체계로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 본 장은 〈내숭시리즈〉가 전통과 현대, 고전과 일상, 체면과 욕망, 해학과 풍자를 오가며 현대사회 풍속화로 구성되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살피는 데 목적이 있다.
1. 전통 풍속 이미지의 패러디와 현대적 변주
본 절에서는 〈내숭 시리즈〉가 전통 풍속 이미지와 고전 도상을 어떻게 패러디하고 변주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숭 심리가 어떠한 방식으로 조직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전통 풍속화와 고전 이미지는 인간관계, 체면, 욕망, 교양, 위계, 일상의 긴장을 축적해 온 시각 자원이며, 〈내숭 시리즈〉는 이러한 형식과 정서를 오늘의 사회적 장면 속에 다시 배치함으로써 현대사회 풍속화의 화면을 구성한다. 이때 과거 이미지는 단순한 인용 대상이 아니라, 오늘의 심리와 생활 감각을 드러내는 장면 구성의 근거로 작동한다.
다만 전통 회화의 계승 방식과 현대적 창작 개념은 구분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 회화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패러디가 독립된 창작 범주로 정식화되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선행 대가의 화법과 형식을 익히고 변주하는 임모(臨模)와 방작(倣作)의 관행이 보다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전통 이미지를 참조하고 변용하는 방식은 우선 계승과 학습의 맥락 위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내숭 시리즈〉는 전통 이미지를 단순히 답습하거나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익숙한 원작의 형식과 도상을 오늘날의 사회적 장면 속으로 옮겨와 차이와 반복의 효과를 드러내고, 그 과정에서 유머와 아이러니, 비판적 거리감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현대적 의미의 패러디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전통 회화의 개념 안에는 오늘날의 패러디라는 명시적 범주가 없었지만, 〈내숭 시리즈〉는 전통 이미지의 형식적 자원을 바탕으로 동시대의 풍속과 내숭 심리를 새롭게 조직하는 패러디적 전략을 취하고 있다.
또한 여기서 말하는 해학은 패러디와 동일한 개념은 아니다. 해학이 인간적 익살과 친근한 여유를 바탕으로 장면의 긴장을 부드럽게 비트는 정서적 태도라면, 패러디는 원작의 구조를 의식적으로 호출하고 변형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방법론적 성격이 더 강하다. 따라서 〈내숭 시리즈〉는 전통 이미지가 지닌 해학적 정서를 계승하면서도, 그것을 현대적 패러디의 방식으로 변형한 작업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절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전개된다. 먼저 1항에서는 전통 이미지의 해학적 재구성을 중심으로, 전통 회화의 구도와 정서가 어떻게 오늘의 생활 장면으로 옮겨지는지 살펴본다. 이어 2항에서는 이러한 패러디적 변주가 동시대 풍속을 해석하는 장치로 작동하는 양상을 검토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내숭 시리즈〉의 패러디가 전통을 단순히 차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숭 심리를 매개로 전통과 현대의 풍속 이미지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작동함을 살피고자 한다.
1) 전통 이미지의 해학적 재구성
본 항에서는 전통 이미지가 현대의 생활 장면 안에서 해학적으로 재구성되는 방식을 구체적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앞 절에서 정리한 바와 같이, 〈내숭 시리즈〉의 패러디는 전통 이미지의 형식과 도상을 단순히 반복하는 방식이 아니라, 익숙한 이미지를 오늘의 사회적 상황과 생활 감각 속에 다시 놓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여기서는 전통 회화의 개념사적 설명을 반복하기보다, 전통 이미지가 현대 사물, 소비문화, 매체 환경과 결합하면서 장면의 의미를 어떻게 바꾸는지에 주목한다.
(좌)
[참고도판 1] 김홍도, 〈빨래터〉, 조선 후기, 종이에 담채, 28×23.9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
![[참고도판 11] 작가 미상, 김홍도 〈빨래터〉 패러디: 드럼세탁기(트롬) 삽입, 디지털이미지, 출처: LG브랜드 광고](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86_02.jpg)
이와 같은 패러디의 방식은 순수미술 내부에만 머무르지 않고, 동시대 광고와 대중 시각문화에서도 폭넓게 활용되어 왔다. 특히 2007년 LG는 조선 후기 회화의 장면 속에 자사 제품을 삽입한 이른바 ‘조선 후기 한국화’ 편 광고를 선보였는데, 이는 서양 명화 패러디 광고의 방식을 한국 회화의 맥락으로 확장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이 광고는 김홍도의 〈빨래터〉, 신윤복의 〈쌍검대무〉, 강희언(姜熙彦, 1738-1784)의 〈사인휘호〉, 이인문(李寅文, 1745-1821?)의 〈도봉원장〉 등 익숙한 전통 이미지에 현대 가전과 브랜드 기호를 삽입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디자인 전문 매체 역시 이 광고가 조선 후기 회화의 장면과 현대 제품을 결합함으로써 유머러스한 비주얼과 생활 속 미래 가치를 함께 전달한다고 평가한 바 있다.
김용민, 「LG “이번엔 한국화 속으로” 김홍도등 작품에 제품 결합 새광고」, 파이낸셜뉴스, 2007.09.17.https://www.fnnews.com/news/200709171758291229汫h
차영경, 「LG 기업광고 ‘조선 후기 한국화’ 편」, 디자인정글, 2007.10.23.https://www.jungle.co.kr/magazine/6433汫h
먼저 [참고도판 1] 김홍도의 〈빨래터〉는 공동체적 노동과 생활 풍속의 활기를 담아낸 대표적 장면이다. 화면 속 인물들은 빨래라는 일상적 행위를 수행하면서도 서로의 몸짓과 시선, 대화의 흐름을 통해 생활의 생동감과 관계의 온기를 형성한다. 손으로 직접 빨래를 하는 장면에는 육체적 노동의 시간성과 생활 감각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으며, 이러한 특성은 조선 후기 풍속화가 지닌 서민적 현실감과 친근한 정서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참고도판 11]과 같이 이 장면의 중심에 드럼세탁기가 삽입되면, 원작이 지닌 생활 풍속의 의미는 현대적 편의와 기술의 기호와 만나 새로운 장면으로 전환된다. 손빨래의 반복성과 노동의 물성 대신 효율과 속도, 편리함을 상징하는 가전제품이 화면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면서, 전통적 생활 장면은 현대 소비문화의 문맥 속에서 다시 보이게 된다.
다음으로 [참고도판 12] 신윤복의 〈쌍검대무〉는 공연과 감상, 시선과 몸짓이 정교하게 조직된 풍속 장면이다. 검무를 바라보는 인물들의 태도와 화면의 구성은 단순한 오락의 장면을 넘어 일정한 격식과 문화적 취향을 동반한 감상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인물 간의 시선 교차와 장면의 리듬은 신윤복 풍속화 특유의 세련된 긴장감과 감각적 균형을 드러낸다. 그런데 [참고도판 13]와 같이 이 장면의 중심에 TV와 홈시어터가 배치되면, 전통 공연을 둘러싼 감상의 분위기는 첨단 기술의 시청 환경과 접속되면서 다른 성격의 장면으로 변주된다. 원작이 지닌 문화적 교양과 감상의 격식은 그대로 남아 있는 듯 보이지만, 화면의 중심축은 점차 공연 자체보다 그것을 매개하는 기기의 존재감으로 이동한다.
(좌)
[참고도판 12] 신윤복, 〈쌍검대무(雙劍對舞)〉, 조선 후기, 종이에 담채, 16.4×21.4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
![[참고도판 13] 신윤복 〈쌍검대무(雙劍對舞)〉 패러디: TV·홈씨어터, 디지털이미지, 출처: LG브랜드 광고](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87_00.jpg)
![[참고도판 13] 신윤복 〈쌍검대무(雙劍對舞)〉 패러디: TV·홈씨어터, 디지털이미지, 출처: LG브랜드 광고](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87_01.jpg)
(좌)
![[참고도판 14] 강희언, 〈사인휘호(士人揮毫)〉, 조선 후기, 종이에 담채, 26×21cm, 개인 소장](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88_00.jpg)
![[참고도판 14] 강희언, 〈사인휘호(士人揮毫)〉, 조선 후기, 종이에 담채, 26×21cm, 개인 소장](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88_01.jpg)
(우)
[참고도판 15] 강희언 〈사인휘호(士人揮毫)〉 패러디: 노트북(엑스노트), 디지털이미지,출처: LG브랜드 광고
또한 [참고도판 14] 강희언의 〈사인휘호〉는 붓과 종이, 벼루와 책상을 중심으로 선비의 교양과 수양, 정신적 단정함을 상징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전통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행위는 단순한 생산 활동이 아니라 자기 수양과 학문의 태도를 드러내는 실천으로 이해되어 왔으며,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전통적 문인의 정신성과 생활 태도를 응축한 이미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참고도판 15]와 같이 이 장면에 노트북이 삽입되면, 원래의 문방적 분위기는 현대적 생산성과 기술 환경의 이미지로 전환된다. 화면의 전반적 구성은 전통 회화의 형식을 유지하고 있지만, 중심 도구의 변화만으로도 장면 전체의 의미는 크게 달라진다. 붓과 종이, 벼루가 상징하던 교양과 수양의 세계는 디지털 기기를 매개로 한 정보 생산과 효율의 세계와 접속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전통적 학구성의 이미지는 현대적 전문성과 세련됨의 이미지로 다시 번역된다.
마지막으로 [참고도판 16] 이인문의 〈도봉원장〉과 [참고도판 17]의 사례는 산수화의 맥락에서 이러한 재구성 방식을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산수화는 오랫동안 자연 속에서 정신적 여유와 관조를 추구하는 회화 장르로 이해되어 왔으며, 속세의 이해관계로부터 한 걸음 물러선 심미적 태도를 상징해 왔다. 따라서 산수는 전통 회화 안에서 비교적 순수한 정신성과 이상적 공간감을 구현하는 형식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런데 [참고도판 17]과 같이 산수의 공간 속에 브랜드 로고가 삽입되면, 자연은 더 이상 관조의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 소비사회의 시각 기호와 중첩된 장면으로 변한다. 본래는 거리와 여백, 사유의 공간으로 기능하던 산수의 장면이 광고적 의미를 띤 상징 요소와 결합하면서, 전통 산수화가 지닌 정신적 분위기는 현대적 상업 이미지와 함께 읽히게 된다.
(좌)
![[참고도판 16] 이인문, 〈도봉원장(道峯苑莊)〉, 조선 후기, 종이에 담채, 26.5×33cm, 개인 소장](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89_00.jpg)
(우)
![[참고도판 17] 이인문 〈도봉원장(道峯苑莊)〉 패러디: 산수 속 옥외 LG 로고 삽입, 디지털이미지, 출처: LG브랜드 광고](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89_01.jpg)
이상의 사례들은 전통 이미지의 패러디가 동시대 시각문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활용되며, 단순한 유머나 시각적 차용을 넘어 전통의 권위와 친숙함, 그리고 현대 소비사회의 감각이 한 장면 안에서 결합하는 구조를 형성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전통 회화의 격과 정서, 익숙한 형식을 빌려 현대 상품과 라이프스타일을 부각하는 방식은 과거의 이미지를 오늘의 욕망과 감각 속에서 다시 조직하는 하나의 시각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전통 이미지의 해학적 재구성은 특정 광고 사례에 한정된 현상이 아니라, 오늘날 시각문화 전반에서 발견되는 패러디의 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좌)
![[참고도판 18] 김홍도, 〈서당〉, 조선 후기, 종이에 담채, 26.9×22.2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90_02.jpg)
(우)
![[작품도판 5] 〈내숭: 21세기 서당(feat.메가스터디)〉, 2024,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47×126cm](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90_03.jpg)
이하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내숭시리즈〉의 주요 작품을 중심으로, 전통 이미지가 어떠한 방식으로 현대의 교육 현실과 생활 풍속, 그리고 관계의 장면으로 재구성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작품도판 5] 〈내숭: 21세기 서당(feat. 메가스터디)〉는 [참고도판 18] 김홍도의 〈서당〉을 바탕으로 전통적 학습 공간의 이미지를 오늘날의 교육 현실 속으로 옮겨온 작품이다. 〈서당〉은 울고 있는 아이, 장난치는 학생, 책을 외우는 아이들, 회초리를 든 훈장 등 교육 현장의 다양한 감정과 역동성을 유머러스하게 포착한 대표적 풍속화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에서 서당은 단순한 학습 공간이 아니라, 규율과 장난, 교화와 생활 감각이 한데 공존하는 조선 후기 교육 풍속의 장으로 기능한다.
이근우, 「단원 김홍도의 관료행적과 윤리의식에 관한 연구」, 동양예술 36(2017), 205-206.
〈내숭: 21세기 서당(feat. 메가스터디)〉는 이러한 집단 교실 구조를 바탕으로 삼으면서도, 원작의 인물과 오브제를 현대의 온라인 교육 환경에 맞게 치환한다. 울고 있던 중앙의 아이 대신 각자의 태블릿과 노트북 화면에 집중하는 학생들이 등장하고, 훈장이 앉아 있던 교단의 자리에는 빔프로젝터가 놓인다. 학생들의 손에는 책 대신 스마트기기와 에너지 드링크가 쥐어져 있으며, [작품도판 5-3]∼[작품도판 5-6]에서 확인되듯 태블릿, 노트북, 무선 이어폰, 헤드셋, 에너지 드링크 등은 오늘날 교육 환경을 상징하는 핵심 오브제로 제시된다. 또한 [작품도판 5-2]의 교훈 액자와 전면 스크린에 등장하는 강의 문구는 전통적 배움의 공간이 이제 기업화된 교육 콘텐츠와 성공 신화의 언어로 대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좌)
![[참고도판 18-1] 김홍도, 〈서당〉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91_00.jpg)
![[참고도판 18-1] 김홍도, 〈서당〉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91_01.jpg)
(우)
[작품도판 5-1] 〈내숭: 21세기 서당(feat.메가스터디)〉의 부분도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원작의 구도를 단순히 흉내 내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전통 서당이 지녔던 집단 학습과 교화의 이미지를 유지한 채, 그 안에 오늘날 사교육 중심의 교육 구조와 디지털 학습 환경을 삽입함으로써, 시대가 바뀐 교육 풍속의 장면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 훈장의 자리를 대신한 빔프로젝터, 책을 대신한 디지털 기기, 공동체적 학습 공간과 개인화된 학습 캡슐의 공존은 전통 교육의 형식과 현대 교육의 현실이 한 화면 안에서 만나는 지점을 보여준다. 그 결과 〈내숭: 21세기 서당(feat. 메가스터디)〉는 전통적인 학습 공간의 기억을 오늘날의 경쟁적 교육 현실 속으로 옮겨 놓음으로써, 교육 장면 자체가 변화한 풍속의 한 단면으로 읽힐 수 있음을 드러낸다.
![[작품도판 5-2] 〈내숭: 21세기 서당(feat.메가스터디)〉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91_02.jpg)
노트북
태블릿
무선이어폰과 헤드셋
에너지 드링크
(좌)
![[작품도판 5-3] 〈내숭: 21세기 서당(feat.메가스터디)〉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92_00.jpg)
![[작품도판 5-3] 〈내숭: 21세기 서당(feat.메가스터디)〉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92_01.jpg)
![[작품도판 5-3] 〈내숭: 21세기 서당(feat.메가스터디)〉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92_02.jpg)
(중앙1)
[작품도판 5-4] 〈내숭: 21세기 서당(feat.메가스터디)〉의 부분도
(중앙2)
[작품도판 5-5] 〈내숭: 21세기 서당(feat.메가스터디)〉의 부분도
(우)
[작품도판 5-6] 〈내숭: 21세기 서당(feat.메가스터디)〉의 부분도
다음으로 [작품도판 6] 〈21세기 사우나: 정초풍정〉은 [참고도판 19] 신윤복의 〈단오풍정(端午風情)〉을 모태로 하여, 조선 후기 여성 풍속의 장면을 현대 대중목욕탕 풍경으로 전환한 작품이다. 〈단오풍정〉은 단옷날의 그네뛰기와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 여성들의 모습을 통해 조선시대 여성들의 일상, 미용, 건강, 공동체 문화를 담아낸 대표적 풍속화로 알려져 있다.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 풍습은 계절의 변화 속에서 액운을 막고 건강을 기원하는 집단적 생활 의례이자, 자연과 미용이 결합된 여성 풍속의 한 장면으로 이해되어 왔다.
(좌)
![[작품도판 6] 〈21세기 사우나: 정초풍정〉, 2017,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41.5×50.5cm](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93_00.jpg)
(우)
![[참고도판 19] 신윤복, 〈단오풍정(端午風情)〉, 조선 후기, 지본담채, 28.2×35.6cm, 간송미술관 소장](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93_01.jpg)
민중서림 편집국, 민중 실용 국어사전(서울: 민중서림, 2003), 336.
〈21세기 사우나: 정초풍정〉은 이러한 전통적 장면을 21세기 대중목욕탕의 공간으로 옮겨오면서, 여성들의 공동체적 만남과 자기관리의 풍경을 오늘의 생활문화 안에서 다시 구성한다. 작품 속 인물들은 한복 대신 수건과 사우나복을 착용하고 있으며, 창포 대신 오이, 우유, 마스크팩, 이태리타월 등 현대적 미용 오브제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작품도판 6-1]과 [작품도판 6-2]의 부분도는 이러한 오브제들이 인물 주변에 빽빽하게 배치되어 있음을 보여주는데, 이는 전통의 위생과 미용 풍습이 오늘날의 소비적 자기관리 문화 속에서 새롭게 조직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특히 이 작품은 과거 냇가가 여성들의 소통과 연대의 공간이었던 것처럼, 오늘날 사우나 역시 동네 정보, 가족사, 건강, 다이어트, 자녀 교육 등 다양한 일상적 이야기가 오가는 생활 공간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서로의 등을 밀어 주고 마스크팩을 공유하는 장면은 공동체적 유대와 생활 감각을 보여주는 동시에, 자신의 몸을 타인의 시선과 관계 속에서 관리하고 조정하는 현대적 풍속의 한 장면이기도 하다. 반면 [작품도판 6-3]에서 확인되는 사물함 열쇠와 속치마는 공동체적 공간 안에서도 각자의 경계와 사적 영역을 유지하려는 현대인의 태도를 상징한다. 이처럼 〈21세기 사우나: 정초풍정〉은 전통 여성 풍속의 도상을 현대 목욕문화로 옮겨오면서, 집단성과 개인성, 공유와 경계, 개방과 자기보호가 공존하는 오늘의 일상 풍속을 해학적으로 재구성한다.
(좌)
![[작품도판 6-1] 〈21세기 사우나: 정초풍정〉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93_03.jpg)
(중앙)
![[작품도판 6-2] 〈21세기 사우나: 정초풍정〉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93_04.jpg)
(우)
![[작품도판 6-3] 〈21세기 사우나: 정초풍정〉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93_02.jpg)
한편 [작품도판 7] 〈결혼: 애견집사〉는 [참고도판 20] 박수근(朴壽根, 1914-1965)의 〈길가에서〉를 참조하여, 익숙한 가족 이미지와 오늘날의 반려동물 가족화 현상을 한 화면 안에서 다시 구성한 작품이다. 박수근의 인물화는 전쟁과 결핍의 시대를 지나면서도 일상의 삶을 지탱해 온 가족애와 모성, 공동체적 유대를 담담한 화면 속에 담아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길가에서〉는 단정한 인물 배치와 절제된 색조, 질박한 질감을 통해 한국적 생활 감정과 가족적 정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이해되어 왔다.
〈결혼: 애견집사〉는 이러한 익숙한 가족 구도를 바탕으로 삼되, 여성의 등에 업힌 대상을 아이가 아니라 반려견과 반려묘로 치환함으로써 오늘날 변화한 가족 개념을 드러낸다. 전통적인 가족 이미지 안에서 아이를 업은 여성의 형상은 돌봄과 모성, 생계와 생활의 책임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읽혀 왔으나, 여기서는 그 자리를 반려동물이 대신한다. 이와 같은 치환은 혈연 중심의 가족상과 반려동물을 가족 구성원처럼 받아들이는 현대의 생활문화를 나란히 놓이게 하며, 가족의 의미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저출산, 비혼, 1인 가구, 맞벌이 가구의 증가와 함께 가족의 형태가 다변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반려동물을 정서적 동반자이자 가족 구성원으로 인식하는 경향 또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강정구는 2000년대 이후 한국 문학과 영화에서 반려동물이 가족의 일원으로 재인식되는 양상을 분석하면서, 이러한 변화가 전통적 가족 개념의 확장과 재구성을 보여준다고 지적한 바 있다.또한 김혜영 역시 한국 사회에서 가족의 다양성이 증가하는 현상은 전통적 가족 이데올로기의 약화와 더불어 새로운 돌봄 구조의 등장을 의미한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논의는 〈결혼: 애견집사〉가 단지 이색적인 소재를 다룬 작품이 아니라, 변화하는 가족 개념의 시대적 징후를 반영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강정구, 「펫팸족의 출현과 반려동물의 재인식 – 2000년대 이후 한국문학과 영화 작품을 중심으로」, 세계문학비교연구 54(2016), 6-11.
(좌)
![[작품도판 7] 〈결혼: 애견집사〉, 2019, 전통벽화 기법 석채, 30.5×13.5cm](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95_02.jpg)
(우)
![[참고도판 20] 박수근, 〈길가에서〉, 1954, 캔버스에 유채, 107.5 ×53cm, 개인 소장](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95_03.jpg)
김혜영, 「한국가족의 다양성 증가와 그 이중적 함의」, 아시아여성연구 47-2(2008), 11-16.
작품 속 여성과 반려동물은 밀착된 신체 접촉과 안정된 표정을 통해 묘사되며, 이는 혈연이 아닌 돌봄과 정서적 교감을 기반으로 형성되는 새로운 가족 관계를 암시한다. 인물의 복식은 화려한 예복보다는 일상적이고 실용적인 옷차림에 가깝고, 배경 또한 장식성을 절제한 평면적 처리로 정리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은 박수근 작품 특유의 담담한 색조와 간결한 화면 구조를 연상시키는 동시에, 전통 벽화 기법의 질박한 질감 위에 현대적 생활 감각을 겹쳐 놓는다. 그 결과 화면은 과거의 가족 정서와 오늘의 돌봄 문화를 한 장면 안에서 대립시키기보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중첩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상의 작품들은 전통 이미지의 차용과 패러디가 단순한 형식적 반복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의 생활 감각과 관계 구조를 담아내는 해학적 재구성의 방식으로 기능함을 보여준다. 〈내숭: 21세기 서당(feat. 메가스터디)〉는 전통적 교육 풍속의 형식을 오늘날 디지털 학습 환경 속으로 옮겨오고, 〈21세기 사우나: 정초풍정〉은 조선 후기 여성 풍속의 장면을 현대 대중목욕탕 문화로 변주하며, 〈결혼: 애견집사〉는 한국 근현대 회화의 익숙한 가족 도상을 오늘날의 반려동물 문화와 접속시킨다. 이처럼 〈내숭시리즈〉에서 전통 이미지의 재구성과 패러디는 과거의 형식을 오늘의 풍속 속으로 번역하는 조형 전략으로 작동하며, 익숙한 장면 안에서 시대가 달라지며 바뀐 관계와 감정의 구조를 드러내는 시각 언어가 된다.
2) 패러디를 통한 동시대 풍속의 재해석
전통 이미지의 현대적 변주는 단순한 형식 차용을 넘어, 동시대 사회가 요구하는 보여짐의 규범과 그 이면에 놓인 욕망, 불안, 폭력의 구조를 드러내는 표현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패러디는 익숙한 원전의 권위와 상징성을 유지하는 듯 보이면서도, 전혀 다른 시대의 문제를 그 안에 삽입함으로써 이미지의 의미를 새롭게 전환한다. 관람자는 원전을 알아보는 순간 친숙함을 느끼지만, 그것이 낯선 현실과 결합된 장면을 마주하는 순간 웃음과 불편함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패러디는 동시대 풍속을 재해석하는 시각적 장치로 기능하며, 겉으로 유지되는 체면과 그 안에 숨겨진 욕망 사이의 간극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내숭 심리의 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패러디가 원전의 의미를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맥락 속에서 의미를 전환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Linda Hutcheon, A Theory of Parody: The Teachings of Twentieth-Century Art Forms(Urbana and Chicago: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2000), 6-18 참조.
동아시아 회화 전통에도 옛 그림을 참조하거나 변주하는 방식은 존재하지만, 서양 현대미술에서는 고전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워 풍자와 비판의 도구로 삼는 패러디의 형식이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되어 왔다. 이러한 점에서 뱅크시(Banksy, 생몰년 미상)는 비교 사례로 참고할 만하다. 그는 고전 회화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이미지를 거리의 스텐실 언어로 바꾸어, 전쟁, 감시, 소비, 계급, 미디어 환경과 같은 동시대의 문제를 직관적으로 드러내 왔다. 그의 작업은 단순한 희화화라기보다, 교양과 권위의 얼굴 뒤에 숨겨진 폭력과 불안, 위선과 욕망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패러디가 사회적 표면과 이면의 간극을 시각화하는 방식에 대해 시사점을 제공한다.
Susan Hansen and Tom Flynn, “This is not a Banksy!: street art as aesthetic protest”, Continuum: Journal of Media & Cultural Studies 29-6(2015), 898-911.
여기서는 뱅크시의 여러 작업 가운데 세 점을 선별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 이유는 이 세 점이 각각 본 연구의 〈내숭시리즈〉에서 차용하거나 패러디한 원전과 동일한 도상 구조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뱅크시 사례를 끌어오는 목적은 단순히 유명 작가의 예시를 덧붙이기 위한 데 있지 않다. 같은 원전이 서로 다른 시대와 장소, 그리고 상이한 문제의식 속에서 어떻게 재해석되는지를 비교함으로써, 패러디가 동시대 풍속의 의미를 어떻게 새롭게 구성하는지를 보다 분명히 살피기 위함이다. 본 항의 [표 7], [표 8], [표 9]에서는 왼편에 패러디의 원전을, 가운데에 뱅크시가 변주한 작업을, 오른편에 〈내숭시리즈〉의 변주를 배치하여, 각 이미지가 어떠한 방식으로 사회적 체면과 내면의 욕망, 공적 권위와 사적 불안의 간극을 드러내는지 고찰하고자 한다.
[표 7] 자크-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 초상을 패러디한 작품 비교,
(좌)
![[참고도판 21] 자크-루이 다비드, 〈생 베르나르 고개의 나폴레옹〉, 1801, 캔버스에 유채, 261×221cm, 말메종성 소장](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98_00.jpg)
(중앙)
![[참고도판 22] 뱅크시(Banksy), 〈눈먼 나폴레옹(Blinded Napoleon)〉, 2018, 프랑스 파리 아베뉴 드 플랑드르](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98_01.jpg)
(우)
![[작품도판 8] 〈결혼: 육아 전쟁〉, 2019,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35×113cm](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98_02.jpg)
![[작품도판 8] 〈결혼: 육아 전쟁〉, 2019,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35×113cm](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32_01.jpg)
[참고도판 22]는 [참고도판 21] 자크-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의 〈생 베르나르 고개의 나폴레옹〉을 변주한 뱅크시의 기마 인물 이미지로, 영웅적 권위의 형식이 동시대 사회에서 어떻게 불안과 폭력의 표정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다비드의 원작이 국가 권력과 영웅 서사를 장엄하게 시각화한 도상이라면, 뱅크시는 그 구도를 유지한 채 인물의 얼굴을 가리거나 익명화함으로써, 영웅의 얼굴 뒤에 숨은 폭력성과 책임 회피의 문제를 환기한다. 이 이미지는 겉으로는 정의와 명분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공포와 공격성, 동조 압력이 함께 작동하는 상태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내숭 심리의 사회적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작품도판 8] 〈결혼: 육아 전쟁〉이 동일한 도상을 차용하여, 영웅처럼 보이도록 요구되는 돌봄 노동의 현실을 드러내는 방식과도 연결된다.
Simon Lee, David(London: Phaidon, 1999), 142-147.
[표 8]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La Gioconda)〉를 패러디한 작품 비교
(좌)
[참고도판 23]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La Gioconda)〉, 1503-1506으로 추정, 포플러 패널에 유채, 77×53cm, 루브르 박물관 소장
(중앙)
![[참고도판 24] 뱅크시, 〈모나리자 바주카(Mona Lisa Bazooka)〉, 2007-2008, 영국 런던 소호](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99_02.jpg)
![[참고도판 24] 뱅크시, 〈모나리자 바주카(Mona Lisa Bazooka)〉, 2007-2008, 영국 런던 소호](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99_00.jpg)
![[참고도판 24] 뱅크시, 〈모나리자 바주카(Mona Lisa Bazooka)〉, 2007-2008, 영국 런던 소호](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099_01.jpg)
(우)
[작품도판 9] 〈결혼: 청담동 며느리〉, 2026,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93.9×130.3cm
다음으로 [참고도판 23] 〈모나리자(La Gioconda)〉 원작과 뱅크시의 〈모나리자 바주카(Mona Lisa Bazooka)〉는 교양과 품위의 상징이 폭력의 기호와 결합할 때 발생하는 위화감을 보여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모나리자〉가 고전적 아름다움과 권위의 상징이라면, 뱅크시는 그 얼굴에 무기를 결합함으로써 침착한 표정과 공격적 기호가 한 장면 안에 공존하도록 만든다. 이 어긋남은 표면의 품위와 이면의 공격성, 우아함의 얼굴과 생존의 욕망이 동시에 작동하는 상태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결혼: 청담동며느리〉가 동일한 원전을 바탕으로 고급스러움의 수행과 그 이면의 경쟁, 불안을 드러내는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표 9]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패러디한 작품 비교,
(좌)
![[참고도판 25]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Meisje met de parel)〉, 1665년 추정, 캔버스에 유화, 44.5×39cm, 마](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00_00.jpg)
(중앙)
![[참고도판 26] 뱅크시의 〈피어싱을 한 소녀(Girl with a Pierced Eardrum)〉](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00_01.jpg)
(우)
![[작품도판 10] 〈내숭: 에어팟을 한 소녀〉, 2023,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30×90cm](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00_02.jpg)
Banksy, Wall and Piece(London: Century, 2005), 88-95.
마지막으로 [참고도판 25]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 1632–1675)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와 이를 변주한 [참고도판 26] 뱅크시의 〈피어싱을 한 소녀(Girl with a Pierced Eardrum)〉는 아름다움과 교양의 얼굴이 현대 도시 환경 속에서 어떻게 다시 해석되는지를 보여준다. 페르메이르의 원작이 진주 귀걸이와 터번을 통해 이상화된 아름다움과 계급적 표식을 함께 작동시켰다면, 뱅크시는 진주의 자리를 도난경보기로 치환하여 고전 초상을 거리와 감시의 언어로 옮겨 놓는다. 이 치환은 아름다움이 더 이상 순수한 미적 가치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 도시의 불안과 일상적 장치와도 결부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전환은 〈내숭: 에어팟을 한 소녀〉에서 진주가 에어팟으로 바뀌며, 고전적 우아함이 디지털 소비문화의 기호로 치환되는 방식과도 직접 연결된다.
Banksy, 앞의 책, 120-123.
이처럼 뱅크시의 패러디는 고전과 권위, 교양의 이미지를 동시대의 폭력, 소비, 감시, 계급적 긴장과 결합시키며, 관람자로 하여금 웃음과 불편함을 동시에 경험하게 만든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패러디가 단순한 조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스스로를 꾸미는 방식, 다시 말해 고상함과 윤리를 말하면서도 그 이면에 불안과 욕망을 감추는 구조를 드러내는 시각적 장치로 작동한다는 데 있다. 이러한 비교를 바탕으로 볼 때, 본 연구의 〈내숭시리즈〉 역시 전통 인물화와 서양 고전 회화의 익숙한 형상을 빌리면서, 그 안에 겹쳐져 있는 사회적 체면과 개인적 욕망의 충돌을 오늘의 감각으로 재구성한다고 볼 수 있다.
