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가 김현정 ARTIST Hyunjung KIM

매일경제 TV | 이야기를 담다 9회

매체 매일경제 TV 구분 방송·영상 게재일 2024.01.01

매일경제TV '이야기를 담다' 9회(2024.08.15)에 한국화가 김현정이 출연해 이담 아나운서와 작품·화업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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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문화, CEO, 스포츠 각 분야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는 '이야기를 담다', 오늘은 예술·문화계 핫피플입니다. 다소곳한 듯 보이지만 당돌하고, 도도할 것 같지만 도발적인 반전 매력을 가진 분인데요. 한국화의 대중화를 이끈 '한국화의 아이돌', 초중고 미술 교과서 아홉 종에 실린 실력파 한국화가 김현정 작가와 함께합니다.

진행자: 오늘만큼 이렇게 의상이 잘 어울리는 분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한복이 진짜 잘 어울리세요.

김현정: 아, 좀 교복 같아서 늘 입어서 마음이 굉장히 편해요.

진행자: 한복을 입은 여성을 항상 그리시는데, 본인을 그리신다고 보면 될까요?

김현정: 네, 맞아요. 제 자화상이에요. 제가 대학생 때부터 그리기 시작한 시리즈인데, 그때는 모델을 구하는 게 여의치 않아서 저 자신을 무료 모델로 삼았어요. 관찰하기도 좋고, 가장 많이 보던 대상이다 보니 편하게 그리기 시작한 게 지금까지 이어지게 됐어요.

진행자: 한복이라는 게 한국화 기법을 채택했다고 볼 순 없잖아요. 한복을 소재로 선택한 이유가 있으실 것 같아요.

김현정: 이 그림 시리즈를 '내숭 이야기'라고 하는데, 이 '내숭'이라는 걸 표현하기 위해서 한복이라는 매체를 선택한 거였습니다. 사실 마음이 아파서 그리기 시작했던 그림이었어요. 그 당시 저는 고상한 모습을 하고 고상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데서 오는 내적 상처가 있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고상한 옷이 한복이었거든요. 한복을 입으면 아무래도 좀 다소곳하게 있게 되는데, 그러지 않은 행동들을 그림 속에 한번 담아보자는 게 시작이었습니다.

제가 크게 네 가지 시리즈를 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게 처음 시작한 '내숭 이야기' 시리즈예요. 일상생활에서 느껴지는 내숭의 순간들을 포착해서 그렸는데, 예를 들어 '나를 움직이는 당신'이라는 작품은 제가 배달음식을 정말 좋아해서 그린 그림이에요.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개인전을 했을 때, 한 외국인 관람객이 저를 보고 '천재적이다, 어떻게 드라이브가 아닌 딜리버리(배달)를 상상한 거냐'고 하시더라고요. 미국은 워낙 큰 나라라 배달 문화가 낯설었던 거죠. 잠시 고민하다가 '천재 화가로 남을 것이냐, 솔직해질 것이냐' 하다가, 한국은 배달 문화가 발달해서 '배달의민족'이라는 말도 있다고 솔직하게 얘기했던 재미있는 사연이 있는 그림이에요.

또 '내숭' 시리즈의 연장선으로, 20대 후반이 되면서 어르신들께 '결혼은 언제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으면서 결혼에 대한 압박을 느끼기 시작했는데요. 그래서 이 시리즈의 제목을 '계란 한 판, 결혼할 나이'라고 붙였어요. 원래 나폴레옹이 알프스 산맥을 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을 모티브로, 신윤복의 전통 혼례 장면을 넣어 패러디했습니다. 전쟁 장면을 결혼 문화로 바꿔 표현했고, 신발도 인상적으로 표현했는데 전쟁터에 나가면서도 아름다움은 포기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요즘 어머님들이 자기관리를 잘하시는 모습을 표현한 거죠.

진행자: 한복을 입은 여성들이 속이 훤히 비치는 시스루 형태인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김현정: 한복을 그리는 화가는 굉장히 많은데, 제 그림 속 여성은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특징이 있어요. 그림을 그릴 때 인형놀이를 하듯이, 인물의 실루엣을 먼저 그리고 그 위에 한복을 표현한 다음, 저고리나 치마 부분에 한지를 붙여서 표현합니다. 이 한지는 제가 직접 염색하고, 물을 떨어뜨려 구멍을 낸 것인데, 이걸 '수지'라고 부릅니다. 한복이 서걱서걱한 느낌이 나면서도 뒤가 비치는 시스루 느낌을 표현하기에는 한지가 한복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해서 이 방식을 쓰게 됐어요.

