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을 통한 내재적 형상표현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동양화과 석사 학위논문입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제작한 작품, 특히 〈내숭〉시리즈를 대상으로 자화상을 통한 내재적 형상표현을 분석했습니다.
국문초록
본 논문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사이에 본인이 제작한 작품을 연구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논문은 본인이 제작한 작품들 중 특히 〈내숭〉시리즈를 주요 대상으로 하여, ‘나’의 존재에 관한 철학적 논의들, 자화상의 제작 동기, 내재적 형상표현의 구체적 방법과 효과, 작품의 조형적 특징과 표현기법에 관하여 체계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작품연구논문이다.
이 논문에서 ‘타인의 시선’을 ‘나’의 사유와 행동양식을 결정하는 인자로서, ‘나’가 아닌 ‘타자’로부터 유래하는 영향요소라고 정의한다. 타인의 시선은 ‘나’ 본연의 자아상과 긴장관계에 있는 경우가 많다. 본인은 타인의 시선이 본인의 주체적 자아 형성을 왜곡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자아와 존재에 대한 사유와 탐구로 이어졌다. 자화상은 그와 같은 탐구의 과정에서 본인의 내적 형상을 투영하는 매개체로서, 그리고 자아를 객관화하고 탐구하는 수단으로서 활용되었다. 자아와 자아형성에 관한 본인의 관념은 계속하여 변화한다. 그럼에도 본인의 자화상은 자화상을 제작할 당시의 내재적 형상을 가장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본인의 자화상 중 〈내숭〉시리즈는 초기에 타인의 표리부동을 희화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본인은 본인의 내숭과 본인도 누군가에게 타인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이를 계기로 자아와 타인의 시선 사이의 갈등을 수긍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본인의 작품에서 ‘내숭’은 ‘타인의 시선 앞에서 자아를 그 시선에 부합하도록 형성하고 표출하는 현상을 통틀어 이르는’ 비유적이고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내숭〉시리즈에서 ‘내숭’은 가치중립적이고 보편적인 개념이다.
〈내숭〉시리즈에는 본인만의 독특한 조형의식과 표현기법을 끌어들이고 있다. 우선 한복은 심미적 기능을 가지고, 통념으로부터의 일탈을 상징하며, 속이 들여다 보이도록 콜라주로 표현되어 내숭의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본인의 일상을 연극적으로 도상화 하고 여기에 해학적 제목을 붙임으로써 각 작품별로 주제를 부각시킨다. 전통적인 수묵담채표현과 콜라주 표현의 대비, 전통의상과 현대적 일상·소품의 대비는 내숭을 상징한다. 전통적 표현기법의 계승과 변용을 통해 〈내숭〉시리즈는 자아에 관한 본인의 내면적 고민과 일상에서 나타나는 내숭의 순간들을 고유한 미감으로 표현하고 있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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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머리말11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누구나 상대방으로부터 좋은 사람, 멋진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각자가 고유한 성격과 삶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전적으로 다른 이의 마음에 쏙 드는 모습으로 살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니 적어도 본인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을 부리곤 한다. 그리고 그 과한 욕심은 삶 속에서 지켜나갈 자신의 정체성에 많은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자아의 정체성에 관한 고민은 어릴 적부터 본인에게 가장 큰 화두였다. 본인은 사랑받기를 원했고, 본인을 사랑해 줄 누군가의 시선과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바쁘게 살았다.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다르다는 막연한 느낌이 들 때에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그런 느낌들을 마음 한편에 미뤄두곤 했다. 그러다보니 본인의 고유한 자아상은 모호하고 희미하게만 느껴졌고, 본인은 타인에 의해 요구된 수많은 자아상들 속에서 이방인처럼 헤매는 듯했다.
본인은 불안정하고 모호한 자아상에 대한 불만 속에서, 자아에 관하여 사유하기 시작했고, 그러한 사유의 일환으로 자화상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그림을 그리는 본인의 가장 큰 관심사가 본인의 내재적 형상에 관한 것이었던 만큼 이는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예전에 제작하였던 본인의 자화상들을 보면서 놀라는 점은, 자화상이 그 당시의 내재적 형상을 그 어떤 자료보다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자화상은 본인에게 자아의 현재상을 투영하는 것이기도 하였고, 본연의 자아상을 탐색하거나 자아를 객관화하는 방법이기도 하였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내숭〉을 주제로 한 자화상 시리즈를 제작하였다. 많은 감상자들이 본인의 〈내숭〉에 대하여 공감을 표시하였는데, 그만큼 타인의 시선과 본연의 자아상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긴장은 보편적인 듯하다. 본인은 〈내숭〉에서도 본인의 자아상에 관한 관심과 고민들을 담아냈는데, 〈내숭〉을 제작하는 중에도 본인의 내재적 형상에 관한 관념은 계속 변화하였다.
본인은 전시회를 전후로 하여 “왜 자화상을 그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작업과정과 표현 기법상의 특징은 무엇인지?”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러한 물음에 대하여 본인은 본인이 작업을 구상하고 진행하면서 하였던 생각들을 정리하여 답하고는 하였으나, 본인이 자화상을 제작하게 된 이유와 과정에 관하여 좀 더 체계적이고 내용적으로 풍부한 설명에 대한 갈증을 느껴왔다. 본인이 작업을 하면서 어렴풋하게 머릿속에 담아 두었던 생각의 조각들을 하나의 체계로 정립하여 설명하는 것은 작품들에 새로운 가치와 생명력을 불어 넣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특히 자아에 관한 본인의 고민들을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이 자화상으로 표현되기까지의 논리적․감성적 과정들을 추적하여 글로 정리하는 것을 늘 과제처럼 생각해 왔다. 그리하여 이 논문을 통해 자아에 관한 본인의 관념을 정립하고, 자화상을 제작하게 된 과정을 해설하며, 특히 〈내숭〉을 중심으로 본인의 내재적 형상표현에 활용된 조형적 특징과 표현기법들을 분석하고 정리하고자 한다. 결국 이 논문은 본인의 자화상을 대상으로 하여 자화상을 통한 자아의 내재적 형상표현의 목적과 특징을 체계적으로 정립하기 위한 작품연구논문이다. 여전히 〈내숭〉시리즈의 제작은 계속되고 있으므로, 이 논문을 통해 지금까지의 작업들을 정리함으로써 자아에 관한 본인의 관념을 발전시키고 이를 새로운 창작의 기초로 삼을 것도 기대한다.
본 논문은 크게 다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Ⅰ장에서는 작품 연구의 목적에 대해 살펴보고 본 논문의 구성과 연구 방법에 관하여 서술한다.
제Ⅱ장에서는 자아탐색과 자화상의 제작이 가지는 상관관계에 관하여 서술한다. 1절에서는 ‘나’의 존재에 관한 철학적 사유들을 정립하고, 자아상과 자아의 형성에 관한 본인의 관념을 제시한다. 2절에서는 본인이 자화상을 제작하였던 동기를 설명하고, 3절에서는 특히 〈내숭〉시리즈의 제작 동기와 그 변화에 관하여 기술한다.
제Ⅲ장에서는 〈내숭〉시리즈를 통한 내재적 형상표현의 방법과 그 의미를 분석한다. 1절에서는 ‘내숭’의 의미와 그 표현의 방법을 개관한다. 2절에서는 〈내숭〉에서 한복이 가지는 기능에 관하여 분석하고, 한복이 콜라주로 표현됨으로써 달성되는 의미를 서술한다. 3절에서는 〈내숭〉에서 활용되는 자화상의 표현방법으로서, ‘일상의 연극적 도상화’의 내용과 효과에 관하여 논한다. 해학적인 작품의 제목이 가지는 의미도 여기에서 서술한다.
제Ⅳ장에서는 〈내숭〉의 조형적 특징과 표현기법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정리한다. 1절에서는 조형적 특징으로서 가운데구도와 여백, 그리고 감상자의 관점에 관하여 기술한다. 2절에서는 표현기법으로서 한지, 수묵담채와 같은 전통기법의 활용과 콜라주기법의 활용을 대비하여 설명하고, 그 결합과 조화로부터 나타나는 〈내숭〉만의 독특한 미감에 관하여 기술한다.
제Ⅴ장에서는 본문에서 서술된 내용을 요약하고 앞으로 본인의 작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Ⅱ. 자아탐색과 자화상의 제작90
1. 타인의 시선과 ‘나’의 존재에 관한 사유
본인은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 깊이가 깊든 얕든 마음에 상처를 입을 때가 많았다. 특히 본인의 한 단면만을 보고 본인이 어떤 사람일 것이라고 마음대로 오해하는 이들이 있었고, 그런 오해가 사람들 사이를 돌고 돌아 본인에게 들려오기도 했다. 누구나 한번쯤은 자신에 관한 풍문을 다른 이를 통해 전해 듣는 탐탁지 않은 상황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본인은 특히나 다른 사람의 시선에 예민했고 그 무게를 버거워 했던 것 같다. 마음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는 것은 사실 견딜 만 했다. 문제는 본인의 생각과 일상이 다른 사람들의 말과 소문들에 의해서 좌우되곤 한다는 것이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의 말과 반대의 행실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혹은 그 말에 담긴 ―다소 허황된― 기대를 충족시키려 애쓰기도 하였다. 이처럼 본인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의 말에 좌우되다 보니, 본인의 존재에 관하여 혼란을 느꼈고 ‘나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자문(自問) 앞에 어쩔 줄 모를 만큼 막막할 때가 많았다.
이하에서는 이처럼 본인의 생각과 일상을 지배하였던 다른 사람들의 말과 소문, 혹은 기대를 통틀어 ‘타인의 시선’이라고 일컫는다. 타인의 시선은 ‘나’의 사유와 행동양식을 결정하는 인자로서,‘나’가 아닌 ‘타자’로부터 유래하는 영향요소들을 의미한다. 이는 본연적이고 독립적인 ‘나’와는 대비되는 요소로서, ‘나’와 긴장관계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다만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개방적인 자아의 형성과정에서 하나의 중요한 재료가 되기도 한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개념을 빌려 위 상황을 설명하면, 본인은 본인에게 작용하는 타인의 시선에 너무나도 큰 영향을 받은 나머지 본인의 본연적이고 주체적인 자아의 모습을 좀처럼 분명하게 형성할 수 없었던 것이다.
본인의 자아상을 정립하고 명명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본인이 가진 본연적 요소는 타인의 시선 앞에 희미해져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본인은 종종 ‘나’의 존재에 관한 숙고의 시간에 빠져들고는 했고, 이십 대 초반의 본인에게 가장 큰 화두는 ‘타인의 시선’에 따른 긴장관계 속에서 ‘나’ 본연의 모습을 정립하는 것이었다. 그 시도는 그야말로 암중모색(暗中摸索)이었고, 불안정하고 막막한 과정이었다. 본인의 존재에 관한 사유는 자연스럽게 본인의 자화상 작업으로 이어졌는데, 작업은 본인에게 일종의 탈출구였다. 본인을 속박하는 타인의 시선을 ‘끈’으로 은유하였던 초기의 작가노트를 옮긴다.
나는 나를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나와 세계를 잇는 보이지 않는 끈에 관하여 생각을 한다.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을 내가 끈으로써 움켜쥐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끈에 묶여 끌려가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나와 세계를 매개하는 이 힘의 정립은 때론 팽팽하고 또 때론 느슨하지만 언제나 변함 없는 바는, 이 끈으로써 세계는 역설적이고도 자연스럽게 나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 설령 그 끈이 나를 허무로 이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좇는 것은 거의 본능적인 것 같다. 나에게 있어 ‘끈’을 둘러싼 긴장은 나를 둘러싼 다른 사람의 시선과 내 자아 사이의 긴장으로 환원된다. 나는 나의 작업을 통해, 아마도 벗어나기는 힘들어 보이는 그 원초적 지배력의 실체를 밝혀보고자 한다.
2012년 11월 작가노트 중 일부.
이하에서는 간단하게 자아에 관한 본인의 의문과 그와 관련한 철학적 논의들을 소개한다. 제1장에서 밝힌 것처럼, 본인이 지금까지 형성해 온 자아에 대한 관념과 그에 관한 사유의 과정을 논리적으로 추적하고 정리하는 것은 이 논문의 주요 목적 중 하나이다. ‘자아’는 근대 이후의 철학에서 가장 어렵고 복잡한 주제였는데, 20세기 이후에는 ‘타자’와의 관계에서 조명하는 흐름이 나타난다. 본인이 ‘나’의 존재, 즉 자아에 관하여 사유를 이어가면서 들었던 의문들이 있었는데, 그러한 의문들은 자아에 관하여 철학자들이 이미 논의하였거나 논의를 이어가는 것들이기도 하다.
본인은 자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의문들을 품었다. 첫째, 자아라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절대적으로 정해진 형상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삶 속에서 계속하여 변화하고 새로운 모습이 나타나는 것일까. 둘째, 나는 나의 존재 그 자체로서 확정되는 것일까, 아니면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가 증명되거나 혹은 형성되는 것일까. 셋째, 내가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진정한 나의 모습일까, 아니면 내가 만들어 낸 허상(虛像)에 불과한 것일까.
본인이 스스로의 모습을 찾아보고자 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의문이 바로 첫째의 것이었다. 본인은 확고한 모습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이방인처럼 떠도는 듯한 본인의 자아상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나’의 모습이 늘 같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를테면, 삶의 각 순간에서 약간은 변덕스럽게 나타나는 다채로운 모습들이 오히려 담백하게 설명될 수 있는 ‘나’의 모습 아닐까하는 것이다. 하지만 확고부동한 자아의 모습에 관한 본인의 지향은 끊이지 않았다. 따라서 삶 속에서 타인의 시선과 기대에 따라 달라지는 나의 모습들이 불만스럽고 불안정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
둘째 의문은 첫째보다 좀 더 본인의 문제 상황에 근접한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떠나서는 살 수가 없다. 그러므로 당연히 타인의 시선이 나의 자아상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변인(變因)으로 작용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타인과의 관계가 ‘나’의 존재에 미치는 영향으로서 바람직한 것은 어느 정도일까. 타인의 시선은 단지 고유하게 ‘존재’하는 ‘나’를 증명하고 드러내 주는 자료일까, 아니면 타인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비로소 ‘나’의 ‘존재’가 형성되는 것일까. 본인에게 매우 강력한 변인(變因)으로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 타인의 시선에 대하여, 본인은 전자(前者)처럼 그 영향력을 과소평가하고 싶어 했지만 실제 영향력은 후자(後者)에 가까웠다는 점이 본인이 내적 갈등을 겪는 원인이기도 했다.
셋째는 다소 황당한 의문이지만, 우리가 우리의 자아상에 관하여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내가 인식하고 있는 자아상은 허상일 수도 있다. 거울은 ‘나’의 모습을 완전히 똑같이 반영하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좌우가 뒤바뀐 허상을 비춘다. 본인이 인식하고 있는 본인의 모습이, 자기애로 말미암아, 혹은 자기정당화를 위해 윤색(潤色)한 모습인 것은 아닐까?
자아에 대한 첫 발견은 데카르트로부터 시작된다. 중세에 이르기까지 자아나 자아의 의지는 신을 위해 버려야 할 의미 없는 대상에 불과했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인간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음에서 ‘인간’을 폐기하고 질문의 주어를 ‘나’로 교체하였다. 데카르트는 대상에 대한 인식을 모두 의심 가능한 불확실한 것으로 배제하면서도, 그러한 의심을 하고 있고 그러한 의식 활동(사유)을 하는 주체로서의 우리 자신은 의심할 수 없다고 한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말에서 나타나듯이, 데카르트의 철학에서 처음으로 부정할 수 없는 근본적 진리로서의 자아의 존재가 부각된다.
이경희,「나, 내 생각, 내 마음 그리고 자연의 빛 : 근데인 데카르뜨의 자화상 그리기」,『철학논총(제38집 제4권)』, 새한철학회, 2004, 342쪽.
칸트는 데카르트가 자아를 ‘생각하는 것’이라고 사물화한 것을 비판하며, 자아가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선험적 조건임을 강조한다. 칸트에 의해 자아는 이제 다른 대상을 인식하는 인식의 주체가 된다. 주체로서의 자아는 비판적 이성을 통해 대상의 인식, 도덕적 통찰, 미적 판단의 가능성을 검토하고 증명하는 최고 판결자의 지위에 서게 된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선구자 격인 니체는『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정신의 세 가지 변신(낙타, 사자, 놀이하는 아이)이라는 비유적 상을 통해 나름대로 인류의 시대를 구분한다. 첫 번째 단계인 낙타는 규율이 지배하는 중세의 기독교적 세계를, 두 번째 단계인 사자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전근대적 억압에 저항하는 근대인을 상징한다. 세 번째 단계가 놀이하는 아이인데, 자신을 잊고 놀이에 몰두하는 아이가 바로 니체가 말하는 ‘초인’이다. 놀이하는 아이의 상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데, 첫째는 자아라고 하는 것이 실은 우리가 만들어 낸 허구적인 고안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제 세상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도덕적 객관성을 주장하기 보다는 진리와 비 진리, 선과 악의 피안에서 세계를 미학적으로, 즉 가치평가 없이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더니즘에서는 인간의 합리성과 그에 터잡은 인류의 진보에 관한 낙관과 믿음이 나타난다. 반대로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사회적․과학적 영역에서 ‘지적 상대주의’가 강조되며, 인간의 합리성에 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진보에 관한 비관적 견해들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 선구자격인 니체는 이를테면 ‘칸트가 말하는 확고한 이성의 제국을 떠나 미지의 열린 바다로 떠나는’ 것을 지향하면서 포스트 모던 시대의 등장을 예고하였다. 이상의 내용은 김윤태,「새로운 시대와 사회이론 :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넘어」,『현상과 인식 (통권 제97호)』, 한국인문사회과학회, 2005, 120-122쪽 참조.
이상의 내용은 정항균, 「자아의 발견에서 자아의 죽음까지」,『카프카연구 9』, 한국카프카학회, 2001, 142쪽-145쪽. ; 한자경, 「데카르트의 자아관」,『계명대학교 국제학논총 (제1집)』, 계명대학교 출판사, 1996, 258-263쪽 각 참조.
한편 자아와 타자의 관계에 관하여는 철학자에 따라 접근방식이 다르다. 레비나스는 타자와의 불일치를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주체성을 다시 세우는 것을 지향한다. 레비나스에 의하면, 존재자가 타자와 스스로 관계함을 통해서 비로소 의미로움과 선이 출현하며 선을 실현하기 위해 존재자는 늘 새롭게 존재의 짐을 스스로 짊어져야 한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 상황이 진정한 시간의 실현이며, 미래로 향한 현재의 침식은 홀로 있는 주체의 일이 아니라 상호 주관적인 관계라는 것이다. 반대로 사르트르는 ‘타자는 특별한 방식으로 존재함으로써 그에 대한 자아의 주체적 행위를 복잡한 방식으로 구조화한다’고 하면서, 자아의 주체적 행위가 결국 타자에 의해 부여되고 그러므로 타자가 자아를 지배한다고 보았다. 사르트르의 관점에서, 타자는 ‘나’를 대상화하는 존재이며, 여기서 타자와의 만남은 다른 자유의 시선 앞에서 곧 자아의 자유가 박탈되고 통치되는 것을 의미한다.
강영안,「레비나스 철학에서 주체성과 타자」,『철학과 현상학연구』, 한국 현상학학회, 1990, 247쪽-248쪽.
강신주,『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동녘, 2010, 153쪽.
최윤정, 「윤동주 시 연구 – 타자로 구성되는 주체의 탈 식민성」,『한국문학이론과 비평(제43집)』, 한군문학이론과 비평학회, 2009, 140쪽-141쪽.
첫째의 의문과 관련하여 본인이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자아는 삶 속에서 계속하여 변화하고 재창조된다는 것이다. 니체를 필두로 한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이론들이 자아의 부정에서 출발을 하였다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니체를 비롯한 이른바 탈근대의 철학자들이 ‘자아’의 개념을 부정하거나 폐기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탈근대의 철학은 근대의 선험적인 도덕철학(칸트)이나 절대이성(헤겔)에 정착한 자아론 대신 관점들을 열어 놓고 새로운 지평으로의 변화를 모색하는 개방적 자아론을 채택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니체에 의하면, 어린아이는 “순진무구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스스로의 힘에 의해 돌아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거룩한 긍정”이다. 또한 “정신은 이제 자기 자신의 의지를 원하며, 세계를 상실한 자는 자신의 세계를 획득한다."고도 한다. 본인이 생각하는 ‘자아’의 개념도 나를 둘러싼 세계와 의사소통하면서 세계에 대한 관점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때론 기존의 관점을 극복하고 조정해 나가는 개방적인 자아, 이른바 ‘열린 자아’이다.
정항균 (주 4), 144쪽.
강신주 (주 6), 165쪽-174쪽 참조.
니체는 어떤 확고하고도 불변한 자아상이 아니라 세계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는 자기 비판을 통해 늘 새롭게 탈피하는 인간상을 긍정하였다. 이에 관한 기술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과거에는 틀림없는 진실이라 생각했던 것이 지금은 잘못된 것으로 여겨진다. 과거에 이것만큼은 자신의 확고한 신조라 여기던 것이 이제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같은 변화를 자신이 어려서, 깊이가 없어서, 세상을 몰라서라는 이유로 그저 묻어두지 마라. …당시의 수준에서는 그것이 진리요, 신조였다. 인간은 늘 껍질을 벗고 새로워진다. 그리고 항상 새로운 생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비판하는 것, 타인의 비판에 귀 기울이는 것은 자신의 껍질을 벗는 일과 다름없다. 한층 새로운 자신이 되기 위한 탈바꿈인 것이다.”
Friedrich Wilhelm Nietzsche, 사라토리 하루히코 엮음․ 박재현 옮김, 『니체의 말』, 삼호미디어, 2010, 31쪽.
자아의 개념을 이렇게 파악한다면, 자아는 어떠한 건물이든 지어 올릴 수 있는 넓은 대지와 같다. 그렇다면 둘째의 의문과 관련하여, 타자는 우리의 자아형성에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치며, 우리는 어느 정도의 영향을 적절한 것으로 수긍하여야 할까. ‘열린 자아’는 나를 둘러싼 세계, 그리고 그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구체적인 개별자인 타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진정한 나의 모습을 찾아나간다. 요컨대 타자는 단지 자아의 존재를 증명하고 실현하는 거울을 넘어서, 그와의 관계는 자아를 형성하는 중요한 자양분이 된다. 이것이 실제로 나타나는 현상이며, 또한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타인의 시선에 의해서 건강한 자아형성의 과정과 결과가 왜곡되기도 한다는 데에 있다. 본인이 느끼는 불만족과 혼란감은, ‘바람직한’ 자아와 타인의 관계는 레비나스가 주장하는 바와 같은 것이지만, 실제로는 사르트르가 주장하는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자아는 타인의 시선 앞에서 적절히 긴장감을 유지하고, 타인의 시선이 자아의 주체성을 희석시키거나 깨뜨리는 것을 늘 경계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긴장 속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아 본연의 모습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몰입을 필요로 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스스로의 모습은, 윤색되고 미화된 자화상일 수 있다는 인식 또한 중요하다. 자아에 관하여 스스로가 인식하고 있는 ‘허상(虛像)’을 늘 경계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자아에 관한 본인의 이와 같은 관념은 짧은 기간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나’의 존재에 관한 의문을 가지고 오랜 시간 사유하였고, 그 사유의 과정에서는 늘 본인의 자화상이 함께하였다. 본인에게 자화상은 스스로의 모습을 투영하고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했지만, 본인에게 내재된 본연의 모습을 탐구하는 방법이기도 하였으며, 본인의 자아상을 객관화하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아래의 제2절과 제3절에서는 본인이 자화상을 제작한 동기를 돌이켜 살펴보면서, 자화상을 제작하면서 나타난 자아를 투영하고, 탐색하며, 객관화하는 과정들을 살펴본다.
2. 자화상의 제작 동기
여기서는 우선 자화상의 역사와 일반적인 제작 동기를 조명한다. 이어서 본인이 자화상을 제작하게 된 동기를 본인의 작품들을 통하여 되돌아본다. 본인이 자화상을 제작한 동기를 반추해보면, 본인은 자화상을 제작하면서 자아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응시하고, 그 속에서 주체적 자아를 탐색하며, 그러한 자아탐색의 과정을 형상화함으로써 스스로를 격려하고 위안하여 왔음을 발견하게 된다.
서양에서는 15세기 르네상스와 함께 자화상이 시작되었다고 하며, 알프레드 뒤러는 자화상으로서 자신의 고양된 자의식을 드러낸 최초의 화가로 기억된다. 동양에서는 문인화가들에 의해서 자화상이 그려지기 시작한 것으로 봄이 일반적이며, 그 시기는 서양과 대체적으로 비슷하다. 우리나라에서도 현존하지는 않으나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 2폭의 자화상을 그렸음이 문헌에 의해 밝혀졌다. 현존하는 조선시대의 자화상으로서 거의 유이(唯二)하게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는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1668-1715)와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의 자화상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조선후기 확산된 형사적 전신론(形寫的 傳神論)은 인물화와 자화상이 발달하였던 사상적 토대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주목할 만하다. 이는 외양적 형태를 통하여 대상물이 간직하고 있는 신(神)을 함께 옮긴다는 전통적인 ‘이형사신론(以形寫神論)’에 토대를 두고 있으면서도, 서학 등의 자극으로 대두한 실학적․개혁적인 사조와 결부되어 흥기된 천기론(天機論)과 모진(摸眞)의 경향과 밀착하여 나타난 것이었다. 서양과 동양은 상호 교류를 통해 시대적․종교적․사상적 변화의 흐름을 공유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그러한 변화 속에서 자화상이 등장하였다.
뒤러는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최초의 창시자라면 화가는 제2의 창조자이자 신의 모방자’라는, 화가로서의 드높은 자존감을 자화상으로 형상화하였다. 김인숙,「자화상에 나타난 나르시시즘 : 뒤러와 프리다의 자화상을 중심으로」,『인문과학연구 (제36집)』,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1, 121쪽 참조.
이원복,『한국 미의 재발견-회화』, 솔, 2005, 69쪽. 중국에서는 원대 초기에 제작된 조맹부(趙孟坦, 1254-1322)의 1299년작 〈自寫小像〉 정도가 전해지며, 명말 청초(17세기 초반) 무렵부터 문인화가들에 의한 자화상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중국에서의 자화상 등장과 발전에 관련해서는 장후구,「진홍수의 유민의식과 〈何天章行樂圖〉」,『미술사연구 (제22호)』, 미술사연구회, 2008, 219-230쪽 및 이주현,「화가의 자화상 : 18세기 양주화파의 작품을 중심으로」,『미술사연구 (제20호)』, 미술사연구회, 2006, 57쪽-78쪽 각 참조.
이원복 (주 12), 69쪽.
홍선표 교수는 “신윤복의 〈미인도(美人圖)〉는 청순하고도 관능적인 이미지가 돋보이는 걸작으로, 형사적 전신론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홍선표,『조선회화』, 한국미술연구소, 2014, 320쪽.
홍선표 (주 14), 176-177쪽.
이러한 역사적 흐름으로부터 자화상이 등장하게 된 연혁을 추적하면 자화상의 근원을 발견하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화상은 화가들이 자아에 대한 의식을 각성하고 자화상에 대한 예술적 금기(禁忌)가 깨뜨려 지면서 비로소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자화상은 이른바 ‘근대’의 지표들과 함께 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즉, 근대에 이르면 오래도록,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던 중세의 신분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화가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높아지고 그에 따라 자화상에 대한 금기가 해소된다. 그리고 개인의 개별적 인간성과 합리성, 창조성에 주목하는 새로운 종교적․학문적 사조가 나타나 사람들은 사상적으로 극전인 전환(轉換)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한 사상적 흐름 속에서 화가들은 예민한 감각으로 철학자들보다도 먼저 ‘자아’라는 개념을 발견하고 이를 형상화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자화상이다. 화가가 자화상을 통해서 자아상을 표현한다는 발상은 지금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개인을 자각하고 그것을 표현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지적‧예술적 노력이 소요되었던 것이다.
플루타크(Plutarch)의 『영웅전』에는 파르테논 신전을 조영했던 페이디아스(Phedias) 가 아테네 파르테노스상의 원순(圓楯)을 장식하는 부조에 아마존과 싸우는 전사들을 표현하면서 그 가운데 전사의 한 사람으로 페이디아스 자신의 모습을 넣었으며, 이로 인해 불경죄로 고소당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조선미,『화가와 자화상』, 도서출판 예경, 1995, 13쪽.
대표적인 자화상 제작화가인 렘브란트의 활동할 무렵에는 인간의 내면을 중시하는 프로테스탄트들이 부흥하였고, ‘개인’이 기록되고 연구될만한 가치가 있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김학철,「렘브란트의 예수 상과 자화상」,『기독교사상(통권 600호)』, 대한기독교서회, 2008, 168쪽.
르네상스 시대에 추구되었던 바는, 개개의 사람들이 합리성과 창조성에 기초하여 각각의 인간성을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17세기 초반 동양에서 흥성한 양명학의 사민관(四民觀)은 사농공상의 계급을 부정하고 각자에 대한 존재의 합리성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김종박,「명청시기 “士商滲透”현상에 관한 연구」,『역사학보 (제205집)』, 역사학회, 2010, 270-271쪽 참조. 우리나라에서는 실학이 새로운 학문적 경향으로 자리 잡아 갔다.
자화상은 아래에서 보는 것처럼 15세기 무렵부터 나타났으나, 철학적으로는 17세기에 비로소 데카르트에 의해 ‘자아’개념이 처음으로 주장된다.