제1항이 전통 이미지의 차용과 재구성을 통해 과거의 도상이 오늘의 풍속 속에서 어떻게 다시 작동하는지를 살펴보는 데 초점을 두었다면, 본 항에서는 그러한 재구성이 동시대 풍속을 새롭게 읽어내는 장치로 기능하는 양상에 주목하고자 한다. 〈내숭시리즈〉는 전통 인물화와 서양 고전 회화의 익숙한 형상을 빌리되, 그것을 오늘의 미디어 환경, 소비문화, 결혼 제도, 미의 기준, 자기 연출의 구조와 접속시킴으로써, 동시대 사회의 모순과 긴장을 유머와 아이러니 속에서 드러낸다. 여기서 풍자는 특정 대상을 일방적으로 조롱하거나 도덕적으로 규탄하는 방식이라기보다, 익숙한 이미지와 낯선 오브제의 결합을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현실을 다르게 보게 만드는 시각적 전략에 가깝다. 따라서 본 항에서 다루는 작품들은 전통 이미지의 단순한 전용을 넘어, 오늘날의 사회적 욕망과 제도적 관습을 비틀어 보여주는 현대사회 풍속화의 한 양상으로 읽을 수 있다.
이하에서는 〈내숭: 에어팟을 한 소녀〉, 〈결혼: 함 들어오는 날〉, 〈결혼: 함 들어오는 날〉, 〈21세기 사우나: 비너스의 탄생〉, 〈내숭: #백설 그램〉, 〈내숭: 인스타야, 인스타야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의 순서로, 패러디를 통한 동시대 풍속의 재해석이 어떠한 방식으로 조형화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참고도판 25]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는 북유럽의 모나리자로 불리며,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에서 이상화된 인물 연구, 즉 트로니(tronie)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모델 개인의 초상이라기보다 이상화된 인물 형상을 제시하는 이 작품에서 소녀는 울트라마린 블루 터번과 고가의 진주 귀걸이를 착용한 채 관람자를 응시하며, 진주와 터번은 미적 아름다움뿐 아니라 사회적 위신과 희소한 재화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하혜주, 「명화 소재 소설 속에 나타나는 하녀상의 영화적 변용: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중심으로」, 문화와 융합 44-1(2022), 335.
(좌)
![[참고도판 25-1]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02_01.jpg)
![[참고도판 25-1]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02_02.jpg)
(우)
[작품도판 10-1] 〈내숭: 에어팟을 한 소녀〉의 부분도
[작품도판 10] 〈내숭: 에어팟을 한 소녀〉는 이 도상 구조를 차용하되, 진주 귀걸이 대신 에어팟을, 단정한 복식 대신 루이뷔통(Louis Vuitton) 모노그램이 촘촘히 새겨진 터번과 드레이프를 더함으로써, 17세기 귀족 사회의 상징물이 21세기 소비사회의 기호로 치환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참고도판 25-1]과 [작품도판 10-1]는 원작과 이 작품을 나란히 놓고 비교함으로써, 진주 귀걸이와 에어팟이 화면의 같은 위치에서 동일한 시각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낸다. 더불어 [작품도판 10-2]의 세부도는 루이뷔통 로고 패턴을 확대한 부분도로써, 오늘날 명품 브랜드가 계급 표식과 자기 연출의 도구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다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작품도판 10-2] 〈내숭: 에어팟을 한 소녀〉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02_00.jpg)
진주 귀걸이가 과거 상류계층의 부와 권위를 암시했다면, 에어팟과 명품 로고는 오늘날 연결된 삶, 세련된 감각, 소비 능력을 드러내는 동시대적 기호로 기능한다. 의복과 액세서리가 착용자의 경제적 위치와 정체성을 드러내는 사회적 언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작품은 단순히 고전을 현대적으로 꾸며 놓은 데 머물지 않고, 명품과 디지털 기기를 통해 사회적 인정과 차별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오늘의 욕망 구조를 비판적으로 비춘다. 소녀의 표정과 조명, 어두운 배경은 원작의 고전적 조형성을 유지하고 있으나, 에어팟과 모노그램 패턴은 여기에 강한 현대성을 덧입히며, 그 결과 화면은 ‘우아한 고전 초상’과 ‘과시적 소비 기호’가 한 몸처럼 결합된 장면으로 전환된다. 이 작품에서 내숭은 고전적 아름다움의 형식을 빌려 현대 소비문화의 불안과 동조 압박을 은근히 감추고 드러내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표 10]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와 〈내숭: 에어팟을 한 소녀〉의 욕망 구조 비교
시기
상징물
기능·의미
공통 주제
17
세기
진주 귀걸이, 울트라마린 터번
상류층의 부와 권위, 희소한 재료를 통한 계급 표식
사회적 인정과 차별화 욕망
21
세기
에어팟, 루이뷔통 모노그램 터번
디지털 명품·패션 브랜드를 통한 자기 과시, 소비를 통한 계층 표식
사회적 인정과 차별화 욕망
김경희, 「명품 브랜드의 상징색채 이미지에 관한 연구 – 루이뷔통과 구찌를 중심으로」, 상품학연구 25-2(2007), 114.
(좌)
![[작품도판 11] 〈결혼: 함 들어오는 날〉, 2019,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90×110cm](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04_00.jpg)
![[작품도판 11] 〈결혼: 함 들어오는 날〉, 2019,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90×110cm](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04_01.jpg)
(우)
[참고도판 27] 에두아르 마네, 〈피리 부는 소년 (Le Fifre)〉, 1866, 캔버스에 유채, 160×97cm, 오르세미술관 소장
이러한 비판적 시선은 [작품도판 11] 〈결혼: 함 들어오는 날〉에서 결혼 의례와 전통 문화의 변형, 그리고 현대 결혼 산업의 구조를 다루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함지기는 전통 혼례에서 신랑 측이 신부 집으로 예물과 혼서지를 담은 함을 보내는 의례, 곧 ‘함 들어오는 날’에 등장하는 핵심 요소로, 공동체적 참여와 놀이, 의례적 상징성이 함께 응축된 문화적 장면이었다. 과거 골목에서 울려 퍼지던 ‘함 사세요’의 외침과 사람들의 웃음은 결혼이라는 개인의 사건이 마을 전체의 축제로 확장되던 풍속을 보여준다.
남영신 엮음, (한+) 국어사전(파주: 성안당, 2021), 2240.
그러나 오늘날 함지기 문화는 실용성과 효율성의 논리 속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으며, 전통 함 대신 명품 캐리어나 간소화된 상품 패키지로 대체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결혼: 함 들어오는 날〉은 이러한 변화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참고도판 27]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1832–1883)의 〈피리 부는 소년〉의 구도를 참조하는 한편, 한국 전통 혼례 의례의 상징성을 현대적으로 다시 조직한다. 원작에서 군복을 입은 소년이 피리를 불며 서 있다면, 여기서는 퓨전 한복을 입은 여성이 피리를 불고 함을 멘 채 행렬의 주체로 등장한다. 이 전환은 결혼 의례의 장중함을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 성별 역할과 의례의 주체를 다시 묻는 질문을 집어넣는다.
작품 속 함은 혼서지와 채단을 담아 두 집안의 결속과 번영을 상징하는 사물이지만, 동시에 오늘날에는 점차 사라져 가는 의례의 상징이기도 하다. 초롱은 앞날의 행복을 기원하는 전통적 장치로 기능하고, 바닥에 놓인 깨진 박과 오징어 가면은 장중한 혼례 속에 민속적 해학과 불안정한 감정을 함께 불러온다. [작품도판 11-1], [작품도판 11-2]는 이 오브제들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의례의 엄숙함과 놀이적 풍속이 병치되는 지점을 상징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좌)
![[작품도판 11-1] 〈결혼: 함 들어오는 날〉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05_01.jpg)
(우)
![[작품도판 11-2] 〈결혼: 함 들어오는 날〉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05_02.jpg)
특히 작품 속 인물이 스스로 함을 지고 피리를 불며 행렬을 이끄는 여성으로 제시된다는 점은 중요하다. 전통적으로 함지기의 역할이 남성 혹은 제3자에게 맡겨졌던 것과 달리, 여기서는 여성이 결혼 서사의 객체가 아니라 행렬의 주체로 등장한다. 이러한 역할의 재배치는 결혼을 둘러싼 사회적 규범과 성별 위계, 그리고 제도적 관습에 대한 비판적 질문을 불러온다. 또한 [작품도판 12]의 퍼포먼스 사진은 회화 속 장면이 현실의 골목에서 한 차례 실연되었음을 보여줌으로써, 사라져 가는 풍습이 박제된 전통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문화적 사건임을 환기한다. 호텔 예식, 스튜디오 촬영, 웨딩 패키지 등으로 상업화된 결혼 산업의 현실 속에서, 골목을 가로지르는 함지기 퍼포먼스는 공동체 축제로서의 혼례가 지녔던 공공성과 유희성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에서 내숭은 전통을 계승하는 듯한 표면 아래에서 실용주의와 상업화, 성 역할의 재구성과 의례의 소멸을 둘러싼 긴장을 품고 있는 정서로 읽힐 수 있다.
![[작품도판 12] 〈결혼: 함 들어오는 날〉, 2019, 퍼포먼스 사진, 60.96×40.64cm](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05_00.jpg)
한편 [작품도판 13] 〈21세기 사우나: 비너스의 탄생〉은 [참고도판 28]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의 〈비너스의 탄생〉을 일상적 공간으로 끌어와, 숭고한 미의 이상과 현대의 자기관리 문화를 풍자적으로 충돌시키는 작품이다. 보티첼리의 원작은 르네상스 인문주의와 고전 신화의 이상미를 결합한 대표작으로,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난 비너스를 중심으로 탄생, 순수, 자연의 축복을 상징한다. 제피로스와 클로리스가 바람과 꽃을 뿌려 비너스를 맞이하는 장면은 인간 육체미와 정신적 아름다움이 결합된 숭고한 미의 세계를 제시한다.
이에 비해 〈21세기 사우나: 비너스의 탄생〉은 고전 명화를 동네 사우나라는 생활 공간으로 옮겨 놓음으로써, 이상화된 미와 현실의 몸이 마주치는 장면을 만들어낸다. ‘궁전보석사우나’라는 실제 공간의 과장된 명칭과 화려한 내부 장식은 외관상 궁전과 보석의 이미지를 환기하지만, 실제로 그 안에 있는 존재들은 평범한 동네 주민들이다. 천장과 벽을 장식한 명화 벽화는 서구 고전 예술의 권위를 빌려온 듯 보이나, 실제로는 땀 흘리고 쉬고 먹는 일상 공간의 배경 장치로 기능하면서 그 권위가 해체되고 다시 소비된다.
(좌)
![[작품도판 13] 〈21세기 사우나: 비너스의 탄생〉, 2017,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30×184cm](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06_00.jpg)
(우)
![[참고도판 28] 산드로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1483, 캔버스에 템페라, 172×278cm, 우피치 미술관 소장](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06_01.jpg)
오세권, 「한국 현대 미술에서 나타나는 차용 표현에 관한 연구」, 기초조형학연구 14-3(2013), 160-161.
작품 속 비너스는 더 이상 신화적 여신이 아니라 사우나를 찾은 중년 여성들로 대체된다. 오른쪽 인물은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 달콤한 식혜를 마시고, 왼쪽 인물은 소금을 팔뚝에 문지르며 지방을 빼려는 듯한 동작을 취한다. 식혜는 휴식과 위로, 사소한 향유의 시간을 상징하면서도 즉각적인 욕망을 드러내고, 소금 마사지는 미의 기준에 부응하려는 자기관리의 강박을 상징한다. 사우나라는 공간 또한 신분과 겉치레가 일시적으로 지워지는 평등한 장소인 동시에, 몸과 미용을 둘러싼 비교와 불안이 다시 표면화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를 정리하면 [표 11]과 같다.
이 작품이 만들어내는 웃음은 장난스러운 희화화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웃음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과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싶어 하는 일상의 욕망이 서로 충돌하는 현실을 드러내는 데서 발생한다. 장은석이 명화 패러디 광고의 속성을 논하면서 지적하듯, 고전 이미지의 차용은 현대적 욕망 구조를 풍자적으로 비추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21세기 사우나: 비너스의 탄생〉은 숭고한 미의 이상을 일상적 자기관리의 풍경 속으로 끌어내림으로써, 현대사회가 몸을 둘러싸고 만들어내는 강박과 과시를 비판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다.
[표 11] 〈21세기 사우나: 비너스의 탄생〉 속 상징물의 기능
상징 요소
아(雅)적 의미
속(俗)적 의미
내숭과의 관계
사우나 내부명화 벽화
서구 고전미, 르네상스이상미의 차용
실용 공간의 장식품, 일상적 배경
고전 예술의 권위를 차용하면서도 소비·해체하는 이중적 태도
식혜
휴식, 위로, 사소한 향유의 시간
달콤함을 향한 즉각적 욕망
다이어트 강박과 긴장 관계에 있는 일상적 욕망
소금마사지
자기관리, 미의 기준에부응하려는 노력
몸에 대한 불안과 강박
‘예뻐야 한다’는 이상과 ‘지금의 나’를 둘러싼 갈등을 표면화
수건과사우나복
신분 해체, 평등한 만남의 장
지역 공동체의 소속감
사회적 체면을 벗고도 여전히 내숭을 유지·조정하는 심리
장은석, 「명화를 패러디한 광고 속성에 관한 연구」, 정보디자인학연구 14(2011), 105-106.
이후 시선은 SNS 시대의 자기 연출과 비교 심리를 다루는 연작, [작품도판 14] 〈내숭: #백설 그램〉과 [작품도판 15] 〈내숭: 인스타야, 인스타야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로 이어진다. 이 두 작품은 그림 형제가 정리한 동화 「백설 공주」를 차용하여, 미의 이상을 둘러싼 질투와 비교, 자기 과시의 구조를 21세기 소셜미디어 환경 속에서 다시 설정한다. 원전에서 백설 공주는 눈처럼 하얀 피부와 붉은 입술, 검은 머리카락을 지닌 아름다운 존재로 제시되고, 계모는 거울을 향해 누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지를 집요하게 묻는다. 이 서사는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과 질투를 핵심 동력으로 삼고 있으며, 바로 이 점 때문에 현대 미디어 환경으로 옮겨왔을 때도 강한 설득력을 지닌다. 동화 이미지는 현대 시각문화 안에서 욕망과 소비를 자극하는 코드로도 재맥락화된다.
(좌)
![[작품도판 14] 〈내숭: #백설 그램〉, 2016,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39×110cm](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08_02.jpg)
(우)
![[작품도판 15] 〈내숭: 인스타야, 인스타야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2016,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39×110cm](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08_01.jpg)
(좌)
[작품도판 14-1] 〈내숭: #백설 그램〉의 부분도
(중앙1)
![[작품도판 14-2] 〈내숭: #백설 그램〉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09_02.jpg)
![[작품도판 14-2] 〈내숭: #백설 그램〉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09_03.jpg)
![[작품도판 14-2] 〈내숭: #백설 그램〉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09_04.jpg)
(중앙2)
[작품도판 14-3] 〈내숭: #백설 그램〉의 부분도
(우)
[작품도판 14-4] 〈내숭: #백설 그램〉의 부분도
그림 형제, 그림 동화집, 홍성광 역(서울: 펭귄클래식코리아, 2011), 101-115.
정동환, 「광고사진에 차용된 동화 표현 연구」, 한국디자인문화학회지 18-2(2012), 415.
이와 함께 동화 이미지는 현대 시각문화에서 욕망과 소비를 자극하는 코드로 재맥락화되기도 한다. [작품도판 14] 〈내숭: #백설 그램〉은 백설 공주를 인스타그램 속 주체로 다시 등장시킨다. 화면 속 인물은 화려한 공주 복장과 포즈, 인스타그램 프레임을 통해 마치 해외 여행지나 고급 공간에 머무는 듯 자신을 연출하지만, 실제 배경은 컵라면, 음료 컵, 바퀴벌레가 놓인 소박하고 궁핍한 일상 공간이다. [작품도판 14-1]∼[작품도판 14-4]의 부분도는 컵라면, 바퀴벌레, 배경지 등을 확대해 보여주면서, 인물이 SNS 속에서 꾸며 내는 화려한 이미지가 현실의 결핍과 어긋난 허구적 무대임을 분명히 한다. 컵라면은 팍팍한 일상과 경제적 제약을, 바퀴벌레는 숨기고 싶지만 지워지지 않는 현실의 불편과 결핍을 상징한다. 반면 인스타그램 프레임과 해시태그, 좋아요 아이콘, 화려한 옷차림과 포즈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자기 포장의 장치로 기능한다.
이 작품은 현실의 궁핍을 숨기고 과장된 이미지만 노출하는 SNS의 구조를 풍자하면서, 자기 연출이 더 이상 개인의 선택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으로 강요되는 생존 전략처럼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화 속 공주의 서사가 여기서는 순수한 아름다움의 신화가 아니라, 플랫폼 안에서 끊임없이 편집되고 포장되는 이미지 노동의 서사로 바뀐다. 그 결과 내숭은 개인의 성격적 결함이 아니라, 모두가 어느 정도는 현실을 감추고 더 나은 이미지로 자신을 꾸며야 하는 미디어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집단적 정서로 확장된다.
이에 이어지는 [작품도판 15] 〈내숭: 인스타야, 인스타야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에서는 마녀가 전면에 등장한다. 이 마녀는 신라 금관을 연상시키는 왕관과 보라색 망토를 두르고, 손에는 독사과를 쥔 채 서 있으며, 발치에는 명품 여행용 가방과 여권이 놓여 있다. [작품도판 15-1]∼[작품도판 15-4]의 부분도는 왕관, 명품 가방, 여권, 독사과를 각각 부각시켜, 전통적 권위의 상징과 현대적 소비 욕망이 한 인물 안에 포개져 있음을 강조한다.
(좌)
[작품도판 15-1] 〈내숭: 인스타야, 인스타야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의 부분도
(중앙1)
![[작품도판 15-2] 〈내숭: 인스타야, 인스타야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10_00.jpg)
![[작품도판 15-2] 〈내숭: 인스타야, 인스타야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10_01.jpg)
![[작품도판 15-2] 〈내숭: 인스타야, 인스타야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10_02.jpg)
(중앙2)
[작품도판 15-3] 〈내숭: 인스타야, 인스타야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의 부분도
(우)
[작품도판 15-4] 〈내숭: 인스타야, 인스타야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의 부분도
원전의 마녀가 백설 공주의 아름다움에 대한 질투를 통해 죄와 처벌의 도식 속에 배치되었다면, 여기서의 마녀는 SNS 속 타인의 이미지를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화려한 이미지에 자신을 견주며 끊임없이 비교와 열등감을 경험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으로 변모한다. 여권과 명품 가방은 글로벌 이동성과 소비 계층에 대한 욕망을, 왕관은 권위와 인정 욕구를, 독사과는 그러한 욕망이 낳는 파괴적 충동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타인의 연출된 이미지를 보며 ‘나도 저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게 되는 현대인의 심리를 풍자하면서, SNS 환경이 비교와 질투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기보다 구조적으로 재생산하고 있음을 비판적으로 드러낸다. 두 작품의 구조와 상징은 [표 13]에서 정리한 바와 같이, 현대의 내숭이 자기 과시와 타인 비교가 동시에 작동하는 플랫폼 환경 속에서 조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표 12] 동화 ‘백설 공주’ 원전 서사와 〈내숭: #백설 그램〉 연작의 현대적 재해석
원전 동화의 내러티브
현대 패러디의 내러티브
순수한 미의 이상(백설 공주) → 마녀의 질투와 공격 → 죽음과 부활, 정의의 회복
현실의 결핍 속 SNS 자기 연출(백설 공주) → 타자의 비교·질투(마녀) → 온라인 상호작용 속에서 불안과 욕망의 순환
이상의 작품들은 모두 익숙한 고전 이미지와 전통 도상을 오늘의 시각문화 속으로 끌어오되, 그 과정에서 단순한 재현이나 오마주에 머물지 않고 동시대 사회를 비틀어 보는 풍자적 장치로 작동한다. 〈내숭: 에어팟을 한 소녀〉는 명품과 디지털 기기를 통한 계급 표식과 과시 욕망을, 〈결혼: 함 들어오는 날〉은 전통 혼례 의례의 소멸과 결혼 산업의 상업화를, 〈21세기 사우나: 비너스의 탄생〉은 미의 강박과 자기관리 문화를, 〈내숭: #백설 그램〉과 〈내숭: 인스타야, 인스타야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는 SNS 시대의 자기 연출과 비교 심리를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표 13] 〈내숭: #백설 그램〉과 〈내숭: 인스타야, 인스타야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의 구조와 상징 비교
구분
〈내숭: #백설 그램〉
〈내숭: 인스타야, 인스타야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주체
SNS 속 자신을 연출하는 백설 공주
타인의 이미지를 보며 질투하는 마녀
상징물
인스타그램 프레임, 배경지, 컵라면, 바퀴벌레
왕관, 명품 여행용 가방, 여권, 독사과
외면
공주 복장, 화려한 포즈, 여행지처럼 꾸민 배경
전통 왕관의 권위, 과장된 복식
내면
현실의 허기와 결핍, 곤궁한 방 안, 바퀴벌레
과시적 소비욕망, 비교·시기심, SNS 집착
내숭구조
현실의 결핍을 숨기고 화려한 이미지만 노출
타인의 연출된 이미지를 진실로 믿고 집착
이처럼 제2항에서의 이미지 차용은 제1항의 ‘재구성’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동시대 현실의 모순을 드러내는 풍자적 방법론으로 기능한다. 작품들은 전통과 현대, 고전과 일상, 이상과 현실을 한 화면 안에 병치함으로써 관람자로 하여금 웃음을 느끼게 하지만, 그 웃음은 곧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의 긴장을 다시 인식하게 하는 불편한 자각으로 이어진다. 그 결과 〈내숭시리즈〉의 차용과 변주는 단순한 시각적 유희가 아니라, 내숭이라는 정서를 매개로 동시대 사회 현상을 성찰하게 하는 현대사회 풍속화의 비판적 언어로 이해될 수 있다.
2. 현대 여성 일상 풍속의 서사
본 절에서는 현대 여성의 일상 장면을 다룬 〈내숭시리즈〉를 중심으로, 내숭 심리가 오늘날의 풍속 장면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살펴본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장면을 설명하는 방식이 전통 회화의 화제와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전통 회화에서 화제가 그림의 의미를 보충하거나 감상의 방향을 제시했다면, 〈내숭시리즈〉에서는 작품의 제목, 화면 속 문자 요소, 짧은 문구가 인물의 상황과 심리를 읽게 하는 단서로 작용한다. 이러한 언어 요소는 인물의 감정 상태와 외부로 드러난 태도를 함께 암시하며, 현대사회 풍속화에서 장면의 의미를 조직하는 서사적 장치가 된다.
또한 이와 같은 언어 요소와 화면 이미지를 함께 읽으면서, 인물이 어떤 상황에서 내숭을 의식하고, 어떤 태도로 그것을 숨기거나 드러내는지를 분석한다. 특히 결혼 준비, 직장 생활, 육아, 다이어트, 온라인 소통과 같이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역할과 규범이 집중되는 장면에서, 내숭 심리는 체면 유지와 욕망 조절, 자기 연출의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를 통해 현대 여성의 일상 풍속이 단순한 생활 장면의 재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요구와 개인적 욕망이 교차하는 심리 구조로 조직되고 있음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여성의 일상 경험과 내숭 심리의 서사화
현대미술에서 여성의 일상 경험은 거대한 사건보다 몸을 관리하고, 옷을 입고, 자신의 모습을 정리하는 사소한 행위 속에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일상적 행위는 단순한 생활 습관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적 이미지와 개인이 실제로 느끼는 감정 사이의 긴장을 드러내는 장면이 된다. [참고도판 29]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의 〈머리카락을 자른 자화상(Self-Portrait with Cropped Hair)〉은 이러한 점을 보여주는 적절한 사례이다. 이 작품에서 칼로는 짧게 자른 머리, 남성복, 손에 든 가위, 바닥에 흩어진 머리카락을 통해 자신의 몸과 외양을 스스로 다시 구성하는 장면을 제시한다. 여성성을 표시하는 머리카락과 의복을 변형하는 행위는 단순한 외모 변화가 아니라, 사회가 기대하는 여성적 표면과 자신의 내면 상태 사이의 간극을 시각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참고도판 29] 프리다 칼로, 〈머리카락을 자른 자화상(Self-Portrait with Cropped Hair)〉, 1940, 캔버스에 유채, 40×27.9c](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13_00.jpg)
The Museum of Modern Art(MoMA), “Frida Kahlo. Self-Portrait with Cropped Hair. 1940”, collection page, 검색일 2026.07.01.https://www.moma.org/collection/works/78333汫h.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칼로가 자신의 감정을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화면 속 인물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지만, 감정은 분명하게 해명되지 않는다. 잘려 나간 머리카락은 결별과 상처, 자기 방어와 해방감을 동시에 암시하며, 남성복은 기존의 여성적 이미지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저항이나 선언으로만 정리되지 않는다. 칼로는 자신의 모습을 과장된 감정 표현으로 드러내기보다, 머리카락과 의복, 손의 가위와 같은 구체적 사물을 통해 내면의 변화를 장면화한다. 이때 자화상은 개인의 얼굴을 재현하는 형식을 넘어, 몸과 외양을 둘러싼 사회적 시선과 자기 감정의 관계를 보여주는 풍속적 장면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사례는 〈내숭시리즈〉의 여성 일상 장면을 읽는 데 중요한 기준을 제공한다. 〈내숭시리즈〉 역시 여성의 감정을 직접적인 고백이나 고발의 방식으로 제시하기보다, 한복, 음식, 체중계, 미용실, 놀이공원, 사우나와 같은 구체적 사물과 공간을 통해 감정의 상태를 드러낸다. 내숭녀는 자신의 욕망과 피로, 수치심과 해방감을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대신 단정한 표면과 어긋나는 행동, 제목과 화면 속 문자, 주변 사물의 배치를 통해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이 점에서 〈내숭시리즈〉의 자화상 형식은 작가 개인의 얼굴을 반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 여성의 일상 속에서 감정과 욕망이 어떻게 조절되고 연출되는지를 보여주는 현대사회 풍속화의 장면으로 작동한다.
여성의 일상은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과 개인적 욕망, 규범적 자기상과 실제 감정 사이를 오가는 미세한 조정과 타협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내숭은 바로 이 지점, 즉 어떻게 보이고자 하는가와 실제로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사이의 간극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긴장이다. 겉으로는 단정함과 절제, 합리성을 유지하려 하지만, 내면에서는 식욕, 피로, 수치심, 자기위로, 해방감과 같은 감정이 동시에 움직일 때, 인물은 말투와 표정, 몸짓과 선택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조절한다. 〈내숭시리즈〉는 이러한 내숭 심리를 여성의 일상적 장면 속에 배치하고, 하나의 정지된 화면 안에 이전과 현재, 그리고 이후를 암시하는 서사적 단서를 조직함으로써 관람자가 내숭녀의 심리적 흐름을 읽어 나가도록 한다.
여성의 일상은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과 개인적 욕망, 규범적 자기상과 실제 감정 사이를 오가는 미세한 조정과 타협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내숭은 바로 이 지점, 즉 어떻게 보이고자 하는가와 실제로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사이의 간극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긴장이다. 겉으로는 단정함과 절제, 합리성을 유지하려 하지만, 내면에서는 식욕, 피로, 수치심, 자기위로, 해방감과 같은 감정이 동시에 움직일 때, 인물은 말투와 표정, 몸짓과 선택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조절한다. 〈내숭시리즈〉는 이러한 내숭 심리를 여성의 일상적 장면 속에 배치하고, 하나의 정지된 화면 안에 이전과 현재, 그리고 이후를 암시하는 서사적 단서를 조직함으로써 관람자가 인물의 심리적 흐름을 읽어 나가도록 한다.
회화의 서사는 문학이나 영화처럼 사건이 시간축에 따라 직접 전개되는 방식과는 다르다. 류한승이 지적하듯, 정지된 이미지 안에서도 상징, 오브제, 인물의 자세, 배경, 제목과 같은 시각적 요소들은 사건의 앞뒤 맥락을 암시하며, 감상자는 그 단서를 바탕으로 장면의 이야기를 구성하게 된다. 〈내숭시리즈〉에서 제목은 이러한 해석의 출발점으로 기능한다. 제목은 관람자에게 먼저 가벼운 웃음을 유도하면서도, 동시에 장면의 심리적 방향을 예고하는 장치가 된다. 〈내숭: 새해 다짐(feat. 내일부터)〉, 〈내숭: 마주한 현실〉, 〈결혼: 트랜스포머〉, 〈내숭: 환상의 떡볶이〉, 〈내숭: 명품호떡〉, 〈내숭: 내숭동산〉, 〈21세기 사우나: 이태리 스타일〉과 같은 제목은 모두 일상에서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익숙한 상황을 호출하면서, 그 안에 숨은 자기합리화, 자기연출, 욕망과 체면의 충돌을 짧은 문구로 압축한다. 관람자는 제목에서 먼저 장면의 아이러니를 감지하고, 이어 화면 속 세부를 따라가면서 그 웃음 뒤에 놓인 감정의 결을 구체적으로 읽게 된다.
류한승, 「현대미술에 있어 내러티브의 재발견-신춘문예 미술당선작 심사평」, 조선일보, 2007.01.03,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1/03/2007010301177.html汫h
![[작품도판 16] 〈내숭: 새해 다짐(feat. 내일부터)〉은 새해를 맞아 반복되는 결심의 순간을 포착한 작품으로, 식욕과 자기관리의 이상이 한 화면 안에서 충돌](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16_00.jpg)
화면 중앙의 인물은 한복 차림으로 바닥에 앉아 큰 피자 상자를 앞에 둔 채 피자를 베어 물고 있다. 주변에는 과자, 라면, 아이스크림, 탄산음료, 즉석식품 등 고칼로리 음식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어, 오늘 하루만큼은 마음껏 먹고자 하는 ‘마지막 만찬’과도 같은 분위기를 형성한다. 반면 인물의 등 뒤에 열려 있는 냉장고 안에는 샐러드, 채소, 과일, 요거트와 같은 다이어트 식단이 정돈되어 있고, 냉장고 상단에는 체중감량을 유도하는 광고 이미지까지 있어 이상적 자기관리의 규범이 배경처럼 놓여 있다. 화면 앞쪽의 무질서한 음식들과 뒤편 냉장고의 차갑고 정리된 질서는 지금의 욕망과 내일부터의 절제가 동시에 준비된 심리 상태를 시각적으로 압축한다.
[작품도판 16] 〈내숭: 새해 다짐(feat. 내일부터)〉, 2016,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30×163cm
이 작품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제목에 붙은 ‘feat. 내일부터’라는 표현이다. 새해 다짐의 관용구가 흔히 오늘부터가 아니라 내일부터로 미뤄진다는 점은, 자기관리에 대한 결심이 이미 유예와 합리화를 포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물은 이상적인 몸과 절제된 생활 습관을 요구하는 사회적 기준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앎이 곧바로 실천으로 이어지지는 않으며, 오히려 ‘오늘까지만’이라는 유예의 말 속에서 식욕과 자기위로의 욕망이 허용된다. 이때 내숭 심리는 욕망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스스로를 절제하는 사람으로 남겨 두고 싶은 자기 조절 방식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인물은 피자를 먹고 있는 현재의 자신을 용인하면서도, 냉장고 속 다이어트 식단과 ‘내일부터’라는 언어를 통해 여전히 자기관리의 주체로 보이고자 한다. 이 작품은 폭식과 결심, 쾌락과 체면이 한 화면 안에 병치되는 구조를 통해, 현대 여성의 일상 속에서 내숭 심리가 반복적인 자기조정의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작품도판 17] 〈내숭: 마주한 현실〉은 이러한 유예된 결심 이후에 찾아오는 자기 직면의 순간을 그린 작품이다.](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18_00.jpg)
인물은 속치마 차림으로 체중계 위에 올라서 있으며, 한 손에는 다이어트 식품을 들고 있고 발은 까치발을 들고 있다. 바닥에는 피자 상자와 과자 봉지, 간식 포장지가 흩어져 있어, 방금 전까지의 폭식과 실패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까치발을 든 자세는 단 1그램이라도 숫자를 줄이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는 과장된 제스처로, 몸무게라는 수치에 대한 강박과 자기감시의 심리를 상징한다. 체중계 위에 서 있는 몸은 현실을 직면하고자 하는 태도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까치발이라는 동작은 그 현실을 끝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심리적 저항을 보여준다. 작품은 이처럼 몸을 마주하는 순간조차 완전히 솔직해지기 어려운 내면의 흔들림을 포착한다.