진행자: 미술 대학 시절 이야기도 궁금한데요.

김현정: 사실 저는 이 '내숭' 시리즈로 졸업 전시를 통과하지 못했어요. 그때만 해도 K팝 같은 게 없었을 때라, '요즘 누가 고리타분하게 한복을 그리냐'는 이야기를 듣고 그림을 그리지 말라는 얘기까지 들었어요. 그래도 밀고 나갈 수 있었던 건, '내가 좋아하는 한 가지를 하려면 싫어하는 아홉 가지를 감수하라'는 말처럼, 그림 그리는 게 행복했기 때문에 다른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계속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저를 안 좋게 보신 선배님들도 계셨어요. 한 선배님은 강의를 하시다가, 학생이 존경하는 화가로 저를 얘기해서 궁금해서 불렀다고 하시면서, 그림을 통통하게 그린다는 지적도 하셨다고 해요. 그런데 제가 그 자리에서 '제가 그 화가고, 자화상이라서 이렇게 그린 겁니다'라고 웃으면서 말씀드렸던 적도 있어요. 지금은 오히려 후배들에게 저 같은 행보로 나아가라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한국화에는 색이 없다고 많이들 생각하시는데, 사실 천연 색채를 다 쓸 수 있어요. 동양화는 한중일 3국의 그림을 뜻하는데, 중국화는 먹을 많이 쓰고 일본화는 채색을 많이 쓰는 전통이 있다면, 한국화는 지리적으로 중간에서 수묵담채라는 기법, 즉 먹과 채색을 적절히 쓰는 기법을 씁니다. 진한 색을 내려면 연한 물감을 열 번에서 스무 번 정도 발라야 해서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려요. 100호 정도 크기의 그림이면 꾸준히 그렸을 때 최소 한 달 정도 걸리는 세밀한 작업입니다.

작품 가격에 대해서도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일차적으로는 작가가 결정하지만 시장가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기준 금액이 있습니다. 인서울권 4년제 대학을 갓 졸업한 작가라면 100호 기준으로 300~500만 원 정도를 받는데, 판매 수수료가 50% 정도이기 때문에 실제로 받는 금액은 훨씬 적어지고, 액자·운송·재료비까지 고려하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이건 창작자가 들인 시간을 사는 것이라고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실 힘든 시기도 있었어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던 시기에, 유일한 친구가 그림이었어요.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몰입이 되고 좋았거든요. 저를 아프게 했던 또래 친구들을 직접 그릴 수는 없으니, 저 자신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밤에 작업을 하다가 그림 속 인물과 거울 속 제 모습, 그리고 사진 속 제 모습이 닮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 사람이 미웠던 건 사실 저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 뒤로는 밉지 않게 되더라고요. 그 순간을 겪으면서 우울증도 많이 좋아졌어요. 그래서 저는 그림을 그릴 때 유쾌하게 그리고 싶어요. 이 그림으로 치유받았으니, 보시는 분들도 '너무 발칙해, 너무 재밌어' 하고 느껴주시는 게 저의 행복이거든요.

또 하나 힘이 되는 건 SNS인데요. 그만두고 싶을 때 '그림 보고 힐링됐다', '파이팅이다' 같은 댓글 하나가 큰 힘이 됩니다. 처음 이 작업을 시작한 2012년부터 지금까지 12년째인데, 처음엔 안 좋게 보신 선배님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시대가 변하면서 점점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지금 그리고 있는 그림에는 BTS도 등장하는데, 원래 찍혔던 사진에 제가 한복을 입혀서 표현하는 방식이에요. 팬분들이 신곡 발매 시점에 맞춰 공개하면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저는 미술도 음악처럼 생활 속에서 모두가 즐기고 경험하는 사회가 되는 게 꿈이에요. 스트레스 받을 때 '노래방 가자'는 얘기는 해도 '그림 그리러 가자'는 말은 아직 낯설잖아요. 그런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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