강세황, 〈자화상〉, c1782, 비단에 색, 8.7×51.0㎝, 보물 제590-1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중섭, 〈자화상〉, 1955년, 종이에 연필, 48.5×31cm, 개인소장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귀가 잘린 자화상〉, 1889년, 캔버스에 유채, 45×51cm, 개인소장
자아의 각성과 그에 대한 표현 욕구는 자화상 제작을 위한 필수적인 동력이다. 그렇다면 화가들은 어떤 목적으로 자화상을 제작하는가. 화가들은 자화상을 제작함으로써 자기애(自己愛)와 고양된 자의식을 표현하기도 하였고, 세상에 자신이 존재하였음을 기념하기 위한 하나의 기록물로서의 가치를 부여하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비참하고 음울한 자신의 내면을 관조하면서 자화상을 통해 그 감정을 승화시키기도 하였다. 예컨대 강세황의 【도판 1】〈자화상〉은 자기애와 고양된 자의식을 뽐내는 한편, 자신의 존재를 기념하는 기록물로서의 기능을 갖는 자화상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한편 이중섭의 【도판 2】〈자화상〉이나 고흐가 말년에 그린 【도판 3】〈귀가 잘린 자화상〉들은 음울한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면서 그 감정을 승화시키기 위한 자화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요컨대 자화상은 화가 자신의 모습에 대한 표현일 뿐 아니라 작가의 내면 표출의 장이자, 자기인식의 방법이다.
강관식 교수는 초상화의 제작 동기와 관련하여 ‘잊혀지는 것에 대한 준비’, 즉 비망(備忘)의 목적을 설명하면서 강세황의 〈자화상〉을 예로 든다. 강관식「조선시대 초상화를 읽는 다섯 가지 코드」,『미술사학보 (제38집)』, 미술사학연구회, 2012, 161-162쪽.
강세황의 〈자화상〉에 관하여는, 위 각주 20)의 강관식 교수의 논문 및 오주석,『한국의 미 특강』, 솔, 2003, 212-216쪽 참조.
이주현 (주 12), 79쪽.
본인이 자화상을 제작하게 된 원인과 목적 또한 다른 화가들과 다르지 않았다. 본인은 주체성의 결핍에 관한 각성에 이은 자아에 관한 사유와 탐색을 계기로 하여 자화상을 제작하였다. 그리고 생각에 잠긴 자화상을 제작하면서 스스로를 응시하고 위안할 수 있었다. 본인에게 있어 자화상은 타인에 의해 호명된 무수한 이름들 속에서 아스라이 멀어져 가는 자아상을 붙잡는 과정이었고, 타인의 시선과의 긴장관계 속에서 주체적인 자아를 모색하는 스스로를 격

