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 간송옛집 실내에서 인터뷰 진행
문화재청 발간 계간지 '문화재窓' 2021년 봄호(Vol.45) '들여다:보기 - 바라보는 시선 문화재 데이트' 코너에 실린 대담. 간송 전형필 가옥 '간송옛집'에서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문화재연구실 박지영 학예연구사와 한국화가 김현정이 만나 전통 소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 전통 재료 연구, 신윤복 「단오풍정」을 오마주한 「21세기 신풍속도: 정초풍정」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준수하며 촬영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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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이 남아 있기에 지금의 예술도 꽃 피는 것"
미술문화재연구실 박지영 학예연구사 + 김현정 한국화가
단순히 예쁘기만 한 그림은 의미가 없다. 수백 년 사랑받아온 문화유산을 봐도 그렇고, 전통과 우리 일상을 잇는 김현정 화가의 작품이 그렇다. 전통을 양분 삼아 오늘을 살고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 각자의 자리에서 그 누구보다 동양화에 '진심'인 두 사람이 만났다.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준수하며 촬영했습니다.)
문화재 수호의 열정이 살아 숨 쉬는 간송옛집에서
박 전통문화를 지키고 있는 우리 두 사람의 마음과 잘 맞는 곳이라 생각해 이곳으로 모셨습니다. 어떤가요?
김 오늘 이 시간이 얼마나 기대됐는지 몰라요. 게다가 이렇게 의미 있는 곳이라니 영광입니다. 여전히 간송 전형필 선생님의 문화재 수호에 대한 열정이 살아 숨쉬는 것만 같아요.
박 저도 많이 떨렸습니다. 포브스(Forbes) 선정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 중 유일한 국내 순수미술 작가라고 들었습니다. 작품을 보니 알겠더라고요. 국제적으로 통용될만한 대중적인 소재에 동양화 기법을 가미한 작가님만의 시선이 아주 새로웠던 거죠. 저 개인적으론 작가님의 작품은 패러디라기보다 재창조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우리 전통미술에 대한 대중들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문화유산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을 높이는 데 정말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김 이렇게 전문가에게 칭찬을 들으니 더 감동적인데요? 한복을 입은 여인의 일상생활을 주제로 한 작품이 제일 잘 알려져 있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일상'은 요즘 우리의 문화를 말해요. 예전부터 김홍도, 신윤복 화백의 작품을 보면서 "그 시대에도 그릴 수 있는 걸 왜 현대에 이르러서 또 그려야 할까?" 늘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동양화풍에 현대적인 소품을 더해 시대성을 나타내보았죠. 우리에게 없어선 안 될 스마트폰, 하이힐, 햄버거와 같은 것들로요.
화가는 시대를 기록해야 할 사명이 있으니까요
박 종이뿐만 아니라 비단부채에도 그림을 그리나 봐요?
김 일반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을 만한 아이템을 늘 고민하거든요.
박 전통을 다루는 사람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공통된 고민이죠. 어떻게 하면 '전통'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거움을 덜어내고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
김 맞아요.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시는 것처럼요. 코로나19로 인해 오히려 더 다양한 비대면 매체들을 활용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박 네, 최근엔 고구려 고분벽화 속 문양과 그 의미를 쉽게 풀어주는 영상이 유튜브 채널에 공개됐죠. 연말엔 그 문양을 활용한 일러스트 연하장과 크리스마스카드를 제작해 SNS에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문화유산을 보다 재미있고 유익하게 국민들에게 전달하고 소통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작가님은 선두주자인 것 같습니다. 대중의 이목을 끌어당기는 재치가 작품 곳곳에 묻어나니까요. 이런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아요?
김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좋아해요. 다만 현장에서 그 많은 작품을 하나하나 온전히 곱씹어볼 수 없다는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관련 서적들을 꼭 챙기는 편인데, 요즘 전시회 도록 수준이 정말 높더라고요. 모두 연구사님들의 노고 덕분입니다.
박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겠어요.
김 전 김홍도 화백의 「씨름」을 보면서 '이종격투기 경기 현장'을 상상하니까요. 그렇게 신윤복 화백의 「단오풍정」을 보고 「21세기 신풍속도 : 정초풍정」을 오마주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단오 풍경처럼, 서로 등을 밀어주는 훈훈한 대중목욕탕 문화도 먼 훗날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부리나케 붓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화가는 시대를 기록해야 할 사명이 있잖아요.
전통은 건드려질수록 더 빛이 나는 것
박 8살 때부터 붓을 잡았으니, 그림 못지않게 '기록'이란 표현과도 잘 어울리는 느낌이에요.
김 네, 지금도 그동안 그린 작품을 단 한 점도 버리지 않고 관리하고 있어요. 가끔 옛날 그림을 들춰보는 취미가 있는데 추억 회상보단 '변하지 않고 잘 있는지' 확인하는 마음에서요. 그런데 이렇게 관리해도 색이 조금씩 변하더라고요. 재료에 관심이 많아진 것도 이때부터예요. 물론 좋은 재료를 얼마나 많이 사용되는가에 따라 달려 있겠지만요.
박 아주 정확히 짚어주셨어요. 한지, 비단, 안료와 같은 전통 재료나 기법은 현대 작가들이 많이 사용할수록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이런 측면에서 작가님은 정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김 몸으로 부딪혀본 경험이 아무래도 큰 도움이 됐죠. 덕분에 지금은 직접 수채화물감에 아교를 배합해 저만의 동양화 물감을 만들어서 쓰고 있답니다. 식재료를 아는 만큼 더 맛있는 요리가 나오는 것처럼요.
박 작가님께 죄송하지만, 앞으로 작가님의 경쟁자가 훨씬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웃음) 그래야 우리 전통 회화도 함께 성장하겠죠? 전통이라는 건 현대와 연결되는 접점이 있을 때 누구든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미술문화재연구실에서는 지난 50여 년간 서화, 공예, 불교미술 등 수많은 우리 미술문화유산을 연구하고 있는데요. 그 결과를 각종 학술 행사나 책자, 홈페이지를 통해 국민들과 공유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이 이 연구결과들을 활용해 앞으로도 지금처럼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김 일찍이 말씀드렸듯 제가 더 영광입니다. 전통은 건드려질수록 더 빛이 나는 것 같아요. 저 역시도 오늘 이 만남이 끝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이 되길 바래봅니다.
"모두 연구사님들의 노고 덕분이죠. 건드려질수록 더 빛이 나는 전통, 저 역시도 오늘 이 만남이 끝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이 되길 바래봅니다." — 김현정 한국화가
"전통이라는 건 현대와의 접점이 있을 때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조사·연구한 결과들을 작가님이 언젠간 꼭 활용해주셨으면 좋겠어요." — 박지영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