[작품도판 17] 〈내숭: 마주한 현실〉, 2016,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20×150cm
이 작품에서 내숭 심리는 관리되고 싶은 욕망과 실패를 감추고 싶은 마음이 뒤섞인 상태로 나타난다. 손에 든 다이어트 식품은 절제와 노력의 증표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이것만 먹으면 괜찮다’는 자기위로의 오브제이기도 하다. 바닥에 흩어진 포장지들은 이미 여러 번의 실패와 좌절이 있었음을 말해 주지만, 인물은 여전히 체중계 위에 올라 다시 숫자를 확인하고, 다시 관리의 주체로 돌아가려 한다. 속치마 차림 역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자기 몸을 마주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출이면서도, 완전한 드러남을 피하고 싶은 수치심과 자기보호의 태도를 동시에 보여준다. 따라서 〈내숭: 마주한 현실〉에서 내숭 심리는 허영이나 겉치레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미의 기준과 자기관리 규범을 내면화한 개인이, 반복되는 실패와 부끄러움 속에서도 체면을 잃지 않은 채 다시 자신을 수습하려는 심리적 조절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내숭: 새해 다짐(feat. 내일부터)〉이 결심의 유예를 보여준다면, 〈내숭: 마주한 현실〉은 그 유예 뒤에 도착한 숫자와 몸의 현실을 대면하는 장면이다. 두 작품은 결심–실패–재결심이라는 순환 구조를 이루며 내숭 심리의 연속성을 서사화한다.
![[작품도판 17-1] 〈내숭: 마주한 현실〉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19_00.jpg)
![[작품도판 18] 〈결혼: 트랜스포머〉는 결혼을 앞둔 내숭녀가 미용실에서 머리와 화장을 손질받는 장면을 통해, 외모 관리와 결혼 준비가 만나는 지점을 보여주는 작](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20_00.jpg)
화면 속 내숭녀는 미용실 가운을 걸친 채 의자에 앉아 있으며, 머리에는 여러 개의 헤어롤과 미용 도구가 꽂혀 있다. 내숭녀의 뒤편에는 헤어 디자이너가 서서 머리를 손질하고 있고, 미용실의 기계와 도구들은 인물의 몸을 둘러싸듯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장면은 결혼 준비 과정에서 흔히 말하는 ‘스·드·메’ 가운데 메이크업과 헤어 단장의 과정을 시각화한다. 작품 제목의 ‘트랜스포머’는 자동차나 비행기가 로봇으로 변신하는 대중문화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며, 한 여성이 결혼식이라는 사회적 의례를 앞두고 ‘신부’라는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어 가는 과정을 해학적으로 드러낸다. 이때 미용실은 단순히 외모를 꾸미는 장소가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 신부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준비의 공간으로 기능한다.
[작품도판 18] 〈결혼: 트랜스포머〉, 2019,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26×75.5cm
이 작품에서 내숭 심리는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과 아름다워져야 한다는 압박이 겹쳐지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결혼을 앞둔 여성에게 외모 관리는 개인적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족, 하객, 사진, 사회적 평가의 시선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내숭녀는 단장을 받으며 더 나은 모습으로 보이고자 하지만, 그 과정은 편안한 휴식이라기보다 일정한 기준에 맞춰 자신을 조정하는 시간에 가깝다. 머리에 꽂힌 헤어롤과 미용 기계들은 아름다움의 완성 이전에 놓인 불완전한 중간 상태를 드러내며, 내숭녀의 몸은 변신을 기다리는 대상처럼 제시된다. 여기서 내숭은 단순히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결혼이라는 제도적 장면 앞에서 자신의 감정과 외형을 동시에 정돈하려는 심리적 태도로 나타난다.
미용실이라는 공간 또한 이 작품의 의미를 강화한다. 한국 사회에서 미용실은 머리와 화장을 손질하는 장소인 동시에, 여성들이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감정을 풀어내는 생활 공간으로 인식되어 왔다. 관리를 받는 시간은 외형을 다듬는 시간이면서도, 연애, 결혼, 가족, 직장, 외모에 관한 이야기가 오가는 대화의 시간이 된다. 영화 〈금발이 너무해〉에서도 주인공 엘 우즈가 상처받은 감정을 네일숍에서 풀어내고, 네일 관리 공간에서 다른 여성 인물과 관계를 맺는 장면이 반복된다. 이처럼 여성에게 관리의 공간은 단순히 몸을 꾸미는 장소가 아니라, 감정이 잠시 머물고 정리되는 공간으로도 작동한다. 〈결혼: 트랜스포머〉의 미용실 장면 역시 이러한 여성적 생활 풍속을 반영한다. 내숭녀는 결혼식이라는 공적인 장면을 준비하고 있지만, 그 준비의 과정은 지극히 사적이고 감정적인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다.
영화 〈금발이 너무해〉에서 엘 우즈는 이별 이후 친구들과 네일숍을 찾고, 하버드 생활 중 상처를 받은 뒤에도 네일숍에서 폴렛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이 장면들은 네일숍이 단순한 미용 공간을 넘어 여성 인물 간 대화와 감정 회복의 장소로 기능함을 보여준다.
따라서 〈결혼: 트랜스포머〉는 결혼 준비의 화려한 결과보다 그 이전에 놓인 몸의 조정과 감정의 대기 상태를 보여준다. 내숭녀는 아직 완성된 신부가 아니며, 미용 도구와 타인의 손길 사이에서 변신을 기다리는 중간 상태에 놓여 있다. 이 중간 상태는 내숭의 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겉으로는 설렘과 단정함을 유지해야 하지만, 그 안에는 부담, 기대, 피로, 불안,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 함께 움직인다. [작품도판 17] 〈내숭: 마주한 현실〉이 체중계 위에서 몸의 수치를 마주하는 자기검열의 장면이라면, [작품도판 18] 〈결혼: 트랜스포머〉는 미용실 의자 위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이미지로 자신을 조정해 가는 장면이다. 두 작품은 모두 여성의 몸이 관리와 평가의 대상이 되는 순간을 다루며, 현대 여성의 일상 속 내숭 심리가 자기관리와 자기연출의 방식으로 조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작품도판 19] 〈내숭: 환상의 떡볶이〉는 길거리 분식이라는 일상적 장면 속에서, 평범한 음식이 상업적 수사를 통해 특별한 대상으로 포장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22_00.jpg)
이 작품은 리어카 떡볶이집의 간판과 메뉴판, 비닐을 씌운 떡볶이 그릇, 가격이 적힌 안내문 등 구체적 생활 요소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내숭녀는 한 손에 쇼핑백을 든 채 몸을 리어카 쪽으로 기울이고 있으며, 얼굴과 몸짓에는 떡볶이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사람 특유의 미련과 설렘이 서려 있다. 핑크색 저고리와 분홍 간판, 사장의 앞치마는 하나의 색채 리듬을 이루며, ‘환상’이라는 과장된 단어와 결합해 생활 장면 전체를 유머러스하게 감싼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내숭녀가 떡볶이를 먹고 싶어 한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지점은 떡볶이라는 매우 평범한 길거리 음식이 ‘환상’이라는 말로 꾸며지고, 내숭녀가 그 과장을 알면서도 그 앞에 멈춰 선다는 점이다.
[작품도판 19] 〈내숭: 환상의 떡볶이〉, 2016,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11×160cm
‘환상의 떡볶이’라는 이름은 음식의 실제 품질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말이라기보다,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한 상업적 자기연출에 가깝다. 떡볶이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음식이고, 위생과 건강, 다이어트의 기준에서 보면 반드시 이상적인 선택은 아니다. 그럼에도 ‘환상’이라는 말은 이 평범한 음식을 특별한 경험처럼 보이게 한다. 이러한 명명 방식은 시장과 거리의 풍속 속에서 자주 발견된다. ‘원조’, ‘전통’, ‘명물’, ‘환상’과 같은 말들은 실제 차이를 증명하기보다,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언어적 장치로 작동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수사가 어느 정도 과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동시에 그 말이 만들어내는 기대감과 유혹을 완전히 거부하지 않는다.
![[작품도판 19-1] 〈내숭: 환상의 떡볶이〉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23_00.jpg)
이 지점에서 작품의 내숭 심리는 인물 내부의 욕망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이 작품은 타인의 내숭, 곧 음식을 판매하는 사람이 자신의 상품을 특별한 것처럼 꾸며내는 장면을 내숭녀가 바라보고 접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판매자는 평범한 떡볶이를 ‘환상’으로 포장하고, 내숭녀는 그 포장의 속내를 짐작하면서도 그 앞에 멈춘다. 여기서 내숭은 속임수나 거짓말이라기보다, 서로가 어느 정도 알고도 받아들이는 사회적 연출의 방식으로 나타난다. 판매자는 상품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고, 소비자는 그 언어가 완전히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잠시 그 환상에 참여한다. 따라서 [작품도판 19] 〈내숭: 환상의 떡볶이〉는 길거리 분식이라는 대중적 풍경 속에서, 욕망이 어떻게 언어로 포장되고 다시 소비되는지를 보여주는 현대 풍속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작품도판 20] 〈내숭: 명품호떡〉은 ‘명품’이라는 이상적 언어와 호떡이라는 생활적 음식이 충돌하는 장면을 통해, 상업적 이름 붙이기와 소비자의 기대 심리가 만](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24_00.jpg)
화면 속 내숭녀는 붉은 저고리와 회색 치마의 한복 차림으로, 한 손에는 막 집어 든 꼬치 간식을 입에 물고 다른 손에는 일회용 컵을 들고 있다. 뒤편에는 ‘명품호떡’이라는 간판 아래 토스트, 김밥, 호떡, 찹쌀떡이 빽빽하게 걸려 있고, 가게 앞에는 식용유 통과 플라스틱 용기, 골판지 상자 등이 생활의 흔적 그대로 드러나 있다. 화면을 덮는 갈색빛 뿌연 기운은 기름 냄새와 철판의 열기, 길거리의 먼지와 매연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며, 따뜻하고 먹음직스러운 분위기와 약간의 불편함을 함께 만들어 낸다. 즉 장면은 맛있고 친근하지만, 결코 명품이라는 말이 떠올리는 고급스러운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작품도판 20] 〈내숭: 명품호떡〉, 2016,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29×176cm
바로 이 어긋남이 작품의 핵심이다. 호떡은 누구나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길거리 간식이지만, 간판에 ‘명품’이라는 단어가 붙는 순간 특별한 음식처럼 제시된다. ‘명품’은 본래 희소성, 고급성, 품질의 차이를 암시하는 말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기름통과 종이상자, 좁은 가게와 함께 놓이면서 오히려 우스꽝스러운 간극을 만든다. 이 간극은 단순한 풍자가 아니라, 현대 소비 풍속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그냥 호떡보다 명품호떡’이라는 이름에 더 쉽게 반응한다. 같은 음식이라도 ‘35년 전통’, ‘원조’, ‘명물’이라는 말이 붙으면 더 믿을 만하고 더 특별한 것처럼 느낀다. 때로는 한 거리 전체가 원조를 내세우고, 어디가 진짜 원조인지 분명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모호함을 알면서도, 결국 그 키워드를 따라 움직인다.
![[작품도판 20-1] 〈내숭: 명품호떡〉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25_00.jpg)
이 작품에서 내숭은 내숭녀가 자신의 욕망을 숨기는 방식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작품은 ‘명품호떡’이라는 간판 자체가 수행하는 내숭을 보여준다. 평범한 호떡을 특별한 음식처럼 보이게 만드는 상업적 언어, 그리고 그 언어의 과장을 알면서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소비자의 태도가 함께 놓인다. 내숭녀는 그 간판이 만들어낸 기대 앞에서 완전히 속는 사람도 아니고, 냉소적으로 거리를 두는 사람도 아니다. 그는 그 과장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맛과 분위기, 이름이 주는 작은 설렘을 즐긴다. 이때 내숭은 속내를 감춘 개인의 태도라기보다, 판매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공유되는 연출의 감각으로 확장된다.
따라서 〈내숭: 명품호떡〉은 길거리 음식의 풍경 속에서 이름과 현실의 어긋남을 포착한 작품이다. ‘명품’이라는 말은 호떡의 현실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하지만, 그 음식을 바라보는 태도와 기대를 바꾼다. 내숭녀는 그 언어가 만들어낸 작은 환상에 참여하면서, 평범한 간식을 특별한 경험처럼 받아들인다. 이 작품은 현대사회에서 소비가 단순히 물건이나 음식을 사는 행위가 아니라, 이름과 이미지, 과장과 기대를 함께 소비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결국 〈내숭: 환상의 떡볶이〉와 〈내숭: 명품호떡〉은 모두 길거리 음식이라는 속의 세계 안에서, 평범한 대상을 특별한 것처럼 꾸미는 언어적 내숭과 그것을 알면서도 받아들이는 소비자의 심리를 현대 풍속화의 장면으로 구성한다.
![[작품도판 21] 〈내숭: 내숭동산〉은 놀이공원이라는 해방의 공간 속에서, 평소에는 감추어져 있던 욕망과 유희의 감정이 여러 모습으로 표출되는 장면을 보여주는 작](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26_00.jpg)
![[작품도판 21] 〈내숭: 내숭동산〉은 놀이공원이라는 해방의 공간 속에서, 평소에는 감추어져 있던 욕망과 유희의 감정이 여러 모습으로 표출되는 장면을 보여주는 작](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205_00.jpg)
[작품도판 21] 〈내숭: 내숭동산〉, 2016,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250×396cm
화면에는 화려한 회전목마가 크게 배치되어 있고, 그 위와 주변에는 같은 내숭녀가 서로 다른 자세와 행동으로 반복 등장한다. 어떤 내숭녀는 회전목마에 올라타고, 어떤 내숭녀는 풍선을 들고 있으며, 또 다른 내숭녀는 사진을 찍거나 손을 흔드는 자세를 취한다. 이들은 서로 다른 인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 인물의 여러 시간과 감정 상태를 한 화면 안에 동시에 배치한 것이다. 이러한 구성은 한 화면에 서로 다른 시간의 장면을 함께 그리는 이시동도법(異時同圖法)과 연결된다. 본 작품에서 이시동도법은 단순한 시간 표현의 방식이 아니라, 놀이공원이라는 공간에 들어섰을 때 한 사람 안에서 동시에 솟아나는 여러 욕망과 충동을 시각화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놀이공원은 일상의 규범에서 잠시 벗어나는 장소이다. 평소에는 하고 싶은 것이 많아도 체면과 역할, 나이와 상황 때문에 그것을 모두 드러내기 어렵다. 그러나 놀이공원에 들어서는 순간, 사람은 평소보다 더 쉽게 웃고, 더 적극적으로 사진을 찍고, 풍선을 들고, 놀이기구를 타며, 어린아이 같은 감정을 드러낸다. 〈내숭: 내숭동산〉에서 같은 내숭녀가 여러 명으로 반복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감정의 분출을 보여준다. 한 명의 인물이 하나의 태도만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었던 여러 행동과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 때문에 화면 속 내숭녀는 여러 명으로 나뉘어 나타난다. 이는 현대인의 일상 속에서 억제되어 있던 유희 욕망이 놀이공원이라는 풍속 공간 안에서 다중적인 모습으로 표출되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놀이공원은 완전한 해방의 공간으로만 제시되지 않는다. 회전목마는 화려하고 낭만적인 놀이기구이지만, 동시에 계속 돌면서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장치이다. 내숭녀들은 놀이공원 안에서 설렘과 해방감을 느끼지만, 그 감정은 완전히 무장 해제된 상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사진을 찍고, 포즈를 취하고, 풍선을 든 모습은 즐거움의 표현이면서도 타인의 시선 앞에서 자신을 어떻게 보이게 할 것인가를 의식하는 자기연출의 장면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내숭: 내숭동산〉의 내숭 심리는 즐거움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드러내는 방식 자체를 조율하는 태도로 나타난다.
따라서 〈내숭: 내숭동산〉은 놀이공원을 현대 여성의 일상 풍속이 확장되는 공간으로 보여준다. 길거리 음식점의 간판이 ‘환상’과 ‘명품’이라는 언어로 평범한 대상을 특별하게 꾸몄다면, 놀이공원은 공간 전체가 일상의 피로와 욕망을 잠시 다른 모습으로 바꾸어 놓는 장치가 된다. 내숭녀는 그 안에서 평소에 억제했던 유희와 동심, 자기표현의 욕망을 여러 모습으로 드러내지만, 동시에 사진과 포즈, 시선 의식 속에서 다시 자신을 연출한다. 결국 이 작품은 현대인의 해방 욕망이 놀이공원이라는 공간 안에서 어떻게 표출되고, 그 표출마저 다시 내숭의 방식으로 조율되는지를 보여주는 현대사회 풍속화의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작품도판 22] 〈21세기 사우나: 이태리 스타일〉은 목욕탕이라는 일상 공간을 통해 몸을 내려놓고 싶으면서도 완전히 자유로워지지는 못하는 여성의 복합적 심리를](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28_02.jpg)
작품에는 분홍 장판이 깔린 때밀이 침대, 벽에 붙은 세신 요금표, 번호표, 바닥을 고정하고 있는 해진 이태리타월 등이 등장한다. 이러한 사물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수많은 여성의 몸과 시간이 축적된 생활의 흔적으로 기능한다. ‘이태리스타일’이라는 제목은 한국 목욕 문화의 상징이 된 이태리타월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실제 이탈리아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에도 한국적 생활 관습 속에 굳게 자리 잡은 명칭이라는 점에서 생활적 아이러니를 내포한다. 목욕탕은 사회적 역할과 직업, 일상의 겉치레가 잠시 희미해지는 공간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체형과 피부, 나이와 건강 상태를 서로 의식하게 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곳은 가장 편안한 장소인 동시에 가장 예민한 자기비교와 자기노출의 장소가 된다.
[작품도판 22] 〈21세기 사우나: 이태리스타일〉, 2017,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48.2×33.1cm
이경률, 「현대 미술에 나타난 사진의 활용과 그 유형학적 분류」, 비교문화연구 33(2013), 198, 227.
(좌)
![[작품도판 22-1] 〈21세기 사우나: 이태리스타일〉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29_02.jpg)
(중앙)
![[작품도판 22-2] 〈21세기 사우나: 이태리스타일〉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29_03.jpg)
(우)
![[작품도판 22-3] 〈21세기 사우나: 이태리스타일〉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29_04.jpg)
이가희, 「지식재산 스토리텔링, 이태리타올 스토리」, 파이낸셜뉴스, 2018.04.01.
이 작품에서 내숭 심리는 특별한 사건보다 미세한 몸짓과 태도 속에서 드러난다. 몸을 맡기고 쉬고 싶으면서도 수건으로 몸을 반쯤 가리는 습관, ‘살 빠졌다’, ‘피부 좋아졌다’는 말을 주고받으면서도 속으로는 서로를 비교하는 시선, 번호표를 들고 차례를 기다리며 친밀한 수다를 나누면서도 끝까지 완전히 무장 해제되지는 못하는 긴장감이 모두 그 예이다. 〈21세기 사우나: 이태리스타일〉은 한복이 등장하지 않는 드문 사례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의 몸에 새겨진 생활의 기억과 습관 자체가 하나의 풍속으로 작동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내숭 심리는 몸과 감정을 동시에 내려놓고 싶지만 끝내 완전히 놓지 못하는 상태, 즉 편안함과 부끄러움이 함께 작동하는 일상의 심리로 나타난다.
주평탁, 「온양온천 목욕탕 아카이브 사진전」, 천안아산신문, 2024.11.18.
종합하면 〈내숭: 새해 다짐(feat. 내일부터)〉, 〈내숭: 마주한 현실〉, 〈결혼: 트랜스포머〉, 〈내숭: 환상의 떡볶이〉, 〈내숭: 명품호떡〉, 〈내숭: 내숭동산〉, 〈21세기 사우나: 이태리 스타일〉은 모두 여성의 일상적 경험 속에서 내숭 심리가 어떻게 구체적 장면으로 형성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냉장고 앞의 폭식, 체중계 위의 자기검열, 미용실에서의 단장, 길거리 떡볶이와 호떡 앞의 망설임, 놀이공원에서의 유희와 자기표현, 사우나에서의 해방과 수치심은 모두 사소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욕망과 규범, 자기위로와 자기감시, 체면과 해방감이 교차하는 심리적 장면이다. 이 작품들에서 내숭은 단순히 인물 내부의 욕망을 감추는 태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내숭: 환상의 떡볶이〉와 〈내숭: 명품호떡〉에서 보듯, 내숭은 상품을 판매하는 사람이 평범한 음식을 특별한 것처럼 꾸미는 상업적 언어에서도 작동한다. 또한 〈내숭: 내숭동산〉에서 보듯, 내숭은 놀이공원이라는 해방의 공간 안에서 억제된 유희 욕망이 여러 모습으로 표출되면서도, 다시 사진과 포즈, 시선 의식 속에서 조율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 장면들에서 내숭은 인물의 자기연출이면서 동시에, 현대 소비 풍속과 여가 공간 속에서 판매자와 소비자, 공간과 관람자가 서로 알고도 받아들이는 사회적 연출의 방식으로 확장된다. 결국 이 작품들은 여성의 일상을 하나의 생활 장면으로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관리, 외모 관리, 식욕, 소비, 유희, 수치심, 해방감 사이에서 내숭 심리가 어떻게 형성되고 유통되는지를 현대사회 풍속화의 서사로 구성한다. 이러한 논의는 다음 항에서 결혼·출산·육아의 장면 속 내숭 심리를 살피는 토대가 된다.
2) 여성의 결혼·출산·육아의 풍속적 재조명
한국 사회에서 결혼, 출산, 육아는 여성의 생애를 구성하는 대표적 사건이자, 동시에 특정한 역할 수행과 감정 규범을 집중적으로 요구하는 사회적 장면이다. 이는 단지 개인의 선택이나 가족 내부의 사적 경험에 머무르지 않고, 좋은 아내, 좋은 며느리, 좋은 어머니라는 규범적 여성상과 긴밀히 연결되며 여성의 몸과 노동, 감정 상태와 자기인식 전반에 영향을 주어 왔다. 그러나 실제 삶의 차원에서 여성들은 이러한 사회적 기대에 단순히 일치하지 않는다.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피로, 부담, 억울함, 자기 연민, 보상받고 싶은 욕망, 다른 삶에 대한 상상 등이 끊임없이 발생하며, 이러한 감정들은 외부로 직접 표출되기보다 체면과 책임의 언어 속에서 우회적으로 조정되는 경우가 많다. 본 항에서는 이러한 지점에 주목하여, 〈내숭시리즈〉에 나타난 결혼·출산·육아의 장면을 사회적 역할과 개인의 감정이 교차하는 현대 풍속의 장면으로 읽고자 한다. 여기서 내숭 심리는 단순한 꾸밈이나 위선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외면과 실제로 작동하는 내면 사이의 간극을 조절하고 유지하는 심리 구조로 이해된다.
(좌)
![[참고도판 30] 윤석남, 〈어머니의 이야기〉, 1993, 혼합매체, 가변설치, 서울시립미술관 소장](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31_00.jpg)
(우)
![[참고도판 31] 마사 로슬러, 〈부엌의 기호학(Semiotics of the Kitchen)〉, 1975, 흑백 사운드 비디오, 6분 9초, 뉴욕 현대미술관(M](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31_01.jpg)
이러한 문제의식은 현대 여성미술에서 반복적으로 다루어져 온 어머니와 가사노동의 이미지와도 연결된다. 한국 여성미술의 흐름에서 윤석남(尹錫男, 1939-)은 어머니와 여성의 삶을 주요한 주제로 삼아, 모성이라는 이름 아래 지속되어 온 여성의 노동과 소진, 그리고 그 안에 남아 있는 강인함을 조형화하였다. 특히 [참고도판 30] 윤석남의 〈어머니의 이야기〉는 자신의 어머니이자 어머니가 된 작가 자신, 나아가 한국 여성의 이야기를 함께 담은 작업으로, 부엌이라는 여성적 공간 안에서조차 편안할 수 없었던 내면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한편 [참고도판 31] 마사 로슬러(Martha Rosler, 1943-)의 〈부엌의 기호학(Semiotics of the Kitchen)〉은 주방 도구와 요리 시연의 형식을 이용하여, 여성에게 부여된 가사노동과 주부 역할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기호화되는지를 비판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사례들은 결혼과 출산, 육아가 사적인 가족 경험에 머무르지 않고, 여성에게 특정한 노동과 감정 규범을 반복적으로 요구하는 사회적 장면임을 보여준다. 다만 〈내숭시리즈〉는 이러한 문제를 직접적인 고발이나 기록의 방식으로 제시하기보다, 결혼과 육아의 장면 안에서 여성이 체면과 책임을 유지하면서도 피로, 불안, 자기 연민, 보상받고 싶은 욕망을 함께 드러내는 방식에 주목한다. 이 점에서 본 항의 작품들은 결혼·출산·육아를 이상화된 가족 서사가 아니라, 내숭 심리가 가장 강하게 조정되는 현대 여성 풍속의 장면으로 다룬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윤석남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자신의 어머니, 어머니가 된 작가 자신, 모든 한국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설명하며, 부엌에서도 불편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여성의 내면을 시각화한 작업으로 해석한다. 서울시립미술관, “윤석남, 〈어머니의 이야기〉”, 소장품 검색, 검색일 2026.04.30.
(좌)
[작품도판 8] 〈결혼: 육아 전쟁〉, 2019,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135×113cm
(우)
[참고도판 32] 자크-루이 다비드, 〈생베르나르 고개의 나폴레옹(Bonaparte franchissant le Grand-Saint-Bernard)〉, 1801, 캔버스에 유채, 261×221cm, 베르사유궁 소장
Martha Rosler, 〈Semiotics of the Kitchen〉, 1975, video, black and white, sound, 6:09,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검색일 2026.04.30.https://www.moma.org/collection/works/88937汫h.
〈내숭시리즈〉에서 결혼과 출산, 육아의 장면은 더 이상 행복한 가족 서사나 숭고한 모성의 미화로만 제시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여성의 일상에 과도하게 집중된 책임과 노동, 그리고 그 안에서도 무너지지 않으려는 자기 조절이 동시에 작동하는 심리적 장면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점에서 〈결혼: 육아 전쟁〉, 〈결혼: 피로타〉, 〈결혼: 천지차이〉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결혼 이후 여성의 삶을 다루면서도, 공통적으로 내숭 심리를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개인적 욕망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드러낸다. 첫 번째 작품이 육아와 가사노동의 현실을 영웅 서사의 형식으로 치환한다면, 두 번째 작품은 숭고한 모성의 도상 속에 누적된 피로와 자기 연민을 삽입한다. 세 번째 작품은 비혼과 기혼이라는 삶의 양식을 병치하여, 결혼을 둘러싼 동경과 부담, 자유와 책임이 동시에 작동하는 심리 구조를 보여준다. 이들 작품은 모두 결혼과 가족이라는 제도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이상적 역할과, 그 제도 속에서 실제로 경험되는 감정의 복합성을 풍속화적 장면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작품도판 8-1] 〈결혼: 육아 전쟁〉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33_00.jpg)
[작품도판 8] 〈결혼: 육아 전쟁〉은 자크-루이 다비드의 〈생 베르나르 고개의 나폴레옹(Bonaparte franchissant le Grand-Saint-Bernard)〉을 패러디한 작품으로, 신고전주의 회화의 영웅 서사를 오늘날의 육아 현실과 중첩시킨 현대사회 풍속화이다. 원작에서 나폴레옹은 험준한 산악 지형을 돌파하며 전장을 향해 나아가는 영웅으로 묘사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 자리를 아이를 업은 한국의 어머니가 대신한다. 휘날리는 망토, 치켜든 팔, 역동적으로 치솟는 말의 자세는 분명 영웅적 형식을 따르고 있으나, 인물이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전투를 위한 칼과 장갑이 아니라 고무장갑과 먼지떨이이며, 등에 업힌 존재 또한 전리품이 아니라 울음을 터뜨린 아이이다.
(좌)
![[작품도판 8-2] 〈결혼: 육아 전쟁〉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34_00.jpg)
(우)
![[참고도판 32-1] 자크-루이 다비드, 〈생 베르나르 고개의 나폴레옹〉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34_01.jpg)
Simon, Lee, 앞의 책, 142-147.
이러한 치환은 육아와 가사노동이 단지 사적인 돌봄의 차원이 아니라신체적·심리적으로 큰 소모를 요구하는 노동임을 과장된 방식으로 드러낸다. 즉 사회가 여성에게 자연스러운 의무처럼 부과해 온 돌봄의 역할을, 작품은 영웅적 수행의 형식으로 바꾸어 보여줌으로써 그 과중함을 역설적으로 부각한다. 이 작품에서 내숭 심리는 먼저 어머니라는 역할이 요구하는 이상적 표정과 실제로는 지쳐 있는 몸 사이의 간극에서 발생한다. 화면 속 인물은 마치 두려움 없이 전진하는 전사처럼 보이지만, 그 위엄은 육아 현실의 버거움을 가리는 외피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그는 자신이 놓인 현실을 숭고하고 비장한 서사로 바꾸어 제시함으로써, 끝이 보이지 않는 반복 노동을 견뎌 내고 있다. 이때 내숭 심리는 단순히 감정을 숨기는 태도가 아니라, 자신의 소진을 무너짐의 모습으로 드러내지 않고 ‘버텨 내는 나’, ‘해내는 나’의 형상으로 조절하는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좌)
![[작품도판 8-3] 〈결혼: 육아 전쟁〉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34_02.jpg)
(우)
![[참고도판 32-2] 자크-루이 다비드, 〈생 베르나르 고개의 나폴레옹〉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34_03.jpg)
(좌)
![[작품도판 8-4] 〈결혼: 육아 전쟁〉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35_00.jpg)
![[작품도판 8-4] 〈결혼: 육아 전쟁〉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35_01.jpg)
(우)
[참고도판 32-3] 자크-루이 다비드, 〈생 베르나르 고개의 나폴레옹〉의 부분도
화면 왼쪽 아래에 새겨진 ‘#육아전쟁’이라는 문구 또한 중요하다. 이는 원작에 등장하는 ‘BONAPARTE’의 각인을 디지털 시대의 해시태그 언어로 변용한 것으로, 육아가 더 이상 개별 가정의 사소한 문제로 머무르지 않고, 온라인상에서 공유되는 집단적 고충이자 공감의 언어로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배경에 삽입된 전통 혼례의 풍속 장면 역시 결혼과 가족이라는 제도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여성의 삶을 구조적으로 규정해 왔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이처럼 [작품도판 8] 〈결혼: 육아 전쟁〉은 영웅 서사와 혼례 풍속, 육아의 생활 오브제를 한 화면에 결합함으로써, 여성의 돌봄 노동을 현대사회 풍속의 중심 장면으로 재조명하는 동시에, 그 안에서 작동하는 내숭 심리를 시각화한다.