〈소행성_밝게 조정하다〉, 지본담채, 각90×140cm,28x139cm, 2010

〈자기(自器)에서 피어나다〉, 지본담채,128x180cm,2012
려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본인은 작업 과정에서 본인이 경험했던 삶의 단면들과 그 속에서의 감정과 생각들을 바라봄으로써 자아에 대한 혼란감을 다소나마 해소할 수 있었다. 결국 본인이 자화상을 제작하는 것은 단순한 작품 활동을 넘어 본인의 내적인 고뇌를 완화하고 위안 받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본인이 【작품 2】〈소행성 : 밝게 조정하다〉나 【작품 3】〈자기(自器)에서 피어나다〉와 같은 자화상들을 제작하게 된 출발점이다. 이하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시기적 순서에 따라 본인이 자화상을 제작하였던 동기와 배경들을 개관한다.

〈태동〉, 지본담채, 직경130cm, 2008
초기의 자화상은 자아에 관하여 사유하는 본인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본인은 본인만의 소행성을 가지고 싶었다. ‘어린왕자’는 자신이 홀로 사는 소행성에서 자못 외로웠을 테지만, 마음만큼은 자유롭고 한가하지 않았을까. 본인은 어린왕자를 부러워하며 【작품 1】〈소행성_밝게 조정하다〉, 【작품 5】〈태동〉과 같은 자화상을 제작하였다. 본인이 지향하였던 것은 침대와도 같은 소행성, 혹은 엄마의 뱃속에서 다른 이의 시선이나 간섭에 제약됨이 없이 혼자만의 사색과 휴식을 갖는 것이었다. 고독 속에서 ‘나’를 들여다보고 싶었던 본인의 자아상이 당시의 자화상에 반영 되었다.
자화상이 아닌 듯 보이지만, 좀 더 극적인 자화상이 바로 【작품 6】〈화병(火病)〉이다. 옹졸해 보이는 듯한 화병(花甁) 속에 식충식물이 사나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이 작품을, 본인은 본인의 자화상이라고 생각하였다. 이 작품을 제작할 때에는 본인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한창 높았을 무렵이고, 자아와 타자의 간섭과 충돌 또한 가장 심했던 시기였다. 이 무렵의 본인의 마음은 어느 곳에도 자리를 잡지 못하여 불안정하고 우울했다. 학부 졸업전시 작품인 이 〈화병(火病)〉은 당시의 우울하고 고통스러웠던 본인의 자아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화병’은 꽃을 담가 놓는 도자기(花甁)를 가리키는 동시에, 본인의 마음의 병(火病)을 의미한다.


학부 졸업 후 작가로서의 미래를 결심하고,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면서 제작했던 자화상이【작품 4】〈자기(自器)에 잠기다〉이다. 한층 안정된 색채와 분위기로 사색에 잠겨 있는 자화상을 제작했던 당시에는, 본인이 우울감의 무게를 거의 벗어내고 있다고 느낄 때였다. 어느 날 우연히『수타니파타』의 한 구절을 읽었는데,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말에 가슴이 아릴만큼 벅찼다. 그러다가 학교 행정관 앞길에 있는 수련을 발견하고는 그 앞에 앉아서 한참을 생각했는데, 묘하게 삶에 대한 용기와 의지가 샘솟는 것을 느꼈다. 수련이 핀 자기(瓷器)로부터 새로운 나(自己)가 피어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그것은 나만의 그릇(自器)을 새롭게 짜 내는 것이기도 했다. 이 자화상은 본인의 그러한 경험과 느낌을 표현한 것이다.
작자미상 (지안 옮김),『수타니파타』,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1, 26쪽.
본인의 자화상들은 제작의 동기나 목적은 비슷했지만, 그 속에 담긴 자아의 모습은 시기별로 많은 변천을 보이고 있었다. 본인도 본인의 작품을 정리하면서 새삼 놀라웠던 것이, 본인의 자화상들이 일기나 사진보다도 더 정확하고 상징적으로 그 때의 생각과 심리 상태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타인의 시선과의 갈등과 ‘나’의 존재에 대한 사유의 흔적들이 그대로 본인의 자화상에 녹아들어가 있었다.
3. 〈내숭〉시리즈의 제작 동기
〈내숭〉시리즈는 본인의 여러 자화상들 중에서도 자아에 관한 본인의 고민들이 가장 다층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내숭시리즈는 수 년에 걸쳐서 제작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자아와 타자의 관계에 관한 본인의 관념과, 불안정한 자아상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변하여 왔다. 여기서는 〈내숭〉시리즈를 처음 제작할 때의 동기부터 시작해서, 지금 〈내숭〉시리즈를 작업하는 이유와 목적까지 그 변천사를 순차적으로 살펴본다. 자아와 타자의 관계에 관한 본인의 생각이 발전하고 달라지면서, 〈내숭〉시리즈에 표현된 자화상의 의미와 자화상을 통해서 그려내고자 하는 자아상의 모습도 바뀌어 왔다.
〈내숭〉은 처음, 타인을 희화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희화화 한다는 것은 어떤 인물의 외모나 성격, 또는 사건을 의도적으로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거나 풍자하는 것을 의미한다. 처음 〈내숭〉을 그릴 때 본인의 관심은 타인에게 있었다. 본인에게 과도한 기대치를 부여하면서 사실은 본인을 평가하려는 사람. 본인의 의지나 의사와는 관계 없이 본인에 대하여 자신의 목적을 관철시키려는 사람. 본인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서 본인에 관한 소문들을 만들어내고, 이를 전하며, 이를 듣고 본인의 정체에 관하여 함부로 단정 짓는 사람.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본인의 자아형성을 방해하고, 주체적이고 자유로워야 할 본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람들로 여겨졌다. 본인은 이러한 사람들로부터 표리부동(表裏不同)의 속성을 포착하였고, 그 표리부동을 이른바 ‘내숭’으로 그려 은근히 풍자하려고 했다. 〈소행성 : 밝게 조정하다〉와 같은 자화상에서 본인의 관심이 본인의 내면을 향하고 있었다면, 초기의 〈내숭〉에서 본인의 관심은 타자를 지향하고 있던 것이다.
본인이 가장 처음으로 포착하였던 내숭의 이미지는 ‘화장’이었다. 화장은 우선 자신을 꾸미는(pretending)행위이다. 화장은 스스로의 외형을 좀 더 매력적인 모습을 위함이다. 그런데 화장을 할 때에는 의외로 솔직한 모습을 드러낸다. 조그만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대고, 눈썹을 그릴 때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입술이 벌어진다. 화장이라는 행위를 할 때 보이는 모습, 그리고 민낯과 화장을 한 얼굴의 차이는 ‘내숭’을 간접적으로 드러내 보이기에 적합한 소재였다. 그리하여 본인은 내숭을 은유하는 ‘화장하는 행위’부터 시작하여 ‘내숭’의 여러 모습들을 상징적으로 그려내기 시작했다.

〈내숭 : 몰입〉, 지본담채와 콜라주, 160×119cm, 2011

〈내숭 : 나르시스〉, 지본담채 콜라주, 72×90cm, 2011
본인의 시선은 타인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숭〉은 자화상으로 그려졌다. 본인은 초기의 〈내숭〉에서만큼은 자화상을 단순한 인물 모델로서 활용하였다. 사실적인 인물화를 그리려면 인물을 모델로 삼는 것이 좋다. 그런데 다른 이를 모델로 쓰는 일은 만만치 않은 비용과 수고를 들여야만 하는 번거로운 일이었고, 무엇보다 본인이 자화상을 그리는 데 익숙했기 때문에 ―적어도 그 당시에는 단순하고 우연한 선택에 의해― 본인은 본인을 모델로 하여 작업을 진행하였다. 비록 스스로 모델이 되었지만, 본인은 작업을 통해 화면에 생성하는 인물에는 다른 사람의 인격을 덧씌우고 있었으므로 그 인물이 본인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화가와 화면속의 인물을 동일시하지 않으면서도 화가 스스로를 모델로 삼아” 자화상을 제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우연처럼 〈내숭〉시리즈를 자화상으로 제작하기 시작하였는데, 본인의 자화상을 모델로 한 선택은 아래에서 보는 것과 같은 관념의 변화를 생각하면 결코 우연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본인의 무의식의 어떤 측면이, 그러한 선택으로 본인을 이끌었던 것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에 관하여는, 아래의 각주 26) 참조.
그렇다면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2012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내숭〉시리즈를 제작하면서, 〈내숭〉시리즈는 본인의 자아를 고백적으로 투영하고, 본인의 자아에 관한 관념을 내면화하는 진정한 의미의 자화상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이러한 자화상으로의 변모를 설명하기에 앞서, 우선 그러한 변모에 관하여 본인이 2013년 초에 적었던 작가노트를 옮긴다.
어느 날 작업실의 거울을 통하여 화폭에 담긴 사람이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는데, 사소한 경험이지만 그것은 중요한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다른 사람인 줄로만 알았던 화면 속의 내가 생김새뿐만 아니라 ‘당당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어정쩡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그 본질까지도 지금 나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타자화된 나의 모습을 발견하였을 때, 나의 본 모습을 찾고 싶지만 어디로 향할 줄을 모르던 나의 시선은 내면으로 집중되어 새로운 몰입의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비록 스스로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확고하게 판명할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에 속박되어 있는 현재의 상태만큼은 솔직하고 당당하게 털어 놓다 보면 시선 앞에 조금씩 당당해지지 않을까.
2013년 3월 작가노트 중 일부.

〈내숭 : 운치 있다〉, 지본담채와 콜라주, 114×59cm, 2012

〈내숭 : 아차(我差)〉, 지본담채와 콜라주, 145×117cm, 2012
2012년 겨울, 매일 같이 작업을 진행하던 어느 날 본인은 우연히 작업실에 있는 거울 앞을 스쳐지나갔다. 그 시간, 그 장소에는 본인, 즉 수많은 ‘김현정’이 있었다. 지금 붓을 들고 있는 실제 본인과 그가 마주하고 있는 거울 속의 본인, 본인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면 속의 본인, 벽에 세워 둔 많은 그림들 속의 본인까지 작업실에는 ‘김현정’이 참 많이도 있었다. 그런데 본인이 그려내고 있었던 인물들의 생활 습관과 행동거지, 그리고 그 이면에 있는 생각과 심리까지도 모두 본인의 것이었다.【작품 12】 〈내숭 : 운치 있다〉에서 나타나는 화장실에서의 습관도, 【작품 17】 〈내숭 : 아차〉에서 명품백을 들고 라면을 끓여먹는 행동거지도 모두 본인의 것임을 깨달았다. 본인이 희화화하면서 표현하고 있는 타자의 모습은 결국 본인의 자화상이었던 것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나에게서 그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라는 말처럼, 본인이 누군가의 자아에 간섭하고 때로는 그 주체성을 억압하는 ‘타자’를 인식하고 미워하는 것은 누구보다도 본인이 그러한 타자의 모습에 가까웠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본인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본인도 ‘내숭’이라는 행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본인이 ‘타자’를 목적으로 한 작품을 제작하면서도 본인의 자화상을 차용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본인의 무의식이 이끌어 낸 산물일 수 있다. 본인은 무의식중에 본인을 타자에 대입시키고, 그 타자를 객관적 인식과 표현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서 다시 그 타자로부터 본인의 모습을 발견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 무의식의 원동력은, 본인의 자아 정체성을 주체적으로 확립하고 싶어하는 본인의 욕구였을 것이다.
본인도 결국 ‘타자’라는 생각을 하고 나니, 본인이 주체적 자아를 분명하게 정립하지 못한 이유를 타자의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었다. 본인은 본인 스스로 지나치게 타자에 대해서 방어적이었거나 타자를 배척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와 같이 관점을 달리 하자, 타자보다는 본인에게서 문제점을 찾기 시작하였다. 본인은 주체적 자아를 정립하기 어려운 이유를 타자의 탓으로 돌리던 생각을 버리고, 본인이 스스로에 대한 관심과 주체성에 대한 의지가 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즉, 타자가 본인의 자아 영역에 침범하기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주체성을 유지하려는 본인의 의지가 약했기 때문에 타자와의 관계에서 쉽게 흔들리는 것이다. 이는 본인도 ‘타자’가 될 수 있음을 실감하고 나서 느끼는 일종의 자기정당화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획기적인 생각의 전환을 통해서 본인의 작업은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하였다. 이러한 전환의 계기가 된, 낯설고도 익숙한 본인 자신과의 조우를 그린 것이【작품 19】 〈내숭 : 낯선 혹은 익숙함〉이다.

