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가 김현정 ARTIST Hyunjung KIM

LOTTE DUTY FREE | 21세기 풍속화가 김현정

매체 LOTTE DUTY FREE 구분 잡지·정기간행물 게재일 2017.01.01 관리코드 MI133

롯데면세점 사보 LOTTE DUTY FREE 2017년 1월호 'PEOPLE' 코너에 실린 한국화가 김현정 인터뷰 기사(한국어·일본어 병기판)다. '내숭' 시리즈의 탄생 배경, 한지 콜라주와 반투명 담채를 결합한 독창적 기법,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베를린 개인전 등 화단의 평가, 한국 문화를 동시대적으로 그리고자 하는 작가관을 다뤘다. editor 김지덕, photographer 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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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풍속화가 김현정

고상하게 한복을 입은 여인이 고상하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다. 게다가 한복을 입은 여인의 행동은 지극히 현대적이다. 완전히 상반된 두 가지 요소를 충돌시키며 발칙한 위트와 심미적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한국화의 아이돌, 김현정을 만나고 왔다.

editor 김지덕 / photographer 정민우

내숭을 그리는 여자

머리를 정갈하게 빗어 쪽을 곱상한 여인이 속이 비치는 시스루 한복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는가 하면, 치맛자락을 날리며 스노보드를 타고, 도발적인 자세로 당구대에 앉아 큐대를 세우고 있다. 치맛자락이 허벅지까지 올라가 다리를 훤히 드러내고 있는데도 아랑곳없는 표정을 보니 한복을 입은 여인은 정숙하고 단아하다는 인식이 산산이 부서진다. 자못 앙큼한 자태로 내숭을 떠는 여인의 모습을 그린 이는 한국화가 김현정. 이른바 '내숭 시리즈'로 국립현대미술관에 최연소 작가로 참여하고 동아일보에서 선정한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으로 뽑히는 등 한국 화단에 신선한 돌풍을 일으킨 인물이다. 어디 그뿐인가. 대중의 관심도 뜨겁다. 2014년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개인전 <내숭 올림픽>은 오픈 이래 가장 많은 관객을 모은 전시로 기록됐고,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전시에서는 출품작 13점이 이틀 만에 '완판'되며 화제를 모았다. '한국화의 아이돌'이라는 수식어처럼 화가로서는 보기 드물게 팬덤도 몰고 다녀 전시가 열릴 때면 그녀와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는 팬들의 모습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녀의 그림은 외국인의 눈에도 흥미로운 요소가 가득한 듯하다. 2016년 1월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5월에는 베를린 주독일 한국문화원에서 개인전을 진행하며 전통 한국화와는 다른 새로운 한국화의 전형을 만든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직 앳된 모습이 가시지 않은 20대의 신진 작가가 이처럼 대중과 평단 모두로부터 사랑을 받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 그 이유는 작품이 지닌 매력에서 찾을 수 있다.

그녀의 작품은 동시대적이며 직관적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고상한 한복을 입었지만 시대성을 상징하는 소품을 걸친 채 고상함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는 내숭녀의 모습은 묘한 대비를 일으키며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피식' 유쾌한 웃음이 나게 만든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이 명품 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채 양은 냄비에 라면을 끓여 먹는 모습을 그린 작품 '아차: 라면'이 단적인 예다. 흥미롭게도 앞뒤가 다른 삶을 사는 내숭녀는 곧 작가 자신이다. 사실 처음 '내숭녀'를 그릴 때만 해도 모델은 그녀가 가장 미워하는 인물이었다. 앞에서는 듣기 좋은 말만 하지만 뒤돌아서면 부당한 평가를 하는 인물을 그리던 중 자신 역시 그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조금 더 솔직하게 자신의 모습을 그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작품 속 내숭녀의 모습은 그녀와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

01 '아차我差/라면'

02 '내숭: 쓰리, 투, 원, 발사'

03 '아차我差/OOps'

04 '폼생폼사: 수고했어, 오늘도'

전통 기법과 현대적 주제의 만남

우리 고유 의상인 한복을 입은 여인의 현대적인 일상. 서로 상반되는 주제가 만난 김현정 작가의 작품은 표현 방법 또한 전통과 현대적인 기법이 모두 녹아 있다. 기본적으로 전통 동양화의 채색 기법을 따르지만 그 위에 한지를 덧붙이는 콜라주라는 현대적인 요소를 더했는데, 그 과정이 사뭇 흥미롭다. 자기 고백적 작품이니만큼 아이디어는 일상에서 얻는다. 작품을 구상하면 클라이밍이든, 승마든 먼저 본인이 직접 체험을 해본 뒤 비로소 붓을 들기 시작하는데 시작은 누드화다. 먼저 인물을 누드로 그린 뒤 동양화 기법으로 옅게 채색하고, 마치 종이인형 놀이를 하듯 직접 물들인 한지를 덧붙이며 옷을 입힌다. 저고리는 얇은 한지로 콜라주해 한복 특유의 서걱거림을 나타내고, 치마는 담채 속이 비치는 것처럼 표현한다. '그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는 메시지를 표현하기 위해 반투명 한복을 입히는 기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작품의 크기도 크고 콜라주 기법까지 활용하다 보니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상당하다. 회사원처럼 아침부터 밤까지 꼬박 그림을 그려도 두세 달이 걸린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은 산고 끝에 탄생한 자식과도 같은 존재. 그래서 대중을 지향하는 작가임에도 제 새끼들이 좋은 곳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작품을 넘기기 전 반드시 구매자를 만난다.

작가로서의 꿈은 뚜렷하다. 바로 한국의 문화를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을 그리는 것. 한국의 문화라고 해서 한복, 한옥, 떡처럼 전통적인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슬랙스를 입고 쇼핑을 하는 여인, 목욕탕에서 때를 미는 세신 문화처럼 지금 가장 핫한 한국의 트렌드를 그리려고 한다. 따지고 보면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 중 '씨름'도, 신윤복의 '단오풍정'도 그 당시 생활상이나 유행하는 광경이 지금 시대에 보면 가장 한국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림 국사책, 자신의 작품을 표현한 작가의 말이 비로소 완전히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