![[작품도판 23] 〈결혼: 피로타〉는 [참고도판 33]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의 〈피에타(Pietà](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36_04.jpg)
(좌)
[작품도판 23] 〈결혼: 피로타〉, 2019,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223×330cm
(우)
![[참고도판 33]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피에타(Pietà)〉, 1498-1499, 대리석, 195×174cm, 성 베드로 대성전 소장](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36_03.jpg)
(좌)
![[작품도판 23-1] 〈결혼: 피로타〉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36_00.jpg)
(중앙)
![[작품도판 23-2] 〈결혼: 피로타〉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36_01.jpg)
(우)
![[작품도판 23-3] 〈결혼: 피로타〉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36_02.jpg)
![[작품도판 23-4] 〈결혼: 피로타〉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37_00.jpg)
작품 속 소품과 텍스트는 이러한 내숭 심리를 더욱 구체화한다. 파마머리와 고무장갑, 청소 도구는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아줌마’ 혹은 가사노동자의 상투적 이미지로 소비되어 온 기호들이다. 이러한 익숙한 소품은 웃음을 유발하는 유머의 장치처럼 보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웃음 뒤에 숨은 고단함과 서글픔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하단의 목각 기러기 한 쌍은 전통 혼례에서 부부 화합과 정절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이해되어 왔지만, 여성 기러기의 주둥이에만 실이 묶여 있다는 설정은 결혼 제도 안에서 여성에게 더 강하게 요구되어 온 침묵과 순종의 윤리를 비판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화면 양옆의 ‘서울예식장’, ‘신부 김현정’이라는 텍스트는 결혼이 순수하게 사적인 사랑의 사건이 아니라, 전통적 혼례 문화와 도시적 예식 산업, 가족 제도와 사회적 호명이 중첩된 구조적 사건임을 보여준다.
(좌)
![[작품도판 23-5] 〈결혼: 피로타〉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37_01.jpg)
(우)
![[작품도판 23-6] 〈결혼: 피로타〉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37_02.jpg)
국립민속박물관, “목기러기”, 한국민속대백과사전, 검색일 2026.04.25, https://folkency.nfm.go.kr/topic/detail/126汫h.
이 작품에서 내숭 심리는 좋은 며느리, 좋은 아내, 좋은 어머니로 보이고자 하는 외적 태도와, 실은 너무도 피곤한 자신을 먼저 끌어안고 위로하고 싶은 내적 욕망이 공존하는 상태로 나타난다. 곧 사회적으로는 숭고한 모성의 자세를 유지해야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스스로를 안아 주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상태가 패러디의 형식 안에 담겨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결혼: 피로타〉의 내숭 심리는 단순한 체면치레가 아니라, 피로와 분노를 직접적으로 표출하기 어려운 여성의 현실 속에서 유머와 자기 아이러니, 자기 연민의 방식으로 감정을 우회시키는 심리적 조절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작품도판 24] 〈결혼: 천지차이〉는 앞선 두 작품과는 다소 다른 각도에서 결혼을 둘러싼 내숭 심리를 드러낸다.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시스티나 성당](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39_00.jpg)
[작품도판 24] 〈결혼: 천지차이〉, 2019,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99×428cm
![[참고도판 34]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아담의 창조(The Creation of Adam)〉, 1511, 프레스코화, 280×570cm, 시스티나 성당 소장](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39_01.jpg)
왼편의 비혼 여성은 도시 풍경과 롯데타워, 명품 상자, 브랜드 가방, 화장품과 함께 놓여 있으며, 화면은 비교적 연한 수묵담채로 처리되어 있다. 이 담담하고 절제된 색조는 자기 시간을 확보한 삶, 소비와 취향, 독립성과 여유를 상징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 주변에 놓인 명품 상자와 가방, 화장품은 비혼의 자유가 곧 소비와 자기 연출의 감각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곧 이 삶 또한 사회적 평가와 욕망의 구조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반면 오른편의 기혼 여성은 붉은 한복을 입고 아이와 가족, 금줄과 여러 상징물에 둘러싸인 채 화면 안으로 밀려들 듯 등장한다. 이쪽 영역은 진채의 강렬한 색으로 채워져 있어, 한눈에도 왼편보다 훨씬 과밀하고 역동적인 인상을 준다. 붉은 옷자락과 휘날리는 금줄, 인물 주변을 에워싼 형상들은 결혼과 출산 이후의 삶이 단순히 안정과 완성의 이미지가 아니라, 수많은 관계와 책임, 기대와 감정의 소용돌이를 동반하는 상태임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가족을 이루고 생명을 품는 충만함의 감정도 담겨 있지만, 동시에 역할 과잉과 노동의 밀도, 사회적 기대의 압박도 함께 응축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비혼과 기혼 가운데 어느 한쪽을 단순히 이상화하거나 열등하게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혼의 삶에는 자유와 선택 가능성이 있지만, 동시에 소비와 자기관리의 압박이 존재한다. 기혼의 삶에는 가족과 전통, 관계의 충만함이 있지만, 동시에 책임과 소진, 역할의 과잉이 따른다. 이 둘은 손끝을 뻗으며 서로를 바라보지만, 완전히 하나가 되지도, 완전히 분리되지도 않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내숭 심리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나’라는 사회적 표면과, ‘다른 삶도 궁금한 나’라는 은밀한 내면이 공존하는 구조로 드러난다. 비혼 여성은 결혼과 출산이 지닌 충만함과 사회적 안정성을 상상할 수 있고, 기혼 여성은 비혼의 자유와 자기 시간을 동시에 동경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쪽도 자신의 삶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않기에, 인물들은 현재의 선택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가능성을 은밀히 바라보는 내면의 흔들림을 안고 있다. [작품도판 24] 〈결혼: 천지차이〉는 바로 그 심리의 틈을 포착하며, 결혼을 둘러싼 내숭 심리를 현대사회 풍속의 문제로 확장한다.
종합하면 [작품도판 8] 〈결혼: 육아 전쟁〉, [작품도판 23] 〈결혼: 피로타〉, [작품도판 24] 〈결혼: 천지차이〉는 결혼·출산·육아를 둘러싼 여성의 삶을 재현하면서, 그 이면에서 작동하는 내숭 심리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구체화한 작품들이다. 〈결혼: 육아 전쟁〉이 육아 노동의 과중함을 영웅 서사의 형식으로 전치하여 역할 수행의 비장함과 버텨 냄의 태도를 드러낸다면, 〈결혼: 피로타〉는 숭고한 모성의 도상 속에 자기 소진과 자기 연민의 감정을 중첩함으로써, 여성에게 요구되는 희생의 윤리를 비판적으로 가시화한다. 이어 〈결혼: 천지차이〉는 비혼과 기혼이라는 삶의 조건을 병치하여, 결혼이 완성이나 결핍 가운데 하나로 환원될 수 없는 복합적 상태이며, 서로 다른 삶의 양식이 각기 동경과 부담,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세 작품에서 여성은 더 이상 고정된 역할의 수행자로만 제시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적 규범과 개인적 욕망, 체면과 피로, 책임과 자기보호 사이를 오가며 자신의 위치를 조정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 작품들은 결혼·출산·육아를 단순한 사적 경험의 재현이 아니라, 동시대 한국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감정의 질서와 역할의 구조를 드러내는 현대사회 풍속화로 이해하게 한다. 이때 내숭 심리는 그러한 현실을 은폐하는 부정적 태도가 아니라, 상충하는 감정과 역할을 한 몸 안에서 조정하며 살아가기 위해 작동하는 심리적 조절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 이러한 논의는 다음 절에서 다룰 현대 풍속 이미지의 재맥락화와 확산 문제로 이어지며, 〈내숭시리즈〉가 개인의 일상과 사회적 유통 구조를 어떻게 함께 다루는지 살피는 기반이 된다.
3. 현대 풍속 이미지의 재맥락화와 확산
본 절에서는 〈내숭시리즈〉가 작품 내부의 화면 구성과 작품 외부의 유통 환경 속에서 어떻게 현대 풍속 이미지로 재맥락화되는지 살펴본다. 〈내숭시리즈〉의 내숭 이미지는 더 이상 전시장 벽면에만 머무르지 않고, 브랜드 로고와 결합된 인물 이미지, 식품 패키지, 백화점 공간, 신용카드 등의 형식으로 생활 세계 안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이미지 활용이나 상품화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내숭 심리가 담긴 장면이 소비, 이동, 선물, 결제와 같은 구체적 행위에 밀착되어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현대인의 일상 속에서 새롭게 인식되고 공유되는 과정을 포함한다.
먼저 제1항에서는 티파니(Tiffany & Co.), 슈프림(Supreme), 스타벅스(Starbucks) 등 브랜드 로고가 화면 속 내숭 인물과 결합할 때, 결혼·청년 문화·자기관리와 같은 삶의 국면이 어떻게 현대 풍속 이미지로 재맥락화되는지 살핀다. 이때 브랜드 로고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인물이 어떻게 보이고자 하는가와 실제로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는 시각적 기호로 작용한다. 이어지는 제2항에서는 해태제과 연양갱, AK플라자, 우리카드 등과의 브랜드 연계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브랜드가 요구하는 명료한 이미지와 내숭 심리의 이중 구조가 어떻게 조율되는지 검토한다. 또한 상품 패키지, 상업 공간, 금융 카드라는 서로 다른 매체가 내숭 이미지의 크기와 반복 방식, 사용 맥락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도 함께 살핀다.
이를 통해 내숭 이미지는 소비문화 속으로 편입되는 동시에, 더 많은 사람이 내숭 심리를 일상 속에서 접하고 공유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본 절은 이러한 과정을 바탕으로 〈내숭시리즈〉가 현대사회 풍속화로서 전시장 밖의 생활 세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나아가 다음 항에서는 브랜드 로고가 작품 안에서 어떠한 시각적 기호로 작용하며, 내숭 인물의 태도와 심리를 어떻게 재맥락화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브랜드 로고를 활용한 현대 풍속 이미지의 재맥락화
〈내숭시리즈〉의 화면에 브랜드 로고가 등장하게 된 것은 브랜드 연계 프로젝트나 마케팅 기획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실제로 애착을 가지고 사용하거나 쉽게 소유하기 어려워 더욱 동경하게 된 특정 브랜드의 물건들을 그림 속 장면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신발·가방·커피 등 구체적인 소비 기호를 작품의 내용과 장면 구성에 맞게 배치하는 실천이 먼저 있었고, 이후 일부 작품들이 알려지면서 몇몇 브랜드와의 연계 프로젝트들이 뒤따르게 되었다. 따라서 본 항에서는 브랜드 연계 프로젝트의 결과보다, 자발적으로 화면에 삽입된 브랜드 로고들이 내숭 심리와 현대 풍속 이미지를 어떻게 재맥락화하는지에 초점을 둔다.
브랜드 로고는 단순한 상품 표식이 아니라, 특정 시대의 라이프스타일·계급 감각·취향·욕망이 응축된 시각 기호이다. 한복 차림으로 묘사된 인물상은 조선 후기 이래 전통 인물화의 계보와도 연결되므로, 그 자체만으로는 시간대가 다소 모호하게 인식될 수 있다. 그러나 화면 속에 티파니 반지 상자, 슈프림 로고, 스타벅스 컵과 같은 구체적 브랜드 기호가 등장하는 순간, 장면은 21세기 소비사회의 생활양식과 심리를 다루는 현대 풍속으로 읽히게 된다. 전통 복식 위에 덧입혀진 이 로고들은 작품이 과거 풍속의 재현이 아니라, 오늘의 사회·문화적 정황을 담고 있음을 보여주는 시대성의 표지가 된다.
David A. Aaker, Building Strong Brands(New York: Free Press, 1996), 68-84.
동시에 브랜드 로고는 내숭 심리를 드러내는 효과적인 매개로 기능한다. 현대 소비사회에서 특정 브랜드를 선택하고 착용하는 행위는 실용적 필요를 넘어, 자신이 속하거나 속하고 싶은 계층·취향·생활 방식을 사회적으로 표명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따라서 화면 속 브랜드 로고는 인물의 욕망·불안·기대와 같은 내면 상태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여 연출한 외면의 태도, 곧 내숭을 시각적으로 가시화하는 이중적 표지로 작용한다.
Jennifer L. Aaker, “Dimensions of Brand Personality”, Journal of Marketing Research 34-3(1997), 347-356.
또한 티파니·슈프림·스타벅스와 같은 글로벌 브랜드 로고는 언어를 공유하지 않는 관람자에게도 직관적으로 인식 가능한 기호라는 점에서, 한복·사주단자·전통 혼례 절차·근린공원 운동기구 등 한국적 맥락을 넘어 내숭 심리를 세계와 소통시키는 통로를 제공한다. 한국적 전통 요소와 더불어, 전 세계 대도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브랜드 기호들이 한 화면에 배치됨으로써, 작품은 특정 지역의 특수성을 지닌 이미지이자 동시대 도시인의 보편적 풍경을 담은 이미지로 동시에 읽힐 수 있게 된다.
![[작품도판 25] 〈결혼: 생각하는 예비 신부〉는 전통 혼례의 상징물과 현대 결혼 문화를 대표하는 브랜드를 한 화면에 병치함으로써, 결혼을 둘러싼 내숭 심리의 복](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44_00.jpg)
(좌)
[작품도판 25] 〈결혼: 생각하는 예비 신부〉, 2019,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73×129cm
(우)
![[참고도판 35] 오귀스트 로댕, 〈생각하는 사람(Le Penseur, The Thinker)〉, 1880, 청동, 높이 186cm, 로댕 미술관 소장](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44_01.jpg)
Tiffany & Co., “The Tiffany Blue Box®”, 검색일 2026.04.30, https://www.tiffany.com/world-of-tiffany/heritage/blue-box-story.html汫h.
그러나 인물의 표정과 자세는 이러한 외적 조건과 미묘한 어긋남을 보인다. 예비 신부는 기쁨과 설렘을 단순히 드러내는 대신, 턱을 괴고 깊은 사색에 잠긴 얼굴로 묘사되어 있다. 결혼 제도가 요구하는 체면과 역할에 응답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 느끼는 불안·회의·두려움이 이 표정 속에 함께 놓인다. 이때 티파니 반지는 양가적 의미를 지닌다. 한편으로는 전통적 절차와 현대적 로망을 모두 충족시켜 주는 최종적 상징으로 기능하며, 예비 신부가 오랫동안 상상해 온 ‘이상적인 결혼’의 완성을 암시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그 과도하게 상징화된 이미지 때문에, 인물이 느끼는 심리적 부담과 갈등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반지는 ‘이제 행복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를 응축하고 있으나, 인물의 표정은 그 기대와 어긋난 감정의 잔여를 숨기지 않는다. 이 장면에서 브랜드 로고는 축복받는 예비 신부로 보이고자 하는 태도와,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끝내 망설이고 질문을 던지는 마음 사이에서 발생하는 내숭 심리를 응축적으로 드러낸다.
(좌)
![[작품도판 25-1] 〈결혼: 생각하는 예비 신부〉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44_02.jpg)
(중앙)
![[작품도판 25-2] 〈결혼: 생각하는 예비 신부〉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44_03.jpg)
(우)
![[작품도판 25-3] 〈결혼: 생각하는 예비 신부〉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44_04.jpg)
![[작품도판 26] 〈폼생폼사: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2019,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33×98cm](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45_00.jpg)
[작품도판 26] 〈폼생폼사: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은 스트릿 패션 브랜드 로고의 차용을 통해, 전통 복식과 동시대 청년 문화가 겹쳐지는 지점을 보여주는 현대사회 풍속화이다. 화면 속 인물은 화려한 그래픽이 인상적인 스케이트보드를 한 손에 들고 공중으로 높이 도약하는 동세를 취하고 있으며, 머리에는 슈프림 로고가 박힌 카모플라주 패턴의 스냅백을 쓰고 있다. 상반신은 레이스 소재가 더해진 저고리와 한복 치마로 구성되어 있고, 발에는 활동적인 스니커즈와 ‘내숭’의 영문 텍스트 패턴이 들어간 양말이 함께 표현되어 있다. 슈프림은 1994년 뉴욕 맨해튼 라파예트가에서 시작된 브랜드로, 뉴욕 스케이트 문화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성장했다. 따라서 한복과 슈프림 로고의 조합은 전통과 스트릿 문화가 충돌하면서도 새로운 조합을 이루는 장면을 형성한다.
(좌)
![[작품도판 26-1] 〈폼생폼사: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46_00.jpg)
(우)
![[작품도판 26-2] 〈폼생폼사: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46_01.jpg)
Supreme, “About”, 검색일 2026.04.30, https://supreme.com/about汫h.
이 작품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폼’에 대한 집착이다. 인물은 점프하는 포즈, 스케이트보드, 스냅백, 스니커즈와 양말의 세부에 이르기까지, 전신을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과감하게 드러내고 있다.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이는 억눌린 규범에서 벗어나 자유와 도전을 추구하는 청년 세대의 이미지에 가깝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와 대담함은 어느 정도 연출된 결과이기도 하다. 무엇 하나 우연히 선택된 요소가 아니라, ‘쿨하고 당당한 나’를 보여 주기 위해 조합된 장면이라는 점에서, 여기에는 타인의 시선을 강하게 의식하는 내면의 불안과 욕망이 함께 존재한다.
한복이라는 전통 복식은 오랜 기간 단정함·절제·정숙함과 연관된 여성상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이다. 반면 슈프림 로고는 파격·반항·개성을 강조하는 젊은 문화의 상징이다. 두 상징이 한 몸 안에서 겹쳐져 있는 이 장면은, 인물이 전통적 여성성과 현대적 쿨함 사이에서 어느 한쪽도 완전히 포기하지 못한 채 두 가치의 경계 위에 서 있음을 드러낸다. 단정한 한복을 입은 채 거리 문화의 기호들을 덧입고, 과감한 점프 동작을 취하는 모습 속에는 기존의 규범에서 벗어나고자 하면서도 여전히 그 규범을 내면화하고 있는 복합적 상태가 담겨 있다. 이러한 상태는 두 상반된 가치 모두를 갖고자 하는 욕망, 즉 품위 있어 보이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자유롭고 싶어 하는 내숭 심리와 맞닿아 있다.
슈프림 로고는 이러한 내적 상태를 보다 넓은 동시대성의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이 로고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청년 하위문화의 상징이기 때문에, 한복과 스냅백의 조합은 다른 문화권의 관람자에게도 직관적인 낯섦과 유머를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전통 복식 위에 세계적으로 알려진 스트릿 브랜드를 결합한 모습은 오늘날 한국의 젊은 세대가 전통과 세계화, 지역 정체성과 글로벌 취향 사이에서 어떤 방식으로 자기 이미지를 구성하는지를 보여 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때 내숭은 특정 문화권의 독특한 성격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보여 주기 위한 자기 연출’의 구조로 읽힐 수 있다.
![[작품도판 27] 〈내숭: 도돌이표〉, 2014,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61×102cm](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47_00.jpg)
[작품도판 27] 〈내숭: 도돌이표〉는 글로벌 커피 브랜드 로고를 통해, 현대 한국인의 시간 경험과 자기 관리 담론 속에 스며든 내숭 심리를 포착한 작품이다. 화면 속 인물은 근린공원에 설치된 회전 운동기구 앞에 서서 원형 손잡이를 잡고 있다. 둥근 프레임 안에 인물의 상반신과 얼굴이 들어와 있는 구도는 악보에서 반복을 지시하는 도돌이표나 원형 순환 구조를 연상시키며, 삶의 반복과 순환에 대한 사유를 촉발한다. 인물의 다른 손에는 스마트폰과 이어폰이 쥐어져 있고, 팔과 원형 손잡이 사이에는 스타벅스 컵이 끼워져 있다. 한복 차림, 운동기구, 스포츠 썬바이저, 스마트폰, 글로벌 커피 브랜드 컵이 한 화면 안에 공존하는 이 장면은, 전통 복식 위에 겹쳐진 도시 중산층의 일상 풍경을 집약적으로 보여 준다.
![[작품도판 27-1] 〈내숭: 도돌이표〉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48_00.jpg)
스타벅스 로고가 인쇄된 컵은 오늘날 도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대표하는 시각적 기호 가운데 하나이다. 스타벅스는 커피뿐 아니라 커피를 마시는 공간과 경험을 통해 도시적 라이프스타일의 이미지를 구축한 대표적 브랜드로 논의되어 왔다. 작품 속 인물은 운동기구를 돌리며 건강을 관리하는 성실한 생활인의 이미지를 보여 주고 있지만, 동시에 달콤한 커피와 과자를 통해 피로를 달래고자 하는 욕망도 숨기지 못한다. 운동과 다이어트, 자기 계발을 강조하는 사회적 규범과, 지금 이 순간의 고단함을 달래고 싶은 개인적 욕망이 한 화면 안에서 나란히 드러나는 것이다. 스타벅스 컵은 이 긴장을 응축하는 상징으로, 부지런하고 관리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고자 하는 외면과, 그 이면의 피로·권태·자기 보상에 대한 욕망 사이에서 생겨나는 내숭 심리를 보이게 한다.
더 나아가 회전 운동기구의 원형과 스타벅스 컵은 시간에 대한 이중적 인식을 환기한다. 운동기구의 회전 동작은 마치 삶이 반복되고 되돌아올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지만, 실제 삶의 시간은 결코 도돌이표처럼 되감기지 않는다. 작품 속 인물은 어느 시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을 상상할 수 있으나, 결국 지금 이 자리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운동을 통해 미래의 건강을 준비하는 듯한 몸짓, 현재의 피곤함을 달콤한 커피로 달래는 행위, 과거의 순간들을 떠올리면서도 스마트폰으로 현재의 음악을 듣는 모습이 한 화면 안에 겹쳐지면서, 반복과 비반복, 순환과 비가역성이 뒤섞인 현대인의 시간 경험이 드러난다. 커피 한 잔은 이 모순된 시간감각을 잠시 유예시키는 작은 위안이자, 동시에 이 정도면 괜찮게 살고 있다는 자기 연출의 도구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스타벅스 컵은 시간에 대한 내숭, 즉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반복되는 일상으로 포장하고 싶어 하는 욕망을 구체적인 사물의 형태로 드러낸다.
이상의 세 작품에서 브랜드 로고는 개인적 취향을 드러내는 차원을 넘어, 특정 시대의 풍속과 심리 구조를 기록하는 시각적 장치로 기능한다. 티파니 반지는 2020년대 한국 결혼 문화에서 소비되는 로망과 압박을, 슈프림 로고는 글로벌 스트릿 컬처와 과시적 소비 문화를, 스타벅스 컵은 카페 중심의 도시 생활과 자기 위로의 문화를 상징한다. 이들 로고는 각기 다른 맥락에서, 어떻게 보여야 하는가를 둘러싼 사회적 기대와 실제로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며, 내숭 심리를 구체적 사물의 모습으로 시각화한다. 동시에 이 브랜드 기호들은 한복과 전통 혼례 용구, 근린공원 운동기구 등 한국적 요소를 담은 화면을, 전 세계 관람자에게도 익숙한 현대 도시 문화의 장면으로 읽히게 함으로써, 내숭 심리가 지닌 보편성을 부각시킨다.
이와 같이 〈내숭시리즈〉에서의 브랜드 로고 사용은 전통 인물화의 형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오늘날의 생활양식과 심리를 담아내는 현대사회 풍속화로서의 성격을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전통과 현대, 지역성과 세계성, 예술과 소비, 아와 속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내숭 심리를 다층적으로 드러내는 조형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본 장에서 다루고 있는 ‘현대사회 풍속화에서의 내숭 심리 표현’이라는 논의의 한 축을 이룬다.
2) 브랜드 연계 프로젝트를 통한 내숭 이미지의 확산
본 항에서는 〈내숭시리즈〉가 브랜드 연계 프로젝트를 통해 어떻게 현대 풍속 이미지로 확장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숭 심리가 어떤 방식으로 일상화되는지를 살핀다. 내숭 이미지는 미술관과 갤러리의 벽을 벗어나 백화점, 카드, 식품 패키지, 온라인 광고, 판촉물 등 상업·생활 공간 속으로 옮겨 갔다. 이는 단순한 상품화라기보다, 내숭이라는 장면이 사람들이 손에 쥐는 물건과 시선이 머무는 장소에서 반복적으로 마주치는 일상적 풍경이 되어 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각 브랜드 연계 프로젝트에서 기업이 요청한 브랜드 이미지와 〈내숭시리즈〉가 지닌 내숭 심리가 서로 어떻게 조율되었는지를 살펴보면, 내숭이 개인의 정조를 넘어 동시대 한국인의 집단적 심리를 드러내는 현대 풍속의 형식으로 자리 잡아 가는 양상이 드러난다.
![[작품도판 28] 〈신십장생도(Feat. 해태제과 연양갱)〉는 해태제과와의 브랜드 연계 프로젝트를 위해 새롭게 제작한 작업이다. 기존 그림 일부를 전용하는 방식이](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50_00.jpg)
[작품도판 28] 〈신십장생도〉, 2021,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59×84cm
![[작품도판 29] 〈한국화가 김현정 × 해태제과 연양갱 콜라보레이션 로고〉, 2021, 디지털 작업, 크기 가변](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51_02.jpg)
![[작품도판 30] 패키지 디자인에서는 연양갱 특유의 긴 직사각형 형태를 유지하면서, 다섯 개의 개별 포장을 나란히 놓으면 하나의 큰 그림이 완성되도록 설계하였다.](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51_00.jpg)
[작품도판 30] 〈한국화가 김현정 × 해태제과 연양갱 콜라보레이션 패키지〉, 2021, 패키지 디자인, 각각 15×3.7×1.5cm
이 브랜드 연계 프로젝트는 코로나19 유행기라는 시기적 배경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건강과 장수에 대한 염려가 사회 전반에 짙게 깔려 있던 시기에, 십장생도는 ‘잘 버티고 오래 살고 싶다’는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로 작용하였다. 화면 곳곳에 배치된 복숭아는 한국화에서 장수와 건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도상으로, 연양갱을 먹는 사람들이 오래도록 건강하게 일상을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투영되어 있다. [작품도판 29] 연양갱 로고는 문자도 형식을 차용하여 재구성되었는데, 글자 획 사이에 복숭아 이미지를 배치함으로써 단순한 상표가 아니라 복과 건강을 기원하는 부적과 유사한 기능을 하도록 구성되었다.
연양갱은 광복 이후 수많은 사회적 위기를 지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장수 브랜드로, 한국 현대사의 시간과 기억이 축적된 상징으로도 볼 수 있다. 해태제과 연양갱은 1945년 해태제과 설립과 함께 탄생한 국내 1호 과자로 알려져 있으며, 장수 브랜드의 대표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이 오래된 간식과 십장생도의 결합은 장수와 건강, 단순한 먹는 즐거움과 같은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가치를 환기시키며, 그 위에 내숭 심리를 포개 놓는다. 건강을 위해 간식을 선택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달콤한 맛과 당장의 위로를 갈망하는 마음, 스스로에게는 이 정도는 적당한 보상이라고 설명하면서도 과잉 섭취를 경계하는 마음이 동시에 작동하는 상태가 내숭의 한 양상이다. 연양갱 패키지 위에 구현된 내숭 인물들은 이러한 양가적 심리를 몸짓과 표정으로 드러내며, 편의점·마트·온라인몰에서 제품을 고르는 소비자의 손과 시선을 통해 반복적으로 소환된다. 이와 같은 과정 속에서 내숭은 전시장 안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수한 심리가 아니라, 일상적 소비 장면 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 심리 구조로 자리 잡는다.
류난영, 「대한민국 최장수 과자 ‘해태 연양갱’…“달달해 MZ에도 인기”」, 뉴시스, 2023.07.30., 검색일 2026.04.30,https://www.newsis.com/view/NISX20230728_0002394606汫h.
![[참고도판 36], [참고도판 37]은 AK플라자와의 브랜드 연계 프로젝트이다. 〈내숭시리즈〉의 기존 작품을 기반으로, 백화점이라는 상업 공간 전반의 분위기를 구](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53_00.jpg)
(좌)
![[작품도판 31] 〈내숭: 아차(feat. AK플라자)〉, 2019, 디지털 작업, 크기 가변](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53_02.jpg)
(우)
![[작품도판 32] 〈내숭: 달콤한 속삭임(feat. AK플라자)〉, 2019, 디지털 작업, 크기 가변](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53_04.jpg)
(좌)
[참고도판 36] 〈내숭시리즈〉 × AK플라자 브랜드 연계 프로젝트 설치 전경, 건물 외벽, 기록 사진
(우)
![[참고도판 37] 〈내숭시리즈〉 × AK플라자 브랜드 연계 프로젝트 설치 전경, 실내 행잉배너, 기록 사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53_01.jpg)
명절은 한국 사회에서 가족·조상·감사·의무·설렘·피로가 한꺼번에 얽히는 시간이다. 한복, 한국화, 선물이라는 요소는 이러한 복합적 심리를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키는 시각적 장치로 작용한다. AK플라자 브랜드 연계 프로젝트 이미지에서 내숭 인물은 한 손에 쇼핑백과 선물 상자를 들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거나, 과일 바구니 앞에서 무엇을 살지 망설이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명절을 앞두고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와, 예산·체력·시간의 부담을 동시에 의식하는 현실이 그 표정과 자세에 스며든다. ‘이 정도면 충분한가’, ‘조금 더 준비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망설임과 부담감, 그럼에도 가족을 생각하면 더 정성을 들이고 싶은 마음이 한 인물 안에서 충돌하는 상태가 바로 여기에서의 내숭이다.
백화점 고객은 이 이미지를 보기 위해 의도적으로 전시장을 찾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고르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입구, 에스컬레이터 주변, 행사장 벽면 등에 배치된 그림들을 스쳐 지나가며 접하게 된다. 감상 행위는 의식적 집중보다는 쇼핑 동선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만, 한복·쇼핑백·과일 상자·선물 세트와 함께 포착된 내숭 인물의 표정은 명절을 앞두고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는 기대와 부담, 감사와 피로, 설렘과 망설임을 조용히 환기한다. 이 브랜드 연계 프로젝트를 통해 〈내숭시리즈〉는 백화점이라는 상업 공간 안에 스며들며, 명절 쇼핑이라는 현대 풍속 장면 속에서 내숭 심리가 드러나는 순간들을 시각적으로 묶어 낸다. 전통 회화 이미지는 명절 판촉과 연결되면서도, 동시에 명절을 둘러싼 복합적 심리를 함께 드러내는 장면으로 기능한다.
![[작품도판 33] 우리카드의 ‘카드의 정석’ 프로젝트는 〈내숭시리즈〉가 대량 복제 가능한 디자인과 결합하여, 가장 사적인 일상 물건인 신용카드로 확장된 사례이다.](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55_02.jpg)
[작품도판 33] 〈우리카드 카드의 정석 DISCOUNT 카드 플레이트 디자인〉, 2018, 카드 플레이트 디자인, 5.398×8.56cm
주명호, 「카드 속에 ‘동양화’…한국의 美 넣은 우리카드」, 머니투데이, 2018.04.04, 검색일 2026.04.26, https://www.mt.co.kr/finance/2018/04/04/2018040413425216307汫h.
전종헌, 「“왕좌가 바뀌었다” 8개월 만에 1위 차지한 이 카드 보니…」, 매일경제, 2022.05.04, 검색일 2026.04.30, https://www.mk.co.kr/news/economy/10309874汫h.
‘카드의 정석 쇼핑’ 카드에서는 혜택의 풍성함을 직관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작품도판 21] 〈내숭: 내숭동산〉에서 풍선을 들고 있는 내숭 인물의 부분을 인용하여 사용하였다. 다양한 색의 풍선은 풍성한 혜택과 쇼핑의 즐거움을 상징하며, 카드 상품의 성격을 한눈에 드러낸다. 동시에 풍선은 쉽게 부풀었다가 금세 사라지는 공기 덩어리로, 소비 욕망의 가벼움과 덧없음을 함께 떠올리게 한다. 사용자는 이 카드를 통해 일상적인 지출을 하면서, 표면적으로는 혜택을 잘 활용하는 ‘똑똑한 소비자’가 되고자 하는 이미지를 연출하지만, 한편으로는 과도한 소비에 대한 불안과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카드 표면 위의 내숭 인물은 이러한 상반된 감정을 상징적으로 머금고 있으며, 신용카드 사용이라는 추상적 행위를 구체적인 심리 장면으로 치환한다.