지본담채와 콜라주, 85×155cm, 118x150cm, 2013
결국 ‘주체적 자아에 대한 본인의 의지’를 ‘타인의 시선’에 양보하는 것은 본인의 선택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상태가 불안정하고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다고 하여 전전긍긍할 이유가 없다. 그리하여 본인은 예전에는 주체적 자아상을 확립할 수 없는 상태에 불만을 느끼고 이를 거부하려고만 하였다면, 지금은 이를 시인하고 수긍하게 되었다. 여전히 주체적 자아상에 대한 의지를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이방인과 같다고 느꼈던 자아의 불안정을 제법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의 자화상 제작은, 본인이 생각하는 내숭의 국면들을 일상에서 재발견하고 그것들에 관하여 사색하면서 본인의 ‘내숭’을 고백하고 위와 같은 ‘자아와 타자’에 관한 관념을 내면화 하는 과정이다. 본인에게 ‘내숭’이란 궁극적으로 극복해야 할 현상이지만, 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자신의 내숭을 부인할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그러한 면을 응시하고 성찰함으로써 자아를 좀 더 주체적으로 형성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의 변화는 어떤 면에서 본인의 성장을 의미한다. 최근의 작가노트는 이러한 성장과 변화를 드러내고 있다.
성장한다는 것은 삶의 색채와 향기를 더 다채롭고 섬세하게 느낄 수 있게 된다는 변화로 나타난다. 난생 처음 맞닥뜨리는 이벤트들은 나를 놀라고 당혹케 만들기도 하지만, 부족함이 있다고 느꼈던 새로운 경험들을 통해서 색다른 삶의 감각을 터득하게 되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한 발 뒤로 물러선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 역설적으로 두 발 더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을 항상 뒤늦게 깨닫게 되며, 이 한 발의 진보(進步)를 항상 뒤늦게 깨닫는다는 것 또한 역설적인 일이다. 스물여섯에서 스물일곱으로 넘어가는 삶의 관문에서, 나는 버겁다고 느껴질 만큼 큰 도약을 경험했다. 쉽지 않은 한해였다. 느닷없이 찾아 온 커다란 생활의 변화를 견뎌내며 1년을 지내다 보니, 어느 덧 내가 감응할 수 있는 삶의 색채와 향기가 몇 가지 늘어났음을 느낀다.
2014년 3월 작가노트 중 일부.
요컨대 본인의 〈내숭〉시리즈는 처음에는 타자에 관심을 두고 그 표리부동을 희화화 하는 것이었고, 그 때 본인의 자화상은 단지 타자의 인물표현을 위한 모델로 활용할 뿐이었다. 그러나 우연한 경험을 통해 본인도 결국 타자와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나아가 본인이 주체적 자아상을 확립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본인의 의지이자 선택의 문제라고 관점을 달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금은 주체적 자아상을 지향하면서도 자아의 불안정 상태를 수긍한다. 그러면서 본인의 ‘내숭’을 포착함으로써 결국 본인도 누군가에게는 타자임을 고백하는 한편 자아와 자아의 형성에 관하여 변화된 관점을 내면화하는 자화상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의 〈내숭〉시리즈에서는 자화상은 본인의 자아상을 투영하는 것보다, 본인의 자아상을 객관화하고 성찰하는 하나의 과정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Ⅲ. 〈내숭〉을 통한 내재적 형상표현64
앞서 확인한 것처럼 〈내숭〉시리즈는 본인의 자아를 객관화하고 성찰하는 과정으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그러므로 〈내숭〉을 통해서 표현되는 본인의 내재적 형상은 주관적이라기보다는 객관적이다. 그리고 객관적인 내재적 형상표현은 〈내숭〉에서 여러 가지 조형적 요소들에 의해서 달성된다. 이 장에서는 본인의 자화상 중 특히 〈내숭〉시리즈와 관련하여, 객관적인 내재적 형상표현을 뒷받침하는 몇몇 중요한 조형요소 또는 표현방법들에 관하여 분석한다. 그 조형요소로서 본인이 특히 중요한 것으로는 내숭의 의미, 한복의 기능, 그리고 일상의 연극적 도상화를 들 수 있다. 이하에서는 항을 나누어 이들을 구체적으로 본다.
1. ‘내숭’의 의미와 표현
〈내숭〉시리즈를 통해 그리는 ‘내숭’의 의미는 독특하며, 그 의미 또한 자아와 타자의 관계에 대한 본인의 관념을 따라 변화해 왔다. 제2장 제3절에서 본 것처럼, 초기에 본인의 작품에서 ‘내숭’은 표리부동(表裏不同)을 상징하는 것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숭〉시리즈가 본인의 자화상으로 변모한 지금에는, ‘내숭’은 중립적이고 보편적인 개념이다. 본인의 작품에서 ‘내숭’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통념적 평가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속마음과 다른 겉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모든 태도’를 이른다. 현상과 본질이 일치하지 않을 때 찾아오는 부자연스러움이나 이질감을 이미지화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조금 더 추상적으로는, ‘내숭’이란 타자의 시선이나 기대에 대한 지향이 주체성에 대한 지향보다 우위를 점할 때 나타나는 주체적 자아의 후퇴라고도 설명될 수 도 있다. 본인이 이처럼 ‘내숭’의 개념을 확장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우선 ‘내숭’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겉으로는 순해 보이나 속으로는 엉큼함’이라고 한다. 이 내숭이라는 말은, 흔히 여자가 남자 앞에서 조신하고 연약한 모습을 보일 때 쓰이곤 한다. 하지만 주류적인 용례가 그렇다는 것일 뿐이다. 내숭의 사전적 의미는 광범위하며, ‘내숭을 떤다’고 표현할 만한 상황은 주변에 많다. 예를 들어, 어른이 용돈을 줄 때 짐짓 사양하지만 실은 매우 반가운 마음으로 용돈을 받을 때에도 내숭을 떤다는 표현을 쓸 수 있다. 내숭은 겉으로 보이는 행위의 태양과 속에 숨어 있는 사람의 진심이 다르며,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늘 보기 좋다는 것을 핵심적인 속성으로 한다.
이처럼 본인은 ‘내숭’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속성 중에서도 ‘겉과 속이 다르다’는 측면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내숭의 모습이 아니더라도 겉과 속이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주체성에 대한 자아의 의지와 타인의 시선 사이의 충돌에 기초한 것으로 생각된다면 이를 ‘내숭’으로 포섭한다. 그러므로 본인의 작업 소재는 일상적 용례의 내숭에 한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본인의 작품에서 ‘내숭’은, 위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타인의 시선 앞에서 자아를 그 시선에 부합하도록 형성하고 표출하는 현상을 통틀어 이르는 비유적이고 포괄적인 의미를 가진다. 요컨대 주류적인 용례로 파악되는 내숭은 ‘좁은 의미의 내숭’이라 한다면, 본인의 작품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숭은 ‘넓은 의미의 내숭’이다.
어쩌면 내숭보다는 ‘표리부동(表裏不同)’이라는 말이 위에서 기술한 넓은 의미의 내숭을 더 정확히 포착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표리부동이라는 부정적 의미가 강한 표현보다는 좀 더 중립적인 표현이 필요했기 때문에 작품의 제목을 〈내숭〉이라 칭하였다. ‘내숭을 떤다’는 표현의 주류적 용례들을 살펴보면 대상을 비난하는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갸륵하게 여기는 뉘앙스를 띤다. 그러므로 ‘내숭’은 표리부동이라는 표현보다는 좀 더 중립적이고 긍정적인 함의를 갖고 있다.
본인이 이처럼 내숭이라는 표현의 중립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내숭이라는 표리부동의 행위가 보편적이고도 자연스러운 본능의 표출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필연적으로 인정받으며, 필연적으로 인정하는 존재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매개로 하여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를 자리매김한다. 타인에게 자기의 존재를 인식시키고 그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심을 가지는 것은 우리에게 숙명과 같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이나 단점을 감추고 자신의 모습을 그 시대의 규범이나 풍조에 걸맞게 포장하고 싶어 한다. 어떤 면에서 내숭은 그 시대의 규범이나 풍조가 요구하는 기대치만큼 자신을 외양을 충분히 형성하지 못한 사람이 행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내숭은 때로, 약자가 성공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수단처럼 보이기도 한다. 김훈 작가의 소설 ‘내 젊은 날의 숲’ 중에 나타나는 아버지의 모습은, 생존을 위한 내숭이며 우리가 미워할 수 없고 오히려 안쓰러운 모습의 내숭이다.
강신주 (주 6), 388쪽.
어린 내가 보기에도 아버지의 삶은 멸종의 위기에서 허덕거리듯이 위태로웠고, 비굴했다. 아버지는 어린 자식들이 보기에도 민망하게 직장의 상사들에게 굽실거렸고 밤중에도 수시로 불려나갔다. 밤중에 상사의 전화를 받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슬펐고, 내 여고 시절은 그 슬픔에서 온전히 헤어나지 못했다.…(중략)…아버지가 교도소에서 모범수가 되었다는 소식이 놀랍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교도소의 모든 규칙을 지켰을 것이며 교도관들의 지시에 순응하면서 굽실거렸을 것이다. 아버지가 모범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내 여고 시절에 밤중에 전화를 받고 어디론가 불려가던 아버지의 마른 등을 생각했다.
김훈, 『내 젊은 날의 숲』, 문학동네, 2010, 9쪽-10쪽.

〈내숭 : 원더우먼 다이어리〉, 지본담채와 콜라주, 182×122cm, 2014

〈내숭 : 주부 9단의 봄날〉, 지본담채와 콜라주, 191×130cm, 2013
작품 29】〈내숭 : 원더우먼 다이어리〉와 【작품 30】 〈내숭 : 주부 9단의 봄날〉은 우리 사회가 미안해하고 감사해야 할 어머니들의 내숭에 대한 경의를 담은 것이다. ‘아내’이자 ‘어머니’라는 역할기대 앞에서 주체적 삶에 대한 의지를 기꺼이 양보하고 희생하신 어머니들의 삶 자체가 내숭이다. 본인은 본인의 어머니께 작품으로써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본인이 생각하는 ‘내숭’의 외연은 개별적 행위뿐만 아니라 하나의 인생 전체를 아우르는 것까지 확장된다.
요컨대 본인의 작품에서 ‘내숭’은, 비난이나 폄하의 대상이 아니라 가치중립적이며,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것이다. 본인은 본인의 일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내숭의 국면들을 포착하여 그린다. 이로써 누구나가 다른 이에게 ‘타자’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며, 앞서 밝힌 자아와 타자에 관한 관념을 내면화 한다. 본인의 작품에서 ‘내숭’의 소재가 되는 각각의 사건들은 그 자체가 내숭의 구체적 이미지를 형상화하기도 하지만, 본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내숭’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가상의 도상들을 차용하기도 한다. 예컨대【작품 29】〈내숭 : 원더우먼 다이어리〉는 그 자체가 구체적인 내숭의 상황을 형상화 한 것이라기보다는 본인이 응원하고 격려하고 싶은 이 시대의 ‘원더우먼’들의 내숭을 상징적인 이미지로 드러낸 것이다.
2. 한복의 기능과 표현
한복은 본인의 〈내숭〉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매우 중요한 조형요소이다. 우선 한복은 작품 외적인 측면에서, 우리 전통문화를 대표하는 복식으로서 본인의 전 작품을 관통하여 추구되는 ‘한국 전통문화의 계승’이라는 가치를 표상한다. 작품 내적인 측면에서 보면, 한복은 우선 장신구까지 포함하여 다양한 색채와 형상의 조합이 가능하여 작품의 심미적 요소로서 핵심적인 기능을 하며, 현대적 소품과 일상과 대비되어 통념으로부터의 일탈(逸脫)을 상징한다. 그리고 콜라주를 통해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방법으로 표현함으로써, 가린다고 하더라도 결국 내면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내숭’의 속성을 단적으로 제시한다. 〈내숭〉에서 한복은 이러한 기능을 가지면서, 궁극적으로는 ‘자아와 타인의 시선에 사이의 긴장관계’를 은유하는 독자적인 조형요소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하에서는 독특한 조형요소로서 한복의 기능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본인은 아래에서 설명하는 것과 같은 기능들을 고려하여 인물의 의상으로 한복을 선택하였지만, 무엇보다 본인의 취향이 그 선택을 이끄는 이유가 되었다. 본인은 10여 년 전 오주석 선생의 『한국의 美특강』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때 선인들의 그림에서 찾아볼 수 있는 높은 격(格)과 멋을 새삼 깨달으면서 동양화라는 본인의 전공에 더욱 애착을 갖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동양화에도 종래 서양화의 표현수단․기법으로 통하던 것이 현저하게 적용됨으로써 동양화가 가지는 고유한 정서나 기법이 희석되고 있다고 한다. 이와 달리 본인은 동양화가로서 우리 고유의 정서와 멋을 전통적인 기법으로 계승․발전시키는 것을 지향한다. 오래된 것으로부터 새로운 의미와 미적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보편적으로 승인될 수 있는 혁신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한복을 입은 인물을 수묵담채로 그리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 기초한다. 특히나 한복은 하나의 패션으로서도 본인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으며 그 자체로 고유한 조형적 아름다움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이처럼 한복은 본인의 화가로서의 지향점과 취향을 드러내는 것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특히 오주석 (주 21), 96면-125쪽 참조.
신경섭, 「한복 패션에 나타난 한국적 디자인의 조형적 특징 분석」,『한국의상디자인학회지』(제12권 제3호), 한국의상디자인학회, 2010, 123-125쪽에 의하면, 오늘날 전통한복의 복식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조형적 요소들을 새롭게 스타일링 하여 퓨전드레스 등의 패션상품을 내놓고 있다고 하면서 전통 한복 디자이너들에 의해 디자인되고 제작된 옷들 중 생활한복을 제외한 한복풍의 모든 상품을 ‘한복 패션’으로 지칭하고 있다. 한편, 전통복식에 표현된 조형적 미로서, “형태의 미, 색채의 미, 문양의 미, 장신구의 미”로 분석하는 견해(김영자)에 의하면 형태의 미는 구성선과 트임선 그리고 가변선에 따라 미적인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색채의 미는 풍토, 사상, 주술, 색채조화에 의해 형성되었고, 문양의 미는 상징성과 구도에 의해 이루어 졌으며, 장신구의 미는 신분 상징과 주술성을 갖고 있다고 하였다. 한국 복식의 미를 “자연미, 인간미, 벽사미, 전통미”로 분석하는 견해(금기숙)와 “선/결의 미, 비움과 여백의 미, 상징의 미, 중첩의 미”로 분석하는 견해(김민자)도 있다고 하나, 위 각 분석의 내용과 맥락은 대체로 상통한다고 한다.

〈폼생폼사 : 순정녀〉의 부분

〈내숭 : 피어나다〉의 부분
〈내숭〉시리즈에서의 내적 조형요소로서의 의미를 살펴보면, 한복은 일차적으로 심미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내숭〉에서 인물이 한복을 입고 있는 것은 매우 일관된 모티프이며, 감상자가 가장 먼저 직관할 수 있는 조형적 특질이다. 그리고 〈내숭〉에서 한복은 작품의 분위기와 작품에 대한 감상자의 인상을 결정하는 일차적인 심미적 요소이다. 즉 한복은 우리 선조들의 생활복과 의례복을 통틀어 이르고 있기 때문에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줄 수 있는가 하면, 소한한 멋을 표현할 수 있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한복은 교졸(巧拙)의 멋을 화면 속에 투영할 수 있는 아주 적합한 소재이다. 교(巧)는 달콤하고도 요염하며, 졸(拙)은 질박하고도 거칠다. 교는 속되나 졸은 우아하다. 교의 특색은 화려함․매끄러움 혹은 아리따움이다. 졸의 특색은 망설임․서투름․간솔함․그리고 투박함이다. 예를 들어【도판 16】【작품 37】 〈내숭 : 순정녀〉는 교(巧)의 멋을 담고 있다면, 【도판 17】【작품 14】 〈내숭 : 피어나다〉는 졸(拙)의 멋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한복은 작가가 다양한 미(美)를 표현하기 위하여 선택할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수단인 것이다.
임태승,『아이콘과 코드 : 그림으로 읽는 동아시아 미학범주』, 미술문화, 2010, 57면.

