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가 김현정 ARTIST Hyunjung KIM

오일뱅크 | 내숭 떠는 여자, 내숭 없는 여자

매체 오일뱅크 구분 잡지·정기간행물 게재일 2017.01.01 관리코드 MI135

현대오일뱅크 사보 2017년 2월호 '깜짝 인터뷰' 코너에 실린 한국화가 김현정과 현대케미칼 이종찬 사원의 대담 기사다. 동갑내기인 두 사람이 만나 '내숭' 시리즈의 의미와 창작 철학,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초대개인전 등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글 이선주, 사진 이승헌, 의상협찬 박술녀 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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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숭떠는 여자, 내숭 없는 여자

한국화가 김현정

다소곳한 한복 차림의 여인이 치마 속을 훤히 드러낸 채 패스트푸드점 배달용 오토바이에 시크하게 올라타고, 세상 편한 자세로 라면을 후루룩 먹기도 한다. 섬섬옥수 곱게 포개진 두 손이 어울릴만한 옷차림에 이토록 편한 자세를 서슴없이 취하다니, 한편으론 무언의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정갈한 몸가짐을 요구하는 '한복'이라는 굴레를 도발적인 자세로 파괴시키며 '내숭'이라는 키워드를 불러낸 한국화가 김현정의 작품들은 그래서 늘 새롭고 재미있고 공감을 산다. 2013년 개인전 '내숭 이야기'에 출품한 13점의 작품들이 이틀 만에 완판 된 이후, 2016년 1월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최연소 초대개인전을 연 한국화가 김현정. 동아일보에서 선정하는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에도 선정된 그녀를 동갑내기 현대케미칼 이종찬 사원이 만나러갔다.

[현대케미칼 인사지원팀 이종찬 사원 & 동양화가 김현정]

이종찬 저랑 동갑내기신데, 젊은 나이에 어떻게 한국화가가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김현정 어렸을 적 언니가 그림을 배웠는데, 참 멋있어 보였어요. 동생들은 언니가 하는 걸 따라하고 싶어 하잖아요. 그런 이유로 저도 8살 때부터 전문적으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자연스럽게 예체능 중·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대학에서도 미술을 전공하게 됐죠. 서양화 동양화 할 것 없이 두루 배우다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초대개인전을 열면서 한국화가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됐어요.

이종찬 국내 작가들 중에서는 두 번째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초대개인전을 열었잖아요. 그것도 최연소 작가로요. 그림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작가님 작품들은 왠지 편안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사랑을 받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데,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김현정 제 작품들이 편안하게 느껴진다니까 굉장히 반가운데요. 저는 요즘 지난해 3월에 연 '내숭놀이공원' 전시를 마지막으로 휴식기간을 갖고 있어요. 더 좋은 작품으로 대중들 앞에 서기 위해 작품구상도 하고, 미술을 더욱 쉽게 알리기 위해 많은 강연도 하고 있죠. 지금까지는 여자의 내숭에 대해 그렸으니까 다음 작품에는 남자의 허세를 그려볼까? 뭐 이런 생각도 해보고요. (웃음) 그런데 남자들의 세계에 대해서는 제가 잘 몰라서 작품으로 나올지는 의문이에요. 이참에 종찬 씨에게 물어보면 좋겠네요. 남자들의 허세에는 어떤 것들이 있어요?

이종찬 글쎄요? 술자리에서 먼저 계산하려고 하는 거? (웃음) 작가님과의 대화에서 '내숭'이라는 단어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작품 속 인물들이 '내숭'이라는 키워드와 맞닿아 있는 걸로 아는데, 작가님이 생각하는 내숭의 의미는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김현정 내숭의 사전적 의미는 '겉으로는 순한 체 하나 속으로는 엉큼함'이라는 뜻을 갖고 있어요. 내숭이라는 단어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는 여자의 전유물처럼 여겨지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성별에 관계없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보편적인 욕구라고 봤죠. 내숭이라는 게 결국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행동을 달리 하는 거잖아요. 모자란 부분을 감추고 좋은 모습을 보이고자 하는 욕구는 본능적으로 다들 가지고 있으니까, 어찌 보면 사회의 통념에 따라 개개인이 자아의 정체성을 양보하는 현상이라고 생각했죠.