우리카드와의 브랜드 연계 프로젝트는 카드 플라스틱 면에 한정되지 않았다. 상품 설명서, 판촉용 브로슈어, 온라인·오프라인 광고, 프로모션 전시, 강연, 야구 경기 시구 등 다양한 홍보 활동에 〈내숭시리즈〉 이미지가 함께 사용되었다. 그 결과 내숭 이미지는 금융 상품의 브랜드 아이콘이 되는 동시에, ‘카드를 통해 무엇을 사고 싶은지’, ‘어떤 삶을 누리고 싶은지’를 떠올리게 하는 상징으로 확산되었다. 각 개인은 카드를 꺼내 서명하는 반복된 동작 속에서, 자신이 상상하는 이상적인 삶의 모습과 실제 재정 상황 사이의 간격을 마주하게 된다. 그 간격에서 여유롭고 품위 있어 보이고 싶은 욕망과 현실적 한계를 의식하는 마음이 함께 작동하며, 내숭 심리는 카드 사용이라는 일상적 행위 속으로 스며든다.
이와 같이 해태제과 연양갱, AK플라자, 우리카드 등과의 브랜드 연계 프로젝트에서 〈내숭시리즈〉는 상품 패키지, 상업 공간, 금융 카드라는 서로 다른 형식을 빌려, 내숭 이미지를 동시대 한국인의 일상생활 속으로 확산시킨다. 간식과 건강, 명절과 쇼핑, 선물과 예의, 신용카드 사용과 혜택 추구 같은 구체적 생활 행위 속에서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스스로를 연출하고, 규범과 욕망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한다. 브랜드 연계 프로젝트와 예술 감상의 일상화는 이러한 장면들에 내숭 이미지를 겹쳐 놓음으로써, 현대사회 풍속화로서의 〈내숭시리즈〉가 포착하고자 하는 내숭 심리를 넓은 층위에서 드러내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Ⅴ. 현대사회 풍속화 〈내숭시리즈〉의 조형적 특징215문단
Ⅴ장은 〈내숭시리즈〉의 조형적 특징을 중심으로, 내숭 심리가 화면 안에서 어떠한 형식적 장치를 통해 시각화되는지를 살펴보는 부분이다. 앞선 장들이 내숭의 개념과 전개 양상을 주로 내용적 차원에서 논의하였다면, 본 장에서는 화면 구성과 시선의 서사 구조, 먹색과 채색의 대비, 한지 콜라주의 물질적 층위, 사진·디지털 이미지·설치 및 생성형 AI를 활용한 영상화와 같은 매체 확장의 측면에서 내숭 심리가 어떻게 구체적인 조형 언어로 조직되는지에 주목한다. 내숭은 드러냄과 감춤, 절제와 욕망, 표면과 이면이 교차하는 심리 구조이므로, 이를 표현하는 조형 방식 역시 한 화면 안에서 긴장과 중첩, 은폐와 노출이 함께 작동하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본 장에서는 〈내숭시리즈〉를 단순히 내숭을 주제로 삼은 회화가 아니라, 현대 풍속의 장면과 내숭 심리, 그리고 동시대의 매체 환경을 함께 조직하는 조형 체계로 이해하고자 한다.
1. 화면 구성과 시선 처리
본 절에서는 〈내숭시리즈〉의 화면 구성과 시선 배치가 내숭 심리를 어떻게 형성하고 드러내는지에 주목한다. 내숭은 타인의 시선을 전제로 하는 심리이므로, 누가 누구를 바라보는지, 무엇을 보지 않으려 하는지, 또 어떤 감정이 시선의 방향을 통해 우회적으로 드러나는지가 화면 해석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먼저 인물 중심의 구성에서 인물과 배경, 인물과 인물 사이의 거리, 화면 가장자리의 여백이 어떻게 조정되는지 분석한다. 이어서 인물의 눈동자 방향, 고개와 몸의 각도, 손의 위치 등 시선과 관련된 요소가 관객의 시선을 어디로 유도하며, 그 과정에서 어떤 내숭의 긴장을 만들어내는지 살핀다. 또한 화면 안의 인물 시선과 화면 밖에서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을 검토하여, 감상자가 내숭의 장면에 어떻게 끌려들어가거나 거리를 유지하게 되는지 논의한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화면 구성과 시선의 서사 구조가 〈내숭시리즈〉에서 단순한 형식 요소에 머무르지 않고, 내숭 심리의 배치를 결정하는 조형 장치로 작용함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중앙 구도를 통한 인물 중심 장면 구성
본 연구에서 〈내숭시리즈〉의 화면 구성은 전통 인물화에서 자주 사용되었던 중앙 구도의 원리를 현대사회의 일상 장면에 적용하고, 이를 통해 내숭 심리를 화면 중심에 집중시키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중앙 구도는 화면의 중심축에 주요 인물을 배치하여 관람자의 시선을 모으는 기본적인 구도 형식으로, 안정감·균형·격식 등을 형성하는 공간적 장치이다. 특히 인물 초상화, 종교화, 왕실 초상 등에서는 인물의 위계와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중앙 구도가 빈번하게 활용되었다.
루돌프 아른하임, 미술과 시지각, 김춘일 옮김(서울: 미진사, 1995), 15-46.
한국학중앙연구원, “초상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검색일 2026.04.30,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7016汫h.
전통 초상화에서 군주나 양반을 화면 중앙에 정면 혹은 반측면으로 배치하는 방식은 인물의 권위와 도덕적 위상을 시각적으로 강조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내숭시리즈〉 역시 이러한 중앙 구도의 관습을 참조하되, 그 중심에 자리하는 인물을 한국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여성 인물로 재배치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정면에 단독으로 놓인 인물은 더 이상 왕이나 성인(聖人)이 아니라, 일상적 공간 속에서 체면·욕망·불안·기대를 동시에 경험하는 동시대인의 상징적 초상이다. 이로써 중앙 구도는 위계의 표시에서 내숭 심리의 집중으로 기능이 전환되며, 관람자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인물의 표정·자세·시선 방향에 머물게 된다. 이때 화면 중앙에 놓인 인물은 자화상의 형식을 취하지만, 개인의 얼굴에 한정된 초상으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내숭시리즈〉는 처음부터 자기 고백적 자화상으로 기획된 작업은 아니었으나, 작업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연구자의 외형과 내면의 태도가 화면 속 인물과 겹쳐지면서 자화상적 성격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 자화상은 사적인 자기 고백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이 경험하는 체면, 욕망, 불안, 자기 연출을 담는 풍속적 주체로 기능한다. 현대사회는 개인화가 심화된 시대이므로, 한 사람의 소비 방식, 자기관리, 사회적 시선 의식, 역할 수행만으로도 한 시대의 풍속을 드러낼 수 있다. 따라서 〈내숭시리즈〉의 단독 인물은 개인인 동시에, 현대사회의 생활 방식과 심리 구조를 압축한 풍속적 인물로 읽을 수 있다.
중앙 구도는 무엇보다 인물 중심의 장면 구성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현대사회 풍속화로서의 〈내숭시리즈〉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화면의 정중앙에 단독 인물을 배치하고, 그 주변에 특정 공간과 사물을 둘러세우는 방식은 한 순간의 사회적 상황을 압축적으로 제시하는 효과를 낳는다. 관람자는 먼저 화면 중앙에 놓인 인물과 그 인물이 취한 태도를 통해 ‘지금 이 인물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파악하고, 이후 주변부에 배치된 기호·텍스트·오브제를 따라가며 그 장면이 담고 있는 사회적 맥락과 심리 구조를 해석하게 된다. 이때 중앙 인물은 특정 개인이라기보다, 일정한 세대·계층·성별을 공유하는 한국 현대인의 상징적 인물로 기능하며, 화면 전체는 그 인물이 처한 심리적 긴장과 사회적 역할이 교차하는 현대 풍속의 장면으로 읽힌다.
특히 중앙 구도는 내숭의 핵심 구조인 ‘겉과 속의 간극’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화면 중심에 자리한 인물의 자세·표정·복식·포즈는 대체로 단정함과 절제, 안정된 균형을 유지한다. 정면 또는 약간 비켜 선 자세, 고개와 어깨의 각도, 한복의 매무새 등은 스스로를 정돈된 존재로 보이고자 하는 태도를 반영하며, 사회적 체면과 자기 연출의 층위를 형성한다. 반면 인물을 둘러싼 주변부에는 브랜드 로고, 전자제품, 간식, 쇼핑백, 광고 문구, 게임기·가전·미용 기계 등 동시대의 생활 사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 사물들은 인물의 실제 관심사, 욕망, 피로, 여가, 소비 습관을 드러내는 기호로 작동하며, 인물이 겉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모습과 내면에서 움직이고 있는 감정 사이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암시한다.
이와 같이 〈내숭시리즈〉의 중앙 구도는 한편으로는 안정된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관람자의 시선을 인물에 고정시켜 주변 사물과 텍스트를 나중에 발견하도록 만든다. 처음에는 단정한 한복 차림과 차분한 자세가 눈에 들어오지만, 시선을 천천히 옮기다 보면 세탁기 문과 조작판, 인형뽑기 기계 안의 상품과 브랜드 로고, 손에 든 컵과 결혼 잡지, 머리 위의 미용 기계 등 다양한 요소들이 뒤늦게 인지된다. 이러한 지연된 발견의 경험은 겉으로는 체면을 유지하면서도 그 이면에 욕망과 불안, 기대와 회의를 숨기고 있는 내숭 심리의 구조와 맞닿아 있다. 즉 중앙 구도는 ‘정면에 놓인 단정한 나’와 ‘주변에서 계속 말을 거는 사소한 욕망들’을 한 화면 안에 공존시키되, 그 관계를 즉각적으로 폭로하기보다 서서히 드러나게 하는 조형 장치로 작용한다.
아속의 관점에서 보면, 중앙에 놓인 안정된 구도와 절제된 자세, 수묵담채가 주는 담백한 색감은 아에 가까운 형식적 질서를 형성하고, 주변부에 배치된 일상 사물과 상표, 텍스트, 생활 공간은 속의 현실과 욕망을 드러낸다. 그러나 〈내숭시리즈〉에서 중요한 것은 두 범주의 추상적 대비 자체가 아니라, 화면 한가운데에 놓인 인물이 그 둘 사이에서 경험하는 심리적 긴장이다. 중앙 구도를 통해 인물을 화면의 중심에 고정함으로써, 내면과 외면, 체면과 욕망, 책임과 회피 사이에서 흔들리는 내숭 심리가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런 점에서 〈내숭시리즈〉의 중앙 구도는 전통 인물화의 구도 관습을 참조하면서도, 현대사회 풍속화에서 내숭 심리를 시각화하는 조형적 틀로 변용된다고 볼 수 있다.
![[작품도판 34] 〈결혼: 피, 땀, 눈물〉은 원형의 세탁기 문을 화면 중앙에 배치한 구성을 통해, 중앙 구도를 인물 중심 장면 구성과 상징적 장치로 동시에 활용](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61_00.jpg)
중앙 구도는 이 작품에서도 관람자의 시선을 세탁기 문 안의 인물에 먼저 고정시킨다. 웃고 있는 표정, 빽빽이 쌓인 돈다발, 잘 정돈된 옷차림은 결혼이 가져다주는 물질적 풍요와 사회적 성공의 이미지를 과시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세탁기 상단의 조작판에 새겨진 ‘MONEY LAUNDERING’이라는 문구와 ‘Artist’s blood’, ‘Artist’s head’, ‘Artist’s tears’와 같은 텍스트는 이러한 표면 이미지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Money laundering’은 법적·경제적 맥락에서 불법 자금의 위법한 출처를 숨겨 적법한 것처럼 위장하는 과정을 의미하지만, 문자 그대로는 돈을 세탁한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이 이중적 의미는 결혼 제도 속에 내재한 경제적 계산과 도덕적 정당화의 문제를 풍자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결혼 생활 속에서 예술가로서, 여성으로서 감내해야 하는 희생과 심리적 소모를 피와 머리, 눈물이라는 단어로 구체화함으로써, 격식 아래 감추어진 현실의 무게를 드러낸다.
[작품도판 34] 〈결혼: 피, 땀, 눈물〉, 2019,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82×128cm
금융정보분석원, “자금세탁방지제도”, 검색일 2026.04.25, https://www.kofiu.go.kr/kor/policy/amls01.do汫h.
![[작품도판 34-1] 〈결혼: 피, 땀, 눈물〉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62_00.jpg)
이때 중앙 구도는 단지 시선을 집중시키는 장치에 그치지 않고, 의미의 역전을 더욱 선명하게 만드는 구조로 작동한다. 관람자는 정중앙의 인물과 돈다발을 통해 성공의 이미지를 먼저 읽어내지만, 화면을 세밀하게 탐색하며 주변부 텍스트를 인식하는 순간, 그 성공 이미지가 현실적 타협과 자기희생을 전제로 한 내숭적 장면이었음을 알게 된다. 즉 중앙에서 가장 빛나 보이는 장면이야말로 감정적·경제적 긴장을 가장 많이 감추고 있는 지점이며, 중앙 구도는 이 긴장을 ‘축하’와 ‘성공’의 형식으로 감싸는 무대로 기능한다. 이는 현대사회에서 결혼이 하나의 풍속이자 통과의례로 여겨지는 동시에, 그 이면에 다양한 이해관계와 심리적 노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현대사회 풍속화적 장면으로 읽힌다.
![[작품도판 35] 〈내숭: 무한도전〉에서는 인형뽑기 기계와 그 앞에 선 여성 인물이 화면의 중심에 배치된다. 기계의 직사각형 프레임과 내부를 가득 채운 캐릭터 상](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63_00.jpg)
[작품도판 35] 〈내숭: 무한도전〉, 2016,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90×72cm
이 작품에서 인형뽑기 기계는 욕망의 공간이자 좌절과 기대가 반복되는 현대 소비문화를 상징하는 장치이다. 기계 안의 인형과 캐릭터 상품들은 관람자의 시선을 강하게 유혹하지만, 동시에 쉽게 손에 닿지 않는다는 점에서 결핍과 희망을 함께 표상한다. 인물은 화면 중앙에서 이 기계를 응시하며 무엇인가를 선택하려는 순간에 서 있지만, 그 표정과 구체적 감정 상태는 직접 드러나지 않는다. 이러한 구성은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과 행복이 ‘무엇을 소비하고 소유하는가’에 의해 쉽게 규정되는 현실을 은유하는 동시에, 그러한 욕망을 스스로도 부끄러워하며 숨기려는 내숭 심리를 함께 담아낸다. 다시 말해 중앙 구도는 욕망의 장면을 화면 한가운데에 세워 두되, 그 욕망을 인물의 표정으로 직접 드러내기보다 뒷모습과 기계 속 사물들을 통해 우회적으로 제시한다.
![[작품도판 36] 〈결혼: 탐스런 헤어〉는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가 미용실에서 헤어 시술을 받는 장면을 통해, 중앙 구도가 내숭 심리를 어떻게 압축하는지를 보여주](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64_00.jpg)
[작품도판 36] 〈결혼: 탐스런 헤어〉, 2019,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62×82cm
이 작품에서 중앙 구도는 예비 신부의 얼굴을 중심에 놓음으로써 결혼 준비 과정에서 발생하는 설렘과 긴장, 기대와 피로를 동시에 모은다. 인물은 단정한 한복 차림을 하고 있으나, 머리 위에는 컬러풀한 헤어롤이 복잡하게 감겨 있고, 그 위로 차가운 금속성의 열처리 기계가 무겁게 내려와 있다. 한복은 결혼이라는 의례적 순간과 연결되는 격식의 이미지이며, 헤어롤과 미용 기계는 이상적인 신부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관리와 기술, 인내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중앙에 앉은 인물은 ‘아름다운 신부’로 보이고자 하는 기대를 품고 있지만, 그 기대는 시술의 지루함과 몸의 불편함, 완성된 이미지를 향한 압박과 함께 놓여 있다.
손에 든 컵과 결혼 잡지는 이 장면의 내숭 심리를 더욱 구체화한다. 인물은 한 손에 검은색 컵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웨딩 잡지를 펼쳐 보고 있다. 잡지 표지의 서양식 웨딩드레스 모델과 한복을 입은 내숭녀의 모습은 전통적 결혼 의례와 현대적 웨딩 산업의 이미지가 한 화면 안에서 겹쳐 있음을 보여준다. 결혼 잡지는 단순한 읽을거리가 아니라, 예비 신부가 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이른바 ‘스·드·메’의 정보를 학습하고 자신의 결혼식을 기획하는 매체로 작용한다. 이때 미용실은 단순히 머리를 손질하는 공간을 넘어, 보여지는 신부의 이미지를 준비하고 점검하는 현대적 풍속의 장소가 된다.
〈결혼: 탐스런 헤어〉에서 내숭 심리는 ‘완벽한 신부’로 보이고 싶은 마음과, 그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관리의 시간 사이에서 형성된다. 인물의 표정은 크게 흐트러지지 않았고, 한복 차림 역시 단정하게 유지되어 있다. 그러나 머리 위의 헤어롤과 열처리 기계, 잡지에 집중한 시선은 결혼 준비가 더 이상 순수한 설렘만의 과정이 아니라, 정보 탐색과 비교, 선택과 관리가 필요한 하나의 프로젝트가 되었음을 암시한다. 중앙 구도는 이 모든 요소를 인물의 얼굴과 몸 주변으로 모아, 예비 신부가 감당하는 기대와 불안, 자기관리의 태도를 한 장면 안에 응축한다. 이 작품에서 중앙 인물은 결혼을 앞둔 여성의 설렘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상적 이미지를 완성하기 위해 자신을 관리해야 하는 현대 여성의 내숭 심리를 시각화한다.
이러한 예들을 통해 볼 때, 〈내숭시리즈〉에서 중앙 구도는 단순히 시각적 안정감과 집중도를 확보하기 위한 형식적 선택을 넘어, 내숭 심리와 현대 풍속의 장면성을 동시에 조직하는 조형 장치로 이해할 수 있다. 정중앙에 놓인 인물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게 요구되는 격식·체면·단정함을 상징하는 동시에, 화면 곳곳에 배치된 일상 사물과 긴장 관계를 이루며 내숭 심리를 드러낸다. 더불어 세탁기·오락실·미용실과 같은 도시의 일상 공간, 브랜드 로고와 텍스트, 상품 이미지와 웨딩 잡지는 중앙 인물을 둘러싼 풍속적 배경으로 작동하여, 작품 전체를 하나의 현대사회 풍속화적 장면으로 구성한다.
결과적으로 〈내숭시리즈〉의 중앙 구도는 아속의 이중 구조를 화면 구성 차원에서 구체화하는 매개이다. 아에 가까운 안정된 구도와 인물 중심의 구성은 관람자에게 익숙한 질서와 감상 방식을 제공하지만, 그 질서의 틀 속에서 속의 현실과 욕망, 젠더 역할, 소비문화가 함께 작동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이중 구조는 드러냄과 감춤이 함께 수행되는 내숭 심리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며, 〈내숭시리즈〉를 현대사회 풍속화로 읽을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이후 2절에서는 이러한 중앙 구도를 바탕으로 인물의 시선과 관람자의 시선이 어떻게 교차하며 내숭 서사를 형성하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시선 배치에 따른 내숭 서사의 형성
본 항에서는 〈내숭시리즈〉에서 인물의 시선, 손끝, 몸의 각도 등이 어떻게 배치되는지 살피고, 이러한 요소들이 내숭 심리와 현대사회 풍속화의 서사를 형성하는 방식을 고찰한다. 시선은 단순히 인물의 눈동자가 향하는 방향에 한정되지 않는다. 화면 속 인물과 사물의 관계, 인물과 인물 사이의 거리, 인물과 관람자 사이의 응시 관계를 조직하는 매개이며, 관람자의 시선을 단계적으로 이동시켜 장면의 의미를 읽게 하는 서사적 장치이다. 특히 현대사회 풍속화로서의 〈내숭시리즈〉에서 시선 배치는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와 쉽게 드러내기 어려운 욕망 사이의 긴장을 시각화하며, 관람자가 내숭 심리를 따라가도록 만드는 통로로 기능한다. 중앙 구도와 시선의 상호 작용은 앞 항에서 논의하였으므로, 본 항에서는 그 구도 위에서 시선 배치가 어떻게 내숭 서사를 형성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내숭시리즈〉의 인물들은 대체로 화면 중앙 또는 그 주변에 배치되어 안정된 형식과 격식을 형성하지만, 인물의 눈길과 손끝은 화면의 다른 지점을 가리키며 관람자의 시선을 계속 이동시킨다. 이때 시선은 표면의 체면과 이면의 욕망이 만나는 경계선으로 작동한다. 인물의 눈길과 제스처가 향하는 곳에는 내면의 욕망, 사회적 압박, 결핍과 갈망, 당황과 기대가 응축되어 있다. 관람자는 인물의 시선을 따라가며 처음에는 표면적인 장면을 읽고, 이후에는 그 이면에 숨겨진 심리적 긴장을 발견한다. 이러한 시선의 이동 과정이 〈내숭시리즈〉에서 내숭 서사를 형성하는 기본 구조이다.
![[작품도판 37] 〈결혼: 신부수업〉은 시선 배치를 통해 내숭 서사가 단계적으로 형성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세탁실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서 인물은 한복](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67_00.jpg)
(좌)
[작품도판 37] 〈결혼: 신부수업〉, 2019,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62×116cm
(우)
![[참고도판 38] 〈결혼: 신부수업〉의 관람자 시선 흐름 분석도, 2026, 디지털 편집 이미지](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67_01.jpg)
(좌)
![[작품도판 38] 〈내숭: 여자는 말이죠〉, 2015,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30×188cm](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68_01.jpg)
(우)
![[참고도판 39] 〈내숭: 여자는 말이죠〉의 관람자 시선 흐름 분석도, 2026, 디지털 편집 이미지](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68_00.jpg)
[작품도판 38] 〈내숭: 여자는 말이죠〉에서는 인물과 동물의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내숭 서사가 생성된다. 전통 한복을 입은 여성 인물은 새하얀 말 위에 맨발로 앉아 품위를 갖춘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과 손끝은 오른쪽 아래에 놓인 명품 가방과 구두를 향한다. 바닥에는 에르메스 버킨백, 한복 구두, 하이힐 등이 배열되어 있으며, 이는 현대 여성에게 주어진 소비의 유혹을 상징한다. 반면 말의 시선은 화면 반대편에 놓인 당근을 향한다. 이때 화면에는 두 개의 시선 축이 형성된다. 하나는 인물의 시선과 손끝이 향하는 명품 가방과 구두이고, 다른 하나는 말의 시선이 향하는 당근이다.
(좌)
![[작품도판 39] 〈내숭: 안 되나요〉, 2016,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44×105cm](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69_00.jpg)
(우)
![[참고도판 40] 〈내숭: 안 되나요〉의 관람자 시선 흐름 분석도, 2026, 디지털 편집 이미지](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69_01.jpg)
관람자는 먼저 말 위에 앉은 인물과 백마라는 조합에서 기품 있는 여성상을 떠올리지만, 곧 인물의 시선을 따라 바닥의 물건들로 시선을 옮기게 된다. 이어 말의 시선을 의식하는 순간, 당근과 명품 가방·구두가 서로 대응하는 구조가 드러난다. 말이 본능적으로 당근을 욕망하듯, 인물 역시 사회적 체면과 상관없이 물질적 욕망과 소비의 유혹에 이끌리는 존재임이 은유적으로 제시된다. 여기서 시선은 단정한 외형과 사적인 욕망이 교차하는 내숭의 장면을 형성하며, 관람자는 두 시선이 만드는 긴장 속에서 장면의 의미를 다시 구성하게 된다.
제주도 헬로키티 뮤지엄과의 브랜드 연계 프로젝트로 제작된 [작품도판 39] 〈내숭: 안 되나요〉 역시 시선 배치를 통해 관람자를 내숭 서사 속으로 끌어들인다. 화면 속 인물은 바닥에 앉아 양옆으로 쇼핑백을 가득 끌어안고 있다. 이미 손에는 여러 상품이 들려 있음에도, 인물의 팔은 유리 진열장 너머의 한복과 헬로키티 가방을 향해 길게 뻗어 있다. 관람자는 먼저 인물의 과장된 제스처를 통해 욕망의 방향을 직관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시선은 인물의 손끝을 따라 진열장 안의 화려한 한복과 귀여운 캐릭터 상품으로 이동하고, 그 순간 끝없는 소비 욕망이 환기된다.
그러나 인물의 눈동자는 진열장을 향하지 않고, 그림 밖의 관람자와 마주친다. 이 정면 응시는 “이 정도 욕망, 안 되나요?”라고 묻는 듯한 태도로, 감추면서도 동시에 이해를 구하는 내숭 심리를 드러낸다. 손끝은 욕망의 대상을 향하지만, 눈빛은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고 승인 여부를 묻는다. 이처럼 시선의 방향과 손의 방향이 엇갈리는 배치는 체면과 욕망이 분리된 채 공존하는 심리적 갈등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인물은 소비 욕망을 숨기지 않지만, 그것을 당당하게 선언하지도 않는다. 대신 관람자의 시선을 바라보며, 자신의 욕망이 이해받을 수 있는지를 묻는 태도를 취한다. 이 지점에서 내숭은 욕망의 부정이 아니라, 욕망을 드러내면서도 사회적 승인과 체면을 함께 의식하는 심리로 나타난다.
[작품도판 4] 〈내숭: 삼포세대 미쓰킴〉에서 시선 배치는 현대사회의 구조적 현실과 개인의 욕망이 충돌하는 지점을 드러내며, 내숭 서사를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한다. 화면 중앙에는 사원증을 목에 걸고 황소와 함께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인물이 배치되어 있다. 관람자의 시선은 먼저 황소의 눈과 인물의 눈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전진의 에너지에 붙들린다. 이는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직장인, 곧 열심히 일하고 버티는 청년 노동자의 표면적 역할을 상징한다. 그러나 시선이 점차 화면 상단으로 이동하면서, 인물과는 반대 방향으로 쏟아져 내리는 다양한 사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팝콘과 영화표는 연애를, 목각 기러기와 반지는 결혼을, 젖병과 쪽쪽이는 출산과 육아를 상징한다.
이 사물들은 이른바 삼포세대가 경제적 이유로 포기하거나 미루게 된 삶의 영역을 가리킨다. 화면 속에서 이 사물들은 인물이 바라보는 방향과는 다른 궤도로 떨어져 내려온다. 관람자는 인물의 시선이 향하는 직선적 전진의 에너지와, 그와 교차하는 사물들의 낙하 궤도를 동시에 인지하게 된다. 이때 직장인으로서 성실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와,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거나 유예해야 하는 상실감 사이의 간극이 드러난다. 이 간극이 바로 이 작품에서 내숭 심리가 형성되는 지점이다.
(좌)
[작품도판 4] 〈내숭: 삼포세대 미쓰킴〉, 2016,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90×131cm
(우)
[참고도판 41] 〈내숭: 삼포세대 미쓰킴〉의 관람자 시선 흐름 분석도, 2026, 디지털 편집 이미지
즉, 인물은 겉으로는 성실한 직장인으로 살아가지만, 내면에는 포기된 삶의 가능성에 대한 상실감과 욕망이 남아 있다. 이 욕망은 직접적인 표정이나 말로 표현되지 않고, 화면 위로 쏟아져 내리는 사물의 이미지로 남아 인물 주변을 맴돈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시선 배치는 개인의 성격이나 사적인 감정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청년 세대가 놓인 사회적 조건과 그 안에서 형성되는 내숭 심리를 함께 드러낸다. 본 연구에서 삼포세대는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경제 환경과 청년 세대의 생활 여건 악화와 관련된 현상으로 이해되며, 이러한 사회적 맥락이 내숭 심리의 형성과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시각적 분석을 통해 살핀다.
위의 작품들을 종합해 보면, 〈내숭시리즈〉에서 시선 배치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내숭 서사를 형성한다. 첫째, 시선은 심리적 긴장과 욕망을 드러낸다. 인물의 눈길과 손끝, 화면 곳곳에 놓인 사물들이 연결되면서, 체면 아래 숨겨진 욕망과 불안이 가시화된다. 관람자는 시선의 흐름을 따라가며 인물의 갈망·당황·두려움·기대와 같은 감정 상태를 순차적으로 읽게 된다.
둘째, 시선은 서사의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작품 제목과 시선의 방향성은 관람자가 표면적인 이야기에서 숨겨진 메시지로 이동하도록 안내한다. [작품도판 37] 〈결혼: 신부수업〉에서 세탁기 문에 낀 치마, [작품도판 38] 〈내숭: 여자는 말이죠〉에서 가방과 구두, [작품도판 39] 〈내숭: 안 되나요〉에서 진열장 속 한복과 캐릭터 상품, [작품도판 4] 〈내숭: 삼포세대 미쓰킴〉에서 쏟아지는 사물들은 모두 시선이 머무르는 지점이자 내숭 서사가 응축되는 장면이다.
셋째, 시선은 관람자와의 심리적 교류를 유도한다. 정면 응시나 살짝 빗겨나간 눈길, 멈칫한 손동작과 같은 요소들은 관람자의 시선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며, 관람자가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투사하도록 유도한다. 특히 [작품도판 39] 〈내숭: 안 되나요〉에서처럼 인물이 관람자와 눈을 맞추는 구성은, 격식을 유지하면서도 욕망에 대한 공감을 요청하는 내숭의 태도를 형성한다. 이때 관람자는 단순한 구경꾼을 넘어, 인물과 함께 부끄러움·욕망·체면의식을 공유하는 참여자로 전환된다.
넷째, 시선은 사회적 맥락과 개인의 심리를 중첩시킨다. 현대 여성의 일상, 청년 세대의 경제적 현실, 소비문화와 대중오락 등은 풍속화적 배경으로 제시되지만, 시선의 배치를 통해 그 안으로 인물의 심리 상태가 깊숙이 스며든다. 관람자는 인물의 시선을 따라가며 동시에 자신의 삶과 현실을 돌아보게 되고, 그 과정에서 내숭이 개인의 성격적 특질을 넘어 동시대인의 생활 조건 속에서 형성되는 심리임을 인식하게 된다.
다섯째, 시선은 상상과 해석의 여지를 확장한다. 인물의 시선이 정확히 어디를 향하는지, 손끝이 가리키는 대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화면 바깥을 향한 응시가 어떤 상황을 암시하는지 등은 관람자의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열린 구조 덕분에 〈내숭시리즈〉의 각 장면은 고정된 서사를 제시하기보다, 관람자가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덧입혀 새로운 내숭 서사를 구성하도록 허용한다. 결국 시선 배치는 연구자가 시작한 이야기를 관람자가 이어 읽게 만드는 현대사회 풍속화적 소통 구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내숭시리즈〉에서 시선 배치는 내숭 심리를 시각화하는 중요한 조형 장치이다. 인물의 시선·손끝·제스처와 화면 속 사물, 그리고 관람자의 시선이 서로 얽히며 만들어내는 복합적인 시선의 흐름은 표면적 체면과 사적인 욕망 사이의 긴장을 드러낸다. 이러한 시선의 구성 원리는 앞 항에서 논의한 중앙 구도와 결합하여 현대사회 풍속화로서 〈내숭시리즈〉의 서사 구조를 이룬다. 화면 중앙에 인물을 배치하는 중앙 구도는 시선의 흐름을 통제하고, 내숭 서사의 핵심 장면에 집중시키는 전제 조건으로 작동한다. 중앙의 안정된 구도가 격식과 단정함의 표면을 형성한다면, 그 위에서 시선 배치는 욕망과 긴장을 드러내는 동적 서사 장치로 기능한다. 이로써 〈내숭시리즈〉는 단순한 인물 묘사를 넘어, 시선의 움직임을 통해 동시대 한국 사회의 심리와 풍속을 기록한다.