〈내숭 : 공(空)〉의 배씨 댕기 부분

〈폼생폼사 : 준비완료!〉의 떨잠 부분
장신구도 한복 자체 못지 않게 작품의 인상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도판 18】,【작품 13】 〈내숭 : 공(空)〉의 부분도에서 인물이 앞머리에 매고 있는 장신구는 배씨 댕기라고 하는 것으로, 은으로 배씨(梨種子)모양을 만들어 칠보(七寶)로 장식한 어린이용 댕기이다. 양편에 보조댕기를 가늘게 달아 가리마 중앙에 배씨를 놓고 양편으로 가른 머리를 바둑판처럼 나누어가며 배씨 댕기와 같이 연결하여 땋아 짧은 머리를 고정시키는 것이다. 한편 【도판 19】,【작품 38】 〈폼생폼사 : 준비완료!〉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떨잠이다. 떨잠은 큰머리․어여머리의 앞 중심과 양 옆에 꽂는 머리꾸미개로서 옥판 위의 떨새가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사극에서, 아직 시집을 가지 않은 처녀가 하고 있는 것이 머리장신구가 배씨 댕기이고, 궁중의 비빈(妃嬪)들이 어여머리 아래 하고 있는 장신구가 떨잠이다. 이러한 장신구도 교(巧)와 졸(拙)의 멋을 형상화하면서 작품에서 고유한 심미적 기능을 담당한다.
한편 일련의 〈내숭〉 작업에서 발전시키고 있는 관념 중 하나는, 우리가 무의식중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통념으로부터의 일탈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상식과 통념은 우리의 삶에 안정감을 선사하지만 때로는 개인의 독특한 개성을 매몰시키기도 한다. 또한 통념적 평가는 때로 오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므로 그에 대한 적정한 비판적 시선은 필요하다. 〈내숭〉에서 인물이 입고 있는 전통적 의상인 한복과 장신구는, 인물이 사용하고 향유하는 스마트기기와 현대적 일상과 대비된다. 이처럼 시대적으로 교차하지 않는 이미지를 대조적으로 조화시키는 것은 ‘이런 때는 이런 것을 해야 한다’거나 ‘이런 사람은 이래야 한다’ 는 통념에 충격을 가한다. 예를 들어 한복을 입고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모습이나 책상에 발을 올린 채로 태블릿을 조작하는 모습은 통념적인 기대에 걸맞은 이미지는 아닌 것이다. 한복을 입고 있는 인물이 하는 행동과 소품의 대비가 주는 의외성은 본인이 〈내숭〉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중요한 조형의식 중의 하나이다. 즉, 본인은 화면에 전통의상과 현대의 일상을 공존시키고 겉과 속이 다른 여인의 내숭이라는, 일종의 비상식 내지 아이러니를 형상화함으로써 파격(破格)을 제시한다.
한편 한복은 그 자체로 ‘일탈(逸脫)’로 대변되는 한국적 미(美)의 상징물로서 제시되기도 한다. 시인이자 국문학자인 조지훈은 1960년대 ‘한국의 멋’의 구조에 대해 연구하여, 멋이 갖는 비정제성, 파격 등을 이야기했다. 그는 멋이란 아름다움의 정상성을 데포르메(déformer)해서 체득한 한국적인 고유미라고 했다. 국어학자 이희승은 한복의 긴 고름이나, 버선코와 신코의 뾰족함, 저고리 회장, 섶귀의 날카로움, 그리고 고려자기 주전자의 긴 귀때와 한국가옥의 추녀 곡선을 들었다. 그는 멋이야말로 사물의 실용성을 떠나 통일을 깨고 균제를 벗어나는 한국미의 특색이라고 보았다. 일탈은 법도에 어긋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것은 자연스러운 어깃장으로서 통상적인 규칙성에서 벗어나는 것임에도 정해진 영역이나 규범으로부터 괴리감을 유발하거나 전체의 틀을 깨뜨리지 않는다. 학자에 따라 한국예술미의 궁극적 핵심을 ‘일탈의 미학’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본인이 작품을 통하여 제시하는 ‘통념에 대한 충격’ 혹은 ‘파격(破格)’은 현재의 통념에 대하여 날을 세운 비판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자아와 타자의 원만한 상호작용 속에서 개인이 주체성과 개성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숭〉에서 나타나는 파격이라는 것은 우리가 상식과 통념으로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의 일탈(逸脫)에 가까운데, 한복은 그 자체로서 그리고 작품 속에서의 조형적 활용에 따라 일탈을 상징한다.
어떤 대상의 형태가 달라지는 일. 또는 달라지게 하는 일.
회장(回裝)이란 저고리나 포(袍)등의 깃․ 끝동․ 겨드랑이 등에 다른 빛깔로 색을 맞춘 부분을 뜻하며, 섶귀는 두루마기나 저고리 따위의 옷섶의 끝을 뜻한다.
이주영,『미학특강』, 미술문화, 2011, 118면.
이미향․유택상,「문화적 특징의 연구를 통한 한국 전통화예의 특성도출」,『한국화예디자인학연구(제24집)』,한국화예디자인학회, 2011, 149쪽에 의하면 한복의 가장 큰 조형적 특징은 윤곽선에 드러나는 풍성한 곡선의 미로서, 평면적 구성의 직선재단이면서도 착장에 따라 달라지는 가변적인 선의 미라고 한다. 한복에서의 선은 인체에 자연스럽게 합치되어 인체를 구속하지 않는 유기적인 곡선으로서, 옷을 입는 방법에 따라 다양한 형태미를 연출하며 인체에 입혀졌을 때 한복의 입체성이 드러난다고 한다. 또한 고름은 단조로운 형태에 변화를 가미시켜 비대칭, 비균제성의 조형적 특징을 이룬다고 한다.
한명희, 「한국음악의 미적유형」,『미학예술학연구』(제9집), 한국미학예술학회, 1999, 37-39쪽에서는 한국음악 중 정악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유장미와 정관미, 화평미와 민속악에서 주로 느끼게 되는 파격적 미감과 질박한 미감, 애련한 미감 등 수다한 미적 제상(諸像)들을 관류하는 공통된 미학으로서 궁극의 본질적 미개념은 ‘일탈(逸脫)의 미학(美學)’이라고 하면서, 그것은 설익은 맛을 위한 억지의 이탈(離脫)이나 거역을 위한 의도적인 탈선이 아니라, 내부서 순리대로 배어나는 난숙한 일탈, 그것이 곳 한국음악의 참맛을 양조(釀造)시키는 효소(酵素)로서의 이탈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한복은 우리가 내숭을 떨더라도 각자의 내면은 그 안에 오롯이 감추어져 있으며,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내숭의 속성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콜라주와 수묵담채라는 한복의 표현기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인물이 입고 있는 한복은 반투명하여, 나체(裸體)의 실루엣은 옷자락 아래로 비춰 보인다. 때로는【작품 39】 〈내숭 : 마라토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한복의 치맛자락 아래로 인체의 실루엣이 거의 그대로 드러나기도 한다. 옷자락 아래로 비춰 보이는 실루엣은, 평소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우리가 흔히 숨기고 있는 각자의 내면을 은유한다. 우리가 본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내적 세계는 옷자락으로 상징되는 내숭으로 가리더라도 언젠가는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수긍하면서도 주체적으로 그 내적 세계를 형성하고, 그 모습에 조금 더 솔직해지고 당당해져야 한다. 〈내숭〉에서 한복은 콜라주와 수묵담채의 기법을 활용한 반투명한 표현을 통해서 위와 같은 주제의식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한다.

〈내숭 : 마라토너〉,
지본담채와 콜라주, 200x121cm, 2014
이와 같은 한복의 활용은 한복이 지닌 일반적 속성을 한 번 비튼 것이다. 한복은 상당히 ‘은폐성(隱蔽性)’을 가지고 있는 복식이다. 여자의 한복은 그 치마속이나 저고리속이 비치기는커녕 속치마 등을 덧입음으로써 여인의 온 몸을 철저하게 가리는 옷이다. 특히나 치마 속이 비치는 한복이란 한복의 전통에 비추어 보면 상상하기 힘들다. 이와 같은 한복의 본래 속성은 본심을 은폐한다는 내숭의 속성에 근접한다. 여인의 넓은 치마폭만큼이나 흉중(胸中)에 숨겨진 인물의 진심은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본인은 한복의 속성을 한 번 비틀어서, 인물의 내면에 대한 접근의 통로를 살며시 열어 놓았다. 옷자락 뒤로 비치는 인물의 실루엣으로부터, 감상자가 그 실루엣의 이면에 있는 인물의 내면에까지 닿을 수 있는 문고리를 발견하길 기대한다. 결국 옷자락 아래로 숨겨진 각자의 내적 세계를 눈에 보이도록 형상화함으로써 감상자가 그 내면세계에 닿을 수 있도록 한다는 본인의 발상은, 한복이 가지는 기본적 속성인 은폐성을 극복한 것이며 또한 내숭을 극복하는 것이다. 한복의 은폐적 속성에 대한 반전으로 실루엣의 투영을 실현하고 있기에, 내숭에도 불구하고 드러나는 인물의 내면세계는 더욱 돋보인다.
3. 일상의 연극적 도상화
자화상을 그릴 때 화가는 단순히 자신의 외형을 화면에 모사(模寫)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가적 조형의식을 자화상에 반영한다. 화가가 자화상에 자신만의 고유한 조형의식을 결부시키면, 자화상은 좀 더 특별한 예술적 의미를 부여받는다. 그리고 감상자에게는 자화상의 주인공에 관한 희극적 상상력을 좀 더 극적으로 불러일으킨다. 본인은 본인의 〈내숭〉시리즈에 단순한 자아상의 투영을 넘어, 일상적 사건들을 연극적이고 상징적인 이미지로 도상화 함으로써 본인의 조형의식을 드러낸다.
우선 자화상에 예술적 조형의식을 결부시키는 것에 관한 철학적 논의를 간단히 살펴본다. 프랑스의 철학자 폴리쾨르(Ricoeur, Paul)는「렘브란트의 한 자화상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렘브란트가 화판과 “거리를 유지한 채” 자신의 모습을 그리면서 자성 (s'examiner)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그(렘브란트)에게 자성한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수수께끼가 풀리기 시작한다. 렘브란트는 거울 속의 자기 이미지를 해석해서(interpréter) 화포 위에다 재창조해(recréer)낸다. 자기 자신을 이야기 한다는 것, 이것은 곧 창조행위이다. 관조자이자 애호가인 우리들에게 이 창조행위는 화가의 이름과 그림 속 인물의 이름이 동일하다는 근거를 제공한다. 거울에 미친 나(moi)와 그림 속에 해독된 자기(soi) 사이에 그림을 그리는 예술행위, 자기 자신을 이야기하는 예술 행위가 개입돼 있다.
Paul Ricoeur,「Sur un autoportrait de Rembrant」,『Aux frontières de la philosophie』, Paris, Seuil, 1994, p. 15. 참조. 이는 이기언,「자화상에 대한 해석학적 고찰」,『프랑스어문교육(제28집)』, 한국프랑스어문교육학회, 2008, 289쪽에서 재인용.
리쾨르는 작가와 자화상 속 인물 사이에는 “그림을 그리는 창조적 예술행위”가 개입되어 있다는 중요한 점을 시사하고 있다. 작가가 자화상을 그린다고 하여 반드시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그리라는 법이 없다. 작가는 자화상을 제작하면서, 얼마든지 자신의 외형과 자아상을 비틀거나 재창조할 수 있다. 예술적 창조행위가 매개하면서 생겨나는 ‘작가’와 ‘자화상’ 사이의 이 간극 속에서, 작가는 자신의 자아상을 얼마든지 변형시키면서 자신만의 조형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자화상에 조형의식을 결부시키는 예를 앤디워홀의 【도판 21】폴라로이드 자화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워홀은 자신의 폴라로이드 사진과 일기를 잡지에 게재하였다. 워홀은 얼굴 전반에 하얀 분칠과 아이라이너를 하고 진한 립스틱을 칠한 채 사진을 촬영하였는데, 이는 일종의 ‘가면(persona)’을 의미한다. 이 가면은 화려한 외면을 강조하면서, 원래의 얼굴에 대한 접근을 가로막는다. 그렇다면 일기에 담긴 그의 내면은 어떠할까. 어떤 깊은 내면을 보여주지 않을까. 그러나 일기에 담긴 모습도 그 자화상과 다르지 않았다. 워홀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자화상을 얄팍한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워홀은 커리어 말년에는 유명인사의 반열에 오르기는 했지만, 워홀의 외형은 헐리웃 스타들의 매력적인 모습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매력적인 미디어 세계에 편입하고자 하는 워홀은 자신의 그런 지향성을 표현하기 위해 스스로를 얄팍한 대중으로 형상화하면서 종종 이런 가장의 모티프(camouflage motif)로 광고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자아를 투영하는 것을 넘어, 자신이 지향하는 바, 즉 ‘자아의 지향성’까지 자화상에 담은 것이며 이 자화상에는 워홀만의 독특한 조형의식이 묻어난다.
Scott Rothkopf,「Made in Heaven : Jeff Koons and the Invention of the Art Star」,『Pop Life : Art in a Material World』, London, Tate Publishing, 2009, p. 48 참조.