이종찬 그렇다면 작가님이 가진 내숭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 궁금해지는데요. 어떤 내숭으로 모자란 부분을 감추고, 좋은 면을 보이고 있는지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김현정 왠지 대답을 잘해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질문이네요. (웃음) 저의 내숭에는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가 있어요. 좁은 의미의 내숭은 관심 있는 썸남 앞에서 깨작거리는 모습이에요. 더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건 여자들의 본능이잖아요. 그렇죠? 하지만 좁은 의미의 제 내숭 레벨은 그렇지 높지 않은 것 같아요. 특히 마음에 드는 남자 앞에서 소식하는 여성분들이 많은데, 저는 100% 대식가예요. 엄청 많이 먹죠!

이종찬 '내숭'을 콘셉트로 한 작품들이 더 특별한 이유는 재료선정에도 있는 것 같아요. 상체부분은 한지가 덧대어 있고, 하체 부분은 한국 전통의 수묵담채 기법을 사용했는데, 상·하체 기법을 달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현정 의상과 행동의 대비를 통해서 '내숭'이라는 주제를 좀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인물을 누드로 그리고 콜라주(저고리)나 수묵담채(치마)를 통해서 속이 비치도록 표현하는 것 또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라는 내숭에 대한 시각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여자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욕구와 본래 모습을 감추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누드 기법을 통해 장막과 같은 옷을 넘어서면 인물의 담백한 본질과 만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이종찬 SNS활동에도 열심히시죠? 작품을 통해 어떤 소통을 하고 싶고, 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가요?

김현정 저는 미술이라는 문화가 음악처럼 대중적으로 많이 향유되려면 상업적 활용과 소비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SNS는 저와 제 작품을 알리는 데에도 매우 효과적인 매체인 셈이죠. 전시회가 아니면 관객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적으니, 이런 점을 해소할 수도 있고요. 실제로 인터넷을 통해 관객을 만나고, 생각하지 못했던 의외의 아이디어를 많이 얻기도 해요. 저에겐 어느새 작업의 일부분이 되어버렸을 정도죠.

이종찬 마지막으로 현대오일뱅크 임직원들에게 한 말씀 남겨주세요.

김현정 인생을 살아가는데 한 명의 멘토, 한 명의 롤모델만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한 명의 멘토를 정해놓고 쫓아가기 보다는 넓은 시야와 경험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수많은 멘토들을 만나기를 추천하고 싶어요. 하루에 30분씩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어 보세요. 한 달이면 30명이고, 1년이면 365명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사람의 장점을 찾고 칭찬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세상을 바라보는 힘이 긍정적으로 바뀌거든요.

이종찬 21세기 풍속화가, 팝 한국화가 등 수식어가 많은데요. 진짜 불리고 싶은 호칭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리고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이고, 앞으로 전시 계획도 궁금해요.

김현정 솔직히 말씀드리면 '한국화의 아이돌', '21세기 풍속화가', '팝 한국화가' 등 모두 불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아무쪼록 좋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 스스로는 부족한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좋게 봐주시는 만큼 더 열심히 해야 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어요.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내숭'이란 주제로 제가 내 놓았던 첫 작품인 '나르시스'예요. 손바닥만 한 손거울을 앞에 놓고 눈썹화장에 몰입하는 순간을 그린 작품인데, 이 작품으로 대한민국여성미술대전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의미가 크죠. 앞으로 전시 계획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다만 영상과 설치 작업에도 관심이 많아서 조만간 입체작업으로 관객들과 소통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글 이선주 / 사진 이승헌 / 의상협찬 박술녀 한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