2. 먹색과 채색의 대비 및 한지 콜라주를 활용
본 절에서는 〈내숭시리즈〉에 사용된 먹색과 채색의 대비, 그리고 한지 콜라주의 물질적 특성이 내숭 심리를 어떠한 방식으로 시각화하는지를 살펴본다. 앞선 절에서 화면 구성과 시선의 서사 구조가 내숭 심리를 조직하는 방식을 논의하였다면, 여기서는 색채와 재료의 물성이 인물의 내면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심리의 층위를 형성하는지에 주목한다. 내숭은 겉으로는 단정함과 절제를 유지하면서도 그 이면에서는 욕망, 망설임, 체면, 불안이 동시에 작동하는 복합적 심리이므로, 이를 회화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드러난 부분과 숨겨진 부분, 또렷한 표면과 스며든 흔적이 한 화면 안에서 함께 작동하는 형식이 요구된다. 이러한 점에서 먹색과 채색의 대비는 절제된 외면과 표출된 욕망 사이의 긴장을 가시화하는 장치로, 한지 콜라주는 감정의 겹침과 은폐, 흔적과 중층성을 물질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따라서 본 절에서는 〈내숭시리즈〉에서 색채와 재료가 단순한 조형 요소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사회 풍속 속에서 작동하는 내숭 심리를 구체화하는 주요 표현 방식임을 검토하고자 한다.
이러한 점에서 〈내숭시리즈〉의 먹색, 채색, 한지 콜라주는 단순히 전통 재료를 현대적으로 차용한 형식적 선택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들은 인물의 심리 상태를 조직하고 장면의 의미를 나누며, 드러남과 감춤 사이의 간극을 조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 수단으로 기능한다. 먹색의 번짐과 스밈은 쉽게 명료화되지 않는 감정의 층위, 곧 속으로 삼키고 눌러 두는 마음의 결을 드러내며, 채색의 또렷한 색면은 외부로 표출되거나 사회적으로 연출된 욕망의 표면을 강조한다. 한편 직접 염색한 한지를 오리고 붙이는 콜라주 방식은 감정이 한 번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덧입혀지고 가려지며 다시 드러나는 과정임을 물질적으로 보여준다. 한지의 겹침과 경계, 두께 차이, 들뜸과 밀착의 상태는 인물의 내면에서 작동하는 망설임과 꾸밈, 은폐와 노출의 리듬을 화면 위에 흔적으로 남긴다.
또한 먹색과 채색, 한지 콜라주는 전통 회화의 재료이면서도 〈내숭시리즈〉 안에서는 현대사회의 생활 장면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전통 재료가 마트, 백화점, 놀이기계, 소비재와 같은 동시대의 사물 및 공간과 만날 때, 화면은 과거의 양식을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오늘의 심리와 생활 풍속을 담아내는 현대사회 풍속화로 전환된다. 이러한 재료적 충돌과 공존은 내숭 심리의 이중성과도 맞닿아 있다. 곧 내숭은 전통적 가치와 현대적 욕망, 단정한 외면과 쉽게 드러내기 어려운 내면, 사회적 역할과 개인적 충동이 한 인물 안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상태이며, 먹색과 채색, 콜라주라는 상이한 물성의 결합은 이러한 복합성을 화면 위에 구체적으로 남기는 방법이 된다.
임두빈, 한국화의 재료와 기법(서울: 미진사, 2003).
따라서 본 절에서는 먼저 먹색과 채색의 대비가 화면 안에서 어떠한 심리적 위계를 형성하며, 선택된 욕망과 유보된 욕망, 드러난 감정과 숨겨진 감정을 어떻게 나누어 보여주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어서 한지 콜라주가 인물의 복식과 장면의 표면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내숭 특유의 중층적 심리와 시간성을 어떠한 방식으로 구체화하는지를 분석한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내숭시리즈〉에서 재료와 기법은 단순한 조형적 장식이나 전통성의 표지가 아니라, 현대사회 풍속 속에서 작동하는 내숭 심리를 시각적으로 조직하는 핵심 요소임을 밝히고자 한다. 이에 따라 다음 항에서는 먼저 먹색과 채색의 대비가 내숭 심리의 양가성을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는지 구체적인 작품 분석을 통해 살펴본다.
1) 먹색과 채색의 대비에 의한 내숭 심리 묘사
〈내숭시리즈〉에서 먹색과 채색의 대비는 단순한 흑백과 컬러의 차이나 화면의 장식적 효과를 위한 선택이 아니다. 이는 인물 안에서 작동하는 내숭 심리를 감춤과 드러냄의 관계로 나누어 보여주는 조형 장치이다. 내숭은 겉으로는 절제되고 단정한 태도를 유지하지만, 그 안에서는 욕망, 충동, 기대, 망설임이 함께 작동하는 심리 상태이다. 따라서 이를 시각화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감정이 단일한 색조로 정리되기보다, 서로 다른 성질의 색과 물성이 한 화면 안에서 긴장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 〈내숭시리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먹색의 치마, 부분적으로 흑백 처리된 사물,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선명한 채색의 대상들은 바로 이러한 내숭 심리의 이중 구조를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먹색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 감정의 바탕, 아직 말이나 행동으로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욕망의 층위를 암시하고, 채색은 외부로 표면화된 욕망이나 시선 앞에서 가시화된 감정의 표면을 강조한다. 이러한 대비를 통해 화면은 단순한 생활 장면의 묘사를 넘어,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드러내는가를 둘러싼 내숭의 심리 구조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다수의 작품에서 한복 치마 부분이 먹으로 표현된다는 점은 중요하다. 치마는 화면에서 넓은 면적을 차지하며 인물의 신체 중심을 이루는 요소이다. 이를 채색이 아니라 먹으로 처리함으로써, 인물의 표면적 태도 아래에 놓인 심리적 기반이 화면 안에 무겁게 자리 잡는다. 이때 먹색 치마는 여성성을 본질화하거나 특정한 성격으로 고정하는 기호가 아니다. 본 연구에서 먹색 치마는 작품 속 인물이 사회적 역할, 자기 연출, 욕망, 기대, 현실의 조건을 동시에 떠안는 조형적 바탕으로 한정해 해석한다. 동양 사유에서 음(陰)은 수용하고 감싸는 성질과 연결되며, 주역의 곤괘(坤卦)는 땅의 성질과 포용의 덕을 설명하는 괘로 제시된다. 곤괘를 설명하는 ‘후덕재물(厚德載物)’은 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싣는다는 뜻을 지닌다. 이러한 의미를 작품 분석에 적용하면, 먹색으로 표현된 치마는 인물의 내면에 놓인 여러 감정과 사회적 부담을 함께 받아들이는 심리적 장으로 읽을 수 있다.
周易, 「坤卦」. “厚德載物”
먹의 색채 역시 이러한 내숭 심리의 층위와 연결된다. 먹색을 현색이라 하는데, 동양 사상에서 현(玄)은 단순한 검정이 아니라 여러 가능성이 분명히 나뉘기 이전의 깊고 어두운 상태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도덕경 제1장은 “이 둘은 같은 데서 나왔으나 이름이 다르니 함께 일러 현이라 한다. 현묘하고 또 현묘하여 모든 묘함의 문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현은 서로 다른 것들이 완전히 분리되기 전의 깊이와 복합성을 가리킨다. 〈내숭시리즈〉의 먹색 치마도 이와 유사하게, 인물 안에서 아직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욕망과 체면, 기대와 불안, 충동과 자제를 함께 품는 바탕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먹색은 단순히 어둡거나 무거운 색이 아니라, 내숭 심리가 발생하는 안쪽의 깊이를 시각적으로 구성하는 색이라 할 수 있다.
道德經 제1장.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재료의 물성 또한 이러한 의미를 강화한다. 채색은 한지 표면 위에 비교적 또렷한 색면을 형성하며, 대상의 윤곽과 감각적 존재감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특히 아교포수와 같은 밑작업은 한지의 섬유질 사이를 일정 부분 메우고 표면에 얇은 막을 형성함으로써, 안료가 종이 속으로 깊이 스며들기보다 표면 위에 머물도록 한다. 이로 인해 색은 보다 선명하게 드러나고, 빛을 받는 표면에서 채색의 반사감과 밀도가 강화된다. 반면 먹은 한지의 섬유 사이로 스며들고 번지며, 명확히 경계 지어지지 않는 이미지를 만든다. 따라서 채색은 이미 외부로 드러난 욕망이나 감정의 표면을 강조하는 데 적합하고, 먹은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심리의 깊이와 망설임을 나타내는 데 적합하다. 〈내숭시리즈〉에서 먹과 채색의 대비는 단순한 기법의 차이가 아니라, 내숭 심리를 화면 안에서 분리하고 다시 결합시키는 조형적 문법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방식은 [작품도판 40] 〈내숭: 애국자〉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작품 속 인물은 마트 진열대 앞에서 상품을 고르는 장면으로 묘사되어 있다. 화면에서는 인물이 실제로 선택했거나 욕망이 집중된 상품들이 선명한 색채로 강조되고, 주변의 다른 상품들은 상대적으로 먹이나 절제된 색으로 처리되어 있다. 이는 소비 장면 속에서 작동하는 선택의 심리를 드러낸다. 수많은 상품이 존재하지만, 인물의 욕망이 향하는 대상만이 색으로 부각되면서 심리의 방향이 시각적으로 드러난다. 이때 채색은 욕망이 이미 선택의 형태를 얻은 상태를 의미하고, 먹으로 남겨진 주변 대상들은 아직 선택되지 않았거나 의식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는 가능성을 나타낸다. 이러한 색의 차이는 소비 장면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소비자’로 보이고자 하는 태도와 실제로는 욕망에 이끌려 선택을 반복하는 심리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며, 내숭 심리가 현대 소비 풍속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작품도판 40] 〈내숭: 애국자〉, 2016,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57×120cm](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77_00.jpg)
![[작품도판 41], [작품도판 42] 〈내숭: 달콤한 속삭임(feat. 한도초과)〉는 이러한 선택의 구조를 두 점의 화면으로 확장한다. 이 작품에서 흑백이나 먹색](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78_00.jpg)
이러한 색의 전환은 내숭 심리의 구조와도 연결된다. 사람은 수없이 많은 생각과 감정, 욕망을 지니고 있지만, 그중 일부만을 골라 겉으로 드러내고 나머지는 속으로 감춘다. 〈내숭: 달콤한 속삭임(feat. 한도초과)〉에서 흑백의 상품과 채색된 상품이 나뉘는 방식은 바로 이러한 심리적 선별 과정을 시각화한다. 아직 고르지 않은 상품들이 흐릿하게 남아 있는 상태는 말하지 않거나 드러내지 않은 감정의 영역과 닮아 있고, 카트에 담긴 채 선명하게 드러나는 상품들은 외부에 보여주기로 선택한 욕망과 닮아 있다. 이처럼 두 화면은 소비 장면을 빌려,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감출 것인가를 조절하는 내숭의 심리를 색채의 차이로 구성한다.
(좌)
[작품도판 41] 〈내숭: 달콤한 속삭임(feat. 한도초과)〉, 2016,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20×176cm
(우)
![[작품도판 42] 〈내숭: 달콤한 속삭임(feat. 한도초과)〉, 2016,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20×176cm](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78_01.jpg)
![[작품도판 43] 〈내숭: 무한도전〉, 2016,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71×107cm](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79_00.jpg)
[작품도판 43] 〈내숭: 무한도전〉에서는 먹색이 선택되지 않은 가능성의 영역을 형성한다. 인형뽑기 기계 앞에서 인형을 집어 올리려는 인물은 하나의 인형에 집중하고 있지만, 기계 안에는 수많은 인형들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때 일부 인형들이 먹으로 표현된다는 점은 아직 선택되지 않은 욕망의 영역을 나타낸다. 채색된 인형은 현재 인물이 집중하고 있는 욕망의 대상이며, 먹으로 남겨진 다른 인형들은 잠재적으로 존재하지만 선택되지 않은 가능성으로 남는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화면 속에 남아 있으면서 아직 포기되지 않은 욕망의 흔적으로 작용한다. 인형뽑기라는 행위 자체가 그러하듯, 하나를 얻기 위해 집중하는 순간에도 다른 대상에 대한 욕망은 완전히 제거되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먹은 바로 그러한 잉여 욕망의 층위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이처럼 〈내숭시리즈〉에서 먹색과 채색의 대비는 단순한 수묵과 채색의 병치가 아니라, 내숭 심리가 작동하는 방식을 화면 안에서 조직하는 조형 장치이다. 먹은 아직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심리의 바탕과 선택되지 않은 가능성의 영역을 형성하고, 채색은 욕망이 표면으로 드러나는 순간을 강조한다. 이러한 대비 속에서 인물은 하나의 단일한 감정 상태로 제시되지 않는다. 인물은 욕망과 체면, 선택과 망설임, 자기 연출과 충동이 동시에 작동하는 복합적인 존재로 나타난다. 따라서 〈내숭시리즈〉에서 먹과 채색의 관계는 전통적인 수묵채색 기법의 계승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사회 풍속 속에서 나타나는 내숭 심리를 시각적으로 구조화하는 중요한 조형 언어로 이해할 수 있다. 다음 항에서는 이러한 감춤과 드러냄의 구조가 한지 콜라주의 층위와 결합하면서, 내숭 심리가 어떻게 물질적 표면으로 확장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한지 콜라주를 활용한 내숭 심리 표현
〈내숭시리즈〉에서 한지 콜라주는 단순한 장식 효과나 재료적 실험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는 내숭 심리를 물질의 층위에서 드러내는 핵심 조형 장치이다. 앞 항에서 먹색과 채색의 대비가 내숭 심리의 감춤과 드러냄을 색의 차이로 구성하였다면, 한지 콜라주는 그 구조를 실제 종이의 두께, 투명성, 단차, 찢김, 겹침을 통해 구체화한다. 즉 한지는 화면 위에 하나의 막을 형성하면서 무엇인가를 가리고, 동시에 그 아래의 선과 색을 희미하게 비치게 함으로써 완전한 은폐가 아니라 ‘반쯤 드러나는’ 상태를 만든다. 이 점에서 한지 콜라주는 내숭의 심리, 곧 감추려 하지만 완전히 감춰지지 않고, 드러내고 싶지만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 없는 상태를 재료의 표면에서 보여준다.
특히 〈내숭시리즈〉에서 한복은 내숭 심리를 구성하는 중요한 조형적 표면으로 기능한다. 한복은 격식, 단정함, 전통적 품위를 부여하는 복식이지만, 작품 속 인물은 그 한복을 입은 채 일상적 욕망, 피로, 충동,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드러낸다. 이때 한복은 단순히 몸을 가리는 옷이 아니라, 인물이 사회적 시선 앞에서 자신을 정돈하는 표면이 된다. 그러나 얇은 한지 콜라주로 처리된 치마는 그 아래의 신체 윤곽과 붓질의 흔적을 은근히 비치게 한다. 다시 말해 한복은 감추는 옷이면서 동시에 드러내는 표면으로 작용한다. 한복과 한지 콜라주는 이처럼 내숭의 핵심 구조인 가림과 노출을 재료 차원에서 시각화하며, 격식 있는 외형과 그 안에 감추어진 사적 심리 사이의 긴장을 화면에 남긴다.
작업 과정은 전통 동양 인물화의 선묘를 바탕으로 하되, 그 위에 한지 콜라주와 후염(後染)의 공정이 중첩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먼저 구상과 촬영을 마친 후 한지 위에 연필로 스케치하고, 인물의 실루엣을 옅은 담채로 잡는다. 이후 인체의 윤곽선은 세필 계열의 호랑면상필을 사용하여 중봉의 느린 선으로 그린다. 이때 철선묘를 기본으로 골격과 전체 리듬을 구축하고, 선의 끝은 난엽묘적으로 뾰족하게 빼어 긴장과 여운이 함께 남도록 한다. 일부 머리카락과 살선에는 고고유사묘를 병행하여, 가늘면서도 둥근 선으로 인물의 부드러운 신체감을 살린다. 이러한 선묘는 한지 콜라주가 덧입혀지기 전, 인물의 신체와 표정, 자세의 기본 정서를 설정하는 단계이다.
김성희, 「18種 人物畵 描法의 槪念과 朝鮮後期 人物畵 描法」, 미술사학연구 227(2000), 39-58.
다음 단계에서는 한복의 윤곽과 주름을 굵은 선붓과 농묵으로 처리한다. 외곽선은 굵고 일정한 선으로 전체 형을 묶고, 내부 주름은 빠른 곡선으로 옷자락의 흐름과 리듬을 표현한다. 얇은 인체 선과 굵은 한복 주름선의 대비는 인물의 안쪽 심리와 바깥 표면이 서로 다른 층위에 놓여 있음을 예비한다. 섬세한 살선은 감추어진 신체와 내면의 흔적을 암시하고, 농묵의 옷선은 사회적 외피로서의 한복을 강조한다. 이후 도입되는 한지 콜라주는 이 선형 구조 위에 실제 물성을 더해, 내숭 심리의 이중성을 더욱 분명하게 만든다.
한지 콜라주 공정은 선묘 위에 본격적으로 ‘가림’과 ‘드러냄’을 작동시키는 단계이다. 먼저 얇은 낙수지(落水紙)에 작품의 분위기에 맞는 색을 후염하고, 이를 인물의 한복 부분에 밀가루풀로 부착한다. 낙수지는 물을 떨어뜨려 생긴 자연스러운 구멍과 섬유결 무늬가 특징인 한지로, 반투명한 질감과 불규칙한 외곽을 지닌다. 이러한 물성은 한복의 접힘, 서걱거림, 가벼운 들뜸을 화면 위에서 실제 질감으로 느끼게 한다. 부착 후 건조되면 외곽을 따라 다시 물을 묻히고, 한지의 섬유결을 기준으로 핀셋으로 뜯어내며 외곽선을 다듬는다. 이 과정에서 붓으로 그린 한복 위에 실제 종이 조각이 중첩되며, 선 중심의 묘법과 면, 질감, 두께의 층위가 결합된다. 관람자는 평면 위에 덧입혀진 종이의 물성을 통해 한복의 주름, 두께, 빛의 반사, 가장자리의 들뜸을 촉각적으로 상상하게 된다.
김현정, 앞의 논문, 57-70.
한지 콜라주를 도입한 이유는 한복이 지닌 단정한 표면과 그 아래 숨겨진 사적 심리 사이의 간극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한복은 겉으로는 품격과 절제를 상징하지만, 작품 속 인물의 행동과 심리는 고상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일상 속 우스꽝스러운 자세, 소비 욕망, 피로, 불안, 자기 연출의 긴장은 한복의 표면 아래에서 계속 움직인다. 전통적인 선묘와 채색만으로도 이러한 심리를 표현할 수 있지만, 한지를 실제로 덧대고, 찢고, 주름지게 붙이는 과정은 그 심리적 간극을 더욱 물질적으로 드러낸다. 이때 화면 속 한복은 더 이상 단일한 평면 이미지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가리고 있는 물체이자 그 아래를 상상하게 만드는 막(膜)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콜라주의 방식은 서양 현대미술에서 종이, 신문지, 벽지, 천 조각 등을 화면에 부착하며 회화의 평면성과 재현 방식을 확장했던 파피에 콜레(papier collé)의 방법과도 연결된다. 그러나 〈내숭시리즈〉의 한지 콜라주는 서양식 콜라주를 그대로 차용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본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콜라주의 붙임과 중첩이라는 방식이 한국의 전통 재료인 한지와 결합하면서, 내숭 심리를 드러내는 재료 언어로 전환된다는 점이다. 한지는 전통 회화의 바탕이자 한국화의 물성을 이루는 재료이고, 콜라주는 서로 다른 표면을 한 화면에 겹치게 하는 방식이다. 이 둘의 결합은 전통과 현대, 표면과 이면, 가림과 노출이 동시에 놓이는 내숭의 심리 공간을 형성한다.
파피에 콜레(papier collé)는 프랑스어로 ‘붙인 종이’를 뜻하며, 1910년대 초 큐비즘 회화에서 종이, 신문지, 벽지 등을 화면에 부착한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작품도판 44] 〈사계: 난(蘭)〉은 한지 콜라주의 의미와 효과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난초가 지닌 전통적 상징성과 내숭 심리를 결합하여, 가](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83_00.jpg)
[작품도판 44] 〈사계: 난(蘭)〉, 2020,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51.5×66cm
치마를 덮은 한지는 뒤가 비칠 정도로 얇은 재질을 사용하여, 그 아래 붓으로 그린 살선과 담채의 흔적이 희미하게 보이도록 하였다. 외곽선은 물을 묻혀 뜯어내며 불규칙한 요철이 드러나게 남기고, 그 위에 수묵담채로 음영과 옷깃의 무게감을 더하였다. 관람자는 처음에는 치맛자락의 정돈된 표면을 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한지 가장자리 아래로 스며든 먹의 번짐과 붓질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이 ‘반쯤 가려진’ 상태는 감춤과 드러냄 사이의 긴장을 암시한다. 또한 콜라주된 치마 위로 붉은 난꽃이 겹쳐지면서, 절제된 표면 아래에 남아 있는 욕망과 생동감이 화면 위로 떠오른다. 배경의 사군자 문양이 전통적 품격을 환기한다면, 그 위에 덧씌워진 한복 콜라주는 그 품격 속에 감추어진 현대적 심리를 드러낸다. 이처럼 여러 층위가 포개지는 지점에서 관람자는 은근히 스며 나오는 내숭 심리를 경험하게 된다.
![[작품도판 45] 〈내숭: 썸마타임〉에서는 동물과 인간의 여름 풍경이 대비되며, 한지 콜라주를 통해 인간의 내숭 심리가 부각된다. 화면 중앙에는 선풍기 바람을 맞](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84_00.jpg)
이 작품에서 한지 콜라주는 인물의 몸을 단정한 표면 아래에 숨기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 가림은 완전한 은폐가 아니다. 한지는 다리의 위치와 주름선을 따라 약간 들뜨거나 단차를 만들고, 그 틈새로 먹선과 채색의 흔적이 엿보이도록 처리되어 있다. 관람자는 치마의 형태를 보면서 그 아래 감추어진 자세를 상상하게 된다. 말의 노골적인 안락함과 인간의 단정한 외형은 서로 대비되고, 이 대비 속에서 체면 때문에 자신의 불편함과 욕망을 감추는 내숭 심리가 드러난다. 따라서 〈내숭: 썸마타임〉의 한지 콜라주는 단순히 옷의 질감을 표현하는 재료가 아니라, 풍속 장면 속 인물이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드러내는지를 조절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작품도판 45] 〈내숭: 썸마타임〉, 2015,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12×168cm
![[작품도판 46] 〈결혼: 아침을 여는 샘〉은 장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 1780-1867)의 [참고도판](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86_00.jpg)
![[작품도판 46] 〈결혼: 아침을 여는 샘〉은 장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 1780-1867)의 [참고도판](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86_01.jpg)
![[작품도판 46] 〈결혼: 아침을 여는 샘〉은 장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 1780-1867)의 [참고도판](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86_02.jpg)
박남재, 앵그르(서울: 서문당, 2004), 42.
한지 콜라주는 이 작품에서도 인물의 한복 치마 부분에 섬세하게 적용된다. 한지를 겹겹이 주름지게 붙여 살짝 들린 듯한 입체감을 만들고, 그 아래 미리 그려둔 살선과 담채의 흔적이 희미하게 비치도록 하였다. 반투명한 한지의 물성과 얇은 종잇장의 단차는, 더 이상 노출되지 않는 여성의 신체가 여전히 그 아래 존재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한지로 가려진 치마는 결혼 이후 여성의 육체성이 한복 이미지 뒤로 은폐되는 동시에, 그 아래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감각으로 남아 있음을 조용히 드러낸다. 우유와 콘플레이크라는 일상 소재, 한복과 곡선 문양이 환기하는 전통적 표면,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인 한지 콜라주의 물성이 결합되면서, 작품은 사회적 역할 속에서 자신의 욕망과 피로를 감추는 내숭 심리를 입체적으로 구성한다.
(좌)
![[작품도판 46] 〈결혼: 아침을 여는 샘〉, 2025,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21×177cm](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210_01.jpg)
(우)
![[참고도판 42] 장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샘(La Source)〉, 1856, 캔버스에 유채, 163×80cm, 오르세미술관 소장](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210_00.jpg)
이처럼 한지를 붙이고 말린 뒤 뜯어내는 콜라주 기법은 전통 한국화의 선묘와 수묵담채 위에 하나의 ‘심리적 막’을 더 씌우는 작업이다. 종이를 덧댄 부분 아래에는 원래의 선과 채색이 숨겨져 있고, 그 위로 다시 수묵담채의 번짐과 채색의 흔적이 얹히면서 화면에는 여러 겹의 시각적 경계가 형성된다. 관람자는 이 경계를 따라가며 어디까지가 보이는 것인지, 무엇이 가려져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된다. 이는 내숭의 작동 방식과 연결된다. 내숭은 감추려 하지만 완전히 감추지 않고, 드러내고 싶지만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심리이기 때문이다. 한지 콜라주는 이러한 상태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화면의 표면 위에서 실제로 경험하게 만든다.
요컨대 한지 콜라주는 〈내숭시리즈〉에서 내숭 심리를 물질적으로 구성하는 조형 전략이다. 한지는 전통 한국화의 재료이자 한복의 질감을 형성하는 표면이고, 콜라주는 서로 다른 층위를 붙이고 겹치게 하는 방식이다. 이 둘이 결합할 때 화면은 단일한 평면이 아니라, 감추어진 선과 드러난 종이, 보이는 색과 비치는 흔적이 함께 작동하는 장이 된다. 따라서 한지 콜라주는 현대사회 풍속 속에서 인물이 체면과 욕망, 단정함과 피로, 자기 연출과 사적 감각 사이를 오가는 내숭 심리를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다음 절에서는 이러한 조형적 층위가 사진, 3D 프린팅, 디지털 이미지, 생성형 AI 영상화와 결합하면서 내숭 이미지가 정지된 회화의 표면을 넘어 어떻게 확장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3. 디지털 매체를 활용한 내숭 이미지 표현의 확장
본 절에서는 〈내숭시리즈〉에서 사진, 3D 프린팅, 디지털 이미지 작업, 생성형 AI를 활용한 영상화 등 다양한 매체와 기술이 내숭 이미지 표현을 어떠한 방식으로 확장하는지 살펴본다. 내숭은 본래 대면 관계와 타인의 시선을 전제로 형성되는 심리이지만, 오늘날에는 사진, SNS, 광고 화면, 디지털 이미지 유통 환경과 같은 매체 환경 속에서도 강하게 작동한다. 이에 따라 〈내숭시리즈〉는 회화의 평면적 화면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진적 이미지와 디지털 기호, 설치적 요소, 영상적 확장을 통해 내숭 심리가 현실 공간과 가상 공간 사이에서 어떻게 새롭게 구성되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매체 활용은 단순한 형식 확장에 그치지 않는다. 사진과 3D 프린팅은 회화 속 내숭 이미지를 현실 공간과 물질적 형상으로 옮기며, 디지털 이미지 작업은 전통 회화의 조형 언어와 현대 시각문화의 기호를 한 화면 안에서 결합한다. 또한 생성형 AI를 활용한 영상화는 정지된 회화 속 인물과 장면에 시간성과 움직임을 부여함으로써, 내숭 심리가 감추어졌다가 드러나는 과정을 보다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따라서 본 절에서는 다양한 디지털 매체와 기술의 활용이 〈내숭시리즈〉에서 내숭 이미지를 어떻게 재구성하고, 이를 현대사회 풍속의 일부로 확장하는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1) 사진· 3D 프린팅을 활용한 내숭 이미지 표현의 재구성
현대사회 풍속화로서의 〈내숭시리즈〉는 한지·수묵담채·한지 콜라주라는 전통 회화 언어를 기반으로 하지만, 점차 사진, 퍼포먼스, 3D 프린팅, 연출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도입하며 내숭 이미지 표현의 범위를 확장해 왔다. 이는 단지 재료와 기법을 다양화하는 문제가 아니라, 평면 회화 안에서 구성되던 내숭 심리를 실제 신체, 사물, 공간, 카메라의 시선 속으로 옮기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 화면 안에서만 드러나던 겉과 속의 긴장, 체면과 욕망의 간극, 감춤과 드러냄의 구조가 사진과 입체 매체를 통해 현실 공간 안에서 다시 구성되는 것이다.
사진은 찰나를 기록하는 매체로, 작가의 기억과 상상, 긴 제작 과정이 누적되는 회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시간성과 현실감을 부여한다. 그러나 사진 역시 촬영자의 시선, 연출 방식, 장소의 선택, 인물의 포즈가 개입된다는 점에서 단순한 기록으로만 볼 수 없다. 이러한 사진의 이중성은 내숭 심리를 표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내숭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자신의 감정 상태를 완전히 드러내지 않는 심리이므로, 카메라 앞에서 연출된 자세와 표정, 의상과 소품의 배치는 내숭의 태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내숭시리즈〉에서 사진은 회화의 보조 자료에 머무르지 않고, 인물이 어떤 방식으로 보이고자 하며 동시에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독립적 표현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사진의 활용은 〈내숭시리즈〉의 자화상적 성격과도 연결된다. 이 연작은 처음부터 자화상으로 기획된 것은 아니었으나, 구체적인 인물과 동세를 그리기 위해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연구자 자신을 선택하면서 출발하였다. 이후 화면 속 인물이 연구자의 외형뿐 아니라 내면의 태도와 심리까지 닮아 있음을 인정하게 되면서, 〈내숭시리즈〉는 자기 고백적 자화상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이때 사진은 단순한 참고 이미지가 아니라, 연구자가 직접 한복을 입고 특정 상황을 수행하며 자신의 몸과 태도, 감정 상태를 관찰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따라서 사진은 〈내숭시리즈〉에서 자화상, 퍼포먼스, 현대 풍속 장면을 연결하는 매개가 된다.
김다빈, 「찰나의 순간을 영원으로, 움직임을 기록하는 특별한 방법」, ݼĀarte365, 2016.02.22.
〈내숭시리즈〉에서 사진의 활용은 이 연작의 자화상적 성격과도 깊이 연결된다. 이 작업은 처음부터 자화상으로 기획된 것은 아니었다. 초기에는 타인의 이야기와 동시대 풍속을 다루는 그림으로 출발하였고, 구체적인 인물과 동세를 그리기 위해 모델이 필요하였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시간과 자세의 제약을 덜 받고,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대상으로 나 자신을 선택하였다. 이때 ‘나’는 작품의 주제라기보다, 풍속 장면을 구성하기 위해 선택된 가장 가까운 모델이었다.
그러나 작업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그림 속 인물이 외형뿐 아니라 내면의 태도와 심리까지 닮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서, 〈내숭시리즈〉는 점차 자기 고백적 자화상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여기서 자화상은 단순히 얼굴을 닮게 그리는 형식이 아니라, 사회적 시선 앞에서 자신을 어떻게 보이게 하고, 무엇을 숨기며, 어떤 욕망과 불안을 조절하는지를 스스로 관찰하는 방식이다. 이후 연구자는 거울을 통해 자세와 표정을 확인하고, 동세가 있는 장면은 사진을 함께 활용하여 포착하였다. 이처럼 거울과 사진은 회화 제작을 위한 보조 장치인 동시에, 자신의 몸과 태도, 감정 상태를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자기 관찰의 도구로 기능하였다.
이 과정에서 〈내숭시리즈〉의 내숭 심리는 상상된 인물의 심리라기보다, 실제로 경험하고 수행한 장면에서 비롯된 심리로 구체화되었다. 연구자는 한복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소품을 들고, 때로는 불편한 자세와 상황을 직접 견디며 장면을 구성하였다. 따라서 작품 속 인물은 나의 외형을 빌린 가상의 인물이면서도, 동시에 직접 경험한 감정과 태도를 담은 자기 고백적 주체이다. 이러한 제작 방식은 〈내숭시리즈〉가 단순한 풍속 묘사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 여성의 내숭 심리를 자기 경험에 근거해 시각화한 작업이라는 점을 뒷받침한다.