〈내숭 : 새빨간 거짓말〉, 지본담채와 콜라주, 182×119cm, 2013

〈내숭 : 완벽한 밥상〉, 지본담채와 콜라주, 130×162cm, 2013
본인은 〈내숭〉에서 단순히 본인의 얼굴이나 신체를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의식과 관련된 일상의 소재와 사건들을 연극적으로 드러낸다. 본인은 본인의 자화상 속에서, 마치 연극배우처럼 분장을 하고 하나의 이벤트를 벌인다. 그러한 분장과 이벤트는, 본인이 심혈을 기울인 작품의 제목과 결합하여 본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내숭의 국면을 은유한다. 예를 들어 【작품 23】 〈내숭 : 새빨간 거짓말〉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여자의 내숭’을 은유하며, 【작품 21】〈내숭 : 완벽한 밥상〉에서 본인의 자화상은 격식을 차리고 먹는 일류 프랑스 코스요리보다 바닥에 깔고 앉아 먹는 짜장면과 탕수육이 더 만족스런 밥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간과하고 지나치는 내숭의 국면들은 상당히 많고, 본인은 이들을 포착하여 사실적이고 희극적으로 화면에 담는다. 우리의 일상에 보편적으로 흩어져 있는 표리부동의 행위들을 ‘내숭’을 매개로 포착해 내는 것이 본인 작업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 선정 기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상자의 공감’이다. 이렇게 소재가 되는 사건들을 구상하고 선정하면 이미 한 작업의 절반이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내숭을 일상적 사건의 도상으로 이끌어 내는 작업은 중요하고도 어렵다.
본인이 자화상을 일상적 사건을 연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각각의 작품에 붙인 제목에 의해서 그 의미가 더욱 부각된다. 본인은 작품이 완성되고 나면, 여러 후보군을 놓고 그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는 제목을 선정하기 위해 고심한다. 그리고 이 때 ‘해학(諧謔)’ 이라는 요소가 가장 중요하게 고려된다. 본인은 내숭을 보편적 문제이자 본인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신랄하고 따가운 비판보다는 오히려 따뜻한 해학으로써 내숭을 표현하고 싶었다. 감상자가 본인의 작품으로부터 재미를 느끼고, ‘자아와 타인의 시선’, 그리고 ‘우리들의 보편적인 내숭’에 대한 생각을 편하고 즐겁게 이어나가길 바란다. 그러므로 본인은 마치 오락영화의 제목을 만드는 것처럼 작품의 제목을 선정한다. 예를 들어,【작품 22】〈내숭 : 쉘 위 댄스(shall we dance)〉에서는 인물들이 암벽타기를 하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지만, 그것이 마치 춤추는 듯한 인상을 안겨주고 언뜻 보기에 어려운 운동도 그에게는 삶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행동이라는 의미에서 〈쉘 위 댄스(shall we dance)〉라고 이름을 붙였다. ‘자아와 타인의 시선’이라는 주제는 다루기에 따라서는 매우 심오한 주제이다. 하지만 본인은 이를 연극적 도상과 해학적 제목을 통해서 그 심오함을 누그러뜨리고 편안하고 즐거운 감상과 사유의 대상으로 전환시키려 한다.
‘해학(諧謔)’은 희롱할 ‘해(諧)’자에 희롱할 ‘학(謔)’자를 합한 것으로 품위 있는 농담과 익살을 뜻한다. 사람을 웃음 짓게 하는 방법으로는 다양한 것이 있을 수 있는데, 남의 약점이나 결점을 빗대어 공격하는 ‘풍자(諷刺)’와 달리 해학은 약점을 지적하고 집어내지만 그것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면서 사려 깊은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쉘 위 댄스 (Shall We Dance〉, 지본담채와 콜라주, 2840×5060cm, 2014
한편 본인의 ‘내숭’시리즈에 표현되는 내숭은 언제나 구체적 사건을 연극적으로 형상화한 것은 아니다. 본인의 작품에서 ‘내숭’이란 상당히 광범위한 의미를 가진다. 본인은 때로 ‘자아와 타자의 긴장관계’를 상징하는 다소 추상적인 이미지들을 표현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작품 40】 〈동상이몽(同床異夢)〉은 전시의 의미와 아름다움의 기준에 관한 본인의 고민이 담겨 있다. 전시의 기획자는 본인에게 인물화보다는 꽃그림처럼 통상 예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작품을 제작할 것을 기대하고는 한다. 하지만 본인은 조금 덜 예쁘고 덜 보편적일지라도 본인이 그리고 싶은 자화상을 고집한다. 전시회를 앞에 두고 벌어지는 이 같은 차이는, 바로 ‘자아와 타자의 긴장’이 드러나는 국면이었다. 본인은 이 〈동상이몽〉을 통해 전시의 의미와 아름다움에 관한 가치관의 차이를 상징하고, 【작품 41】,【작품 42】, 〈과유불급(過猶不及)〉 을 통해 미적 가치에 관하여는 본인의 주체성을 지켜나갈 것임을 표명하였다. 본인은 때로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단순한 자아의 투영이라는 의미를 넘어 본인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관념들을 조형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숭〉을 통한 본인의 내재적 형상표현의 방법과 그와 관련된 조형요소들을 분석하였다. 〈내숭〉 시리즈를 통하여 표현되는 ‘내숭’의 개념이란 매우 넓은 것이다. 본인은 자아와 타자의 시선 사이의 긴장과 갈등관계를 수긍하고 그 속에서의 자아가 형성된다는 관념을 일상의 내숭을 표현함으로써 내재화한다. 본인의 자화상을 통한 내재적 형상의 표현은 콜라주와 수묵담채로 표현한 한복이 가지는 몇 가지 기능과 일상의 연극적 도상화와 해학적 제목이라는 요소들에 의해서 실현되고 있다.
Ⅳ. 조형적 특징과 표현기법99
이하에서는 〈내숭〉시리즈와 관련하여 나타나는 조형적 특징과 구체적인 표현기법에 관하여 기술한다. 앞장에서는 〈내숭〉시리즈에서 드러나는 좀 더 추상적이고 근본적인 표현방법과 조형요소를 분석하였다면, 여기서는 좀 더 구체적인 조형상의 특징과 표현기법을 살펴본다. 그 중에서 조형적 특징은 보다 거시적이고, 표현기법은 보다 미시적이다. 조형적 특징으로서는 구도와 여백, 인물과 사물의 표현에 관하여, 표현기법으로서는 전통기법의 활용과 콜라주 기법의 활용에 관하여 기술한다.
1. 조형적 특징
1) 구도와 여백, 그리고 관점
〈내숭〉에서 인물의 구도와 여백은 중요한 요소이다. 〈내숭〉에서는 자아의 대면을 형상화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운데 구도를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인물이 표현된 나머지 공간은 여백으로 남겨두고 있다. 가운데구도와 여백은, 감상자의 관심을 인물에 집중시키면서도 인물이 처한 상황적 맥락은 감상자의 상상의 영역으로 남겨둠으로써 감상자의 몰입과 능동적 감상을 유도한다. 한편, 작품의 감상자는 인물의 일상을 몰래 훔쳐보는 듯한 관점에 서게 되는데, 감상자의 이러한 관점은 ‘타인의 시선’을 다시금 환기시킨다. 이하에서 구도와 여백에 관한 조형적 특징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가운데구도는 감상자가 관심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온전히 인물에만 주의를 기울일 수 있도록 만든다. 〈내숭〉시리즈에서 각각의 작품에는 고유한 일상적 맥락이 표현되어 있고, 또한 인물의 행동을 통해서 드러내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 가운데에 인물을 크게 배치하고, 여백을 과감히 남겨둠으로써 본인은 인물의 행동을 통해서 전달하려는 메시지들을 좀 더 선명하게 전달할 수 있다. 드물게는【작품 19】〈내숭 : 낯선 혹은 익숙함〉과 【작품 32】〈내숭 : 우연을 가장한 만남〉같이 자아의 대면을 형상화 하는 작품에서 대면적 구도를 활용하기도 하였으나, 〈내숭〉의 작품 구도는 【작품 31】〈내숭 : 탄탄대로〉과 같이 거의 대부분 가운데 구도를 선택하였다.

〈내숭 : 탄탄대로〉, 지본담채와 콜라주, 85×90cm, 2013

지본담채와 콜라주, 129x306cm, 2014
가운데구도는 이처럼 감상자의 관심을 인물에만 집중하여 메시지를 선명하게 만드는 기능을 가지지만, 〈내숭〉에서 활용된 가운데구도는 여백과 결합할 때 더욱 분명한 조형적 특징을 이룬다. 여백(餘白, negative space)은 인물이나 대상과 같은 실제형태(positive shape)와 함께 화면을 채우는 공간(空間)으로서 그 자체로 하나의 ‘형태’로서의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즉 비어있음(虛)은 온갖 변화를 그 속에서 창출하면서 채워진 공간(實)이 진정한 충실의 상태에 이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는데, 여백은 화면 속의 실제형태를 뒷받침하고 그 의미를 확장하는 독자적인 허형(虛形)인 것이다.
본인의 전시 도록『김현정, 2013 내숭이야기』에서 백윤수 교수는 “작가는 테마의 전개를 거의 모두 배경 없이 그리는 형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이러한 방식은 김홍도의 〈풍속화첩〉에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전통적인 방식이며 여백의 미와 동시에 주제를 강력하게 제시하는 효과를 지닌다”고 평하여 가운데구도와 여백이 결합함으로써 나타나는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진정식,「여백에 관하여」, 『2004 춘계 종합학술대회 논문집(제2권 제1호)』, 한국콘텐츠학회, 2004, 121쪽.
이재복,「허(虛)의 개념에 입각한 중국의 회화예술」,『미술세계 (통권 66호)』, 미술세계, 1990, 93쪽.
본인의 〈내숭〉에서도 이러한 여백의 가치와 기능은 그대로 이어진다. 인물이 차지하고 있는 화면의 가운데 이외의 공간은 여백으로 남겨둠으로써 인물이 처한 환경이나 상황적인 맥락은 감상자의 상상의 몫으로 남겨진다. 그리고 감상자는 여백을 매개로 환경과 맥락을 끊임없이 재창출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작품 21】〈완벽한 밥상〉을 보면, 인물이 무언가를 바라보면서 중국음식을 먹고 있는데, 인물이 바라보는 ‘대상’은 온전히 감상자의 상상에 맡겨져 있다. 이처럼 화면의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과 대비되는 여백은 감상자의 상상력으로 채워지는데, 이는 감상자가 본인과 함께 내숭이라는 행동을 완성하는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그 상상의 과정 속에서 감상자는 재차 인물에 몰입하게 된다.



지본담채와 콜라주, 63×90cm, 2013
한편, 〈내숭〉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는 바로 감상자의 관점이다. 〈내숭〉시리즈에 표현된 인물은 모델이 된 본인의 몸보다는 다소 작지만 실제 사람의 크기에 가깝게 그려진다. 그리고 【도판 30】,【도판 31】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전시장에서 이 작품들은 감상자의 눈높이에 설치된다. 이러한 요소들로 말미암아, 감상자는 본의 아니게 화면 속의 인물을 몰래 훔쳐보는 모양새가 되곤 한다. 【작품 20】 〈내숭 : 숨바꼭질〉처럼 화면 속의 인물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망각한 채 자신의 일상이나 취미에 푹 빠져 자기의 습관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자신을 몰래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아마도 바로 자세를 고쳐 앉을 것이다. 감상자는 인물이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기 때문에 비로소 인물이 무방비 상태인 모습을 몰래 훔쳐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도는 타인의 시선이 개인의 자유로운 일상과 자아 형성에 통제나 억압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재차 환기시킨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발생하는 심리적 갈등을 피할 수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관계함을 통해 존재의 짐을 새로이 짊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자아가 형성된다는 점 또한 이미 앞에서 밝혔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이 자아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수긍할 수밖에 없다. 본인이 작업을 통해 표현하는 ‘내숭’은 타인의 시선과 주체적 자아 사이의 간극 사이에서 부득이하고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표리부동(表裏不同)이다. 감상자가 인물을 훔쳐보는 듯한 시선의 구도는 우리가 필연적으로 감내해야만 하는 시선의 틀과 그 속에서 나타나는 내숭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작품 12】 〈내숭 : 운치 있다〉, 지본담채와 콜라주, 114×59cm, 2012

본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이와 같은 인물의 시선과 관객의관점에 관한 표현 방식은 본인의【작품 12】〈내숭 : 운치있다〉와 【도판 34】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비교하면 그 의미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작품 12】〈내숭 : 운치있다〉의 배경이 되는 공간은 다름 아닌 화장실이다. 인물은 화장실에서 변기에 앉아 자신의 평소 습관대로 스마트폰의 화면을 들여다보는데 몰입해 있다. 화장실은 우리의 생활공간 중 가장 비밀스러운 장소 중의 하나이며, 그 안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그야말로 온전히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물이 차지하고 있는 이 공간은 감상자에게 개방되어 있고, 인물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평소 생활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물의 시선 처리인데, 인물은 감상자의 시선을 의식하기는 커녕 그러한 사실은 꿈에도 모르는 듯 시선을 스마트폰에만 고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선처리는 거의 모든 〈내숭〉에서 일관되게 나타난다. 이와 비교하여 【도판 34】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에서는 벌거벗은 여인이 자신의 알몸을 훔쳐보고 있을 감상자의 눈을 빤히 응시하고 있다. 마네는 화폭 앞에서 움직이는 감상자를 가정하는 새로운 형태의 그림을 제시한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에두아르 마네에 이르러 기존의 회화이론에서 ‘감상자가 보고 있지만 보지 못하고 있는 것 혹은 보지 않는 것’ 혹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되어 오던 화폭을 회화를 구성하는 하나의 존재 조건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한다. 마네는 ‘풀밭 위의 점심식사’에서 최초로 신화나 전설 속의 여신이 아닌 현실의 여인을 모델 삼아 누드로 표현하였고, 더욱이 원근법 등을 무시한 채 관객의 시선을 오로지 중앙에 놓인 누드의 여인에게 쏠리도록 배치하였다. 그런데 벌거벗은 여인은 되려 ‘무엇을 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관객을 응시하고 있다. 위와 같은 여인의 응시 탓인지 이 그림은 당대에 “수치를 모르는 뻔뻔스런 그림”이라는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위와 같은 점들에 비추어 보면, 당시에 에두아르 마네가 표현하고자 하였던 바도 감상자의 관점이라는 측면에서 감상자의 표리부동 내지 내숭을 꼬집으려 했다는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다만 마네의 방식이 도발적이고 직설적으로 감상자의 관점을 화폭 안으로 끌어들였다면, 본인은 좀 더 온건하고 간접적으로 감상자의 관점을 화폭 안으로 도입하고 있는 데 차이가 있다.
허경,「마네, 현대 회화의 물질적 조건을 선취한 화가」,『프랑스문화예술연구(제24집)』,프랑스문화예술학회, 2008, 343쪽.
허경 (註 45), 337쪽.
손경애,「미술비평가 졸라와 마네;근대성을 향한 두 혁명가」,『한국프랑스학논집(제68집)』,한국프랑스학회, 2009, 446-450면 ; 최형철,「풀밭 위에서의 식사-모네, 마네」,『기독교사상(통권 제539호)』,대한기독교서회, 2003, 207-208면 각 참조.
가운데구도와 여백, 그리고 화면에 대한 감상자의 관점에 대한 고려는 〈내숭〉시리즈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조형적 요소이다. 이를 통해서 감상자의 능동적인 감상을 유도하면서 감상자를 화면에 좀 더 몰입시킬 것을 의도하였다. 또한 감상자의 ‘훔쳐보기’의 관점을 통해서 ‘타인의 시선과 자아’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환기할 수 있었다. 이 요소들은 화면 전체를 아우르는 조형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2)에서는 좀 더 세밀하게 들어가, 인물표현과 사물표현의 대비라는 다른 조형적 측면을 다룬다.
2) 인물과 사물의 표현
〈내숭〉에서 인물과 사물은 인물의 행동을 매개로 하여 하나로 조화되지만, 한편으로 양자는 분명히 대비된다. 본인은 전통적 의상인 한복을 입고 있는 인물을 채색할 때에는 수묵 담채로 표현하였고, 인물이 활용하고 있는 현대적 기기와 물건들은 진채로 표현하였다. 내숭의 속성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속성은 ‘대비(對比)’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본인은 인물과 사물 표현의 대비, 그리고 실루엣이 들여다보이는 겉옷의 표현을 통해서 내숭의 속성을 은유하였다. 이를테면 본인이 〈내숭〉에서 활용한 인물과 사물의 대조적인 표현은 내숭의 속성을 대변하는 조형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내숭 : 투혼〉 의 부분
먼저 인물과 사물이 대변하는 시대의 차이에 관하여 본다. 인물의 의상과 인물이 사용하는 물건은 각각 ‘전통’과 ‘현대’의 이미지를 대변한다. 오늘날에도 생활 한복이나 디자인 한복처럼 새로운 개념의 한복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한복은 우리에게 일상적이고 현대적인 의상이라기보다는 격식을 차려 입는 예복(禮服)이요 전통의상으로서 널리 인식된다. 반대로【도판 35】,【작품 8】〈내숭 : 몰입〉에서 인물이 사용하는 스마트폰이나, 【도판 36】,【작품 25】〈내숭 : 투혼〉에서 인물이 먹고 있는 패스트푸드는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일상을 대변하는 사물들이다. 본인은 이처럼 ‘전통과 격식’이라는 한복의 이미지와 ‘현대와 일상’이라는 사물의 이미지를 교차․대비시킴으로써 ‘내숭’의 속성을 환기시킨다. 앞선 제3장에서 한복의 기능에 관하여 서술한 바 있듯이 한복은 통념으로부터의 일탈을 상