이러한 맥락은 [작품도판 12] 〈결혼: 함 들어온 날〉의 사진 작업에서도 확인된다. 이 작업은 결혼 풍속을 단순히 화면 안의 장면으로 옮긴 것이 아니라, 연구자가 직접 의상과 소품을 갖추고 결혼을 둘러싼 기대와 부담, 축하와 긴장의 역할을 수행한 작업이다. 사진은 이 수행의 결과를 기록하는 동시에, 결혼이라는 의례가 한 개인에게 요구하는 태도와 감정 상태를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즉 〈결혼: 함 들어온 날〉에서 사진은 ‘결혼 풍속을 바라보는’ 매체가 아니라, 그 풍속 안으로 들어가 몸으로 경험하고 다시 이미지로 남기는 방식이다. 이 점에서 이 사진 작업은 〈내숭시리즈〉가 자화상과 자기 고백, 풍속 장면과 퍼포먼스 사이를 오가는 성격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작품도판 47]∼[작품도판 50] 〈줌마월드 시리즈〉 역시 이러한 사진과 퍼포먼스의 결합을 보다 분명하게 보여준다. 한국 여성의 생애 주기를 결혼 전 예비 신부](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91_01.jpg)
(좌)
[작품도판 47] 〈줌마월드: 예신(豫新)〉, 2019, 한복과 프로스테틱, 피그먼트 프린트, 60.96×81.28cm
(우)
![[작품도판 48] 〈줌마월드: 초보엄마〉, 2019, 한복과 프로스테틱, 피그먼트 프린트, 60.96×81.28cm](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91_02.jpg)
(좌)
![[작품도판 49] 〈줌마월드: 중2맘〉, 2019, 한복과 프로스테틱, 피그먼트 프린트, 60.96×81.28cm](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91_03.jpg)
(우)
![[작품도판 50] 〈줌마월드: 육아졸업〉, 2019, 한복과 프로스테틱, 피그먼트 프린트, 60.96×81.28cm](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91_04.jpg)
[작품도판 47] 〈줌마월드: 예신(豫新)〉은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의 내숭 심리를 정면으로 다룬다. 순백의 한복 웨딩드레스와 면사포는 결혼을 둘러싼 이상적 로망과 사회적 축복의 이미지를 구현하지만, 손에 든 부케는 꽃이 아니라 5만원권과 1만원권 지폐로 만들어져 있고, 하늘에서는 돈비가 쏟아진다. 전통 부케가 사랑과 축복을 상징한다면, 지폐 부케는 결혼이 더 이상 순수한 의례에만 머무르지 않고 비용, 준비, 계산, 비교의 현실과 긴밀하게 얽혀 있음을 드러낸다. 2019년 듀오웨드 조사에 따르면 신혼부부 한 쌍이 결혼 자금으로 지출한 금액은 평균 2억 3,186만 원으로 나타났다. 사진 속 인물은 웨딩 화보처럼 우아한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주변에 흩날리는 지폐와 표정의 미묘한 경직은 행복한 예비 신부라는 외형 뒤에 놓인 불안과 경제적 부담을 함께 암시한다. 이때 내숭 심리는 결혼의 로망을 유지하고자 하는 태도와, 결혼 준비의 현실적 압박을 감당해야 하는 감정 상태 사이에서 형성된다.
김혜란, 「신혼부부, 평균 결혼 비용 2억3186만 원」, 동아일보, 2019.02.28, 검색일 2026.04.26,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190228/94336537/2汫h.
![[작품도판 47-1] 〈줌마월드: 예신(豫新)〉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92_01.jpg)
[작품도판 48] 〈줌마월드: 초보엄마〉는 출산 직후의 혼란과 두려움을 내숭 심리의 관점에서 보여준다. 작품 속 인물은 젖병을 들고, 입에는 쪽쪽이를 문 채, 아이와 엄마의 경계가 모호해진 상태로 서 있다. 머리 위에 쌓인 돌잡이 용품으로 만든 모자는 육아를 둘러싼 정보와 물질의 압도적인 양을 상징하는 동시에,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전문 엄마’ 역할의 무게를 시각화한다. 표정에는 당황과 미안함, 서툶이 함께 드러나며, 이는 사회가 기대하는 이상적 모성과 실제 초보 엄마가 경험하는 불안 사이의 간극을 보여준다. 통계청의 2024년 육아휴직통계 결과에 따르면 전체 육아휴직자 중 모(母)의 비중은 70.8%로 나타나, 육아 부담이 여전히 여성에게 크게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이 사진에서 내숭 심리는 완벽한 엄마로 보이고 싶은 태도와, 실제로는 도움과 위로가 필요한 감정 상태 사이에서 발생한다.
통계청, 「2024년 육아휴직통계 결과(잠정)」, 2025.12.17, 검색일 2026.04.26, https://www.kostat.go.kr/board.es?act=view&bid=11814&list_no=442470&mid=a10301010000汫h.
[작품도판 49] 〈줌마월드: 중2맘〉은 사춘기 자녀를 둔 어머니의 분노와 무력감을 다룬다. 검은 옷을 입은 인물은 머리에 뿔을 이고, 손에는 망치를 들고 있으며, 온몸은 경고 테이프로 둘러싸여 있다. 뿔은 분노와 과열된 감정 상태를, 망치는 파괴적 충동을, 경고 테이프는 위험 지대를 상징한다. 그러나 인물은 실제로 망치를 휘두르지 않고 들고만 있으며, 이는 극한의 감정 상태 속에서도 자신을 통제하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2024년 초중고사교육비조사 결과는 사교육 참여율과 사교육비가 여전히 높은 수준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며, 이러한 교육 환경은 자녀 교육을 둘러싼 부모의 심리적 부담과도 연결된다. 이 작품에서 내숭 심리는 인내심 많은 어머니로 남아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와, 실제로는 분노와 좌절을 겪는 내면 사이의 긴장으로 구성된다.
(좌)
![[작품도판 48-1] 〈줌마월드: 초보엄마〉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93_01.jpg)
![[작품도판 48-1] 〈줌마월드: 초보엄마〉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93_02.jpg)
(우)
[작품도판 48-2] 〈줌마월드: 초보엄마〉의 부분도
(좌)
![[작품도판 49-1] 〈줌마월드: 중2맘〉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94_00.jpg)
![[작품도판 49-1] 〈줌마월드: 중2맘〉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94_02.jpg)
(우)
[작품도판 49-2] 〈줌마월드: 중2맘〉의 부분도
![[작품도판 49-3] 〈줌마월드: 중2맘〉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94_03.jpg)
교육부·통계청, 「2024년 초중고사교육비조사 결과」, 2025.03.13, 검색일 2026.04.30, https://www.kostat.go.kr/board.es?act=view&bid=245&list_no=435485&mid=a10301010000汫h.
[작품도판 50] 〈줌마월드: 육아졸업〉은 자녀가 성장해 독립한 뒤 새로운 자유와 공허함을 동시에 경험하는 중년 여성의 내숭 심리를 보여준다. 분홍색 갓에 샤넬 모자를 겹쳐 쓴 인물은 금은보화를 파스타처럼 포크로 말아 먹고 있다. 금은보화는 자녀 교육과 양육에 투입되던 자원이 이제 자신을 위해 사용될 수 있게 된 상황을, 파스타는 서구적 라이프스타일과 새로운 취향 소비를 상징한다. 연구에 따르면 경제적 여유가 있는 중년 여성들은 미용·패션·문화·레저 소비를 통해 자기실현 욕구를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진 속 인물의 표정에는 해방감과 함께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이 배어 있다. 겉으로는 자신을 위한 소비를 당당하게 실천하는 듯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여전히 사회적 시선을 의식하고 자기 욕망을 조절하는 심리 상태가 작동한다.
(좌)
![[작품도판 50-1] 〈줌마월드: 육아졸업〉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95_00.jpg)
(우)
![[작품도판 50-2] 〈줌마월드: 육아졸업〉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95_01.jpg)
이훈지·최혜경, 「중년 여성의 취향 소비에 관한 연구」, 소비문화연구 23-4(2020), 59-77.
이처럼 [작품도판 47]∼[작품도판 50] 〈줌마월드 시리즈〉는 여성의 생애 단계를 사진과 퍼포먼스의 형식으로 구성한다.
이러한 역할 수행의 방식은 신디 셔먼(Cindy Sherman, 1954-),의 사진 작업과 비교하여 이해할 수 있다. 신디 셔먼은 [참고도판 43] 〈제목 없는 영화 스틸컷(Untitled Film Stills)〉 연작에서 자신을 모델로 삼아 여러 여성 인물의 유형을 연기하고 촬영하였다. 셔먼의 사진은 여성의 본질적 모습을 드러내는 데 목적이 있다기보다, 영화와 대중매체 속에서 반복되어 온 여성 이미지가 분장, 자세, 표정, 시선, 공간 설정을 통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제목 없는 영화 스틸컷(Untitled Film Stills)〉은 일상적 실내 공간 안에 놓인 여성의 몸짓과 시선을 통해, 사적 공간 속 여성 이미지가 얼마나 연출된 역할로 구성될 수 있는지를 드러낸다. 〈줌마월드 시리즈〉 역시 연구자가 직접 한복과 프로스테틱, 화장, 소품을 갖추고 여성의 생애 단계별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사진적 연기와 자기 변형의 구조를 지닌다. 그러나 셔먼의 작업이 주로 서구 대중매체 속 여성 이미지의 전형성을 드러낸다면, 〈줌마월드 시리즈〉는 예비 신부, 초보 엄마, 중2맘, 육아졸업과 같은 한국 사회의 생애 단계와 가족 역할을 중심으로 내숭 심리를 구성한다. 따라서 〈줌마월드 시리즈〉에서 사진은 단순한 기록 매체가 아니라,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역할을 몸으로 수행하고, 그 표면 아래의 불안, 피로, 욕망, 자기 연출을 드러내는 현대사회 풍속화적 화면으로 기능한다.
Cindy, Sherman, 〈Untitled Film Still #10〉, 1978, gelatin silver print, 18.6×24cm,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MoMA의 신디 셔먼 회고전 설명에 따르면, 셔먼은 자신의 사진에서 모델, 메이크업, 의상, 스타일링의 역할을 스스로 수행했으며, 〈Untitled Film Stills〉는 1950-60년대 할리우드 영화, 필름 누아르, 유럽 예술영화에서 유래한 여성의 전형적 역할을 다룬 연작이다. 검색일 2026.04.30, https://www.moma.org/calendar/exhibitions/1154汫h.
![[참고도판 43] 신디 셔먼, 〈제목 없는 영화 스틸컷(Untitled Film Stills)〉 연작 중 한 장면, 1977-1980, 흑백 사진, 영상 자료 캡](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96_00.jpg)
![[참고도판 43] 신디 셔먼, 〈제목 없는 영화 스틸컷(Untitled Film Stills)〉 연작 중 한 장면, 1977-1980, 흑백 사진, 영상 자료 캡](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96_01.jpg)
여기서 중요한 점은 연구자가 인물을 ‘그리는’ 데서 멈추지 않고, 직접 그 역할을 몸으로 수행한다는 것이다. 한복과 프로스테틱, 화장, 소품, 포즈는 사진을 위한 장식이 아니라 각 생애 단계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게 만드는 장치이다. 그러므로 〈줌마월드 시리즈〉는 현대 여성의 내숭 심리를 사진 이미지로 고정하는 동시에, 그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퍼포먼스로 확장한다. 이때 사진은 퍼포먼스의 결과이자 기록이며, 동시에 관람자가 여성의 생애 주기 속 내숭 심리를 읽어내는 현대사회 풍속화적 화면이 된다.
![[작품도판 51]∼[작품도판 53] 〈가리봉동 시리즈〉는 이러한 렌즈 기반 작업을 도시 공간과 퍼포먼스의 차원으로 확장한 사례이다.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전통시장](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97_00.jpg)
![[작품도판 51]∼[작품도판 53] 〈가리봉동 시리즈〉는 이러한 렌즈 기반 작업을 도시 공간과 퍼포먼스의 차원으로 확장한 사례이다.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전통시장](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97_01.jpg)
(좌)
[작품도판 51] 〈가리봉동: 유유자적(悠悠自適)〉, 2015, 퍼포먼스 사진, 60.96×40.64cm
(우)
[작품도판 52] 〈가리봉동: 관망(觀望)〉, 2015, 퍼포먼스 사진, 60.96×40.64cm
이 장면은 완벽하게 연출된 이상과 지극히 일상적인 현실이 한 화면 안에서 나란히 존재하는 구조를 만든다. 배경판 앞의 인물은 광고 사진 속 주인공처럼 보이지만, 그 뒤편에는 시장의 생활 풍경이 그대로 이어져 있다. 제목 [작품도판 53] 〈가리봉동: 수수방관(袖手傍觀)〉에서 ‘수수방관’은 팔짱을 끼고 보고만 있음을 뜻하며, 작품 속 인물이 화려한 차림으로 시장의 사물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제3자의 위치에 서 있음을 강조한다. 이 사진에서 내숭 심리는 이상적 이미지와 실제 생활세계 사이의 거리, 그리고 그 거리를 알면서도 관망하는 태도 속에서 드러난다. 〈가리봉동 시리즈〉는 사진이 단순히 장면을 기록하는 매체가 아니라, 연구자의 신체적 수행과 도시 공간의 충돌을 통해 내숭 심리를 사회적 풍속의 장면으로 재구성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국립국어원, “수수방관”, 표준국어대사전, 검색일 2025.09.08,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View.do?word_no=201491&searchKeywordTo=3汫h.
(좌)
![[작품도판 53-1] 〈가리봉동: 수수방관(袖手傍觀)〉의 부분도](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98_00.jpg)
(우)
![[작품도판 53] 〈가리봉동: 수수방관(袖手傍觀)〉, 2015, 퍼포먼스 사진, 60.96×40.64cm](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198_01.jpg)
한편 3D 프린팅 작업은 〈내숭시리즈〉의 평면 이미지를 입체적 형상으로 옮기며, 내숭 이미지 표현을 다른 차원으로 확장한다. 기존 회화가 한지 위에 수묵담채와 콜라주를 결합하여 인물의 표면과 이면을 드러냈다면, 3D 프린팅은 그 이미지를 물질적 신체와 실제 사물의 크기 관계 속에 놓이게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문제는 평면 회화에서 가능했던 반투명한 한복 치마의 표현이 입체 출력물 안에서는 그대로 재현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특히 〈내숭시리즈〉의 치마는 얇은 한지를 먹으로 염색하고 겹쳐 붙이는 방식으로 제작되어, 다리와 속바지의 윤곽이 은근히 비쳐 보이는 내숭의 조형적 장치를 담당해 왔다. 그러나 전체를 3D 프린팅으로 제작할 경우, 이 투명한 치마의 효과가 사라지고 하체가 무겁게 뭉쳐 보이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3D 프린팅 작업에서는 인물의 하체와 신체 일부를 입체 출력한 뒤, 그 위에 실제 옷처럼 한지 치마를 따로 제작해 입히는 방식을 선택하였다. 이 치마는 회화 제작에 사용하는 얇은 한지를 먹으로 염색하여 만든 것으로, 평면 회화의 콜라주 기법을 입체 조형으로 옮긴 결과이다. 다시 말해 3D 프린팅 작업은 단순히 원작 이미지를 작은 조각으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회화의 핵심 조형 언어인 한지 콜라주를 실제 의복처럼 전환하는 과정이다. 평면에서는 한복 치마가 이미지로 붙여졌다면, 입체 작업에서는 한지가 실제로 인물의 몸을 감싸는 옷이 된다. 이 지점에서 내숭 이미지는 그려진 표면에서 벗어나, 입혀지고 벗겨질 수 있는 물질적 구조로 재구성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3D 프린팅 작업이 최종적으로 다시 사진 촬영을 거쳐 평면 이미지로 제시된다는 점이다. 풍속화는 본래 특정 시대의 생활 장면과 인물의 태도, 사회적 관계를 한 화면 안에 배열한 평면 회화이다. 〈내숭시리즈〉 역시 현대 여성의 일상과 내숭 심리를 한지 위에 평면화한 현대사회 풍속화로 출발하였다. 3D 프린팅은 이러한 평면 이미지를 다시 입체물로 끌어내는 과정이지만, 그 입체물이 노란 전선이나 분홍색 덤벨 같은 실제 사물과 함께 연출되고 다시 사진으로 촬영될 때, 그것은 단순한 조각 기록이 아니라 새로운 풍속 장면으로 다시 평면화된다. 다시 말해 3D 프린팅 작업은 회화의 이미지를 입체로 확장하고, 그 입체를 다시 사진의 화면 안에 배치함으로써 내숭 심리를 또 다른 평면 풍속화의 구조로 재구성한다.
이러한 자기 고백적 수행은 3D 프린팅 작업에서도 이어진다. 평면 회화에서 연구자가 자신의 몸을 모델로 삼아 내숭 장면을 구성하였다면, 3D 프린팅 작업에서는 그 이미지가 작은 입체 인물로 전환되고, 다시 한지 치마를 입고 사물을 놓는 과정을 거친다. 이때 연구자는 단순히 원작 이미지를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회화 속 인물에게 다시 옷을 입히고, 현실 사물 속에 배치하며, 내숭 심리를 물질적 장면으로 재구성한다.
![[작품도판 54] 〈내숭: 원더우먼 다이어리〉는 결혼과 육아, 가사와 자기실현 사이에서 분투하는 현대 여성의 모습을 원더우먼이라는 대중적 영웅 이미지와 결합한 회](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200_00.jpg)
(좌)
[작품도판 54] 〈내숭: 원더우먼 다이어리〉, 2013,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82×122cm
(우)
![[작품도판 55] 〈내숭: 원더우먼 다이어리〉, 2014, 3D 프린팅 출력물에 한지 치마와 셀로판지 헬멧을 결합한 설치, 노란 전선, 크기 가변](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200_01.jpg)
[작품도판 55] 3D 프린팅 〈내숭: 원더우먼 다이어리〉는 이러한 원작의 인물을 입체 형상으로 옮긴 작업이다. 평면 회화에서는 먹선과 채색, 한지 콜라주가 인물의 표면과 감정의 층위를 만들었다면, 3D 프린팅 작업에서는 인물의 몸이 실제 공간 안에 놓이고, 그 위에 먹으로 염색한 얇은 한지 치마와 셀로판지 헬멧이 결합된다. 특히 한지 치마는 원작의 반투명한 치마 효과를 실제 의복처럼 전환한 장치로, 몸을 감싸면서도 완전히 숨기지 않는 내숭의 구조를 재료 차원에서 다시 보여준다. 또한 노란 전선은 원더우먼의 전투적이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강화하는 동시에, 현실의 장애물과 에너지, 위험과 생존의 감각을 환기한다. 이로써 3D 프린팅 작업은 원작을 단순히 축소하거나 복제한 것이 아니라, 회화 속 내숭녀를 실제 사물과 공간 속에 배치하여 내숭 심리를 입체적 풍속 장면으로 재구성한 작업이 된다.
![[작품도판 56] 〈내숭: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근린공원의 체력단련 기구 위에 선 인물을 통해 운동, 자기관리, 시선 의식의 문제를 다룬 회화이다. 원작의](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201_00.jpg)
(좌)
[작품도판 56] 〈내숭: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2014,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87×111cm
(우)
![[작품도판 57] 〈내숭: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2014, 3D 프린팅 출력물에 한지 치마를 결합한 설치, 분홍색 아령, 크기 가변](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201_01.jpg)
[작품도판 57] 3D 프린팅 〈내숭: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원작의 인물을 입체화하면서, 평면 회화에 있던 운동기구와 한복 치마의 관계를 실제 물질과 공간의 문제로 바꾸어 놓는다. 프린팅된 인물의 하체 위에는 얇게 염색한 한지 치마가 실제 의복처럼 입혀졌고, 이 치마는 몸을 감추면서도 다리의 윤곽과 자세를 은근히 드러낸다. 이는 내숭의 핵심 구조인 감춤과 드러냄을 평면의 이미지가 아니라 입체물의 표면과 재료로 다시 구현한 것이다. 또한 사진 연출에서는 분홍색 아령을 함께 배치하여, 운동하는 여성, 관리하는 여성, 자기 몸을 끊임없이 다듬어야 하는 현대 여성의 풍속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낸다. 이때 3D 프린팅 작업은 원작의 내숭 심리를 실제 사물과 결합하여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완성된 입체물은 다시 사진의 프레임 안에서 현대사회 풍속화적 장면으로 평면화된다.
두 작업을 함께 보면, 3D 프린팅은 평면 회화의 이미지를 단순히 입체물로 옮기는 기술적 변환에 머무르지 않는다. [작품도판 54]와 [작품도판 56]의 회화 원작이 한지 위에서 내숭녀의 자세, 시선, 의복, 사물을 배열하여 현대 여성의 심리를 장면화했다면, [작품도판 55]과 [작품도판 57]의 3D 프린팅 작업은 그 장면을 실제 공간 속에 세우고, 한지 치마와 전선, 아령 같은 실제 사물을 결합하여 감춤과 드러냄의 구조를 물질적으로 강화한다. 따라서 이 작업들은 회화에서 입체로, 다시 사진의 평면으로 돌아오는 순환 구조를 통해 내숭 심리가 매체의 변환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재구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퍼포먼스· 3D 프린팅 작업을 종합해 보면, 〈내숭시리즈〉의 매체 확장은 평면 회화의 조형 언어를 다른 재료와 공간으로 옮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작품도판 12] 〈결혼: 함 들어온 날〉은 결혼 풍속을 연구자의 신체적 수행과 사진 매체로 확장하고, [작품도판 47]∼[작품도판 50] 〈줌마월드 시리즈〉는 여성의 생애 주기에 따른 내숭 심리를 역할 수행과 퍼포먼스 사진의 형식으로 구성한다. [작품도판 51]∼[작품도판 53] 〈가리봉동 시리즈〉는 도시 공간 속에서 연출된 이상적 이미지와 생활 현실의 충돌을 포착함으로써, 내숭 심리를 사회적 풍속의 장면으로 확장한다. 3D 프린팅으로 제작한 [작품도판 55] 〈내숭: 원더우먼 다이어리〉와 [작품도판 57] 〈내숭: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평면 회화 속 인물을 입체 형상으로 옮기고, 한지 치마와 실제 사물을 결합함으로써 감춤과 드러냄의 구조를 물질적으로 재구성한다.
결국 사진과 3D 프린팅은 〈내숭시리즈〉의 내숭 이미지를 기록하고 복제하는 보조 매체가 아니라, 내숭 심리를 새롭게 구성하는 또 하나의 조형 방식이다. 사진은 인물의 수행과 장소의 맥락을 포착하여 내숭 심리를 현실의 장면으로 옮기고, 3D 프린팅은 평면 회화 속 인물을 실제 사물과 관계 맺는 입체적 존재로 바꾸어 놓는다. 그러나 이 입체 작업은 다시 연출 사진으로 평면화되면서, 회화에서 출발한 내숭 이미지가 입체 조형을 거쳐 또 다른 현대 풍속 장면으로 재구성되는 순환적 구조를 이룬다. 이러한 과정은 〈내숭시리즈〉가 전통 한국화의 평면성을 유지하면서도, 사진적 시선과 디지털 제작 방식, 물질적 설치 감각을 통해 현대사회 풍속화의 범위를 확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음 항에서는 이러한 디지털 이미지 작업이 생성형 AI를 활용한 영상화로 이어지며, 정지된 내숭 이미지가 시간성과 움직임을 갖는 방식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2) 디지털 이미지 작업과 생성형 AI를 이용한 영상화
이 항에서는 〈내숭시리즈〉가 정지된 평면 회화를 넘어 디지털 이미지와 영상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내숭시리즈〉는 기본적으로 한지 위에 수묵담채, 채색, 한지 콜라주를 결합한 회화 작업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이미지는 더 이상 전시장이나 작품집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미지는 광고, 온라인 플랫폼, 영상 매체,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유통되고 변형되며, 관람자의 감각과 만나는 방식도 달라진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내숭시리즈〉의 디지털 이미지 작업과 영상화는 단순한 매체 확장이 아니라, 내숭 이미지가 현대의 시각 환경 속에서 어떻게 다시 배치되고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이다.
디지털 작업은 한국화가 고정된 전통 매체에 머무른다는 인식을 벗어나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다만 이때 중요한 것은 전통 회화를 디지털 기술로 대체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수묵담채, 진채, 한지 콜라주로 구성된 내숭 이미지가 디지털 환경으로 이동할 때, 그 이미지 안에 있던 감춤과 드러냄, 절제와 욕망, 연출과 실제 감정의 긴장이 어떻게 새롭게 조직되는지를 확인하는 데 있다. 정지된 회화에서 내숭 심리는 표정, 자세, 시선, 복식, 사물 배치로 읽힌다. 그러나 영상에서는 눈꺼풀의 떨림, 고개의 미세한 움직임, 시선의 회피, 손끝의 주저, 화면 전환의 리듬 등을 통해 내숭 심리가 시간 속에서 드러난다. 따라서 디지털 이미지와 영상화는 단순한 형식 변화가 아니라, 내숭이 발생하는 순간을 움직임의 차원에서 다시 구성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첫째, 디지털 스틸 이미지는 브랜드 연계 프로젝트와 온라인 유통 환경 속에서 내숭 이미지가 빠르게 변주되고 재맥락화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특히 브랜드와의 연계 프로젝트 과정에서는 제한된 제작 일정 안에서 대중에게 공개될 이미지를 완성해야 하므로, 새로운 회화를 처음부터 제작하기보다 기존 회화 이미지를 디지털 환경에서 추출, 편집, 결합하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도입되었다. 포토샵을 활용한 디지털 콜라주는 회화 이미지를 효율적으로 가공하는 기술인 동시에, 원작의 인물과 사물을 새로운 풍속 장면 안에 다시 배치하는 방법이 되었다. 이러한 경험은 이후 정지된 이미지를 움직임과 시간의 흐름을 지닌 영상으로 확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작품도판 58] 〈내숭: 짜릿하게! (feat. 코카콜라)〉는 평창 동계올림픽 시기 코카콜라와의 브랜드 연계 프로젝트로 제작된 온라인 전용 광고 이미지이다. 이 작업은 별도의 실물 회화를 제작하지 않고, 기존 〈내숭시리즈〉의 이미지를 포토샵프로그램을 통해 결합하고 편집하여 완성한 디지털 스틸 이미지이다. 구체적으로는 [작품도판 21] 〈내숭: 내숭동산〉 화면의 오른쪽에 배치된 인물과 [작품도판 59] 〈내숭: 내 마음이 들리니?〉의 인물을 추출하여, 봅슬레이를 즐기는 내숭녀의 장면으로 합성하였다. 올림픽이라는 국제 스포츠 이벤트, 코카콜라라는 브랜드 이미지, 속도감과 쾌감을 상징하는 봅슬레이가 결합되면서, 내숭 이미지는 전통 복식의 여성상을 넘어 현대 소비문화와 스포츠 이벤트가 만나는 풍속 장면으로 재배치된다.
[작품도판 58] 〈내숭: 짜릿하게! (feat. 코카콜라)〉, 2018, 디지털 작업, 크기 가변
(좌)
[작품도판 21-1] 〈내숭: 내숭동산〉의 부분도
(우)
![[작품도판 59] 〈내숭: 내 마음이 들리니?〉, 2013,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90×120cm](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206_00.jpg)
![[작품도판 59] 〈내숭: 내 마음이 들리니?〉, 2013,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190×120cm](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206_01.jpg)
이 디지털 스틸 이미지에서 인물은 여전히 단정한 표정과 자세를 유지한다. 그러나 봅슬레이라는 상황은 고속의 움직임과 짜릿한 감각을 전제한다. 화면 속 인물은 강한 자극과 쾌감을 경험하는 상황에 놓여 있지만, 그 감정을 과도하게 드러내지 않고 광고 이미지에 어울리는 균형과 표정을 유지한다. 이때 포토샵을 이용한 시선 방향, 몸의 기울기, 인물과 브랜드 로고 사이의 거리 조정은 단순한 편집 기술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밝고 경쾌한 광고 이미지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그 안에 욕망과 긴장을 응축시키는 장치로 작동한다. 즉 디지털 합성은 이미지를 꾸미는 기술인 동시에, 내숭의 핵심인 감정 통제와 감정의 누설 사이의 경계를 설계하는 과정이 된다.
둘째, 수작업 회화를 기반으로 한 영상 편집은 정지된 화면에서 보이지 않던 부분을 상상으로 보완하고, 그 보완된 이미지를 시간적 리듬으로 조직하는 방식이다. [작품도판 60] 〈내숭: 금빛질주(feat. 코카콜라)〉는 쇼트트랙을 주제로 한 내숭녀의 질주 장면을 영상 이미지로 구성한 작업이다. 앞선 [작품도판 58] 〈내숭: 짜릿하게!〉가 온라인에 유통되는 디지털 스틸 이미지라면, 이 작업은 수묵채색 회화를 기반으로 촬영과 편집을 거쳐 완성된 영상이라는 점에서 구별된다. 먼저 한지 위에 수묵담채와 채색으로 쇼트트랙 장면을 그린 뒤, 완성된 회화를 촬영하였다. 이후 포토샵을 통해 화면에서 가려진 부분을 보완하고, 프리미어 프로그램에서 컷의 길이, 화면 전환, 확대와 축소의 리듬을 조정하여 짧은 영상으로 구성하였다.
![[작품도판 60] 〈내숭: 금빛질주(feat. 코카콜라)〉, 2018, 영상, 5초, 영상 캡처(1)-(6)](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207_00.jpg)
![[작품도판 60] 〈내숭: 금빛질주(feat. 코카콜라)〉, 2018, 영상, 5초, 영상 캡처(1)-(6)](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207_01.jpg)
![[작품도판 60] 〈내숭: 금빛질주(feat. 코카콜라)〉, 2018, 영상, 5초, 영상 캡처(1)-(6)](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207_02.jpg)
이 작업은 상업 광고의 조건을 전제로 제작되었다. 특정 국가를 연상시키는 국기나 상징물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을 것, 인물의 성별을 지나치게 명확하게 특정하지 않을 것 등의 조건이 있었다. 이에 따라 인물은 다소 익명적이고 중성적인 존재로 설정되었다. 그러나 쇼트트랙 특유의 곡선 궤적, 몸의 기울기, 얼음 위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는 자세는 경쟁과 속도, 승리에 대한 욕망을 암시한다. 정지된 회화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가려진 부분을 포토샵으로 보완하는 과정은, 내숭 심리의 보이지 않는 층위를 상상하며 덧그리는 행위와 연결된다. 이어지는 영상 편집 단계에서 화면의 속도와 리듬을 조정하는 과정은, 겉으로는 절제되어 있으나 안쪽에서는 미세한 동요를 반복하는 내숭 심리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드러낸다.
또 다른 사례로 [작품도판 61] MBC 연기대상 × 김현정 콜라보레이션 영상 작업을 들 수 있다. 이 영상은 연말 시상식의 ‘신 스틸러상’ 시상 전후에 삽입되는 연결 영상으로 제작되었으며, 〈내숭시리즈〉의 여러 이미지를 콜라주하고 편집하여 구성하였다. 이 가운데 [작품도판 62] 〈결혼: 웰컴 투 시월드〉는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의 [참고도판 44] 〈절규(The Scream / Skrik)〉를 패러디한 작업이다. 이 작품은 결혼을 둘러싼 기대와 두려움, 특히 대중매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재현되어 온 ‘시월드’에 대한 선행 공포를 시각화한다. 결혼은 본래 배우자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선택이지만, 드라마와 예능, 대중 담론 속에서 시월드는 종종 부담과 공포의 대상으로 반복된다. 이러한 이미지의 축적은 아직 경험하지 않은 관계에 대해서도 불안과 방어적 태도를 만들어낸다.