작품 27】 〈내숭 : 제니티스(Xenitis)〉의 부분


작품 34】 〈내숭 : 수고했어, 오늘도〉 의 부분


〈내숭 : 스물일곱, 세월의 무게〉 의 부분
징하는데, 현대적이고 일상적인 사물과의 결합을 통해서 한복의 이러한 기능은 한결 분명해진다. 이처럼 인물이 입고 있는 한복과 인물이 활용하고 있는 사물의 대비는, 그 자체로서 〈내숭〉의 주제의식과 관련하여 많은 부분을 시사하고 있다.
한편 인물과 사물은 구체적인 표현, 특히 채색방법에서도 대비된다. 본인은 인물을 표현함에 있어 본인에게 조금 더 가까이 보이는 부분은 진하게, 멀리 보이는 부분은 옅게 칠하여 신체의 높낮이를 표현하였는데, 이것은 일종의 공기원근법(空氣遠近法)을 활용한 원근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대상에 비치는 빛을 가변적이고 비본질적인 것으로 보았던 동양의 예술사상에 좀 더 가깝다. 본인은 인물의 표현에 있어는 빛에 의한 ‘밝고 어두움’이 아니라 ‘깊고 얕음’의 개념에 기초하여 채색한 것이다. 이러한 ‘깊고 얕음’을 표현함에 있어서는 담채가 사용되었다. 반대로 사물은 진채를 활용하여 좀 더 선명하고 분명하게 채색하였다. 인물을 표현할 때에는 담채(淡彩)를 이용하여 자유로운 번짐과 그 속에서 나타나는 농담을 허용하였다면, 사물을 표현할 때에는 진채(眞彩)를 이용하여 가능한 한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채색을 한 것이다. 그리고 깊이가 아닌 빛에 의한 ‘밝고 어두움’의 표현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채색 방법상의 대비는 하나의 작품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예를 들어 【도판 37】,【도판 38】,【작품 27】〈내숭 : 제니티스〉에서 치마 부분에서는 자유로운 먹의 번짐을 활용하였지만, 자전거의 체인과 부품에서는 매우 사실적이고 섬세하게 채색하고 있다. 그 밖에도 많은 작품에서 인물이 사용하고 있는 사물은 예외 없이 매우 섬세하고도 사실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처럼 인물과 사물표현의 대비는 〈내숭〉시리즈 전반을 관통하는 중요한 조형적 특징이다. 인물과 그 의상 표현에서 두드러지는 전통성과 고전성, 그리고 사물의 표현에서 두드러지는 현대성과 사실성은 대비와 조화를 이루면서 겉과 속이 다른 ‘내숭’의 이미지를 형상한다.
제1절에서는 이상과 같이 〈내숭〉에 나타나는 조형적 특징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정리하자면, 우선 〈내숭〉에서 가운데구도와 여백을 사용함으로써 본인이 드러내고자 하는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달할 수 있으며, 감상자에게 맥락의 상상을 통한 능동적인 감상의 여지를 제공한다. 또한 감상자가 화면 속의 인물을 몰래 훔쳐보는 듯한 관점을 끌어들여 우리의 고유한 자아상과 긴장관계에 있는 ‘타인의 시선’을 은유한다. 한편 인물과 사물표현은 인물과 사물이 대변하는 시기상의 차이, 표현 기법상의 차이 등으로 대비와 조화를 이루면서 ‘내숭’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한다. 이러한 조형적 특징들이 거시적인 관점에서 〈내숭〉의 조형요소를 분석한 것이라면, 앞으로 다룰 표현기법은 좀 더 미시적인 관점에서 구체적인 표현요소들을 살펴본다.
2. 표현기법
〈내숭〉의 표현기법에 관한 설명은 조형적 특징에 관한 분석보다 좀 더 미시적이고 구체적이다. 이 항에서는 〈내숭〉의 제작과정을 전반적으로 개관할 것이지만, 이를 단순히 순차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제1항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표현기법상의 특징별로 나누어 설명한다. 〈내숭〉의 구체적 표현과 관련하여, 중요한 특징은 전통 기법의 활용과 콜라주 기법의 활용이다.
1) 전통 기법의 활용






전통기법의 활용에 관하여 살펴보기에 앞서, 우선 〈내숭〉의 일반적인 제작과정을 개관한다. 〈내숭〉은 크게 ① 촬영 및 밑그림제작 → ② 채색 → ③ 콜라주의 3단계의 과정을 거쳐서 제작된다. 우선 작품스케치의 기반이 되는 사진촬영은 2차례에 걸쳐서 촬영을 한다. 1차로는 인체실루엣을 그리기 위한 촬영이며, 2차로는 실루엣 촬영사진과 같은 자세를 취한 후 한복을 입고 촬영을 한다. 이는 작업과정에서 작품의 인물실루엣 위에 마치 종이인형놀이를 하듯 옷을 입히기 때문에 필수적인 과정이다. 사진 촬영이 완료되면 촬영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초배지에 밑그림을 그린다. 스케치가 끝나면 채색에 들어간다. 채색을 할 때에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인물은 담채(淡彩)로, 인물이 활용하는 사물은 진채(眞彩)로 표현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묵담채 또는 콜라주를 통해 인물에 옷을 입힌다. 〈내숭〉의 가장 두드러진 표현상 특징이 바로 이 단계에서 나타난다. 즉, 인물의 신체를 누드로 먼저 그린 다음 그 위에 마치 인형에게 옷을 입히듯 담묵으로 치마를 입히고, 한지 콜라주로 한복 저고리를 입힘으로서 전체적으로 반투명하게 인물 신체의 실루엣이 드러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상의 과정은 【작품 18】〈내숭 : 아차(我差)!〉를 기반으로 하여 【도판 44】~【도판 49】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일련의 표현 과정에서 본인이 내세우는 기법상의 특징은 동양화의 전통기법을 활용하였다는 점이다. 오늘날 동양화와 서양화의 경계는 허물어져가고 있다. 동양화가라고 하여 반드시 한지 위해 먹으로 도상을 표현할 것이 요구되지 않는다. 그러나 본인은 〈내숭〉에서 특히 인물의 신체와 치마의 표현과 관련하여 동양화의 전통기법을 고수하고 있다. 여기서는 본인이 채택한 전통기법의 핵심적 내용으로서 한지와 수묵담채의 활용에 관하여 본다.
오늘날 동양화의 재료로서 흔히 사용되는 종이로는 한지인 순지와 장지, 그리고 중국에서 유래한 화선지가 있다. 우선 화선지는 중국의 안징성 신성에서 생산되던 선지(宣紙)에서 유래하여, 일본인들이 이를 모방해 만들어 낸 것이다. 화선지는 청단피라는 짧은 섬유의 원료를 발효시켜 만든 것으로서 묵의 번짐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발묵법에 적합했다고 한다. 한편 우리 전통 한지인 순지와 장지는 닥나무를 원료로 하여 섬유가 길고 종이가 질긴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잘 건조된 1장의 한지인 순지(純紙)를 풀로 여러 장 겹쳐 손질한 것을 장지(壯紙)라고 한다. 장지는 후지(厚紙)로서 지질이 두껍고 질기며 지면에는 윤이 흐르는 특징을 가진다.
이승철,『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한지』, 현암사, 2002, 242쪽.
우리나라에는 조선 후기 북학파가 득세하면서 화선지가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하였는데, 그 이후 전래 한지에 주로 사용해 왔던 적묵법이나 파묵법(예 : 정선의 〈금강전도〉)보다 화선지가 지니는 발묵 위주의 그림이 회화 전반에 대두되기 시작하였고, 그 대표적인 회화의 예를 장승업(예 : 〈호취도〉)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이승철 (주 47), 243-244쪽.
임영주․남권희,『한국의 문양』,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2012, 363쪽.
본인은 위와 같은 종이들 중 순지를 사용하는데, 섬세한 표현을 위해서 순지 중에서도 제일 얇은 안피라는 종이를 쓴다. 안피를 사용하면서 어려운 점은 종이가 워낙 얇다보니 붓질을 하다가 종이가 터진다거나 말리다가 갈라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붓질을 할 때나 건조를 할 때 작업실의 습도 조절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하지만 종이가 얇고 가벼운 만큼 붓질을 했을 때 먹이 자연스럽고 신속하게 스며들며, 전반적으로 맑고 투명한 인상을 줄 수 있어 늘 얇은 순지를 사용한다. 아래의 글은 한지, 그 중에서도 순지가 주는 ‘친화력’에 관하여 논의한 것으로 우리 전통 한지의 우수성을 대변한다.
순정한 자연소재이지만 비단이나 삼베보다도 수명이 훨씬 길어 천년을 간다는 ‘지천년’의 한지는 재료가 가진 탁월한 친화력만으로도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한지가 단지 질겨서 목숨을 길게 연장하는 것이 아니다. 한지를 떠올리면 풀기 빳빳한 성성함 말고, 닳은 솔기의 친밀함을 닮아 거스름이 없고 온기가 배인 넉넉한 품으로 차별 없이 우리를 감싸 안을 것 같은 안도감이 든다. 호흡과 맥박이 우리 몸의 일부처럼 자연스러운 탓인데, 그 쓰임새는 또한 얼마나 요긴했던가.
김혜미자 외,『한지, 그 멋과 공예의 세계』, 전주전통한지공예연구회, 2010, 131쪽.
본인이 자화상을 제작하면서 그림을 그리거나 콜라주를 할 때 우리 전통한지, 그 중에서도 순지를 사용하는 것은 순지와 먹이 합쳐질 때 탄생하는 유연하고 자연스러운 선의 아름다움, 그리고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한지의 매력에 끌렸기 때문이다. 본인에게 한지를 사용하는 것은 단순한 표현의 매체로서의 활용을 넘어서 우리에게 물려진 뛰어난 문화유산을 향유하는 동시에 그 가치를 최대한으로 실현시키는, 전통의 계승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본인이 얇은 순지를 사용하는 것은 〈내숭〉이 기본적으로 수묵담채화의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수묵화는 먹이 닿는 순간 번지는 한지의 성질을 이용하여 필선(筆線)과 필묵(筆墨)으로 대상의 고유한 느낌과 이를 그리는 화가의 사상, 철학, 그리고 그림의 사의성(寫意性)을 담아내는 동양의 독특한 스타일의 그림을 이른다. 필묵을 통해 화가의 철학적, 학문적, 인격적 기품을 그림에 스며들게 한다는 데 수묵화의 특징이 있다. 그 중에서도 수묵담채화는 보통 먹색의 농담 효과를 살린 수묵화에 담담하고 엷은 채색을 더한 그림으로 채색보다 수묵 위주로 그리는 그림을 이른다. 수묵담채화에서 색채란 물체의 고유성을 지정해 주는 정도이며, 이런 수묵담채화로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들을 들 수 있다. 다만 신윤복은 색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색채로써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독득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보통의 담채화보다 원색을 진하게 올린 신윤복의 그림에서, 색채는 그림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요소로까지 드러나게 된다.
정효진,「수묵화, 채색화의 색채사용 형식․방법 연구 및 분류」,『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제6권 제8호)』, 한국콘텐츠학회, 2006, 40쪽.
장준석,「한국 현대 수묵화의 회화성에 관한 연구」,『조형예술학연구 (제7권)』, 한국조형예술학회, 2005, 155쪽.
이원복 (주 12), 316쪽 참조.
정효진 (주 51), 44-45쪽. 이 문헌에서는 수묵담채에 색깔이 채색화처럼 진하게 올라간 경우를 일컬어 특히 ‘중채’라고 분류하기도 하나, 진채화(眞彩畵)의 다른 말인 중채화(重彩畵)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여기서는 그러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본인은 〈내숭〉을 기본적으로 수묵담채로 그리고 있다. 본인은 〈내숭〉 이전에도 수묵담채를 고집하듯 그려왔는데, 칠하면 칠할수록 깊이가 깊어지면서도 투명해지는 엷은 수묵의 맛과 그 속에 화가의 정신을 담는다는 멋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내숭〉의 인물을 표현함에 있어 필선에 의해 인물의 윤곽을 밑그림으로 그린 다음, 그 신체는 엷게 채색을 하고, 머리와 치마는 담묵으로 표현한다. 일부 장신구와 사물을 진채로 그리고, 콜라주에 들어간 색채가 전체 작품의 인상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언뜻 고전적이고 전형적인 수묵담채화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내숭〉에서 본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실체는 당연히 인물인데, 본인은 인물 표현에 있어서는 늘 수묵담채로 그려왔다. 더욱이 〈내숭〉에서 옷자락을 통하여 인물의 실루엣이 비치도록 표현한 것은 주제의 표현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이러한 표현은 치마를 수묵의 농담으로 표현함으로써 달성되기 때문에 의미가 깊다. 결국 〈내숭〉은 다소 독특하지만 수묵담채화로 분류될 수 있는데, 과감한 색채의 사용이 드러난다는 점에서는 김홍도의 그것보다는 신윤복의 수묵담채화에 나타난 표현기법에 유사하다고 생각된다.
제3장 제3절 ‘한복의 기능과 표현’ 부분 참조.

〈내숭 : 새벽 1시〉 의 부분

〈내숭 : 본드걸〉의 부분
한편 본인이 작품에서 특히 수묵의 선과 농담 표현에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머리카락과 치마이다. 우선 머리카락은 세필을 사용하여 한 올 한 올을 철선묘로 표현을 한다. 이는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으로서, 붓을 들고 작업을 하는 시간의 상당 부분을 투자한다.【도판 52】,【작품 15】〈내숭 : 새벽 1시〉와【도판 53】,【작품 16】〈내숭 : 본드걸〉에서 이러한 머리카락 표현의 예를 찾아볼 수 있다. 필선을 중시하는 동양화의 전통에서, 본인이 특히 내세우고 싶은 부분이다. 머리카락 한 올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선으로 그려야 하는데, 그 순간만큼은 숨을 참고 모든 신경을 붓 끝에 집중한다. 그러므로 이 머리카락을 그리는 과정은 본인에게 하나의 수련과도 같다.