![[작품도판 61] 〈MBC 연기대상 × 김현정 콜라보레이션 영상〉, 2019, 영상, 1분 38초, 영상 캡처(1)-(4)](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207_03.jpg)
![[작품도판 61] 〈MBC 연기대상 × 김현정 콜라보레이션 영상〉, 2019, 영상, 1분 38초, 영상 캡처(1)-(4)](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207_04.jpg)
![[작품도판 61] 〈MBC 연기대상 × 김현정 콜라보레이션 영상〉, 2019, 영상, 1분 38초, 영상 캡처(1)-(4)](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207_05.jpg)
시상식이라는 무대는 표면적으로 축하와 영광의 장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경쟁, 평가, 앞으로의 경력에 대한 불안이 함께 놓여 있다. 〈결혼: 웰컴 투 시월드〉가 지닌 비명과 웃음, 축하와 공포가 교차하는 정서는, 연기대상 현장의 긴장과 기대가 뒤섞인 분위기와 맞물리며 브릿지 영상 안에서 하나의 풍속 장면으로 전환된다. 영상화 과정에서는 원작 [참고도판 44] 〈절규〉의 뒤틀린 구도와 강한 감정선이 드러나도록 화면 전환과 움직임을 조정하였다. 이를 통해 결혼과 가족 관계, 대중매체, 스타 시스템이 교차하는 현대 한국 사회의 장면 속에서, 감정을 숨기며 괜찮은 얼굴을 유지하려는 내숭 심리와 공포의 감각이 함께 드러난다.
Prideaux, Sue, Edvard Munch: Behind the Scream(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05).
(좌)
![[참고도판 44] 에드바르 뭉크, 〈절규(The Scream)〉, 1893, 판지에 템페라와 크레용, 91×73.5cm, 노르웨이 국립미술관 소장](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209_00.jpg)
(우)
![[작품도판 62] 〈결혼: 웰컴투시월드〉, 2019,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 87×69.5cm](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209_01.jpg)
셋째, 생성형 AI를 활용한 영상화는 내숭 이미지를 움직이는 이미지로 변환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생성형 AI는 입력된 이미지나 텍스트를 바탕으로 짧은 시간 안에 연속 프레임을 만들어내며, 정지된 회화에 움직임을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AI가 자동으로 움직임을 생성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생성된 움직임 가운데 내숭의 정조에 부합하는 결과를 선택하고, 과도한 표정 변화나 불필요한 동작을 배제하며, 절제된 움직임만을 남기는 판단의 과정이 중요하다. 이 과정은 현대인이 디지털 이미지 유통 환경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편집하고 선별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따라서 생성형 AI 영상화는 내숭 심리를 기술적으로 재현하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내숭의 자기 연출 방식을 제작 과정 안에서 반복하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Manovich, Lev, The Language of New Media(Cambridge, MA: MIT Press, 2001). 특히 디지털 알고리듬, 조작 가능성, 움직이는 이미지의 특성을 논한 부분을 참조.
![[작품도판 63] 〈결혼: 아침을 여는 샘〉, 2026, 생성형 AI 영상, 5초, 영상 캡처(1)-(3)](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210_02.jpg)
앞서 제Ⅴ장 제2절 제2항에서 살펴본 [작품도판 46] 〈결혼: 아침을 여는 샘〉은 장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참고도판 42]〈샘〉을 패러디한 작업이다. 원작에서 항아리의 물이 자연의 순수성과 고전적 여성상을 환기한다면, 〈결혼: 아침을 여는 샘〉에서는 그 물이 콘플레이크와 우유로 치환된다. 이는 결혼 이후 반복되는 아침 식사 준비와 돌봄 노동, 그리고 여성에게 부여되는 가족 내 역할을 현대사회 풍속화의 장면으로 옮긴 것이다. 정지된 회화에서 콘플레이크는 샘처럼 흘러내리는 상징적 요소로 배치된다. 그러나 생성형 AI를 활용한 [작품도판 63] 영상에서는 이 장면이 움직임을 얻는다. 콘플레이크 박스에서 곡물이 쏟아지고, 바닥 위 콘플레이크의 양이 점점 늘어나며, 인물은 박스를 흔드는 동작을 반복한다.
이 움직임은 한편으로는 경쾌한 리듬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결혼과 육아, 가사 노동이 끝없이 반복되는 상황에 대한 압박을 드러낸다. 끝없이 늘어나는 콘플레이크와 멈추지 않는 몸짓은, 겉으로는 단정하고 성실한 배우자이자 어머니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안쪽에서는 피로와 불안,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느끼는 내숭 심리를 암시한다. 이때 생성형 AI의 역할은 회화에 단순히 재미있는 움직임을 더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정지된 화면 안에 잠재되어 있던 반복, 과잉, 피로의 감각을 시간 속에서 드러내며, 내숭 심리를 보다 직접적인 시각 경험으로 전환한다.
![[작품도판 65] 〈내숭: 폼생폼사〉는 [작품도판 64] 〈내숭: 폼생폼사〉의 생성형 AI 영상으로 자기과시와 감정 통제가 한 장면 안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내숭](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211_01.jpg)
![[작품도판 65] 〈내숭: 폼생폼사〉는 [작품도판 64] 〈내숭: 폼생폼사〉의 생성형 AI 영상으로 자기과시와 감정 통제가 한 장면 안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내숭](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212_00.jpg)
![[작품도판 65] 〈내숭: 폼생폼사〉는 [작품도판 64] 〈내숭: 폼생폼사〉의 생성형 AI 영상으로 자기과시와 감정 통제가 한 장면 안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내숭](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212_01.jpg)
[작품도판 64] 〈내숭: 폼생폼사〉, 2014,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콜라주(회화 원작), 50×70cm
젝스키스, 「사나이 가는 길–폼생폼사」, 1997. 본 작업은 1990년대 대중가요 제목을 차용하여 유행, 자기표현, 청년 세대의 태도를 현대사회 풍속화의 장면으로 전환한 사례이다.
[작품도판 64] 〈내숭: 폼생폼사〉의 생성형 AI 영상은 원작 회화의 인물을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유행하는 짧은 댄스 챌린지의 동작과 결합하여 제작한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전통 복식의 단정함과 플랫폼 문화의 반복적인 신체 리듬이 한 화면 안에서 충돌한다. 챌린지 춤은 짧은 시간 안에 따라 하기 쉬운 동작으로 규격화되며, 참여자는 그 규격을 수행함으로써 유행의 공동체에 편입된다. 그러나 같은 동작 안에서도 몸의 각도, 표정, 리듬, 시선 처리의 차이가 생기며, 이 차이는 개인의 캐릭터와 자신감을 드러내는 표지가 된다. 내숭은 바로 이 지점, 곧 모두가 하는 동작을 따르면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보이고자 하는 욕망과, 그 욕망이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조절하는 긴장 속에서 발생한다.
![[작품도판 65] 〈내숭: 폼생폼사〉, 2026, 생성형 AI 영상, 5초, 영상 캡처(1)-(4), Kling AI 사용](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212_02.jpg)
![[작품도판 65] 〈내숭: 폼생폼사〉, 2026, 생성형 AI 영상, 5초, 영상 캡처(1)-(4), Kling AI 사용](https://kimhyunjung.kr/wp-content/uploads/thesis/fig_p212_03.jpg)
이 영상에서 생성된 동작은 대담한 자기과시처럼 보이지만, 원작 인물이 지닌 정면 응시의 단정함과 결합되면서 과시와 절제가 동시에 작동하는 장면을 만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생성형 AI가 산출한 결과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다. 내숭의 정조에 맞는 움직임을 선택하고, 과도한 표정 변화나 지나치게 극적인 동작을 배제하는 편집의 판단이 필요하다. 유행하는 챌린지 동작을 가져와 원작 이미지에 맞게 변형하는 과정은, 현대인이 플랫폼에서 유행을 받아들이되 자기 이미지에 맞게 다듬고 조절하는 방식과 닮아 있다. 결과적으로 이 영상화는 전통 회화의 인물상을 플랫폼 문화의 신체 리듬과 접속시키며, 내숭이 더 이상 정지된 표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움직임과 자기 연출까지 조율하는 현대적 심리임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디지털 콜라주, 수작업 회화를 기반으로 한 영상 편집, 생성형 AI 영상화는 각각 다른 기술과 제작 방식을 사용하지만, 공통적으로 내숭 심리를 시간성과 움직임의 차원에서 확장한다. 디지털 스틸 이미지는 내숭 이미지를 광고와 온라인 플랫폼 속에 재배치하고, 수작업 회화 기반 영상은 정지된 장면에 리듬과 시간의 흐름을 부여한다. 생성형 AI 영상은 원작 회화에 예측하지 못한 움직임을 더하면서, 작가가 그중 필요한 움직임을 선택하고 조정하는 새로운 제작 과정을 만든다. 이 세 방식은 모두 내숭 이미지가 현대사회 풍속 속에서 유통되고 변형되는 조건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디지털 실험이 진행되는 동시에, 회화 제작 단계에서는 여전히 수묵담채, 진채, 한지 콜라주 등 한국화의 전통 재료가 유지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히 전통 재료에 대한 고집이 아니다. 오랜 시간 몸에 익은 재료가 가장 자유로운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는 제작상의 이유와 함께, 〈내숭시리즈〉가 21세기 한국 사회의 풍속을 다루고 있다는 인식과도 연결된다. 내숭이 한국적 언어와 문화적 맥락 안에서 형성된 심리라는 점을 고려할 때, 가능한 한 한국화의 재료를 바탕으로 이미지를 구성하려는 태도는 소재와 형식 양쪽에서 내숭의 맥락을 유지하려는 선택이다.
결국 〈내숭시리즈〉의 디지털 이미지 작업과 생성형 AI 영상화는 전통 회화의 물질성과 디지털 이미지의 비물질성을 왕복하는 과정이다. 한지와 안료, 먹과 채색으로 구성된 내숭 이미지는 디지털 스틸 이미지, 영상 편집, 생성형 AI를 거치며 픽셀과 프레임의 이미지로 변환된다. 이 과정에서 내숭은 종이와 안료의 표면, 디지털 화면, 움직이는 영상 사이를 이동하며 안과 밖, 실제와 연출, 정지와 움직임의 경계를 넘나든다. 이러한 매체적 순환은 내숭 심리의 구조, 곧 감정을 감추면서도 드러내고, 드러내면서도 다시 조절하는 태도를 형식적으로 반복한다. 따라서 디지털 이미지와 생성형 AI를 이용한 영상화는 〈내숭시리즈〉가 현대사회 풍속화로서 동시대의 시각 환경과 만나는 방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확장이라 할 수 있다.
Ⅵ. 결론23문단
본 연구는 현대사회 풍속화로서 〈내숭시리즈〉에 나타난 내숭 심리의 표현 방식을 분석하고, 이를 아속(雅俗)의 관점에서 해석하여 내숭의 미학적 함의를 정리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내숭은 일상어에서 흔히 성격적 태도나 부정적 평가어로 사용되지만, 본 연구에서는 이를 사회적 시선 앞에서 감정과 욕망을 조절하는 심리 구조로 보았다. 내숭은 겉으로는 절제, 단정함, 체면의 태도를 유지하지만, 그 안에서는 욕망, 기대, 불안, 수치, 쾌감 등이 함께 작동한다. 따라서 내숭은 단순히 속마음을 숨기는 태도가 아니라, ‘어떻게 보이고자 하는가’와 ‘실제로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을 조절하는 심리로 이해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 아속은 내숭을 설명하기 위한 해석의 관점으로 사용되었다. 아(雅)는 품위, 절제, 교양, 규범의 태도와 연결되고, 속(俗)은 일상, 욕망, 감각적 즐거움, 생활의 구체성과 관련된다. 그러나 아와 속은 고정된 대립항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 후기 문예와 회화에서는 아와 속이 서로 긴장하면서도 한 장면 안에서 교차하고 결합하는 양상이 나타난다. 본 연구는 이러한 아속의 관계를 바탕으로, 내숭을 아적인 표면과 속적인 욕망이 한 인물 안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심리로 파악하였다. 즉 내숭은 겉으로는 품위와 체면을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서 사적 감정과 욕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상태를 보여준다.
〈내숭시리즈〉에서 한복을 입은 인물과 자화상 형식은 현대사회 풍속화의 성격을 설명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한복은 오늘날 일상복이라기보다 명절, 결혼식, 기념일, 공식 행사 등 특별한 순간에 입는 격식 있는 옷으로 인식된다. 〈내숭시리즈〉에서 한복은 이러한 격식과 단정함을 부여하는 표면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작품 속 인물은 한복을 입은 채 소비, 자기관리, 연애, 결혼, 출산, 육아, 피로, 욕망과 같은 현대인의 일상적 장면 속에 놓인다. 이때 한복의 단정한 표면과 인물의 사적인 행동이 어긋나면서 내숭 심리가 발생한다. 또한 화면에 등장하는 단독 인물은 개인적 자화상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개인화된 현대사회에서 한 사람이 경험하는 사회적 시선, 역할 수행, 자기 연출, 욕망의 문제를 압축하는 풍속적 주체로 기능한다. 따라서 〈내숭시리즈〉는 자화상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현대인의 생활 감각과 사회적 관계를 드러내는 현대사회 풍속화로 읽을 수 있다.
제Ⅱ장에서는 내숭의 개념과 함의를 정리하였다. 먼저 내숭의 어원과 사회적 의미를 살펴봄으로써, 내숭이 단순히 ‘겉과 속이 다른 태도’라는 부정적 평가에 한정되지 않음을 확인하였다. 내숭은 사회적 시선을 의식하는 주체가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완전히 감추지 못하는 상태에서 발생한다. 이러한 점에서 내숭은 꾸밈, 가식, 위선과 동일한 의미로 환원되기 어렵다. 본 연구는 내숭을 사회적 관계 속에서 감정과 태도를 조절하는 심리로 보고, 이후 작품 분석의 중심 개념으로 설정하였다.
이어서 아속의 관점에서 내숭의 함의를 살펴보았다. 아속은 전통적으로 고상함과 속됨의 구분으로 이해되어 왔지만, 조선 후기 문예와 회화에서는 두 가치가 단순히 분리되지 않고 서로 긴장하며 공존하는 양상을 보인다. 본 연구는 이 점에 주목하여, 아속을 내숭의 목적이나 결론이 아니라 내숭 심리를 설명하는 해석틀로 사용하였다. 겉으로는 아적인 태도, 즉 절제와 품위를 유지하지만, 그 안에서는 속적인 욕망과 감각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상태가 내숭의 구조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내숭은 전통 미학의 관점과 현대인의 심리 표현을 연결하는 개념으로 정리될 수 있었다.
제Ⅲ장에서는 조선 후기 풍속화의 심리 표현 양상을 살펴보았다. 특히 신윤복의 혜원전신첩을 비롯한 조선 후기 풍속화는 인물의 시선, 표정, 자세, 거리감, 옷매무새, 주변 사물의 배치, 공간의 여백과 구도를 통해 사회적 체면과 개인적 욕망이 교차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양반 계층을 다룬 장면에서는 신분과 체면을 유지하려는 태도가 전면에 드러나지만, 시선 처리와 몸의 방향, 거리감과 주변 사물의 배치를 통해 은밀한 호기심과 욕망이 함께 암시된다. 여성 인물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도 단정한 외양과 예법의 표면 아래에 욕망, 망설임, 긴장, 유희가 배치된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풍속화는 단순히 당대의 생활상을 기록하는 그림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심리를 장면 안에 배열하는 회화임을 확인하였다. 풍속화 속 인물은 고립된 초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인물은 특정한 공간, 사물, 타인과의 관계 속에 놓이며, 그 관계 안에서 감정과 태도를 조절한다. 이 점에서 조선 후기 풍속화는 내숭 심리가 어떻게 화면 속에서 감추어지고 드러나는지를 살필 수 있는 전통적 사례가 된다. 본 연구는 이러한 풍속화의 장면 구성 방식을 바탕으로, 〈내숭시리즈〉를 현대사회 풍속화로 해석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다.
제Ⅳ장에서는 현대사회 풍속화로서 〈내숭시리즈〉의 표현 방식을 분석하였다. 먼저 전통 풍속 이미지의 패러디와 현대적 변주를 살펴보았다. 〈내숭시리즈〉는 조선 후기 풍속화와 고전 회화의 구도, 인물 배치, 의복, 소도구를 차용하면서도, 그 안에 현대 도시의 배경, 브랜드 로고, 상품 이미지, 디지털 기기,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이미지 감각을 삽입한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 풍속 장면은 현대사회의 소비문화와 자기 연출의 장면으로 다시 배치된다. 패러디는 단순한 희화화가 아니라, 과거의 도상과 현대의 생활 감각을 한 화면 안에 겹쳐 놓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내숭은 전통적 체면과 현대적 욕망, 격식 있는 표면과 일상적 행동 사이의 긴장으로 표현된다.
또한 현대 여성의 일상 풍속을 다룬 작품에서는 결혼, 출산, 육아, 소비, 외모 관리, 자기표현의 장면 속에서 내숭 심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작품 속 여성 인물은 단정하고 세련된 외양을 유지하지만, 화면의 사물, 표정, 자세, 시선, 구도는 그 안에 놓인 피로, 기대, 불안, 저항, 욕망을 함께 드러낸다. 이때 내숭은 단지 감추기 위한 태도가 아니라, 사회적 요구와 자기 욕망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심리로 나타난다. 〈내숭시리즈〉는 이러한 장면을 유머와 해학을 통해 구성함으로써, 현대 여성의 일상 경험을 무겁게 고발하기보다 풍속화적 장면 안에서 관찰하고 해석하도록 만든다.
브랜드 로고와 브랜드 연계 프로젝트를 통한 내숭 이미지의 재맥락화와 확산도 중요한 표현 방식으로 분석하였다. 〈내숭시리즈〉의 이미지는 회화 화면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상품, 공공 공간, 상업 공간, 온라인 플랫폼, 영상 매체 속으로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내숭 이미지는 개인의 심리를 표현한 회화이면서 동시에 현대사회에서 소비되고 공유되는 풍속 이미지가 된다. 브랜드와의 결합은 단순한 상업적 활용으로만 볼 수 없다. 그것은 내숭 이미지가 현대인의 일상적 시각 환경 속에서 어떻게 다시 읽히고 확산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제Ⅴ장에서는 〈내숭시리즈〉의 조형적 특징을 화면 구성, 시선, 재료, 매체의 측면에서 분석하였다. 먼저 중앙 구도와 인물 중심의 장면 구성은 관람자의 시선을 인물에게 집중시키며, 인물과 관람자 사이에 직접적인 대면의 긴장을 만든다. 인물의 시선은 정면을 향하거나, 화면 밖을 보거나, 특정 사물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배치된다. 이러한 시선의 방향과 교차는 내숭 심리가 발생하는 지점을 형성한다. 즉 인물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외면하며, 무엇을 감추고 있는가가 시선의 배치를 통해 드러난다.
먹색과 채색의 대비는 내숭 심리를 색과 농담의 관계 속에서 보여준다. 먹색은 아직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심리의 바탕, 선택되지 않은 가능성, 감추어진 욕망의 층위를 암시한다. 반면 채색은 욕망이 표면으로 드러나는 순간, 혹은 사회적 시선 앞에서 가시화된 감정의 표면을 강조한다. 〈내숭: 애국자〉, 〈내숭: 달콤한 속삭임(feat. 한도초과)〉, 〈내숭: 무한도전〉 등에서 먹색과 채색의 대비는 단순한 색채 효과가 아니라, 소비와 선택, 욕망과 자제, 체면과 충동이 충돌하는 심리 구조를 시각적으로 조직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한지 콜라주는 내숭 심리를 물질의 층위에서 구체화한다. 얇은 한지는 화면 위에 하나의 막을 형성하면서도, 그 아래의 선과 색을 희미하게 비치게 한다. 이로써 한지 콜라주는 완전한 은폐가 아니라 ‘반쯤 드러나는’ 상태를 만든다. 찢기, 겹치기, 붙이기, 후염의 과정은 가림과 드러냄의 구조를 실제 재료의 표면 위에 남긴다. 〈사계: 난〉, 〈내숭: 썸마타임〉, 〈결혼: 아침을 여는 샘〉 등에서 한지 콜라주는 한복의 질감과 표면을 구성하는 동시에, 그 아래 감추어진 신체와 사적 심리를 상상하게 만든다. 이 점에서 한지 콜라주는 내숭 심리의 막과 층을 물질적으로 구현하는 조형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사진, 3D 프린팅, 디지털 이미지 작업, 생성형 AI를 활용한 영상화는 내숭 이미지를 정지된 회화의 표면에서 공간, 신체, 움직이는 이미지의 차원으로 확장한다. 사진과 3D 프린팅은 인물의 신체와 복식, 역할의 문제를 실제 공간과 촉각적 이미지로 옮긴다. 디지털 이미지 작업은 기존 회화 이미지를 광고와 온라인 플랫폼 속에 다시 배치하며, 생성형 AI 영상화는 정지된 인물에게 움직임과 시간성을 부여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의 새로움이 아니라, 내숭 심리가 움직임, 리듬, 편집, 선택의 과정 속에서 다시 드러난다는 점이다. 따라서 디지털 매체의 활용은 〈내숭시리즈〉가 현대사회 풍속화로서 동시대의 시각 환경과 만나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본 연구의 결론은 다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본 연구는 내숭을 일상적 평가어가 아니라 현대사회 풍속화의 심리 표현을 설명하는 중심 개념으로 정리하였다. 내숭은 단순히 꾸미거나 속이는 태도가 아니라, 사회적 시선과 자기 욕망 사이에서 감정과 태도를 조절하는 심리 구조이다. 아속의 관점은 이러한 내숭을 설명하는 데 유효한 해석틀을 제공한다. 다만 본 연구에서 아속은 내숭을 대체하는 목적 개념이 아니라, 내숭이 아적인 표면과 속적인 욕망 사이에서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살피기 위한 관점이다. 이를 통해 내숭은 전통 미학과 현대사회 풍속화의 심리 표현을 연결하는 개념으로 정리될 수 있었다.
둘째, 본 연구는 조선 후기 풍속화의 심리 표현을 내숭의 관점에서 분석함으로써, 풍속화를 생활상 재현의 장르에 한정하지 않고 감정과 태도, 사회적 관계를 장면화하는 회화로 살펴보았다. 신윤복의 풍속화에 나타난 시선, 자세, 거리감, 옷매무새, 사물 배치, 공간 구성은 인물의 체면과 욕망, 규범과 유희가 한 장면 안에서 어떻게 공존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분석은 〈내숭시리즈〉가 현대사회 풍속화로 읽힐 수 있는 전통적 근거를 마련한다.
셋째, 본 연구는 〈내숭시리즈〉를 현대사회 풍속화의 관점에서 분석함으로써, 전통 풍속 이미지가 현대의 일상과 어떻게 접속되고 변형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전통 이미지의 패러디와 해학적 변주, 현대 여성 일상 풍속의 장면화, 브랜드 연계 프로젝트와 디지털 이미지 유통 환경을 통한 이미지 확산은 〈내숭시리즈〉가 과거 풍속화의 형식을 단순히 차용하는 데 그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 작업들은 현대인의 소비, 자기관리, 결혼, 육아, 플랫폼 문화, 사회적 시선의 문제를 한 화면 안에 배치하며, 내숭 심리를 현대사회의 생활 장면 속에서 드러낸다.
넷째, 본 연구는 화면 구성과 시선, 먹색과 채색의 대비, 한지 콜라주, 사진과 3D 프린팅, 디지털 이미지와 생성형 AI 영상화 등 다양한 조형 및 매체 전략을 통해 내숭 심리가 어떻게 시각화되는지를 체계화하였다. 이러한 분석은 내숭 심리가 인물의 표정만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화면의 구도, 시선의 방향, 재료의 물성, 색의 대비, 매체의 변환 속에서 구성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로써 〈내숭시리즈〉는 한국화의 전통 재료와 현대 매체를 함께 활용하면서, 현대사회 풍속화로서 내숭 심리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사례가 된다.
물론 본 연구에는 몇 가지 한계도 있다. 첫째, 내숭과 아속은 문화적·역사적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개념이므로, 보다 폭넓은 문헌 연구와 비교 연구가 이어질 필요가 있다. 둘째, 본 논문은 연구자의 작품을 중심으로 분석하였기 때문에, 내숭 이미지에 대한 관람자와 대중의 수용 방식을 충분히 다루지는 못하였다. 향후 관람자 인터뷰, 전시 반응 분석, 이미지 유통 과정에 대한 연구가 병행된다면, 내숭 이미지가 사회 속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공유되는지를 더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디지털 이미지와 생성형 AI 영상화에 대한 논의는 아직 초기 단계의 분석에 가깝다. 이후 새로운 매체 환경 속에서 내숭 이미지가 어떻게 변형되고 체험되는지에 대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본 연구는 내숭을 중심으로 전통 풍속화와 현대사회 풍속화, 아속의 해석 관점과 현대인의 심리 표현, 한국화의 재료와 디지털 이미지의 변환 과정을 함께 살펴보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내숭시리즈〉는 한복을 입은 인물의 자화상 형식을 취하지만, 그 안에는 현대 한국 사회의 소비, 관계, 역할, 욕망, 자기 연출의 장면이 함께 놓여 있다. 따라서 이 연작은 개인의 감정을 고백하는 작업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인의 생활 감각과 사회적 시선을 장면화하는 현대사회 풍속화로 이해될 수 있다.
앞으로 〈내숭시리즈〉와 후속 작업은 내숭 심리를 더욱 다양한 장면과 매체 속에서 탐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전통 회화의 선묘, 수묵담채, 한지 콜라주의 물성을 유지하면서도, 사진, 설치, 디지털 이미지, 생성형 AI 영상화 등 동시대 매체와의 접점을 확장하는 일은 현대 한국화의 표현 가능성을 넓히는 과정이 될 수 있다. 본 연구는 그 출발점으로서, 내숭이라는 한국적 심리를 현대사회 풍속화의 언어로 분석하고, 이를 통해 전통과 현대, 사회적 규범과 개인적 욕망, 회화와 디지털 이미지가 만나는 지점을 정리하고자 하였다.
종합하면, 본 연구는 〈내숭시리즈〉를 통해 내숭이 현대사회 풍속화 안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구조화되는지를 살펴본 작업이다. 내숭은 감추기와 드러내기, 체면과 욕망, 절제와 충동이 동시에 작동하는 심리이다. 이러한 내숭 심리는 조선 후기 풍속화의 장면 구성과 현대사회 풍속화의 표현 방식 사이를 연결하며, 〈내숭시리즈〉의 조형 언어 속에서 색, 선, 재료, 시선, 매체의 층위로 구체화된다. 따라서 본 연구는 내숭을 매개로 한국화가 현대인의 심리와 생활 장면을 어떻게 포착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 현대사회 풍속화로서 〈내숭시리즈〉의 의미를 정리한 데 의의를 둔다.
Abstract
A Study on the Expression of Naesung Psychology in Genre Painting of Contemporary Society
— Focusing on the Aesthetic Implications of Naesung through the Lens of Asok (雅俗) —
Kim Hyun Jung · Department of Oriental Painting, The Graduate School, Seoul National University
This study aims to analyze the pictorial modes of expressing naesung psychology in the Naesung Series as a form of genre painting of contemporary society, and to clarify its aesthetic implications by interpreting it from the perspective of asok (雅俗, refinement and worldliness). In colloquial Korean, naesung is often used to describe a personality trait or as a negative evaluative term. In this study, however, it is understood as a psychological structure through which emotions and desires are regulated under the gaze of others. Naesung appears on the surface as an attitude of restraint, composure, and social propriety, while desires, expectations, anxiety, shame,and pleasure operate beneathit. Therefore, naesung should not be understood simply as the act of hiding one’s inner thoughts, but as a psychological mode that regulates the tension between “how one wishes to appear”and “what one actually feels.”
In this study, asok is used as an interpretive perspective for explaining naesung. A (雅) is associated with refinement, restraint, cultivation, and norms, while sok (俗) is related to everyday life, desire, sensory pleasure, and the concrete conditions of lived experience. However, A and sok do not exist simply as fixed opposites. In late Joseon literature and painting, A and sok appear in tension withone another while also intersecting and combining within a single scene. This relationship between A and sok provides an effective perspective for explaining naesung psychology. Naesung is a state in which an A-oriented attitude and sok-oriented emotions operate simultaneously within a single figure. It reveals a structure in which private emotions and desires do not entirely disappear, even as the figure maintains refinement and social propriety on the surface.
This study also examines psychological expression in late Joseon genre painting in order to establish a traditional basis for interpreting the Naesung Series as genre painting of contemporary society. Late Joseon genre paintings, including Hyewonjeonsincheop (蕙園傳神帖, the album of Hyewon Shin Yunbok’s genre paintings), present scenes in which social propriety and private desire intersect through the figures’ gazes, facial expressions, postures, spatial distance, clothing details, surrounding objects, empty space, and composition. These scenes show that genre painting is not merely a pictorial record of everyday life in a given period, but a form of painting that arranges psychological states formed within specific social relationships and customs. In this respect, late Joseon genre painting becomes an important case through which to examine how naesung psychology is concealed and revealed within pictorial scenes.
The works produced from 2010 to the present are collectively titled the Naesung Series. Since the works produced up to 2014 were examined in my master’s thesis, this dissertation focuses mainly on the Naesung Series produced between 2014 and 2026 from the perspective of genre painting of contemporary society. Although the Naesung Series places figures dressed in hanbok (traditional Korean dress) at the center of the image, it does not confine the works to self-portraiture or conventional figure painting. The figures in the works are subjects living in contemporary Korean society, regulating their emotions and desires amid marriage, childbirth, childcare, consumption, appearance management, self-expression, branding, and the circulation of digital images. In this context, hanbok functions as a surface that grants traditional formality and composure, while the figures’ everyday actions and private psychology conflict with or deviate from that surface,thereby revealing naesung psychology.
This study examines the expressive methods of the Naesung Series along three lines. First, it investigates how past iconography and contemporary sensibilities of everyday life are combined through parody and contemporary reinterpretation of traditional genre images. Second, it analyzes how naesung psychology is narrativized in scenes of marriage, childbirth, childcare, consumption, and self-presentation, with a focus on the everyday customs of contemporary women. Third, it examines how naesung images are recontextualized and expanded beyond the pictorial surface into products, spaces, and environments of digital image circulation through brand logos and brand-related projects. Through this analysis, the study demonstrates that the Naesung Series does not remain at the level of personal emotional expression but constructs genre scenes in which emotions, customs, consumption, and self-presentation intersect in contemporary society. This study further analyzes the formal characteristics of the Naesung Series in terms of composition, gaze, materials, and media. The central composition and figure-oriented scene structure direct the viewer’s attention toward the figure, while the arrangement of the figure’s gaze creates the tension from which naesung psychology emerges. The contrast between ink tones and color visually reveals the relationship between concealed psychology and manifest emotion. Hanji collage materially presents the structure of concealment and revelation through the transparency, relief, tearing, and layering of thin hanji (traditional Korean paper). Photography, 3D printing, digital image-based works, and video works using generative AI expand naesung images from the static surface of painting into the dimensions of space, body, and moving image. This formal analysis shows that naesung psychology is not confined to the figure’s facial expression, but is embodied through the structure of the image, the material properties of the medium,and transformations across media.
The significance of this study is as follows. First, it redefines naesung not as an everyday evaluative term, but as a central concept for explaining psychological expression in genre painting of contemporary society. Second, by using asok not as the ultimate goal or fixed norm of the study but as an interpretive perspective, it analyzes how A-oriented attitudes and sok-oriented emotions intersect within a single scene. Third, by connecting psychological expression in late Joseon genre painting with the contemporary Naesung Series, it examines genre painting not as a genre limited to the representation of everyday life but as a form that stages emotions, attitudes, and social relationships. Fourth, by analyzing parody, the everyday customs of contemporary women, brand-related projects, the contrast between ink tones and color, hanji collage, and the use of digital media in the Naesung Series, it systematizes the expressive methods of the series as genre painting of contemporary society. In sum, this study examines the points at which tradition and contemporaneity, social norms and personal desires, and the materials of Korean painting and digital images meet through the concept of naesung. It ultimately argues that the Naesung Series functions as genre painting of contemporary society by capturing the psychology and everyday scenes of contemporary individuals.
표기 안내
학술 표기는 국립국어원 로마자 표기법에 따라 Naesung을 사용합니다. 작품과 전시에서는 Naesung으로 표기합니다. 두 표기는 같은 말(내숭)을 가리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