〈내숭 : 공(空) 〉의 부분
본인에게 치마폭을 수묵담채로 그리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여인의 넓은 치마폭 속은 우주와 같다. 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고, 그만큼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것이 여인의 치마폭이다. 그로부터 본인은 무궁(無窮)함의 심상을 얻는다. 그런데 본인이 작업에 사용하는 먹(墨) 또한 우주의 무궁함을 품고 있다. 당(唐)의 장언원은 역대명화기에서 “먹으로써 오색을 모두 갖춘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먹이 모든 색을 표현할 수 있는 동시에 모든 색의 근원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먹색에는 동양 고유의 음양사상과 태극 사상이 배어 있다고 하는데, 노자는 유와 무, 음과 양의 경계를 이루는 진상이 바로 먹의 검은색(玄)이라고 하며 이 현(玄)은 우리의 인식계를 넘어서 있으며 우리는 그로부터 우주의 오묘함을 맛볼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먹의 검은 색은 무궁하고도 신비한 미감을 가지고 있으니, 본인이 우주를 닮은 여인의 치마폭을 담묵으로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것이었다.【도판 54】,【작품 26】〈내숭 : 나를 움직이는 당신〉처럼 운동감을 표현하려는 차원에서 치마에도 한지 콜라주를 시도한 것들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 밑바탕은 수묵과 농담을 이용하여 치마를 표현하고 있다.【도판 55】,【작품 10】〈내숭 : 공(空)〉에서와 같은 작품에서는 치마의 농담 표현이 극대화되어 치마가 거의 몰골법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담묵으로 농담을 적절히 넣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어서 치마의 농담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 전체를 다시 그리기도 한다.
정효진 (주 51), 41쪽.
장준석 (주 52), 154쪽.
정효진 (주 51), 41쪽.
2) 콜라주 기법의 활용
〈내숭〉의 제작에서 마지막 단계는, 웃옷 저고리와 드물게는 치마에 한지를 붙여 콜라주(collage)하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전통기법의 활용이 〈내숭〉의 표현기법상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면, 다른 한 축은 한지 콜라주를 활용한 한국화 표현의 변용과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본인의 콜라주는 얇은 한지를 활용하여 인물의 실루엣을 투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특징을 가진다. 앞서 제3장 제3절에서는 콜라주를 활용하여 옷자락의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도록 표현한 한복 표현의 의미를 살펴본 바 있다. 이하에서는 표현기법으로서의 콜라주에 집중하여 본인이 콜라주 기법을 도입한 이유, 콜라주를 통해 달성되는 조형적 의미, 구체적 표현 방식 등을 차례로 살펴본다.
콜라주란 불어의 Collar에서 유래한 말로 풀칠, 풀칠 바르기 등의 뜻을 가진 프랑스어이다. 라루스 사전(petit Larousse)에서는 콜라주를 ‘하나의 받침대 위에 각기 다른 재료의 단편들을 붙이고 조립하는 방법’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김순자,「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의 콜라주 표현의 특성과 의미」,『한국의상디자인학회지 (제13권 제4호)』, 한국의상디자인학회, 2011, 112-113쪽.
본인이 〈내숭〉에서 콜라주 기법을 활용한 것은, 한복 저고리에 적합한 표현 방법을 차용한다는 데 1차적인 목적이 있었다. 즉 본인은 한복 저고리의 서걱거리고 짱짱한 느낌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싶었는데, 고민 끝에 한지 콜라주를 생각해 낸 것이다. 한복의 치마는 품이 넓고 찰랑거리는 느낌이 있는 것에 비해 저고리는 약간 작다 싶을 정도로 몸에 맞게 맞추어서 좀 더 빳빳한 느낌이 있다. 특히 어깨선의 느낌이 그러한데, 한지 콜라주는 그와 같은 한복의 질감을 드러내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이와 같은 1차적 목적에 부수적으로 뒤따른 효과는, 자칫 평면적이고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는 인물화의 화면에 콜라주를 통해서 입체감을 끌어들이고 긴장감을 불어 넣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치마는 투명하고 부드럽게 흩어지는 수묵담채의 기법으로 채색한 것에 비하여, 저고리는 한지 콜라주를 이용 하여 선명한 선과 색과 거친 질감으로 표현함으로써 인물의 외관에 긴장과 생기가 돌게 되는 것이다. 이따금씩 의도적으로 저고리의 색상과 문양을 도드라지게 함으로써 작품 전체의 이미지를 지배하는 하나의 요소로 만들기도 하는데, 그런 작품들은 그 대비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최근의 작품들 중에는 치마에도 한지 콜라주를 적용하는 것들이 있다. 이것은 본인의 작품 중 운동감 있는 소재를 반영하면서 나타나는 새로운 시도이기도 한데, 먹을 이용한 치마 표현에 비하여 좀 더 간결하고 활동적인 인상을 준다. 특히 “내숭올림픽”을 주제로 하고 운동감을 살린 작품들에서는 치마에도 더 빈번하게 콜라주를 적용하였다. 이처럼 콜라주는 단순히 한복 웃옷 저고리 질감의 효과적인 표현수단을 넘어, 화면에 긴장과 생기를 불어 넣는 동시에 전체 작품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표현요소로서 기능하고 있다. ƌĀ

작가미상,〈양류관음도
(楊柳觀音圖)〉, 고려, 비단 바탕 채색, 25.8×227.9cm, 일본 다이도쿠사 소장

한편, 콜라주를 활용하여 인물의 실루엣이 드러나도록 표현한다는 것은 인물에게 한복을 ‘입힌다’는 인상을 강화한다. 인물의 치마 부분도 실루엣이 드러나는 수묵담채로 표현되지만, 특히 저고리는 앏은 한지를 옷 모양으로 덧붙여 표현함으로써 인물에게 반투명한 한복을 입힌다는 의미가 돋보이는 것이다. 이처럼 반투명하게 한복을 입히는 표현에 대하여, 선승혜 교수는 “한국화의 탄탄한 기법적 역량으로 속살을 먼저 그리고 옷을 덧그려 반투명하게 비쳐 보이도록 하는 고려 불화의 기법을 잘 응용했다”고 평가한다. 아래의【도판 56】,【도판 57】〈양류관음도〉에서는 인물의 가사가 흰색으로 반투명하게 그려져 인물의 살갗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종교적 인물의 실체를 더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본인의 〈내숭〉에서 반투명하게 비쳐 보이는 인물의 실루엣은 옷자락이 상징하는 내숭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드러나게 되어 있는 우리의 내면세계를 은유한다. 본인은 인물의 나체를 먼저 그리고 담묵을 이용한 농담(치마)과 콜라주(저고리)로 한복을 표현하고 있는데, 반투명한 옷을 ‘입히는’ 표현의 특징은 콜라주에서 더욱 돋보인다.
선승혜,「한복 입은 말괄량이들 현대미술 속으로」,『중앙일보 이코노미스트 (통권 제1226호)』, 중앙일보사, 2014, 85쪽.



〈폼생폼사 : 순정녀〉 의 부분

〈내숭 : 레드카드〉의 부분
한지를 콜라주 할 때는 얇은 한지를 골라 본인이 원하는 색으로 염색하고, 이를 한복의 주름에 맞추어 밀가루로 쑨 풀로 붙이는 작업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한지를 화면에 어떻게 붙이는가에 따라서 한복의 문양이 형성되기도 하는데 【도판 58】,【작품 11】 〈내숭 : 본능〉이나 【도판 59】,【작품 28】〈내숭 : 나를 움직이는 당신〉에서처럼 단아한 한복을 표현할 때에는 평면적으로 적용하였지만, 좀 더 화려한 한복의 표현을 원할 때에는 더 섬세한 공을 들여 입체적으로 문양을 표현하기도 한다. 특히【도판 60】,【작품 37】〈폼생폼사 : 순정녀〉나【도판 61】,【작품 36】〈내숭 : 레드카드〉와 같이 최근의 작품들에 한복의 문양을 세심하게 적용한 것이 많다.
요컨대 〈내숭〉에서 콜라주는 한복의 효과적인 표현수단인 동시에, 화면에 긴장감과 생기를 불어 넣는 기능을 가진다. 또한 그 형상과 색채에 따라 작품의 전반적인 이미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한복의 기능과 관련하여 보면, 인물의 실루엣이 투영되도록 표현함으로써 ‘내숭을 떨더라도 내면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콜라주는 그만의 고유한 기능과 의미를 가지면서, 인물의 주된 표현기법인 수묵담채와 결합하여 〈내숭〉만의 독특한 미감을 형성한다.
본인의 〈내숭〉에서 나타나는 표현기법상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전통적 표현기법의 계승과 변용’이라고 할 수 있다. 본인은 동양화, 그 중에서도 한국화에 계승되어 온 회화적 전통에 애착과 자부심을 가지고 그것을 이어가려고 노력하며 그로부터 일종의 긍지와 사명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에 현대미술적 기법들을 새로이 끌어들여 접목시키고 변용시키는데, 그 중 하나가 ‘콜라주’이다. 전통적 표현기법과 새로운 표현기법의 결합과 조화는, 〈내숭〉만의 독특한 이미지로 실현되고 있다.
Ⅴ. 맺음말62
지금까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사이에 본인이 제작한 작품들 중 특히 〈내숭〉시리즈를 주요 대상으로 하여, ‘나’의 존재에 관한 철학적 논의들, 자화상의 제작 동기, 내재적 형상표현의 구체적 방법과 효과, 작품의 조형적 특징과 표현기법에 관하여 체계적으로 분석하였다.
먼저 본인은 자아의 형성에 관한 철학적 논의들을 검토하였다. 우리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 그리고 그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구체적인 개별자인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진정한 ‘나’의 모습을 찾아나간다. 그리고 그 사이의 긴장 속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시선이 작용하는 바를 수긍하는 한편, 자아 본연의 모습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몰입을 필요로 한다. 이처럼 자아와 자아의 형성이라는 화두에 대한 관념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는 것은 본 연구의 중요한 소득이다. 그런데 본인이 현재 자아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관념이나 현재의 내재적 형상은 매우 가변적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본인이 이 논문에서 확인하고 정립한 자아와 그 형성에 관한 관념은 앞으로도 계속하여 변화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러한 이유에서 비록 본인이라는 한 사람의 외면적 형상을 대상으로 하지만, 자화상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주제의식과 소재는 매우 다양하다. 이들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새로운 표현방법을 개발하며, 또한 그 속에서 자아에 관한 관념들을 발전시키는 것이 본인의 과제이다.
본인의 작품에서 ‘내숭’이란, ‘타인의 시선 앞에서 자아를 그 시선에 부합하도록 형성하고 표출하는 현상을 통틀어 이르는’ 비유적이고 포괄적인 의미를 가진다. 본인은 내숭을 보편적 현상으로 파악하며, 그것에 대한 가치평가는 중립적이다. 〈내숭〉에서 나타나는 내재적 형상표현의 방법으로 특기할 것으로는 한복의 기능과 표현, 그리고 일상의 연극적 도상화이다. 한복은 심미적 기능, 일탈의 상징 기능을 가지며 인물의 실루엣을 투영해 보이도록 표현됨으로써 내숭의 속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한편, 자화상을 연극적으로 도상화 함으로써 각각의 소재별로 본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 분명히 표현할 수 있게 되는데, 이러한 효과는 해학적인 제목들을 통해 뒷받침된다.
한편, 〈내숭〉의 조형적 특징으로서 가운데구도와 여백은 감상자의 능동적인 감상을 유도하며, 감상자의 ‘훔쳐보기’의 관점을 통해서 ‘타인의 시선과 자아’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환기할 수 있었다. 이질적인 인물과 사물표현은 대비와 조화를 이루면서 ‘내숭’을 간접적으로 형상화한다. 표현기법 측면에서는, 한지와 수묵 담채로 대변되는 전통적 표현기법과 콜라주의 결합과 조화를 통해서 전통적 표현기법의 계승과 변용을 지향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내숭〉만의 독특한 이미지로 실현되고 있다.
본인은 이처럼 자화상을 통해 자아에 관한 본인의 관념을 내면화하고, 당시의 고민과 일상을 투영하며, 작품 내적인 주제의식을 예술적으로 창조한다. 이번 연구에서는 〈내숭〉을 중심으로 하여, 자화상을 통해 내재적 형상을 표현함에 있어서 본인이 활용하였던 조형적 요소들과 구체적인 표현기법들을 체계화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이 연구주제를 다루는 것은 매우 흥미롭고 또한 유익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본인의 작품을 중심으로 하여 다루어 보고 싶었던 또 한 가지 주제가 있었다. 바로 ‘풍속화’라는 관점에서 본인의 작품을 분석하는 것이다. 본인의 작품은 ‘자화상’이라는 측면에서도 현저한 특징을 가지지만, 현대의 문화적․사회적 배경으로부터 출발한 고민을 현대적 소품과 일상을 통해서 풀어낸다는 점에서 ‘풍속화’로서의 성격도 가진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자아에 관한 고민은 사실 서로가 서로의 삶에 깊숙이, 빈번하게, 그리고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으면서도 그를 통한 소통은 오히려 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오늘날의 세태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고 생각한다. 본인은 상호간의 피상적인 간섭이 범람하는 오늘날의 삶에서 나타난 본인의 고민과 생각들을, 일상적인 사건들을 통해 표현한다. 그러한 점에서 본인의 〈내숭〉 작업들은 ‘동시대성’이 두드러지며, 이 동시대성이야말로 풍속화의 핵심적 속성 아닐까 싶다. 더욱이 〈내숭〉은 일종의 미인도 계열에 속하여 우리나라 전통의 풍속화, 그 중에서도 특히 신윤복의 풍속화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본인은 그러한 측면에서 풍속화의 속성과 특징을 정리하고, 우리나라 풍속화와 본인 작품 사이의 역사적․전통적 접점을 발견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본인에게는 이 논문의 연구주제를 다루는 것이 더 큰 필요가 있었고 역량이 부족하기에, 위 주제는 추후의 연구과제로 남겨두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장래의 작업 중점(방향)에 관한 본인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논문을 마무리 한다. 본인이 작업에 있어서 중요한 가치로 거의 유일하게 정한 것은 ‘전통의 계승과 변용’, 그리고 ‘동시대성’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급격한 서구화와 현대화의 경향으로 말미암아 옛것의 가치가 경시되고는 한다. 하지만 의미 있는 창조는 막연히 새로운 것이기보다는, 옛것의 가치를 발굴하고 다른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써 나타나는 새로움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오류의 가능성이 낮고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며, 그러므로 더욱 유의미한 발견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온고지신(溫故知新)이요, 법고창신(法古創新)이 뜻하는 바일 것이다. 본인이 다룰 소재와 주제들은 무궁하고 가변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방향만큼은 일관되게 지향하고자 한다.
전통의 계승과 변용 못지 않게 동시대성은 본인이 끊임 없지 추구하는 가치이다. 본인은 화가란 보통 사람들의 표현 욕구를 대변해주는 대리인 또는 대변인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자아에 관한 고민을 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그 느낌이나 관념을 적절히 표현할 방법을 몰라서, 혹은 일상으로 바빠서 그것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다. 화가는 표현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보통 사람들의 느낌과 관념을 대신하여 표현해주고, 그 대가로서 공감을 얻는 사람이다. 이러한 ‘표현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다 하기 위해서는 동시대성에 늘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시대와 사회의 분위기를 민감하게 파악하고 이를 뒤따라가며, 그 변화에 적응된 표현을 해야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노력을 계속 기울일 것을 다짐하면서 논문을 마친다.
참 고 문 헌
단행본】
강신주,『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동녘,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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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 작품 연구의 동기와 목적, 논문의 구성과 연구 방법 Ⅱ. 자아탐색과 자화상 제작의 상관관계 1절. ‘나’의 존재에 관한 철학적 논의, 자아상과 자아 형성에 관한 관념 2절. 자화상을 제작하였던 동기 3절. 〈내숭〉시리즈의 제작 동기와 그 변화 Ⅲ. 〈내숭〉시리즈를 통한 내재적 형상표현의 방법과 의미 1절. ‘내숭’의 의미와 그 표현의 방식 2절. 한복이 가지는 기능, 한복이 콜라주로 표현됨으로써 달성되는 의미 3절. 일상의 연극적 도상화, 해학적인 작품 제목이 가지는 의미 Ⅳ. 〈내숭〉시리즈의 조형적 특징과 표현기법 1절. 가운데구도와 여백, 그리고 감상자의 관점 2절. 한지·수묵담채 등 전통기법과 콜라주기법의 대비와 조화 Ⅴ. 결론 — 요약, 장래의 연구 과제, 앞으로의 작업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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